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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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람된 표현이지만 기레기라는 말이 유행이다.질이 나쁜 기사를 쓰는 기자들에 대한 멸칭인데 이런 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언론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진다.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주류 언론에 대한 불신이 심각한 수준이다.기자들이 진실을 추구하기보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교묘하게 이야기를 한다는 비판이 많다.이런 문제는 이탈리아라고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이탈리아도 굴곡이 많은 나라다.역시 많은 도시국가로 갈려지고 외세에 지배를 받았으며 파시즘의 시기도 거쳤다.또한 그 이후에도 부패한 통치자로 인해 민주주의의 진전은 더뎠다.그러다 보니 정부와 언론에 대한 불신이 이 책에도 많이 담겨있다.이 책의 저자인 움베르토 에코는 기호학 분야의 권위자임은 물론이고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그러면서 사회비평문도 무수히 썼다.학문, 문학, 사회참여를 망라하는 지성인이다.그런 에코는 언론에 대해 어떤 쓴소리를 했을까.

 

소설이다보니 책에 대해서 쓰는데 책의 결말은 숨겨야 하는 모순을 맞닥뜨린다.내 나름대로 최종적인 결말은 이야기하지 않으면서도 내용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겠다.

 

책은 언론인이라고 칭하기도 부끄러운, 애당초 묵묵하게 진실을 찾아내는 목표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집단들이 주조연을 맡고 있다.돈 때문에 대필을 맡은 사람과 순수한 마음으로 들어왔지만 점차 물 들어가는 여자, 회의주의에 기대 진실을 찾으려다 돌연사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보통 이런 주제의 스토리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기자가 권력의 억압과 위협에 맞서 취재를 해나가고 진실을 밝혀서 정의를 향해 나아가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백옥(?) 같은 주인공은 처음부터 없다.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현실적이고 생생하다.무솔리니라는 독재자의 최후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이탈리아의 험난한 현대사를 잘 보여준다.

 

"패배자는 독학자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승리자보다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만약 우리가 승리하고자 한다면, 그저 한 가지만 잘 알아야지 무엇이든 다 알겠다고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된다.박학다식하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그건 패배자들이 겪는 업보이다.어떤 사람의 지식이 늘면 늘수록 그에게는 잘못 돌아가는 일들도 자꾸 늘어간다는 것이다."(24~25페이지)

"끔찍한 일을 겪은 사람들은 그 일을 묘사할 때 과장법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어..자네 아버지는 그런 점을 고려하지 않은 거야.자네가 고속 도로 교통사고를 목격하고 시신들이 피의 호수에 잠겨 있었다고 말할 수 있어.그건 피가 코모 호수처럼 넓게 고여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저 피가 많았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고 하는 말이야.어떤 사람이 자기가 살아오면서 겪은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회상할 때는 자네도 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 봐."(60~61페이지)

"내가 언제부터 진짜 실패자가 되었는지 아나?나 스스로 실패자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그때부터였네.그 생각을 곱씹으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더라면, 인생이라는 게임의 여러 판 가운데 적어도 한 판은 승리했을 거야."(124페이지)

"이보게 어린 친구, 저건 윤전기 돌아가는 소리야.자넨 이 일과 관련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19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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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미친 것 같아도 어때?
제니 로슨 지음, 이주혜 옮김 / 김영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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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기 마련인데 우리는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그 기준보다 불완전하면 비정상이라 부른다.그러나 기준의 정도는 각양각색이다.각자의 기준에 따라 다른 사람이 비정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불완전을 관용할 필요가 있다.그리고 그러려면 자신의 불안정부터 인정해야 한다.이 책의 저자는 다소 심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지만 가족과 남자친구의 도움 그리고 초월적인 긍정으로 잘 버텨나가고 있다.


