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바이러스 - 그 해악과 파괴의 역사
헤르만 크노플라허 지음, 박미화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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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 이라는 것은 둥글고 모나지 않아서 성격적으로 보면 왠지 부드럽고 융통성 있게 느껴지지만 ’바퀴’가 의미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이동수단으로 자신의 신체와 기껏해야 소나 말을 이용하던 과거에 바퀴라는 것이 그리 쓸모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은 사고를 통해서 바퀴의 활용성에 대해서 연구를 했고 그 결과 바퀴를 사용한지는 5000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새로운 문명의 시작인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는지 모른 체 자동차는 탄생되었다.

 

자동차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하루 종일 걸어도 가기 힘든 곳을 자동차는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도달하게 한다. 그것은 인간에게 마치 자유를 가져다주는 기분이었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다는 광활한 꿈을 갖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이동성이 커지면서 지역 곳곳에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쉽게 구할 수가 있고 이동수단을 몰 운전자나 도로 건설 등으로 인한 일자리 창출을 만들어 주었다. 시장 경제가 활발하게 움직여지면서 여기저기서 부를 축척하는 이도 많이 생겨나게 된다. 







사실 우리는 표면적으로 자동차가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편리함’을 잊지 못해서 오히려 그것의 노예가 되고 있다. 자동차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직장을 다니는 이들에겐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가족 간의 유대관계 형성할 시간이 부족한 현실임에도 그들은 만족스런 삶이라고 착각하며 산다. 이 책에서는 노예가 아니라 우리 삶을 파고드는 바이러스 같은 생명체라 여긴다. 인구가 도시로 집중화 되면서 비균형 발전으로 인해 사회계층 갈등이 유발되는 것도 다 자동차 때문이라고 한다. 언제부턴가 자동차는 신분을 상징하는 마크가 되어서 인간중심적 사고가 아닌 자동차 중심적 시각으로 인간을 평가하기도 한다.

 

자동차의 수명은 언제까지 일까? 동력 에너지로 석유는 30~40년이 되면 고갈된다. 석탄은 120년, 가스는 45년, 우라늄은 50년이면 더 이상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다양한 에너지원을 찾고 있고 사실 태양에너지만큼 무궁무진한 에너지는 없을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가 사는 동안에는 자동차가 아주 유용한 이동수단이 될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얻는 이익보다는 파괴되는 부분이 점점 커지고 있어 마치 늪에 빠져들듯 서서히 우리 숨통을 옥죄여 오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파괴는 더욱 무서운 것이 된다. 도로위에 달리는 차량으로 인한 소음 피해는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소음으로 인해 귀가 가장 불편할 것이라 여겨지지만 실제는 인체 호르몬 체계를 교란시킨다고 이 책에서 정곡을 찌르고 있다. 개인적으로 얼마 전에 병원에 입원을 한 적이 있다. 병원에 머무는 동안 밤엔 창문을 열어놓고 잤는데 인근 도로위의 소음 때문에 불면증을 겪은바가 있어서 아주 공감이 되었다. 또 다른 파괴로는 배기가스인데 무려 800여 종류가 넘는 화학적 결합 물질이 발생하여 우리 몸에 침입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곳이면 익숙하게 들이 마시고 있어서 오염이 되더라도 감지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어떻게 하면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가. 21세기 전후로 환경보호에 대한 목소리가 아주 높아졌지만 기술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든다면 해결할 수 없다고 한다. 차량증가로 인해서 도로교통이 마비된다고 해서 도로를 증가시켜도 그것은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차량증가를 부추기는 꼴이 된다. 실제 내가 살던 곳에는 인근 순환도로가 개선되고 교량이 확대 되면서 이동하는 차들이 나날이 증가되더니 지금은 늘 출퇴근 시간엔 정체구간으로 분류되고 있다. 단면적으로 본다면 서울 청계천 도로는  오히려 차로를 축소하고 환경을 복원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세계적으로 귀감이 되고 있다. 이 책에는 그리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있지는 못하지만 대신 자전거를 가장 효율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대체 이동수단이 되기엔 아직 무리가 많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얼마 전에 TV에서 자전거가 앞으로의 미래 교통수단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일본에서는 택배도 자전거로 함으로써 도로위에 배기가스를 내뿜지 않고 친환경적이며 많은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교통수단임을 알리고 있었다. 자전거는 운전자의 신체 에너지를 이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자동차에 의존해 쓰지 않았던 몸과 두뇌를 활용하여 건강도 유지시킬 수 있으리라 본다. 




