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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정치경제학 - 하버드 케네디스쿨 및 경제학과 수업 지상중계
천진 지음, 이재훈 옮김 / 에쎄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경제학이면 그냥 경제학고, 정치 경제학이면 그냥 정치 경제학이지 그 앞에 굳이 "하버드"라는 만을 붙일 필요가 있을까? 시카고 학파처럼 특정 대학 출신들의 경제학자들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대학교의 이름이 앞에 붙어서 특정 학파를 대신한다면 모르겠지만, 하버드 경제학이나 하버드 정치 경제학이니 하는 식의 이름은 조금 우습게 보인다. 책 제목만 보면 그렇다. 지독한 학벌주의 사회에 찌든 우리나라에서 하버드라는 학벌을 자랑하기 위한 마케팅 그 이상의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하버드란게 특별한가? 하버드 법과 대학원을 졸업한 강용석이라는 인간만 봐도 그렇다. 최고 학벌에 스팩만 쌓아 놓은 인간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하버드라고 특별한거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버드도 여러 인간들의 집합체 일뿐이고, 그 인간들 중에서 하버드의 명성을 드높이는 사람이 있고, 하버드의 명성에 먹칠하는 인간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중국인이다. 어떻게 보면, 그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학벌주의 성향을 보이는 것 같다. 하버드에 대한 대단한 자긍심을 책 여기저기 보인다. 꼭 그런 성향이 우리와 같은 학벌주의 성향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자신의 모교에 대한 큰 자부심 만큼은 엿볼 수 있다. 그렇다고 그는 자신이 배웠던 것을 맹목적으로 소개하지 않는다. 그가 소개하는 내용들은 현재성을 가지고 있다. 큰 맥락에서 통화정책과 미국의 의료체계 같은 현재 가장 많은 관심과 이슈를 이루는 주제들을 가지고 책을 전개한다. 그렇다고 또 일방적이지 않다. 다양한 다른 의견들을 먼저 제시하고 하버드의 교수가 제시하는 의견을 강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국제통화에 관한 부분이다. 저자는 국제 통화의 새로운 트렌드 5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개발도상국이 갈수록 중시된다. 둘째, 독립적인 통화정책, 고정환율제도, 자본시장의 완전한 개방이 동시에 운용하기는 불가능하다. 셋째, 환율 조작에 대한 비난이 줄어든다. 넷째, 물가안정을 목표로 하던 통화 정책이 신용 주기를 대처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다섯째, 달러는 단일 기축통화로써의 지위를 잃을 것이다. 나머지 내용이야 그렇게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는 내용이지만, 두번째와 네번째 내용은 알지 못했던 내용이라 신선하게 다가온다.
두번째 내용인 독립적인 통화정책, 고정환율제도, 자본시장의 완전한 개방이 동시에 불가능하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보면 그렇게 낯선 형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통화정책만 봐도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인데, "완전한 고정환율제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변동환율제도도 아"닌 중간적인 환율정책을 운용하는 것을 보면 된다. 이 내용은 각나라들이 왜 환율 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환율을 조절하는 통화제도를 운영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세번째 이유인 "환율 조작에 대한 비난"이 줄어든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지금 환율 문제를 두고 각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수면 아래에서 화폐전쟁을 벌이는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너무 이론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국제 통화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식을 제공한다.
네번째 내용은 각국의 통화정책의 변화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키를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통화정책의 기본은 물가 안정이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과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지금 한국 은행의 통화정책에 대해서 상당한 비판을 가하는데 그 바탕은 물가 안정을 기본으로 해야 될 한국은행이 자신의 의무를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민들은 고물가에 시름하는데, 한국은행과 정책 당국은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럼에도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물가안정보다는 경제상황에 더 관심을 두고 움직인다. 왜 그렇게 움직이는 것일까? 정치적으로 생각하면 경기부양을 위한 정치권력의 영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신용 주기에 대처하는 통화정책으로 변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해석이라고 생각된다. 더 쉽게 풀어서 말하면 "금융시스템 내에서 연신 현황을 토대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장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장하준 교수가 책"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에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들이 성장을 둔화시켰다."고 말했던 것처럼. 물가안정을 위한 통화정책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만하지 않을까?
이 밖에도 경제와 정치에 대한 많은 내용들이 이 책에 포함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역량이 부족해서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고,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앞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현재에 논의되고 있는 현실성 있는 내용들에 대해서 생각할 여지를 많이 제공해 준다. 하버드 교수의 주장이 모두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극단적인 주장이 아니라 반대 의견을 수용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경제에 대한 이야기도 정치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소양에 대한 이야기랄까, 학벌과 취업이 가장 큰 목표가 되어버린 우리나라 대학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불러 일으키는 내용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런 말을 한다. "만일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선택하여 수준 높은 교육을 받게 되면 학생들의 목표는 개인적인 삶의 문제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학생들은 옳고 그름을 구분하고 주관이 뚜렷한 시민이 되어야 하며 또한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동량'이 되어야 한다.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을 갖고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 그리고 시대정신과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만일 자신의 문제에만 집착하고 개인의 삶만 고집한다면 대학을 다닐 필요가 없다.". 사회와 시대에 대해서 고민하지 못하게 만드는 우리의 현실. 그래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이 부족해 점점 냉혹해지는 현실. 바로 그 시작은 저자의 말처럼 "개인의 삶"만 고집하며 대학을 추구하는 우리가 만들어낸 문제다. 많이 배운 인간들이 엄청난 비리를 저지르는 현실이 너무나 서글프지 않은가. 이 책에서 말하는 경제에 대한 내용도 정치에 대한 내용도 허투루 버릴 것이 없다. 하지만, 그 내용을 제대로 소화하기 전에 저자의 저 말을 먼저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