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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들
페터 빅셀 지음, 최수임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페터 빅셀의 소설놀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이야기하기에 관한 이야기.
책은 그리 두껍지 않은데, 이해해야하고 생각해봐야 하는 양은 실로 방대한 것처럼 여겨진다.
도대체 '키닝어'가 누구야?
아무도 아닌 사람, 니만트(niemand), 영어로 nobody.
키닝어는 아무도 아닌 사람이면서 소설을 쓰는 '나'이다. 또한 작가 페터 빅셀이라고도 한다.
그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야기의 주인공은 키닝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키닝어가 살고 있는 아니 살고 있었던 집에 관한 이야기이다.
조금만 과하게 말한다면 설계도 못지않게 집을 정밀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집을 묘사한 내용은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토마토 색으로 칠해진 집(키닝어는 싫어한다), 칠이 벗겨진 페인트, 쥐가 다니는 지하실, 터져버린 수도관, 늙은 괴물 보일러.
집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상세히 묘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 평범한 인간의 삶을 특별한 주제 없이 나열한다는 것은 읽는 독자로써 어려움을 안게 된다.
보통은 주제가 있어야 책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나'의 생각과 행동을 여과(편집)없이 보여주기 때문에 조금은 혼란스럽게 읽혀지는 것 같다.
그리 낯설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고(때론 궁금하고), 특별한 재미도 없고(때론 재미있고). 그런게 우리의 삶이라면?
흘러가는 계절이 반복되듯이 우리의 삶도 특별한 일 없이 반복되지 않던가.
그런 것을 작가는 나타내려고 하지 않았나 싶다.
3층짜리 집, 층마다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익숙한 그들의 삶을 인정하고 반복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10시만 되면 건물 현관문을 걸어 잠그는 1층 부인,
2층에 살고 있는 여송연을 피우고 배가 불룩하며 나이가 지긋한 슈투더씨와 잘 웃는 그의 부인,
집안 곳곳을 새 단장하여 들어오는 3층에 새 세입자,
다락 층에 사는 건축설계자 커닝어와 가족,
집집마다 들어와 전기계량기를 검침하는 검침원.
소설 속에 '나'는 다락방에서 아내와 아이와 함께 살고 있으며, 어쩌면 키닝어와 함께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키닝어가 가족과 살고 있고, 내가 그 속에 살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어느 날 키닝어가 떠나면서 소설 속의 '나'는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키닝어를 돌아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키닝어를 죽게 만들까, 아님 새로운 여인을 등장시킬까. 아니면 집을 새로 고치면 키닝어가 돌아올까?
등장하는 인물들이 꽤 많다. 그러나 특별한 기억이 나지 않으면서 늘 맴도는 이름.
마리안네, 안네마리, 알렉산드라. 그녀들을 과연 누구인지 미스터리하다.
어쩌면 동일인물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이 책엔 실제와 가상이 혼란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읽다보면 책에서 나타난 현실과 허구의 경계는 과감하게 무너져 있다.
번역자 최수일씨의 글을 보면서 소설이 정리가 되는 듯하다.
내겐 살짝 어려웠던 책이지만, 새로운 형태의 전개 형식을 택한 책을 접할 기회를 가져보았다는데 의의를 두며
앞으로 나의 독서반경을 넓히는데 이 책이 한 몫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