 
자동차.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었기에 이러한 보고서들은 불편한 진실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것이 환경 파괴와 우리의 생명까지도 위협하고 있는 암적인 존재이기에 극복해야할 문제이다. 문제 해결에 있어서 지위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인으로서 이 책을 평가하자면 그리스 신화, 성서, 진화론, 생물학적 견해 등을 적절히 접목시켜 비유한 덕분에 책을 좀 더 몰입해서 읽게 되었다. 그러나 같은 내용이 번거로울 정도로 중복되어 있고 큰 주제에 따른 세부 목록이나 설명들이 체계적이지 못해서 읽는 동안 소주제를 잊어버리곤 했던 아쉬움이 남는다. 
 



p.32  기술적 발전에 뒤따르는 야만적 행위는 데게 '문명의 발전'이라는 말로 미화된다.
p.43 한마디로 자전거는 미래가 있다.
p.205 그러나 기초적인 자연법칙의 관점에서 보면 자동차는 비정상적인 물건이다.
p.238 고속도로건설주식회사가 아닌 고속도로철거주식회사가 필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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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무게
헤더 구덴커프 지음, 김진영 옮김 / 북캐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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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폭력 문제.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최근에는 피해자에 대한 보호뿐 아니라 가해자에 대한 구체적인 치료가 논의 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세상이 어찌도 이리 험악할 수 있냐면서 한탄하지만 자식을 가진 부모의 입장에선 해줄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는 않다. 늘 곁에서 24시간 감시하며 살아가긴 힘드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믿을 수 없는 사람도 많아졌다. 성폭력의 과반수가 지인에 의해서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엔 아무리 얼굴을 알고 지내는 이웃사촌이라고 해도 함부로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신고를 당한다. 예전엔 뭐 그리 삭막한 나라가 다 있나 싶었지만 머지않아 우리나라도 종종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조차도 같은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꼬마가 먼저 '안녕하세요.'하는 인사를 하면 저절로 미소를 지으며 이것저것 물어보다 보면 아이가 어느 틈에 입을 다물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럴 땐 '아차!'싶으면서 내가 너무 과잉된 행동을 했음을 눈치 채며 씁쓸함을 느낀다.


4살 때 칼리는 눈앞에서 엄마(안토니아)가 8개월짜리 아이를 사산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빠(그리프)가 엄마와 2층에서 말다툼을 하다가 엄마가 그만 계단에서 구른 것이다. 어린 나이에 울면서 두려움과 엄마에 대한 걱정을 표현할 줄 밖에 몰랐는데 아빠의 귓속말 한마디 때문에 칼리는 그 날 이후 말문을 닫는다. 자상한 오빠 벤이 있지만 그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유일한 친구인 페트라와 침묵의 대화를 나눈다. 페트라는 이웃에 살면서 칼리의 목소리가 되어주었고 엄마, 아빠와 다정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술을 마신 그리프는 딸 칼리를 자신의 자식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분개한다. 안토니아의 첫사랑인 루이스의 자식이 아닐까 하며 의심을 하고 있었고, 술김에 숲속 너머에 살고 있는 루이스를 찾아간다면서 맨발의 칼리를 질질 끌고 산으로 가는데……. 같은 날 새벽, 페트라는 우연히 깬 잠에서 밖에 서있는 그림자를 보고는 잠옷 바람으로 자의에 의해 그들을 따라 가게 되고…….


