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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평점 :
첫 만남에 이런 소리해서 죄송한데, 사랑해요.
이게 이 책을 읽는 내내 든 생각이었다. 내가 왜 이 분을 이제 접한 것이지?
추측컨데, 김경욱이란 이름에 왠지 모르게 판타지sf소설을 쓸 것같다고 느껴서 피했나보다. 다시 한번, 편견은 나를 가두는 감옥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며, 사랑해요!
그런데 생각보다 김경욱 소설의 엘리트 스멜, 엘리트주의를 싫어하는 분들이 많았다. 난 엘리트 아니니까 대신 변명 잠깐 하자면, 정말 현실에 별거 아니고 알바 뛰면서 머리 속으로 헤밍웨이식 문체, 로렌스식 문체 생각하면서 킥킥대는 그런 사람 있어요. 허세 아니고, 문학소녀여서도 아니고, 그냥 개인적인 기호가 책이 좋고 그런 엘리트적인 단어들이 좋은 사람이 있어요. 컵라면으로 끼니 때우면서도 끊임없이 그런 세상의 기준으로는 고상한, 먹고 사는거랑 상관없는 생각 하는 사람 있어요. (공복에는 못하는 거 인정. 끼니 때 밥 굶으면 '아사'말고는 떠오르는 단어 없음.)
어쨌든, 나는 완전 공감하고 감탄하면서 읽었는데 내가 공감하고 맘에 들었던 부분들이 '엘리트주의'라는 이름으로 묶여 저격당하는 게 안타까워 변명을 해보았다. 나도 엘리트의 지적이고 말끔한 느낌을 충분히 느끼긴 했다. 그러나 이 소설집을 읽다가 이 사람 어디 학교, 무슨 과나온 사람이야! 하고 궁금하게 만들었던, 나에게도 일종의 엘리트 냄새를 풍겼던 지점은 단편 주제에(!) 촘촘한 구성, 거의 다 열린 결말인 주제에(!) 확실한 끝맺음같은 느낌, 진짜 천재 아니면 또라이다 싶은 전개 (ex.달팽이를 삼킨 사나이)방식이었다.
은희경 소설에서 김경욱이 보이진 않지만, 김경욱의 이 소설집에서 나는 은희경을 강하게 느꼈다. 나는 그것을 개인에 집중하는 것, 표면적 사실을 뒤집는 진실, 엘리트느낌보단 "세련됨"으로 부르고 싶다. 은희경과 김경욱의 소설들은 절대 극단에 치닫지 않는다. 아니, 그 인물들을 극단에 치닫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머리 터지게 고민하고 망설이다 아예 선택을 피해버리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선택을 피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피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용기 없지도, 비겁하지도 않다. 이미 상처가 있는 사람으로써 한 발 딛되 자신이 받을 상처를 최소화 하고 싶기에 그런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상처가 있는데, 상처 받을 것을 뻔히 아는데 또 다시 안전 장치 없이 처음처럼 온 몸으로 부딫히는 것에 그들에게 공포와 동경이란 상반된 감정을 느낄 것이다 . 결국 세련됨이란 중도를 지키는 것, 어느 하나 튀어나옴이 없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