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숙의 나라
안휘 지음 / 상상마당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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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나라/안휘/문학/역사소설

여성의 몸으로 한 평생 살아가기 힘들던 시절. 나라의 볼모가 되어 팔려 가듯 어딘가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여기 소설에 등장하는 애숙, 의순공주 또한 비련의 여인 중 한 분이 아닐까? 이 작품을 통해 기회가 된다면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인근에 자리 잡은 그녀의 묘소 또한 꼭 한 번 참배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를 내려놓고, 대를 위해 희생할 수밖에 없었던 각박한 시절. 외세의 침략과 국가적 안위에만 급급해 인간의 일생을 송두리째 날려 버릴 수밖에 없었던 암울함과 멍청했다고 할 수밖에 없었던 굴욕의 조선 시대 말기. 우리 선조들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나 의문이 들 정도의 씁쓸함과 안타까움도 묻어난다. 한 여인의 일생이라기보다 가슴 아픈 시대의 슬픔이자 불행일 뿐이었다. 그것이 작가 안휘가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진실일 것이다.

작가는 이야기한다. ‘비운의 희생양‘. 상감의 양녀로 맺어지는 운명이지만 이는 청나라 오랑캐들에게 볼모로 잡혀가는 수단일 뿐이라고.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청나라로 떠나는 애숙(의순공주)의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 느껴지는 당당함과 우여곡절의 인생역정이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봐도 전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시대가 변하고, 우리 나라의의 국제적 위상이 밖으로 보이는 당당함과 달리 아직까지도 주변국의 눈치와 견제 속에서 우리의 색깔을 내지 못함이 과거의 시대와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통해 또 다른 의순공주, 국가적 위상의 상승은 있어도 추락은 없길 바라는 마음까지 들게 한다.

청으로 시집온 의순공주는 조선인 출신 상궁 하란의 도움과 도르곤 섭정왕의 극진한 대접과 사랑으로 타향살이의 서러움을 달래 가고 있었다. 그러나 늘 인생이 한 방향으로 흘러만 갈 수 없기에 그녀에게 또한 시련이 찾아온다. 전쟁에서 얻은 부상으로 가끔 각혈 증상을 보이던 섭정왕 도르곤이었으나, 그 외의 증상이 없던 왕이었기에 사냥 중 찾아온 갑작스러운 죽음은 의순공주를 더욱 불안에 떨게 하는 빌미가 된다. 용맹무쌍하던 왕의 절명이 못내 의심스럽지만 또 다른 파고에 휩쓸릴 수 있으므로 그녀를 모시고 있는 하란은 이에 대한 주의를 당부한다.

이것도 잠시, 국장으로 마무리된 도르곤 섭정왕의 장례 후, 역모를 꾀했다는 억울한 누명과 거짓 진술로 인해 섭정왕의 시신은 부관참시 되고, 이에 더해 거짓 증언을 강요하며 하란을 압박하지만 이를 거부한 의순공주의 궁녀 하란은 날 서린 칼에 의해 의순공주 앞에서 살해당하고 만다. 한 여성의 삶에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이 연속적으로 벌어
지는 것이다.
다행히 의순공주는 도르곤의 장수였던 보로에게 다시 머물게 되지만, 그의 정실 부인이었던 퉁기야와 대립각을 세우고 만다. 그리고 결국 그의 두 번째 반려자였던 보루마저 간경화로 세상을 떠나는 비운을 겪게 된다.

청나라의 불편한 풍습으로 인한 폐해이던가? 의순공주는 황궁의 부름을 받고, 보로의 형제인 안친왕 요로의 정실부인으로 그 자리를 이어가게 되지만 이를 끝내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다행히 온화한 인품의 안친왕 요로의 배려로 사랑채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며 황궁 또한 의순공주의 딱한 처지를 헤아려주기에 이른다.
그렇게 자신의 몸종 부슬과 피앙구의 보살핌 속에 생활하던 의순공주는 우연한 기회에 청에 포로로 끌려온 김마리마라는 천주교 조선인을 만나고, 그녀와 함께 생활하고 있던 같은 처지의 조선 여인들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만난 외국인 신부에게 조선으로 귀국 후 갑작스레 서거한 소현세자의 이야기까지 들으며 의순공주는 갖가지 의문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 이후 자신이 가진 재물과 고이 간직해둔 섭정왕의 유품마저 처분하며 천주교를 믿는 조선 여인들을 고국으로 탈출 시키며 그들 편에 공주 가족의 안부를 묻는 서신까지 전달한다.
그런데 이것이 우연인 것일까? 일 년 뒤 조선의 사신으로 온 아버지를 만나는 의순공주는 아비의 간절한 글이 황궁에 받아들여져 꿈에 그리던 조선으로 귀국하게 된다. 이제 그녀의 기억하기 싫은 아픈 과거는 그렇게 희망이란 바람으로 극복될 것인지, 파란만장히 살아온 의순
공주 애숙의 나라, 그 마무리가 궁금해진다.

기쁨보다 슬픔, 영광보다 좌절할 수밖에 없었건 애절한 여인네의 일생. 그것은 한 사람의 삶이 아니라 시대적 아픔과 약소국가의 설움을 대변한다. 의순공주 그녀의 가슴 시리고 파란만장한 삶 속에 독자 각각의 인생을 투영해보며 자신에겐 어떠한 삶의 변곡점이 있었는지 이 책을 통해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소설 같지만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려진 작품이기에 생동감 넘치는 전개와 절절한 마음과 애절함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쉽게 읽히는 가독성도 높지만 의순공주의 삶, 그 여운은 길게 이어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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