그런데 이 책이 전반적인 아동 성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소설의 실마리로 쓰인 것인데, 책을 읽은 독자들의 일부들은 성폭력 문제를 큰 주제로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와해된 가족 개개인의 심경과 박진감 있는 전개로 소설을 읽는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안토니아는 사랑하는 첫사랑 루이스를 떠나보내고 그리프와 결혼을 했다. 그리프가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서 가정 내 폭력을 휘둘렀지만 그를 쉽게 떠날 수 없었던 우유부단함은 오히려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타인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자신의 가정사를 묵묵히 짊어지고 가야했던 가족개개인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함께 살고 있으면 어디까지가 가정폭력의 수위인지 구성원들은 분석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소설을 읽다보면 분개도 하게 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대를 위해 소를 버리는 부모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도 하게 되었다. 이 책 역시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이웃이나 가족의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책은 시작부터 8명의 주요 등장인물을 한 줄씩 소개하고 있다. 어릴 적 소설책을 읽을 때엔 이번처럼 등장인물을 간략하게 소개했었는데 나같이 등장인물을 잘 기억 못하는 독자를 위해서 이런 소개 글이 앞으로도 종종 있었으면 한다. 한정된 공간에 이틀 동안 일어난 사건을 정리하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책의 후반부에 가서도 범인을 계속 추리해야 하는 살짝 반전의 스릴도 있다. 전개방식도 상당히 독특하다. 8명의 등장인물의 심경을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낱낱이 분석하며 전개한다. 자칫 전개방식에 따른 시점이 혼동되어서 불편하면 어쩌나 했지만, 오히려 옴니버스식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읽으면서 점점 완성되어가는 퍼즐 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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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소녀와의 동거 - 순도 100% 리얼궁상감동 스토리
먹물 지음 / 책마루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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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호기심을 끌만한 제목이었지만 책을 덮고 난 내 마음은 안타까움이 너무 많다. 어떤 독자의 말마따나 '우리 모두는 또 다른 먹물이자 또 다른 소녀들일뿐'이란 말이 와 닿는다. 어떤 이에게는 이 책이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라 치부하겠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비슷한 고민과 갈등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또한 한 아이가 생각이 났다. 2년 전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서 수업을 듣던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 생각난다. 그 녀석은(실제로는 내가 짜식 이라고 불렀다) 키도 키고 인물도 훤칠하니 호감형이었다. 그런데 늘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수업을 방해 하진 않았지만 관심 없다는 투로 다리를 꼬고는 창밖을 보고 잠도 자곤 했었다. 반항기가 물씬 풍기는 그 녀석이 왠지 나는 끌렸다. 그래서 일부러 수업하면서 가까이 가서는 질문도 해보고 아이들에게 주목을 받게도 해보았다. 그런데 그 녀석, 실실 웃으면서 그 다음 부턴 교과서도 챙겨오고 일부러 구구단 질문을 하면 제일 먼저 대답하면서 나름 수업을 듣는 태도가 달라졌다. 그 녀석을 대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다가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사실 그 녀석은 중학교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피웠다. 수업 중에 매번 화장실을 간다고 하기에 몇 번 허락을 해주었지만, 비흡연자의 코를 속일 수는 없는 법. 어느 날 조용히 따로 그 녀석을 불러서는 혼내기는커녕 손을 살포시 잡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다른 선생님들 같으면 얼차려나 매를 맞고 강제적인 반성문을 썼겠지만, 나는 그 아이에게 엉뚱한 제안을 했다. 담배 피운 게 티가 너무 난다면서 양치질도 좀 하고, 손을 깨끗이 씻고 다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루에 몇 개비나 피우냐고 저돌적으로 질문했다. 그 녀석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보통 선생님들이라면 윽박지르고 말텐데 몇 개비를 피우냐고 물었으니. 그 녀석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피우기 시작해 지금은 하루에 한 갑 정도 피운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흠칫 놀랐지만, 아이를 설득하기 위해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두고 반갑으로 줄이자고 제안을 했다. 그 녀석은 희한한 제안에 어리둥절하면서 점점 나아지더니 한 달 후에는 어느 날엔 담배를 안 피웠다면서 나한테 다가와 자기 입김을 불어넣기도 했었다. 참, 그때의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나는 교단에 있으면서 수업을 가르치는 일보다 이런 일이 너무나 가슴 뿌듯한 일이라고 여겼다. 혼자서 감동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 녀석을 나쁘게 보았지만 본심은 그게 아니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보충수업을 할 때도 거만하게 굴던 녀석은 내가 퀴즈를 내면 일찍 보내준다는 말에 수업도 제일 열심히 들었다. 그러다가 방학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 그 녀석은 학교에 없었다. 늘 입버릇처럼 대구시내의 oo파에 가입해서 오토바이를 몰꺼라고 하더니, 학교를 돌연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는 한 번씩 학교 앞에서 오토바이 경적을 울리며 도망가던 녀석들 중에 한 명이란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너무 안타까웠다. 결국 정학의 위기까지 놓였을 때 나는 지금까지 그 녀석에게 해왔던 것이 물거품이 된 것을 너무나 마음 아파했다. 방학 동안에 내가 꾸준히 연락만 했었어도 이러진 않았을 텐데 하는 자책감까지 들었다. 


