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빨리 읽어야 했기 때문에 정신없이 진도를 나가느라 마스터 오브 로마의 후기를 건성으로 넘긴 바 있다.  현재 5부까지 나온 이 대작은 읽는 사람마다 손에서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들었는데, 그따위 글만 남긴 것이 속상하기 그지 없다.  읽는 내내 이런 저런 감상평이 떠올랐고 무릎을 치게 만든 수많은 멋진 문장과 묘사가 그렇게 기억의 궁전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보니 또 여러 권의 책을 읽고 100자평만 남기면서 왕창 밀려버리고 말았다. 차분하게 하나씩 기억나는 대로 줄거리를 요약하고 느낀 바를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줄거리를 정리하는건 아직 어렵고, 책을 덮으면 바로 가물가물해지는 내용에 밀리기까지 하니 더더욱 한번 밀리면 제대로 된 정리는 어려운거 같다.  


장강명, 배명훈, 김보영, 듀나의 단편을 하나씩 엮어낸 책이다. SF는 보통 서구권의 소설을 보는게 대부분인데 나만 그렇지는 않을거다. 그 와중에도 김보영, 듀나, 배명훈 같은 작가들이 꾸준히 노력을 하고 있으니 참 다행스럽기도 하고, SF가 잘 팔리지 않는 환경이 안쓰럽기도 하다.  판타지는 한때 크게 유행을 하기도 했고 아예 대본소소설로 많이 나오기도 했었지만, 한국 SF는 그 정도의 중흥기(?)도 아직은 요원하다.  장강명은 화제가 된 소설 몇 개를 읽어봤는데 - '댓글부대'와 '한국이 싫어서'였나? - 그의 SF는 꽤 신선하다. 각각 아주 다른 느낌의 소설, 특히 익숙한 서양인의 세계와는 다르고, 한국사람의 이름과 한국사람의 사고가 세계관의 수준으로 반영되는 등 아주 반갑고 흥미진진한데, 작가들 각각 어느 정도는 서양의 작품이나 작가의 영향을 받아 그걸 모사하듯이 쓰면서도 한국의 눈으로 그려냈다는게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아쉬움이라면 단편이나 중편이 아닌 제대로된 장편이 더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단지 SF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고, 사실 한국의 현대소설이나 문학계 전반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font도 커지고, line사이이 공간도 커지고, 페이지의 여백도 더 늘어난 지금인데, 이렇게 만든 책 한권은 기실 예전이라면 반권도 채 못 채울 양인 경우가 너무나 많다.  한편 책 한권의 값은 보통 15000원을 오가는데 말이다.  혹자는 책을 읽지 않는 세태를 탓하고 짧게 쓰지 않으면 독자의 관심을 잡아둘 수 없다고도 하는데, 아주 틀린 말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건 사실이다.  길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쓰는 그 실력이 점점 사라져가고 글이란건 그저 단편적이고 앞뒤가 모두 열려있는 정도의 짧은 글만 쓰면서 복잡하지만 정리가 명확한 긴 호흡의 글을 쓰지 못하게 되어가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김보영작가는 한국환경에서는 드물게 여성 SF작가로 알고 있는데 그의 책은 더 구해볼 필요가 있겠다.  듀나, 배명훈은 워낙 유명하니까 두말하면 잔소리.


이현우교수의 새책. 지금까지 나온건 모두 구했고 여러 번 아주 흥미롭게 읽었는데, 그의 전문분야인 러시아문학에 대한 강의는 무척 좋은 참고서처럼 러시아문학에 입문하고 조금씩 뜯어보기 시작한 나의 독서수행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니체, 카잔차키스, 서미싯 모옴, 그리고 밀란 쿤데라의 작품과 배경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강의를 모은 이 책은 같은 의미로 이 네 거장들의 책과 작가에 접근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네 작가 각각의 책을 몇 권씩 읽어는 봤지만, 이 책에서 풀어낸 것처럼 세밀하게 이해를 하지는 못했고, 니체의 경우엔 특히 많은 노력이 필요했지만, 이 책을 읽고보니 언젠가 넉넉한 마음으로 조금씩 다시 그에게 다가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밀란 쿤데라도 쉽지는 않은데 역시 이 책을 길라잡이고 다시 파보고 싶고, 카잔차키스는 모자란 한 권이 마저 채워지면 다시 들여다보고 싶다. 서머싯 모옴은 '달과 6펜스'를 중학교 때 접한 이래 몇 번 읽어봤지만, 아직은 어떤 의미보다는 소설적인 묘사와 재미를 느끼는 정도에서 만족했는데, 이 책에서 다뤄진 순서대로 하나씩 따라가보면 무척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법정스릴러가 일품인 그리샴 공장장의 최근작품. 아주 드물게 보통 그가 즐겨쓰는 주제를 벗어난 책이 나오기는 하는데, 제목도 생각나지 않고, 읽다가 제껴둔 바로 이전의 작품보다 훨씬 부드럽게 읽혀 꽤 빨리 한 권을 읽어낼 수 있었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도서관 금고에 들어있는 핏츠제럴드의 작품 원본이 털리고 사라진다.  범인과 책을 찾는 과정에서 이런 일들을 비밀스럽게 처리해주는 보험사는 현재 이 장물을 갖고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성공한 서점주인에게 전직 작가이자 돈이 시급한 여자 (서점주인이 남자라서) 를 접근시켜 비밀을 알아내려 한다.  작품 내내 이야기가 풀리는 과정도 무리없는 당위성과 flow를 보여주었고 적당한 긴장을 계속 유지하는 등 모두 괜찮았지만, 이야기의 결말이 책 50페이지 정도를 두고 갑자기 모든 갈등이 하나씩 해결되는 등, 마무리는 조금 의문스럽다.  그리샴의 책이 늘 그렇듯이 머리를 식히기에 좋은 책이다.