정신적인 불완전이 질병과 치료의 대상으로 존중받은 역사는 얼마되지 않는다.미신과 종교가 지배하는 시대에서는(혹은 지역에서는) 불경스러움의 결과로만 봤고 그 이후 이성과 과학이 도래한 시대가 되어서야 그것이 호르몬의 문제라는 것이 밝혀졌다.하지만 아직도 의지의 문제로만 몰고 가고 환자를 무언가 잘못이 있는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남아있다.그런 경향이 있다보니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모습도 보인다.(저자의 어머니가 그런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그 모든 것을 잘 받아들이고 본인의 불완전함을 솔직히 고백한다.그리고 불완전 속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들을 정리하여 책으로 써냈다.정신적 문제로 인한 저자의 고통이 불편하고 괴로웠지만 그 와중에도 재치와 낙관을 잃지 않는 모습에서 감탄을 했다.


"호텔 쪽으로 몸을 돌려서 보니 도시를 향해 뻗은 내 발자국이 어딘가 짝이 맞지 않아 보였다.하나는 작고 하얗고 반짝였다.또 하나는 모양이 일그러졌고 발끝마다 빨간 핏자국이 있었다.마치 내 인생의 상징 같았다.한쪽 면은 밝고 마법 같았다.늘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하는 행운의 모습.다른 한쪽 면은 피투성이에 비틀거렸다.절대로 계속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예수님이 모래밭에 발자국을 남기셨네"라는 시 구절 같지만, 대신 여기에 예수는 적고 피는 많았다.

이것은 흰색과 붉은색으로 이루어진 내 삶이었다.그리고 나는 그 삶에 감사했다."(85~86페이지)


"우울증의 거짓말에 희생된 유명인들을 보면서 우리는 혼자 생각한다.'세상에, 어떻게 자살을 할 수 있지?저렇게 다 가진 사람이?'그러나 그들은 가 갖지 않았다.그들은 죽는 게 더 낫다고 믿게 만드는 병의 치료법은 갖지 못했다.

처방 약과 상담 칠라는 영원한 골칫저리를 떠안을 가치가 있는지 의심이 들 때마다 나는 어지러운 상태에 패배해버린 그들을 떠올린다.그리고 계속 건강하도록 자신을 밀어붙인다.내가 맞서 싸우는 대상은 내가 아니라고, 그것은 화학적 불균형이라는 명백한 실체라고 되뇐다.두뇌는 얼마든지 교활해질 수 있으며,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정신이 어지러울 때나 안정적일 때나 모두 상기한다."(95~9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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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협력사회 - 전쟁은 어떻게 협력과 평등을 가능하게 했는가
피터 터친 지음, 이경남 옮김, 최정규 감수 / 생각의힘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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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장구하고도 다양한 역사를 하나의 키워드로 묶어내려는 시도가 나오고 있다.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아제모글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같은 책이 그렇다.이 책은 전쟁을 통해 증진되는 평등과 협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전쟁은 억압, 파괴, 대립의 상징인데 그것이 평등과 협력을 촉진시킨다니 놀랍지 않은가.하나의 키워드로 역사를 돌아보는 책들은 관점의 차이나 허점이 있기 마련이라 비판하고 부정하기 쉽지만 새로운 관점의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또 장점도 있기 마련이다.


