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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배신 - 시장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라즈 파텔 지음, 제현주 옮김, 우석훈 해제 / 북돋움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더글러스 러시코프의 책 “보이지 않는 주인”은 저자가 직접 겪은 경험담을 이야기하면서 시작된다. 뉴욕의 중상류층이 사는 곳에 사는 저자는 어느 날 길에서 강도를 만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지역사회 커뮤니티에 자신이 겪은 경험담을 올리고 주민들이 나서서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뭔가 해야하지 않겠냐는 취지로 자신의 의견을 남긴다. 하지만 되돌아오는 사람들은 반응은 냉혹하기만 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의 삶의 환경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뒤로하고,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그런 글을 직접적으로 남기면 어떻게 하냐는 항의를 들었다고 한다. 이런 글로 인해서 집 값이 떨어지면 어떻하냐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우리 내부에서도 종종 아니 많이 볼 수 있다. 왜 혐오시설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흔히들 혐오시설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자기 지역에 생긴다면 사람들은 머리에 띠를 두루고 투철한 전사가 되어서 온 몸으로 시설이 생기는 것을 막으려 한다. 거기에 다양한 이유를 가져다 되면서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가끔은 측은하기까지 하지만, 결국에 그들의 논리에 핵심은 집 값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집 가진 사람들만 그런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물론 직접적으로 행동을 나서는 사람들은 자신이 지킬 것이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뭐든 지독한 돈의 논리로 생각하고 말한다.

최근에 큰 이슈를 일으켰던 배우 한예슬의 드라마 보이콧 사건을 보면, 왜 한예슬이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느냐에 관심보다는 출연료 많이 받으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는 논리가 판을 친다. 한예슬의 행동에 잘잘못을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니 그냥 넘어가더라도, 돈만 많이 받으면 어떤 힘겨움이나 어려움을 감수해야 된다는 식의 논리는 우리가 얼마나 돈의 논리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와 시민들의 정당한 권리 주장마저도 돈의 논리로 묵살하거나 비판한다. 결국 스스로의 권리를 지독한 돈의 논리로 스스로 묵살해 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우리는 빠지게 된다.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코포라티즘”이라는 것에 주목하고, 지금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한다. 기업의 논리가 개인들에게 파고 들면서 연대하면서 살았던 개인들이 점점 파편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로 인해 공동체가 파괴 되고 개인들은 코포라티즘을 더 맹목적으로 복종하게 된다고 한다. 더글러스 러시코프의 이러한 설명은 참여정부와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을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의 바탕이 되는 것은 한 민간기업의 경제연구소가 내놓은 결과물들을 정책에 반영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정부의 경우는 대기업 연합체인 전경련의 백서를 경제정책의 핵심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것 또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미 알지 못하는 사이  “코포라티즘”에 포위당했고, 그것이 마치 당연하다는 인식한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누군가의 도구로 전락한 경제학을 우리를 위한 경제학이라 믿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믿는 경제학, 우리가 그렇게 돈의 가치를 최고로 치는 경제학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경제학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닐까?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경제학을 신봉해 왔던 것일까? 일본 만화 “꼴찌 동경대 가다.”에서 꼴찌들에게 “사회의 룰이라는 건 전부 똑똑한 놈들이 만들고 있지. 그 룰은 똑똑한 놈들이 자기네 좋을 대로 만들고 있다는 소리다.”라며 말하고 냉혹한 현실을 인식시켜준 변호사 사쿠라기의 대사처럼 경제학이라는 놈이 똑똑한 놈들이 자기네 좋을 대로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까?

결국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는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 더 큰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똑똑한 놈들이 많들어 놓은 룰속에서 힘겹게 아등바등 거린다.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 왔던 경제학이라는 것은 결국 현상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학문이 아니라 탐욕의 도구였던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우리는 많은 가치를 잃어 버리고 있다. 이웃과의 관계를 비롯해, 사회라는 하나의 공동체 마저도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 누군가의 슬픔을 이해하고 위로해 주려하기 보다 누군가의 슬픔을 이용해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 한다.

하지만, 스스로의 탐욕에 매몰되어 몰락한다. 반복되는 위기,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 경제적 상황은 우리가 아무리 경제적 논리로 무장하고 경제적 지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해도 돌아오는 이득은 없음을 보여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점점 더 경제적 논리로 무장하고 경제적 관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변하는 것은 없고, 나의 이웃들과 주변의 사람들은 전부 이기적인 존재로 보일 뿐이다. 결국에 관계는 붕괴되고, 우리가 지켜야할 공동체의 가치마저도 붕괴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제라도 우리는 경제학이 가지고 있는 허상을 깨달아야 한다. 경제학이 우리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가 무엇인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돈의 논리 경제의 논리가 아니라 우리가 지키고 추구해야 될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할 때가 온 것이다. 이 책 “경제학의 배신”은 경제학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모순 그리고 문제점을 파헤치면서 우리가 복원해야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가 발발했을 때 부활해 주목받았던 칼 폴라니의 사상을 비롯해 다양한 대안 경제적 시점을 접할 수 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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