 


이 책의 저자 먹물도 마찬가지였다. 심혈을 기울여 아이들에게 밝은 빛이 되고자 노력했건만 아이들은 아이들이였다. 누굴 탓하랴. 사회를 탓하고 싶지만 나 또한 그런 사회의 일원일 뿐인 것을. 먹물의 고뇌에 정말 공감이 많이 갔다.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서 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궁지에 내몰린다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순수하고 아직까지도 동심에 젖어 있어도 뭐라지 않을 사회인데 가족의 무관심과 나쁜 어른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는 아이들을 보호할 곳이 없다니. 리얼궁상감동 스토리라고 하지만 무겁게 느껴지는 책이다. 가슴 한편이 먹먹해 지면서 이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여건이 빨리 만들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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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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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하다면 당신은 어디로 가고 싶은가?
운명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왔던 내용들이다. 과학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아직 미해결 분야인 것이 과거, 미래로의 여행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다는 소망이 간절해서 일까, 예순의 엘리엇 쿠퍼는 이상한 알약을 먹고서 딱 30년 전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곳에서 30살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사랑했던 연인 일리나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는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나비효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과거를 조금씩 바꾸어 놓는 일을 하게 되는데…….

엘리엇 그는 외과의사로서 참신하고 봉사정신이 투철한 편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가족사 때문에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식은 낳지 않겠다는 것. 외과의사이다 보니 자녀를 수술하면서 희망을 잃어가는 부모들에게 일상적으로 건네는 말들에 진절머리를 느낀 것도 있었다. 그러나 예순이 된 그에게는 20살이 된 딸 앤지가 있다. 세월은 사람의 마음가짐도 변하게 하나보다. 그렇게 자식을 안 갖겠다던 그에게서 딸이란 존재는 어떤 의미가 될까 궁금했었다.

 

 

개인적으로 기욤 뮈소의 소설을 접하는 방식이 조금 남다르다. 최신판을 먼저 읽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그의 소설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나온 소설에 비해서 많은 기교는 없어 보이지만 여전히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전개 방식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잔잔하면서 인간의 심리묘사를 가장 많이 분석해 놓은 소설이 아닐까 싶다. 이번 소설을 통해서는 한 사람의 인생을 조명하면서 그의 생각과 삶 속에 내 모습을 투영해 볼 수 있었다.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엘리엇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여기는 것보단 내가 만약 시한부의 삶을 산다면 내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졌다. 또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과연 내가 택한 것이 잘한 것인지 다른 길을 택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양극화된 상황을 상상해보면서 최선의 결과를 위해 다른 것의 희생을 감수해야하는 법도 배운 것 같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배워야 하는 것 같다. 직접 경험할 수 없으면 간접 경험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아직까지는 한 번 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을 어떻게 하면 보람 있게 살아볼까 고민한 적이 있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살까, 아니면 남은 평생을 봉사활동을 하면서 살까, 아니면 로또 복권을 구입해서 일확천금을 기대해 볼까하는 별별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다가 반복된 일상생활 속에서 그런 것들을 까맣게 잊곤 한다. 지금 나의 운명에 그리 만족하진 않지만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서 오늘도 사랑하는 이들을 한 번 더 안아보고 쓰다듬어 주며 표현을 하련다. 엘리엇과 일리나와 같은 가슴 아픈 사랑을 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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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처에게 바치는 레퀴엠
아카가와 지로 지음, 오근영 옮김 / 살림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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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처(惡妻): 마음이 바르지 못하고 행실이나 성질이 악독한 아내. 
레퀴엠(라틴 어-requiem):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미사 음악.
 
