입술이 마주 닿는 감촉 속에서, 불안은 김 서린 창문 밖 풍경처럼 희미해지는 듯 했다. - P198

왜 이렇게 다른 거야? 왜 말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 건데? 말한다고 전해지긴 하는 거야? 시하야. 너는 왜 거기에 있어? 내 안이 아니라. 그런 건 너무 쓸쓸하지 않나? 이런 말을 해 봐야 너는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단 표정만 짓겠지. - P216

내가 너를 사랑하는 방식대로 네가 나를 사랑해 준다면 좋을 텐데. 아주 잠깐이라도. - P217

"시하야, 나는 한 번도 널 만난 적이 없어. 내가 보는 너는 빛이 나의 망막에 맺어준 상이야. 내가 듣는 너는 고막을 진동하는 공기의 떨림이야. 내가 만지는 너는 피부가 보내는 전기신호일 뿐이야. 내가 기억하는 너는………… 나의 뇌가 멋대로 해석해 구겨 놓은 납작한 착각이야. 헛된 희망이야. 시하야. 나는 널 몰라. 한 번도 너를 알았던 적이 없어. 우리가 주고받는 말들은 그저 허공에 미끄러질 뿐이야." - P246

"나는 그 말이 진실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그래서 진심을 다할 수가 없는 거야. 우리 사이엔 아득한 단절이 있어. 내 세계의 끝까지 걸어가도 네가 있는 세계로는 넘어갈 수가 없어. 우린 서로 다른 몸에 갇혀 있어."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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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말아요. 처음에는 누구나 겁나서 죽을 것처럼 구니까요."
나는 웃으려 했지만 살갗이 양피지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닥터 고든은 내 머리 양쪽에 쇠로 된 원반 두 개를 설치했다. 그가 이마 위에 있는 끈으로 원반들을 조이고, 철사를 주며 깨물라고 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숨을 한 번 들이쉴 만큼의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뭔가 굽히며 세상이 끝난 것처럼 나를 안고 흔들어댔다. 타다다다다닥,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공중에 파란빛이 번쩍거렸고, 그때마다 몸이 홱홱 젖혀져서 뼈가 으스러질것 같았다. 잘린 식물처럼 몸에서 수액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다고 이러나. - P191

인위적, 겉으로 꾸민, 가짜의
‘그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못해.‘
스무하루째 잠을 못 잤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늘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움직이는 수백만 가지 형체와 그늘진 막다른 길들, 서랍장과 옷장, 옷가방 속에는 그늘이 있었다. 지구의 밤 쪽으로 끝없는 그늘이 뻗어 있었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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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감독은 사람을 괴롭히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희생양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 희생양이 될 타입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십시오. - P195

그렇다고 점잖은 감독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캐럴 리드는 "컷"을 외칠 때 배우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온갖 재치를 발휘합니다. 캐럴은 항상 못이나 동전을 쥐고 다녔지요.
배우가 대사를 제대로 못하거나 까먹을 때, 혹은 장면 진행을 매끄럽게 하지 못한 경우 못이나 동전을 떨어뜨리고는 "컷. 조용한 장면이었는데………. 이왕 촬영을 멈춘 거 그 장면을 다시 한번 해볼까요?"라고 말하곤 했지요. - P196

스타의 지위까지 오를 필요는 없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좋은 배우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여정이고, 여러분께 강력히 추천합니다. - P207

일반적으로 신경질은 불안에서 옵니다. 진정한 스타들은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대부분 얻어냅니다. 저는 신경질적인 사람들을 ‘얼치기‘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연기를 얼추 할 수 있고, 자신의 대사를 얼추 알고 있으며, 시간을 얼추 지키고, 얼추 스타가 됩니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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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큰 휴스턴 감독 역시 지대한 도움을 주었습니다. 단 한 문장으로 제가 맡은 캐릭터를 확실히 말해주었지요. 한 이틀쯤 촬영을 하고 있는데 휴스턴 감독이 말했습니다. "컷! 마이클, 말을 좀 더 빨리 하게, 그는 정직한 사람이야." 제가 느리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엇을 노리는 사람처럼 보였던 겁니다. - P166

배우들은 거의 예외 없이 서로를 돕습니다. 영화판에서 갑자기 활동을 중단하는 사람의 명단은 적을 만들거나 속임수를 잘 쓰는 사람의 명단과 일치합니다. 그런 행동들은 대부분 성공하지 못합니다. 대장격인 감독이 훤히 꿰고 있기 때문이지요. 감독은무엇이 수상쩍은지, 누군가를 골탕 먹이는 사람이 누군지 다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보고 영화에서 중도하차시키겠지요. 만일 감독의 눈을 피했더라도 관객들은 은연중에 낌새를 알아챕니다. 그들은 어느 누가 어떤 비열한 행동을 한 건지 정확히 알지 못하더라도 직감으로 "저 배우는 싫어"라고 말합니다. - P171

<마구스The Magus〉(1968) 촬영 중의 이야기입니다. 앤서니 퀸 본인과 그랬다기보다는 앤서니 퀸의 추종자들과 제가 정면으로 붙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그의 광팬들로부터 "오늘은 앤서니의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라든가 "조심하세요. 오늘 앤서니의 기분이 매우 안 좋거든요" 같은 전갈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제가 대뜸 "제 기분이 어떤지 그가 물어보던가요?"라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추종자 중 한 명이 "왜 그분이 그걸 물어야 하죠?"라고 반문하더군요. 그래서 대답했습니다. "왜냐고요? 제가 다음 비행기를 타고 집에나 갈까 하거든요." 그러고 나서 저는 공항으로 갔습니다. 그들이 설득해서 돌아오기는 했지만 제가 원하던 핵심은 얻어냈습니다. - P173

매일 촬영이 끝나면 사람들은 편집용 프린트를 보러 갑니다. 저는 절대 가지 않습니다. 편집용 프린트를 보고 나면 사람들은 요트를 삽니다. 그리고는 개봉일에 파산합니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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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사람을 서로에게 소개하고 그 사람을 우리곁에 초대해 다시 기억하는 것이 "리멤버링(re-membering)"이며 애도는 리멤버링의 과정이다. 죽음이 삶의 일부이듯 세상은 묘지 위에 있고, 죽은 자는 산 자의 틈 속에서 영원히 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애써 지우려 하지 말자. - P263

"지금까지 저는 고인의 이야기를 저의 이야기로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게 애도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그 사람과 제가 같이 만드는 일기 같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새롭게 해요."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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