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잠들지 않는다 - 일상화된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줄리엣 카이엠 지음, 김효석.이승배.류종기 옮김 / 민음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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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은 해로움 때문에 주의를 끌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사회와 제도의 실체를 비추기 때문에 

관심을 끈다. 재난은 이미 잘못된 것을 드러낸다.”

 -본문 56쪽에서

 

 

지금 한국사회는 짧은 시간에 너무도 많은 재난을 겪고 있다. 이 재난은 바로 그 사회의 제도와 정책, 관리들, 사회구성원의 민낯을 드러내 윤리적, 정치적 실체를 까발린다. 딱 그 정도의 수준과 위치임을, 젊은이들의 어처구니없는 죽음, 예견된 재난에 대한 무대책과 방관이 야기한 불필요한 죽음들이 마치 불가피하고 대비 불능했다는 듯이 일탈적인 예외적 사건으로 치부되고 책임을 회피한다. 책임져야 할 정부는 외면을 넘어 터무니없는 변명과 정쟁으로 시선을 왜곡하기까지 한다. 때문에 재난이 야기된 원인에 대한 조사도 애초에 하지 않게 되고, 재난은 반복되고 더 빨리 재앙이 되어 돌아온다. 그 피해는 온전히 시민대중이 반복적으로 뒤집어쓰게 되는 결과만 초래한다.

 


이 책은 재난에 대한 인식제고를 통해 어떻게 재난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지, 더 성공적으로 이겨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전략과 지표, 척도를 제시한다. 재난의 본질이란 재난에 대처하기 위한 준비는 결코 완전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데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한 재난은 어떤 일회적 일탈적 사건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늘 함께하는 일상적 표준으로 인식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경고의 목소리. 재난조차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덧씌워 쟁점을 흐리거나 정치화하여 일개 괴담놀음거리로 만들어대는 권력의 선전장으로 전락하는 작금의 현실은 너무도 안타깝기만 하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아무런 짓도 하지 않은 주무처 장관에게 헌재(憲裁)는 면제부를 쥐어줬다. 과연 이러한 권력의 시선으로 국민을 재난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까? 아마 잠자지 않은 재앙은 끊임없이 무대책과 무방비로 일관하는 권력으로 인해 시민대중에게는 각자도생의 길을 찾는 험한 길만 주어진 것 같다. 이 책은 위에서 언급했듯 재난에 대한 인식과 대비를 위한 깊이 있는 지식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주목하게 것은 재난에 대처하는 지방 및 중앙 정부의 주무관리들과 그 수뇌부들이 응당 해야만 하는 책무와 태도이다. 때문에 시민의 시선에서 이들 행정권력 기관에 대한 재난 정책에 대한 감시 역량을 높이는데 분명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된다.

 

내가 있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 지역의 수장은 재난 상황의 실시간 상황인식의 엄중성을 부정하는 말을 감히 내뱉으며 책임을 외면하는 현실에서 국민은 이들에게 강력하고 엄격한 명령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재난은 지나가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의 정체성과 문화, 무시해 온 문제들을 드러낸다. 오송 지하차도 침수로 인한 인명 피해는 예견된 집중폭우에 대한 그 흔한 대비가 전무했음을 드러낸 여실한 사건이다. 재난에 대한 사전 대비 없음도 문제지만 실시간 상황에 대한 상황보고 체계도 작동하지 않았으며, 이를 통합 지휘해야하는 도지사는 마치 자신과는 무관한 재난이 펼쳐진 것처럼 자신을 예외지대로 두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책은 리더의 상황 인식과 상황지휘 체제를 중요한 재난관리 요소로 다루고 있다. 특히 사고지휘체계(ICS)는 모든 리더가 이해하고 있어야 할 대응체계로서 현장 정보를 보고, 분석, 의사결정하여 신속한 재난 대응 처리를 위한 필수책무로 강조하고 있다. 재난의 실시간 상황보고와 상황인식은 지역의 수장, 중앙기관의 리더, 최고통치권자에 이르는 자들이 왜 재난 현장을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의 중대한 앎을 제공한다. 결과 추이에 따른 문제 최소화를 위한 즉각적 조치뿐 아니라 후일 반복되는 재난에 대처하는 방식에 효과적 지식으로 축적되기 때문이다. 이를 회피한 자들은 재난에 대해 결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뿐 아니라, 재난의 실체를 결코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의심할 여지없이 절대적으로 대응이 필요한 위협을 위기(risk)라고 말한다. 이 위기가 적절히 해결되지 않고 끔찍한 결과가 발생할 때를 재난(disaster)이라 부르며, 이 재난이 미숙하게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것을 재앙(catastrophe)이라 한다. 금의 한국사회는 위기의 단계에서 처리되는 것이 없다. 위기가 발생하면 모두 재앙에 이르고 있는 현실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모두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다는 말과 같다. 재난 불감증에 걸린 권력은 배워야 하지만 배우려 하지 않는다. 국정을 장악한 현 권력들은 한결같이 실존적 결정을 돌아보길 거부하면서 학습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때문에 아무런 학습이 되지 않으며 실패의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 신속하고 정직하게 배워야 될 절실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외면 혹은 무능을 자처하기에 이 사회의 재난은 항시 재앙으로 귀결될 것이다.



