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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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란 언니............ 이 책........... 신입생 때도 몇 번 도전했었고..............이번에도 다시 읽었는데........................난 당최 어디가............그렇게..............음.................... 그냥 전형적인 젊은 한국 작가 단편.........................책 안 읽는 애들이 반년에 한 번 정도 책 읽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이거 하나 빌려와서 일주일에 단편 하나 씩 읽으면서 공감하는 문장 싸이어리에 좀 베껴두면서 읽을 만한.................................그리고나서 반년동안 또다시 책 네버 안 읽을듯한.........................책 어땠냐고 물어보면 괜찮았어, 나쁘지 않았어, 하면서 근데 자긴 한국 소설 찌질해서 별로 안좋아한다고 답할만한......................................미안해요.........그래도 언닌 팬도 많고 이쁨 받는 천재 작가니까........................정말 김애란 소설의 매력을 나도 느끼고 싶은데..............................그냥 언니도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나와 소통이 힘든 작가라인에 껴야 할 듯........................그래도 꾸준히 신작 나오면 시도는 해볼게요......................근데 내가 얼마전에 김사과 소설 읽었다고 독후감 이렇게 쓰는 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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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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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개그맨의 뿌리는 가학에서 시작됐다는 이야기를 여러 군데서 읽었었다. 사람들이 가장 일차원적으로,본능적으로 웃을 때가 남이 괴로워하는 걸 볼 때라는 그런 이야기.

 또 굉장히 어렸을 때, 백재현과 김영철이 개그콘서트의 주요 멤버로 활동하던 그 시절, 개콘 연말 특집편(?)에서 "내년에는 이런 개그가 유행할 것입니다!"하며 정장 말끔하게 빼입고 나온 개그맨들이 스스로를 때리면서 웃음을 유발했던 것이 기억난다. 부모님이 크게 싸우는 것도 본 적 없고, 드라마 육남맨지 칠남맨지도 어린이에게 좋지 않다며 못보게 했던 엄마 밑에서 자라 폭력과 아주 무관한 삶을 살던 어린 나에게 굉장히 불편해했던 기억.

 그리고 몇 년 지나서 진짜로 마빡이가 등장했을 때, 안 웃긴데 안 저랬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그들을 보며 웃는게 마빡 치는 그들의 바람일테니 웃어야할까 사이에서 고민하며 안절부절했던 기억.

 

 그리고 이 소설, 성석제 작가님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언제나 한국 소설을 한 권씩 쥐고 있는 친구가 한국에서 제일 웃긴 소설 같다며, 너랑 잘맞을 것같다며 빌려줬던 책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에게 이 소설집은 근래 읽은 책 중 가장 슬픈 책이다. 웃기다. 이게 바로 해학이구나 싶다. 정말 웃기다. 재밌는거 아니고, 유쾌한 거 아니고, 웃기다. 근데 웃는 내가 밉다. 어렸을 때부터 동화로 단련된 나의 지나친 선악관념과 죄의식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장면들을 보면서 웃고 있는, 웃을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인 내가 미워진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재밌게 쓴 작가님께 이런 말이 절로 나와버렸다. "나빴어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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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의 연인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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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독후평이 아니라 독후감을 쓰고 싶다.

 

 정미경 작가의 <내 아들의 연인> 아주 좋게 읽었다.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고, 그러나 지루하지 않으며 통찰의 날도 무디지 않다. 어디 적어두고 싶은 문장도 꽤나 있었고 나와 잘 맞는 주제들, 그 주제를 풀어가는 소재들이 이질감 없고, 간간히 언급되는 영화나 음악, 책의 기호도 나와 아주 잘 맞았다.

 

 그런데 나는 지금 독후평을 쓰고 있다. 평조차 저 네 줄 이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감성적으로 거리를 느끼게 하는 부분도 없었다. 여느 책처럼 어느 정도의 공감, 깨달음이 분명 있었던 중간 이상의 책다운 책, 좋은 소설이다. 단지 그 뿐이다.

 감히 책을 몇 권이나 읽었다고 다른 작가들과 비교하나 싶지만 어쨌든 이미 감동이든 당황이든 격한 감정을 다른 책들로 겪은 나로써는 모든 것이 고만고만하게 좋은 이 책은 독후감 쓰기엔 할 말이 별로 없다. 어느 하나 뽑아 이건 종이낭비였다 싶은 단편도, 내 인생의 단편이다! 싶은 것도 없다. 아이러니하게 느껴지지만 날카로운 비평으로 유명해진 이는 여럿 있어도, 참신한 칭찬의 글이 유명해진 경우는 손에 꼽히니 나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의미로다가, 새삼 이동진 씨 참 대단한 것 같다. 내 취향은 허지웅이라고 했단 말 취소해야지. 난 둘 다!)  얼마나 익숙한 문장을 쓸 수 있는지 경쟁하는 듯한 세계 많은 책들의 표지나 띠지에 쓰인 비평가 혹은 네티즌들의 평을 보아도 그러하고 말이다.

 하긴 남의 글을 명문장으로 칭찬할 수 있는 필력이라면 이미 자신의 책을 냈겠지, 그르니에의 책에 서문을 쓴 카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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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가 온다
백가흠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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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뚜라미가 온다와 02는 사실 아주 독자적인 각각의 미학과 내용을 갖고 있지만, 나에게는 또-옥같이 책장 넘기기 힘든 책이기 때문에 묶어서 쓴다.

