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크리스마스 에디션 리커버 한정판)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예쁘게 새로 장정(裝幀)된 작은 책, ‘마법사 빵집(Wizard Bakery)’의 유혹에 꼴까닥 넘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책을 펴면 발효된 이스트의 냄새, 이른 아침 제과점 앞을 지날 때 후각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그 풍미가 확 밀려든다. 몰입하지 않을 도리가 없지 않은가?

 

열여섯 살 소년이 황급히 도망가고 있다. 비명, 그리고 분노하는 절규의 소리가 그를 집요하게 쫓아온다. 소년은 갓 구운 빵들의 열기로 가득한 가게의 문을 민다. “나 좀 숨겨줘”,

의붓 여동생 무희의 집게손가락이 가리킨 엉뚱하고도 터무니없는 방향이 야기한 누명, 새어머니 배 선생의 분별과 판단의 이성을 상실한 맹목(盲目), 아버지의 무관심에 존재할 곳을 잃은 소년과 빵집은 그렇게 서로의 삶에 연결된다.

 

위저드 베이커리’, 이곳에선 마법이 든 빵들을 판다. 화해 100%의 효력이 있는, 보기 싫은 인간을 떨어내는, 짝사랑을 연인으로 만들어주는 것과 같은 야릇한 이름을 가진 마법의 빵들 - 메이킹 피스 건포도 스콘, 노 땡큐 사브레 쇼콜라, 체인 월넛 프리첼... - 의 주문이 그치지 않는다. 그런데 물품의 상세정보사용시 유의사항을 건성으로 읽어서는 곤란하다.

 

이를테면 사랑을 얻기 위해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먹이면 효력 있는 체인 월넛 프리첼이것을 사용함으로써 맺어진 인연은 함부로 끊을 수 없다는 점을.....진지하게 고민한 다음 선택해주세요.”라는 유의사항이 있다. 단순히 마법을 파는 빵집이 아니라, 자기 책임과 삶의 진실한 요구가 무엇인지를 숙고하게 하는 그런 영적 사유의 공간이 된다. 순간의 열정, 혹은 분노에 지배당하는 삶의 결정이 수반하는 후회와 번민(煩悶)이라는 고통에 악다구니 부리는 인간들이 스쳐간다. 자기 인식과 삶의 그 심원한 진지함을 생각조차 않는 사람들.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준 위저드 베이커리의 마법사(점장)가 짊어진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몽마(夢魔)를 기꺼이 자신의 꿈으로 안는 용기로부터, 소년은 그의 언어가 목소리가 되어 나오기 불가능 할 만큼의 저 깊은 곳의 상처들, 그 기억들을 비로소 정면으로 마주 한다. 청량리역 에 버려졌던 여섯 살 그 어느 때의 기억, 가죽 띠에 목을 맨 어머니의 잔상들, 오직 자기 영역과 소유에만 관심을 지닌 초등학교 선생인 새어머니의 이기심과 냉담, 그리고 편견과 몽매성, 자기 편의에만 열중하는 아버지의 방관적 무관심들을 현실이라는 불가피적 관계로서 수용한다. “나는 단지 거기 있었을 뿐 인데를 되뇌는 소년의 억울함에서 한 존재에게 가해진 숙명과 현상의 관계에 잠시 시선을 떨구게 된다.

 

아마 이 동화(童話)같은 소설의 깜찍스러움은 급하게 문을 닫아야 하는 빵집의 마지막으로 출력된 주문서 일 것이다. ‘마지팬 부두인형’,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하기위한 것, 소년은 도망쳐 나왔던 집을 향해 점장이 만들어준 물품을 들고 나선다. 그가 마주한 패륜(悖倫)적 현장, 칼을 쥐고 그를 향해 달려오는 배 선생, 그리곤 소년의 손에 들린 시간을 되돌릴 마법의 빵인 머랭 쿠키’....,이 때, 우린 시간을 되감아 어떤 과거로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우연이라는 삶의 숙명성을 겸허히 받아들이면 되는 것일까? 우주의 한낱 미물인 존재들이 빚어내는 그 수많은 자기변명들이 초라하게만 느껴진다. 달콤한 향기에 숨겨진 마법의 빵이 어디에선가 팔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작품을 읽는 시간 내내 상처받아 헐떡이는 소년을 품어주던 '위저트 베이커리'의 오븐 속에만 콕 박혀있었으면 하는 느낌이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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