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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미래 - 10년 후, 나는 어디서 누구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린다 그래튼 지음, 조성숙 옮김 / 생각연구소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끊임 없이 미래를 알려고 노력한다. 단순히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알지 못한다는 불안함과 공포에 어떻게 든 미래를 알기 위해서 노력한다. 두 눈을 감고는 보이지 않는 두려움에 한 발도 쉽게 때지 못하는 것처럼,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인생에 모험이라는 것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부모님이 정해 놓은 길이나 아니면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그저 따라 갈 뿐이다. 인생에 자기의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길을 개척하려 하기 보다는 누군가의 길을 따라가려고 한다. 그래도 떠나지 않는 불안감과 그 길에서도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앞서 사려는 욕망에 끊임 없이 미래를 알기 위해서 노력한다. 미래를 알려는 우리의 욕망은 불확실이라는 두려움이 만들어낸 공포다.
그렇게 공포를 떨치려는 노력은 과연 얼마나 성공할까? 각 분야마다 수 많은 예측과 예언이 난무하지만, 실제로 정확하게 맞추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 백 개의 예측과 예언 중에 몇 개가 우연히 맞아 떨어지기라도 하면 대중들은 그 사람을 추종한다. 그가 틀린 수 많은 미래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그가 맞춘 소수의 예측이나 예언 만을 기억할 뿐이다. 그 기억으로 그들을 열렬히 추종하고 때론 맹신한다. 키케로는 "미래를 안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결국 그것은 소득 없이 자기를 괴롭히는 불행이다."라고 했다. 미래를 알려는 노력보다는 현실의 자신에 충실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현실의 자신에 충실하다는 것은 다른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 같다.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리는 안정이라는 것을 맹목적으로 추구한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대단한 열정으로 현실과 사회에 도전해야 하는 청춘들이 막연한 두려움에 스스로 자신의 열정을 꺾어버리고 현실에 안주한다. 그 현실이라는 것이 지금의 현실일 뿐이지 미래의 현실이 아닌데, 그 현실을 마치 미래의 현실로 생각한다. 꿈이 공무원이라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자신의 적성과 능력을 완전히 무시하고 그냥 안정해서 좋다고 선택하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추구하는 많은 청춘들은 우리 사회의 어디 한 구석에 커다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청춘들이 두려움에 자신의 열정을 꺾어버리도록 만드는 사회 현실과 구조를 무시한 채, 공무원만을 추구하는 청춘들을 나무랄 수가 있을까?
미래는 오늘의 현실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 진 것이다. 열정과 희망의 현실이 쌓인 미래와 좌절과 현실 안주가 쌓여서 만든 미래의 차이를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지금 만들어가는 미래는 희망이 있는가 아니면 절망인가? 아직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 만큼 미래는 불확실하지 않은가? 우리는 그런 거시적인 미래보다 자신의 미래에 집중해 스스로의 미래를 명확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개인의 미래는 꿈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에 일이다. 어떤 미래를 꿈꾸듯 우리의 그 꿈은 바로 일이다. 베짱이 처럼 일하지 않고 놀수 있는 미래면 좋겠지만, 현실은 개미처럼 일을 해야만 누릴 수 있는 미래가 더 많아진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꿈이 뭐야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대답은 미래의 직업에 대한 것들이다.
시대의 변화 만큼 급변하는 것이 바로 일의 종류다. 신 기술에 의해서 새로운 직업이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는 직업이 생기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꿈은 당시 현실에서 인기있는 직업일 뿐 우리는 성인이 되면서 지금 현실의 직업에 초점을 맞추고 일을 선택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막연한 꿈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현실적이고 구체화 된 형태로 다가온다. 그 구체화 된 형태의 일이라는 것은 연봉이나, 적성, 능력 등 다른 여러 조건이 고려되어서 선택되어 진다. 거기에 일의 장래성까지 같이 고려되면서 우리는 오랜 시간 심사숙고 하고, 선택이라는 것을 한다. 그 신중한 선택을 해도 어느 순간에 사회의 변화에 의해서 좋지 않은 결과를 얻기도 한다.
변화의 불확실성은 누구도 미래를 단정할 수 없게 만든다. 이 책 "일의 미래"도 그런 불확실성을 반영하듯 쪽집게 처럼, 미래를 단정하지 않는다. 거시적으로 "저탄소 경제의 활성화, 급속한 기술발전, 세계화의 증가, 수명과 인구 통계의 근본적 변화 그리고 중대한 사회적 변화"라는 다섯 가지 힘에 의해서 현재와 미래가 변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이런 다섯 가지 힘이 가져올 변화가 일이라는 직업의 선택에 어떤 고려나 노력을 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다섯 가지 힘은 그렇게 색다를 것이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지금 현실에서 작용하는 힘이다. 미래는 오늘의 현실이 쌓여진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이 책의 내용은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자세를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힘이 아니라 현실에 직면한 힘의 실체이고, 이 실체를 알고 현실에 조금씩 대응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미래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는 세 가지 능력을 배양하라고 한다. "첫째, 관심 있는 분야에서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대부분의 근로기간을 자신의 지적 자본을 함양하는데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우정과 네트워크를 통해 사회적 자본을 함양해야 한다. 신회할 수 있는 사람들과 깊은 우정을 쌓고, 다른 사람들과 보다 폭 넓은 네트워크를 조화롭게 구축해야 한다. 셋째, 돈과 소비를 일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추구하는 전통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생산적이며 다양한 경험을 누리는 능력을 중시하는 새로운 인식으로 옮겨가야 한다."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은 미래에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현실에서 충실히 쌓아가야 하는 것들이다. 그 만큼 지금의 현실을 잘 쌓아간 사람에게 다가올 막연한 미래는 그렇게 두렵지 않다는 것이 아닐까? 책의 제목은 거창하지만, 지금 현실이 미래다. 하지만 그 전에 개인적으로 '네 일을 하고,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에 대해서 몽테뉴가 한 해석을 더하고 싶다. 몽테뉴는 이 말에 대해서 "자신 일을 하려는 자는 먼저 자기가 무엇인가 그리고 자기에게 적당한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아는 자는 남의 일을 자기 일로 혼동하지 않는다.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가꾸며, 쓸데없는 일이나 생각을 제안 받기를 거절한다."라고 해석을 더한다. 앞에서 저자가 말한 세 가지는 자기 자신을 먼저 알았을 때 해당되는 말이다. 입시에 시달리는 학창시절을 통해서 우리는 얼마나 자신을 알려고 노력했고 알아 왔을까? 우리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을 현실에서 찾아 만들지 못했다. 자기 자신을. 미래를 꿈꾸고 현실을 충실히 살기 전에 우선 "너 자신을 알라." 그것이 불확실한 미래와 꿈을 용기 있게 해쳐나가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