 우선 양쪽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1. 읽기 힘들다 2.아 미치겠네 3. 근데 왠지 느낌 있어..

이정도다. 내용도 문장도 어느 쪽도 내게 자비란 없는 소설들이다. 나는 보기 싫은 부분은 좀 가리고도 싶고, 아니면 거리를 좀 멀리 둔 채 유머를 즐기며 보고 싶은데 그런 내 고개를 강제로 직시하도록 잡고 있는 느낌이다. 그 참담함 앞에서 나는 그들의 유머에는 차마 웃음이 나지 않고 거리를 두고 싶어하던, 보고 싶은 것만 보려던 내가 한심하기만 하다.

 사실 읽는 내내는 힘겨울 뿐이었다. 그러나 워낙 충격적이었던 탓에 계속 생각해내다 보니 스스로를 반성하기까지에 이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약간 김기덕 감독의 영화와 통한다는 생각을 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도 내게 견디기 힘든 폭력과 섹스를 그대로 (내가 느끼기엔 효과적인 충격요법을 위해 과장한거 아닐까 싶은) 보여줌으로써 볼 때는 엄청난 흡입력과 충격을 주지만 보고 나서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계속해서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그러나 각자의 스타일은 확실해서 귀뚜라미는 사드 후작이 떠올랐다. s&m이나 쉬메일 같은 소재도 한 이유지만, 무엇보다도 사드 후작을 단순 변태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귀뚜라미가 온다>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02를 읽을 땐 계속해서 피카소가 생각났다. 내가 어렸을 때 했던 생각, 내 미술 선생님들이 어렸을 때 했던 생각, 피카소를 접할 수많은 어린이들이 앞으로 할 생각 "내가 저거 보단 잘그리겠다!"가 떠올랐다. 02 소설집 가득한 문체적 실험들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피카소가 풍경화를 못그려서 아비뇽의 여인들을 그렇게 그렸던게 아니듯이, 김사과 작가가 나에게 익숙한 문법의 소설을 못써서 문체 실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이제는 피카소에게 배운 나는 알 수 있다. 내가 그런 것을 쓸 수도 없고, 작가가 의도한 바를 정확히 머리로, 가슴으로 이해할 수도 없지만 어렴풋이 느낄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내 성장에 위안을 삼으며, 다시 한 번 참 힘겨운 소설들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소설들보다 나, 문학,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갖고 있는 소설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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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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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만남에 이런 소리해서 죄송한데, 사랑해요.

이게 이 책을 읽는 내내 든 생각이었다. 내가 왜 이 분을 이제 접한 것이지?

추측컨데, 김경욱이란 이름에 왠지 모르게 판타지sf소설을 쓸 것같다고 느껴서 피했나보다. 다시 한번, 편견은 나를 가두는 감옥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며, 사랑해요!

 그런데 생각보다 김경욱 소설의 엘리트 스멜, 엘리트주의를 싫어하는 분들이 많았다. 난 엘리트 아니니까 대신 변명 잠깐 하자면, 정말 현실에 별거 아니고 알바 뛰면서 머리 속으로 헤밍웨이식 문체, 로렌스식 문체 생각하면서 킥킥대는 그런 사람 있어요. 허세 아니고, 문학소녀여서도 아니고, 그냥 개인적인 기호가 책이 좋고 그런 엘리트적인 단어들이 좋은 사람이 있어요. 컵라면으로 끼니 때우면서도 끊임없이 그런 세상의 기준으로는 고상한, 먹고 사는거랑 상관없는 생각 하는 사람 있어요. (공복에는 못하는 거 인정. 끼니 때 밥 굶으면 '아사'말고는 떠오르는 단어 없음.)

 어쨌든, 나는 완전 공감하고 감탄하면서 읽었는데 내가 공감하고 맘에 들었던 부분들이 '엘리트주의'라는 이름으로 묶여 저격당하는 게 안타까워 변명을 해보았다. 나도 엘리트의 지적이고 말끔한 느낌을 충분히 느끼긴 했다. 그러나 이 소설집을 읽다가 이 사람 어디 학교, 무슨 과나온 사람이야! 하고 궁금하게 만들었던, 나에게도 일종의 엘리트 냄새를 풍겼던 지점은 단편 주제에(!) 촘촘한 구성, 거의 다 열린 결말인 주제에(!) 확실한 끝맺음같은 느낌, 진짜 천재 아니면 또라이다 싶은 전개 (ex.달팽이를 삼킨 사나이)방식이었다.

 은희경 소설에서 김경욱이 보이진 않지만, 김경욱의 이 소설집에서 나는 은희경을 강하게 느꼈다. 나는 그것을 개인에 집중하는 것, 표면적 사실을 뒤집는 진실, 엘리트느낌보단 "세련됨"으로 부르고 싶다. 은희경과 김경욱의 소설들은 절대 극단에 치닫지 않는다. 아니, 그 인물들을 극단에 치닫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머리 터지게 고민하고 망설이다 아예 선택을 피해버리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선택을 피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피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용기 없지도, 비겁하지도 않다. 이미 상처가 있는 사람으로써 한 발 딛되 자신이 받을 상처를 최소화 하고 싶기에 그런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상처가 있는데, 상처 받을 것을 뻔히 아는데 또 다시 안전 장치 없이 처음처럼 온 몸으로 부딫히는 것에 그들에게 공포와 동경이란 상반된 감정을 느낄 것이다 . 결국 세련됨이란 중도를 지키는 것, 어느 하나 튀어나옴이 없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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