셜록 홈즈와 러브크래프트를 섞은 패러디물. 원전도 작품이 적지 않지만, 셜록 홈즈는 그 원전 이상 많은 패러디와 재해석이 나온, 현존하는 최고로 유명한 탐정이다.  생존설, 실존설에 평행우주까지 얘기가 있는걸로 아는데, 크툴로 케이스북은 내가 아는 이런 아류작에 장르를 하나 더하게 된 것 같다.  좀더 짧은 이야기로 끌어갔어도 큰 무리가 없었을 것 같고, '있을법한'이야기인 듯 풀어내는 스타일은 예전에 '히스토리언'을 읽을때만큼의 감동이랄까 흥분을 주지는 못했다.  Lovecraft에서 Lovegrove로 이어진 비밀스러운 원고는 잘 알려진 셜록 홈즈와 왓슨박사가 함께한 사건들의 실체는 기실 일반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실화의 커버스토리에 다름이 아니었음을 계속 피력하는데, 후반에 가면 이런 점이 읽는 사람을 다소 피곤하게 한다.  차라리 Lovecraft를 좀 읽고서 봤으면 좋았을 것 같다.  Not bad but not too great.



서점을 운영하면서 어쨌듯 먹고는 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오토바이를 탈 줄 안다는 점, 게다가 그 오토바이를 타고 일본의 책방을 돌아다녔다는 점에서, 아니 그 셋 중 하나만 해도 이 책의 저자는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  가끔이지만, main freeway에서 살짝 빗겨나서 대도시에서 너무 멀지는 않은 한적한 곳에 있는 농장을 사서 들어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대로 잘 살다가 나중엔 작은 서점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둘 다 how 와 what을 생각해보면 한숨만 나오는 처지인데, 이런 식으로 조금은 대책이 없는 사람이지 못하고, 생각이 많은 종류의 밥주머니인 나는 결국 이대로 끝인가 싶어서 갑가지 우울해진다.  한국의 현실과 비교하면 일본의 책방은 조금은 더 나은 처지 같기는하다.  실제로 책읽는 인구도 더 많고, 전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들고 있는 사람도 더 많다고 한다.  하지만, 가까이 가봤을땐 여기도 책이, 책방이 살아남는다는건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가는 듯.  책방을 여는건 돈이 있고 시간이 있으면 어려운 일이 아니고, 적자를 만회할 수준의 수입이 다른 경로로 들어온다면 서점을 운영하는건 큰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서점으로 먹고살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보면, 요즘 유행처럼 생기는 동네의 작은 서점들 중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기준에 준할 수 있는 곳이 몇 개나 있을까.  결국 농장도 서점도 심야식당도 내가 손을 대기엔 너무도 먼 곳에 있다.  이렇게 간접경험으로 맘을 달래는 정도 말고는 더 할 수 있는게 없다.  지금은 그렇다.


이명박은 대한민국이 만들어진 이래 최악의 사기꾼이고 협잡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책.  사실 정치에 입문하기 전, 그가 성공으로 가는 과정에 대한 루머는 많이 들어본 것으로 기억한다.  해외지사에 있을때, 상사에게 한가한 일정이니 골프를 치라고 권하고 그런 날엔 늘 정회장의 불시방문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흔한데, 듣던 당시엔 반신반의했지만, 그가 보여준 단군이래 최고의 협잡질인 사-자-방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같은 이유로 난 이젠 그가 한일협정반대시위에 대학생으로서, 그리고 선봉으로서가 아닌 정보부의 프락치로서 참여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도 묘하게 신뢰가 간다.  언제나 이야기하지만, 최순실-박근혜-전두환-이명박, 그들 주변의 수많은 먹튀들까지.돈을 빼앗아야 한다는 점을 절대로 잊지 말자.  이들 뿐만 아니라, 사기꾼이 사기로 모은 돈을 빼앗은 것이 그를 감방에 보내는 것 이상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주진우는 역시 좀 짱인듯.  사진이 그리 나와서인지는 몰라도, 다리도 길어보인다.


다카키 아카미쓰의 법정스릴러.  그 치밀함이나 법적인 reality는 그리샴 등 요즘의 작가들과 비교하면 훨씬 떨어지지만, 그건 시대적인 한계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언제 읽어도 즐거운 작가의 책이고, '문신 살인' 같은 음울함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그리고 종종 조금은 유치하기도 하지만, 작가가 창조한 변호사 케릭터는 꽤나 매력적이다.  특이한 건 하나도 없지만 무척 기쁘게 읽은 책.



겨우 써냈는데, 주말동안 세 권의 책을 더 읽었다.  이번에 밀리기 전에 좀 잘 정리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어렵겠다는 생각으로 기울어버리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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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5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6 0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