예견되는 재난에 대비하는 계획을 유비무환이라 하여 전통적인 사전 대비책도 재난관리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재난이 닥쳤을 때 재난이 진행 중인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대에 우리는 진입해있다. 상황인식은 재난관리에 있어 더욱 중요해졌으며, 그래서 정부(중앙 및 지방) 수장의 현장관리는 재난의 최소화에 있어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책은 재난의 예견에 따른 준비 및 재난 차단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나 더욱 중점을 둔 분야는 재난이 발생한 이후의 관리에 보다 역점을 두고 있다. 지진이 발생한 후 정부 리더와 원자력발전을 비롯한 당해 기관의 위기관리자 역할에 따라 재앙이 되기도 하고 재난의 최소화로 방어 할 수 있기도 하다. 재앙으로 귀결된 사례들로부터 우리들은 상당한 교훈과 지침, 윤리적 책임의식 등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무시하고 은폐하고 거짓말로 기만적으로 넘어갔던 재난은 재앙으로 반드시 그 추악한 몰골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위기가 코앞에 닥쳤는데도 외면하는 현상을 타조의 역설이라 부른다. 근시안, 낙관주의, 기억상실, 타성, 단순화, 자기 이익과 무관함 등이 서로 얽혀 다가오는 위기를 받아들이는 것을 꺼리는 태도이기에 이들에게 재난의 닥침은 곧 재앙으로 무참히 연결될 뿐이다. 특히, 서울의 상습적 침수는 배수관로에 대한 전반적 점검 및 개량을 필요로 한다, 즉 예산을 요구하는 것이지만 수장은 이 예산을 전면 삭감하였다. 자원낭비라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이들에겐 재난 대비 예산은 본질적으로 바보같은 짓이며, 신경쇄약자의 과잉반응으로 간주된다. 그리고는 재난이 닥치면 다시는 안 된다(never again)'는 진부한 문장으로 짐짓 결연한 기만적 태도로 자신감을 내보이곤 한다.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으며, 재난은 반복된다.

 

혹여 행정기관의 재난에 대한 준비태도나 방법에 대한 시민적 오해가 있다면 그것에는 도사리고 있는 무수한 또 다른 방해 요인이 있을 것이다. 지식이나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거버넌스 구조의 책임 분산이 통합된 노력으로 대응하는 체제를 방해했거나, 예견되는 무수한 적색신호의 잡음에 대한 무시, 사적 이해관계가 얽힌 규제의 느슨함이거나 규제 특권이 부여된 예외지대의 탈법적 지대가 생성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최후 방어선이라는 함정에 빠져 최후의 안정장치에 의존하여 재난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수도 있다. 최후의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안전장치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고 만다. 저자는 이와같이 재난에 대한 대비책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들, 리더가 필히 갖춰야 할 태도와 방법적 도구들, 그리고 심리적 태도들에 이르기까지 재난 대응책들을 촘촘하게 제시하고 있다.

 

재난 대비예산의 촉구와 대응책을 요구할 때 지금까지 잘 작동하고 있는데, 별다른 사고도 일어나지 않는데...’와 같이 변화란 없다는 듯한 반론을 곧잘 듣게 된다. 하지만 근본적인 것들은 항상 변하고 있으며, 더구나 인간도 변하고 있다. 과거와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만일 똑같았다면 모든 재난관리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을 것이다. 재난 관리란 끊임없이 울퉁불퉁한 바닥상태에 맞춰 안정되게 만들려는 세 발 의자와 같은 것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항공기 추락, 태풍과 홍수,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 컴퓨터 네트워크의 해킹, 감염성 질병의 확산, 테러로 인한 재앙 등 유형별 재난 사례들과 함께 재난의 대비성이 왜 강조되어야 하는 것인가를 거듭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멜팅(melting) 사고, 911 테러, 보잉 737의 연속적 추락, COVID 확산,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제방 붕괴 등 지구촌 뉴스를 장식했던 재앙적 사건들은 성공적 예방으로 엄청난 인명 손실과 재산의 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사전 대비가 가능했던 사건들이다. 사욕과 권위적 과시, 권력과 기업의 결탁, 규제 완화와 같은 공적 감시소홀로 재난을 촉진한 인재가 위기를 재앙으로 만들었음을, 즉 재앙의 거의 모든 중심에는 인간의 재난에 대한 이해의 결여, 미숙함, 회피가 놓여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재난에 대한 이 전문적이고 밀도높은 저술은 재난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를 바꿔 놓는다. 지방 및 정부 관리들은 물론, 기업 위기관리자, 그리고 시민 대중 모두에게 재난을 바라보는 시선을 이 책은 분명 한 층 올려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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