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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볼프강 카이저 지음, 이지혜 옮김 / 아모르문디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에일리언' 이라는 영화를 기억한다. 내가 초등학교 무렵이었을까? 늦은 밤, 엄마에게 허락을 받고 아빠옆에 누워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휴일 밤에 방송되던 '에일리언' 을 보았더랬다. 거대한 외계 행성, 괴기한 배경 사이로 바닥에 가득한 투명한 젤리같던 에일리언의 알들. 그리고, 사람의 얼굴에 붙는 에일리언의 유충 '페이스 허거'. 그리고 사람의 배를 뚫고 나오는 새끼 에일리언과 번들거리는 긴 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입 안에 또 입이 있는 괴기한 디자인의 어른 에일리언. 내가 '그로테스크' 라는 느낌을 받았던 건 바로 그 순간이 최초일 것이다.
79년에 처음 발표되, 4편까지 등장한 에일리언은 바로 이 책에서 나오는 '그로테스크' 의 정의에 가장 합당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연구 자료들과 개념과 용어에 대한 설명들을 통해 가장 많이 떠오른 작품이 바로 이 '에일리언'과 에일리언의 아버지이자 현대 미술가인 'H.R 기거' 였고, 일본 만화작가인 '이토 준지' 또한 자주 머릿속에 떠올랐다.
제목처럼 이 책은 우리가 막연히 알고 사용해 오고 있는 단어인 '그로테스크' 라는 단어를 미학적으로 접근해 풀어나간다. 단어나 용어는 세월에 따라 그 쓰임이 다르다. 특히 미술이나 문학에서는 더 그러한데, 우리가 잘 알고있는 '고딕''르네상스''로코코''로마네스크''아라베스크''낭만주의''인상주의''초현실주의''사실주의''극사실주의''아르누보''아방가르드''모더니즘''포스트 모더니즘'..등등 단어를 그대로 풀이해서는 대체 용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 일련의 용어들은 처음 만들어질 당시의 시대, 사회적 배경과 그 중심이 되었던 인물과 사건들, 작품들에 대한 지식이 충분해야만 똑바로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다.
특히 '그로테스크' 라는 단어는 더욱 그렇다. 이 용어 또한 다른 용어들과 마찬가지로 후대에 만들어졌으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그 의미와, 의미가 포괄하는 범위가 변해왔다. 특히 그로테스크는 위에 언급한 다른 용어들과 달리 뚜렷한 형식이나 틀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작품에 흐르는 이미지와 단어가 사용되었던 과거의 문헌들을 바탕으로 특징을 찾아내야 했다. 르네상스나 인상주의의 경우엔 그 시대와 환경이 요구하는 일련의 지향점이 있어왔고, 그 시대의 작품들엔 동일한 코드가 있다. 예를들어 르네상스는 '고전으로 돌아간다' 는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고전주의와 그 맥을 함께 하며, 사상, 문학, 미술, 건축 등 모든 분야에서 다른 사조와 구분되어지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하지만, '그로테스크' 라는 단어는 그러한 특징을 지닌 미술적 사조나 화풍이라기보다, 이미지와 감정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로테스크는 모든 시대의 모든 작품들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고, 발견되기도 한다. 저자는 특히 16세기에 그 용어가 정의되고, 활발히 사용되기 시작한 부분에서부터 접근을 시작한다. 과연 어떤 작품에서, 어떤 분위기와 느낌을 '그로테스크' 라고 정의했을까? 16세기 로부터의 수많은 문학 작품과 미술작품, 비평집들을 예로 들어가며 '그로테스크' 를 정의하기 위한 위대한 노력이 담겨있다.
그로테스크는 형식, 효과, 이미지, 상상 등 모든 것을 망라하는 거대한 '위화감' 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서양인들이 처음 중국문화를 접했을때, 중국풍의 작품을 그로테스크라고 받아들이기도 했고, 기독교 문화가 서양을 지배하고 있을땐 악마주의의 작품을 그로테스크라고 받아들이기도 했다. 인간과 기계의 조합 또한 그로테스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고, 인간과 동물의 결합 역시 그로테스크라고 할 수 있을터다. 뿐만 아니라 글의 형식과, 문장의 분위기를 통해서도 그로테스크를 느낄 수 있다. 위에 언급한 에일리언의 디자이너 'H.R 기거' 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을 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라 카프나와 러브 크래프트 같은 소설가였다. '글' 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 책 역시 미술작품들 보다는 소설들을 예로 들며 그로테스크를 설명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