"뭔가를 알고 싶다면 그것을 측정하는 법부터 배워라."(25페이지) 저자는 수학을 중시하는 생물학자라 역사를 데이터화하고 그것을 통해 일관되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이타적인 개인은 이기적인 개인을 이길 수 없지만, 이기적인 사회는 이타적인 사회를 이길 수 없다는 익숙한 말을 수많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충분히 실증하고 있다.인간의 협력성과 이타성은 본성이 아니라 순전히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다른 생물학자들의 주장을 부인하며 왜 협력이 중요한가를 기술하고 있다.무조건적인 낙관론이나 냉소적인 비관론 모두를 부인하며 지난시절 어떻게 협력을 증진시켜 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우리는 개인주의와 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그리고 협력은 단지 부차적이거나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그러나 인류의 생존, 발전은 협력에 기반하고 있고 과열된 경쟁은 모두에게 해롭다.이 책의 메시지는 생물학적 근거로 이기주의를 무한히 정당화시키려는 노력을 분쇄하기 충분할 것이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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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 : 생물.도시.기업의 성장과 죽음에 관한 보편 법칙
제프리 웨스트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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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하찮은 정보들이 범람하는 세상 속에서 명료성을 가지라고 말했다.어떤 정보를 하찮은 정보라고 판단하는데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보를 통해 얼마나 보편적인 결과를 추출할 수 있는지가 그런 판단의 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복잡성 과학의 선구자라 불리는 이 책의 저자가 데이터를 검토하여 법칙들을 찾아내고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을 들으면 현재에 대한 분석과 미래에 대한 예측 과정에서 덜 중요한 정보에 이끌려 잘못된 판단을 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얼마 전부터 복잡계 과학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우리나라에도 한국복잡계학회가 존재하고 성균관대학교의 김범준 교수가 해당 학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데 책과 강연을 통해 활발히 활동하며 복잡계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사실 이공계 전공이 아니라 과학에 대한 이해도 일천한데 복잡계라는 새로 나온 용어까지 덧붙여지니 주워듣기는 하면서도 적극 공부하지는 않았다.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니 복잡계 과학이라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얼마나 유용한 도구인지 알게되었고 지적 게으름을 반성하게 됐다.


우리의 직관과 상식의 한계를 지적하며 실제 세상의 규칙성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저자의 모습은 친절한 안내자 같다.또 과학자임에도 기술과학의 부작용과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데 (각자 견해는 다를 수 있으나) 과학의 윤리성, 과학자의 사회참여가 강하게 요구되고 다른 학제와의 융복합이 강조되는 지금 시대에 모범적인 학자의 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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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미래전략 2019 - 기술변화부터 국제정세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메가트렌드 전망과 전략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미래전략연구센터 지음 / 김영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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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에는 어느 나라건 싱크탱크가 있다.특히 미국의 싱크탱크들은 그 영향력이나 인지도가 어마어마하다.교수나 관료 등 전문가나 유명인사들이 참여하는 것은 물론 정부 내에서 임명직이 생기면 싱크탱크의 그 수많은 전문가들 중에서 뽑아가는 경우도 많다.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나 오바마 전 대통령이 그들의 외교정책에 반영한 스마트파워라는 개념도 csis에서 나왔다.우리나라는 국책연구소나 정당 내 연구소, 기업의 연구소가 있지만 정작 공적 목적으로 뭉친 민간 싱크탱크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민간 싱크탱크는 특정 정당에 소속된 연구소, 특정 정당 출신의 대통령이 관리하는 정부의 연구소, 기업에 종속된 연구소보다 초당파적일 수 있다.또한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각 5년 혹은 4년 내로 실현되어 효과를 보는 정책을 필요로 하고 기업은 상품/서비스 등으로 당장 매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연구를 필요로 하는데 반해 이 책을 만든 연구소는 비교적 장기적인 연구가 가능하다.또 세간에 돌아다니는 미래에 대한 책들이 철학적 견해나 기업의 마케팅 측면에 집중된 측면도 보이는데 이 책은 기술과학에 중점을 두고 있다.

 

카이스트라는 이름을 들으면 기술이나 과학 쪽으로 치중되었다는 선입견도 생길 수 있겠지만 선비정신, 아시아 평화중심 창조국가 같은 철학이 들어있는 거시적인 지향점도 내놓았다.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주요 쟁점에 대한 구체적인 처방까지 제시하면서도 수정이 가능하다는 겸손함을 밝혀둔 것이 인상적이다.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 헤티리지 재단, 미국외교협회, 카네기 재단 같은 권위있는 모임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만들어지기 바라는데 카이스트 미래전략연구센터도 그렇게 발전할 수 있는 유력한 후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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