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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한 인생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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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희경이 돌아왔다!

 

 작년에는 오랜 세월 방황하던 장예모 감독이 돌아왔고, 올해는 은희경 작가가 돌아왔다!

(여담인데, 이제 팀버튼 감독만 돌아오면 된다.아... 팀형...) 

비밀과 거짓말(2005) 이후로 줄곧 나와 싸우던 은희경 작가님이 장편 <태연한 인생>을 들고 정말 태연하게 돌아왔다. 은희경 특유의 스타일을 사랑하던 팬들이 원하는 지점과,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 '은희경'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던 작가님이 바라는 지점에 드디어 교차점이 생겼달까? 그렇다면 이 소설이 새로운 은희경 스똬일의 시발점이 되는 책이길 바라면서, 전지적 은희경 짱팬 시점에서 리뷰를 써본다.

 

  주인공 요셉은 <새의 선물>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의 진희와 그 외 수많은 은희경 소설들의 위악적인 주인공들을 모두 이길 수 있는 아주 강력한 냉소와 위악의 아우라를 풍기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돌려까기의 명수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입으로는 깔 수 없는게 없을 듯 하다. 귀에서 영화 예고편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더 쎄고, 강한 놈이 나타났다!"

그런데, 요셉의 하는 꼬라지는 보면 볼수록 웃음이 난다. 비록 중견 작가라는 번듯한 타이틀, 그에 걸맞게 온갖 유명인사의 명언들을 갖다붙이며 겉보기에 아주 논리적인 혼잣말들을 혼자 중얼거리고 있지만 우리에겐 그 이면의 그 나약함, 불안함 등의 약한 모습이 너무 잘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대 최고로 위악적인 인물을, 그것도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는데도 이 소설은 기존의 어떤 은희경 소설보다 상큼(?)하다. 무겁지도, 차갑지도, 무겁거나 차가워서 무섭지도 않다.

1부 이야기의 세계
2부 그들 각자의 극장
3부 거짓과 상실의 세계
거짓으로 사랑하였으나 목 놓아 울었다
4부 노래의 세계
사랑하는 자는 없고 사랑만 있다

 이런 식의 목차 구성이 굉장히 독특하다. 목차에서 살짝 감이 오겠듯이, 희극의 부분을 빌려와,

마지막 4부에 모든 등장 인물이 모이면, 그들이 하는 말이 모두 대사 식으로 처리된다. 나는 이미 류의 서사에서 부터 굉장히 소설에 빠져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오지랖 팬심 더해서, 책장의 절반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이 이야기, 어떻게 모아서 끝이 날건가?!', '이 언니(?) 이렇게 매력적으로 일 벌려놓고 어떻게 독자들 기대에 맞는 결말을 낼건가!'하며 발을 동동 굴렀었는데, 희극 형식이 이런 나의 걱정을 기우에 그치게 만들었다. 다들 모였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엄청난 파국이 생기지도 않았는데 -사실 이 소설에는 그런 파국이 생기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함.- 꽤나 아수라장이 희극적으로 보여지면서 나름의 카타르시스와 함께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효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가장 매혹되었던 부분은 류의 서사다. 요셉의 일주일이 책 반권 분량씩이나 서술되는 것과 반대로 류의 서사는 그녀의 전생애(하니 왠지 노인같지만 30대!) 이야기가 책 반권 분량동안 진행되기 때문에 굉장히 속도감 있고 감추어진 부분들이 있어 신비감까지 돈다. 마치 조커가 사연이 없기 때문에 최강악역이 된 것처럼, 그녀의 서사도 감추어진 부분들 때문에 심히 매혹적이다. 게다가 드러난 부분조차 죄다 두 개의 상반된 진실을 갖고 있으니... 이 소설은 나를 매혹시키고자 하는 사명을 갖고 태어난 것이다!.....는 헛소리고, 여튼 참으로 좋았다.

 마지막으로, 별을 네 개 준 이유는 별 다섯개를 주자니 별 다섯개의 세기의 명작들과 함께하기엔 가볍다는 점 때문이다. 가벼운 분위기라고 해서 가벼운 내용, 주제의식이란 소리는 절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로맨틱 코메디 영화가 완벽에 가까워도 <대부>와 겨룰 수 없는 것처럼, 보사노바가 아무리 세련되고 훌륭해도 유재하의 발라드만큼 울림을 주지 못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은희경 작가님의 완벽에 가까운 그 세련됨이 감탄스럽지만, 일단은 성공적인 변화를 기뻐하며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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