이쯤 되면 책 내용이 눈에 설할 것 같다. 얼마나 미워하면서 죽기를 바랬는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런데 '악처'라는 단어는 과연 누가 만들어낸 것인지 궁금해졌다. 남편의 아내들이 스스로 악처라고 자칭하진 않았을 것이고, 그런 단어는 아마도 아내를 미워하고 싫어한 남편들에 의해서 탄생한 단어가 아닐까 한다. 과연 악처라는 기준은 타당할까? 나는 아내의 입장에서 저런 단어를 들으니 피식 웃음이 난다. 악처라는 기준은 단지 남편들에 의해서 자신들이 억압당하고 강요당한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남편들은 얼마나 당당하고 자신 있게 가정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지 반문을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니시코지 도시카즈.
이 이름은 4명의 공동 집필자의 필명이다. 4명의 이름을 조합하여 만든 하나의 이름으로 책을 출판하고 있는데, 어느 날 이들이 모여서 다음 작품을 구상하게 된다. 전직 사원이며 소설가인 니시모토 야스지는 부인에게 경제권을 빼앗기고(?) 힘을 쓸 수 없는 나약한 존재로 표현된다. 아내는 (그의 이야기에 의하면) 윽박지르고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만 하는 독불장군 스타일이다. 하지만, 내가 볼 때는 리더십이 부족한 니시모토를 대신에 변할 수밖에 없었던 아내가 아닐까? 전직 기자 출신인 가게야마 도시야는 부인과 딸이 늘 해외여행을 다니느라 기러기 아빠에 가까운 사람이다. 늘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스스로 외로움을 자처하는 인물이다. 시인 가가와 가즈오는 미스터리한 인물로 등장한다. 분위기 있어 보일법한 시인인데 우울하고 시니컬한 느낌의 소유자이다. 가장 젊게 등장하는 시나리오 작가 고지 다케오. 신혼생활을 즐겁게 보낼 것만 같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남들이 보면 부러워할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이들은 각각 가정에서 들볶이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여기면서 우연히 제안한 '마누라 죽이기'프로젝트에 동참하게 된다.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이 있기에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들에게 각각의 시나리오는 일상생활에서 탈피하고 타락한 인생을 소설로써 맞볼 수 있었던 기회가 아니었을까 한다. 우리도 때로는 일상을 탈피하고 싶단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짜릿한 쾌감도 보고 복수극과 같은 통쾌함도 느낄 수 있기에 이 소설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이 소설은 80년대에 쓰인 작품인데 그 당시에 문학평론가들에게 후한 점수를 얻었다고 한다. 현대에 와서 보게 되면 작품에 대한 현란한 기교는 없지만 그 당시에는 탄탄한 구성력으로 좋은 평을 받았을 것 같다. 평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지만, 몰입해서 잘 읽을 수 있었다면 나도 후한 평가를 내려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혹시 내 남편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남편도 소설처럼 '마누라를 죽이고' 싶을까? 나도 악처일까? 하며 우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악처는 남편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던가. 한번이라도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지 못한 자들이 만들어낸 일방적인 단어라 여기고 싶다. 지금 이 순간 내 남편, 내 아내의 입장에서 나한테 화낼 수밖에 없었던 점을 한번 돌이켜보자. 내가 먼저 마음을 풀면 상대도 눈 녹듯 화가 사라질 것이다. 서로에게 다가가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삶속에서 오늘도 행복한 가정을 꿈꿔본다. 소설의 결말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끝나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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