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0일
바르트 무이아르트 지음, 한경희 옮김 / 낭기열라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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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 하나의 사건이 이토록 밀도 있게 많은 것들을 전달하는 이야기를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또한 이보다 더 슬픈 이야기를 읽은 바 없다. 나는. 

 세상에는 소파 방정환 선생이나 페스탈로찌처럼 아이들을 사랑하는 인물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베트예만처럼 야만스러운 어른들도 있다. 지저분하고 더럽고 악마같은 어른. 어린 바르트와 베니의 눈을 통해 본 그는 형편없는 어른이었다.  

 처음부터 설명하지 않아 궁금하긴 했지만 조금만 참고 헨델과 그레텔의 빵부스러기처럼 저자가 흩뿌려주는 스토리 부스러기를 따라걷다보면 곧 이야기의 전말이 보인다. 춥고 쓸쓸한 날 일어난 눈물나는 이야기가... 

 묵은 해를 접고 새해를 맞이하기 전날 바르트와 베니는 베트예만의 집에서 베니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품안에는 죽은 오리 한 마리가 들어 있었고 두 소년의 뒤를 어린 개 엘머가 졸랑졸랑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발걸음이 무겁다는 사실은 쫓아오는 베트예만의 목소리가 들리면서부터다. 읽고 있는 사람마저 함께 뛰고 있는 듯 착각을 불러 일으키며 한 껏 불안하게 만드는 그의 목소리. 

 도망가던 도중 죽은 오리는 발각당하고 엘머는 추격자의 손에 잡혀버렸다. 혼나거나 따지는 것을 택하지 않고 베니의 집으로 도망쳐 버린 바르트에게 주어진 것은 엘머의 시체. 순간 바르트의 세상은 산산히 깨져버린다. 베트예만의 소유였기에 오리가 밉긴 했으나 괴롭히고 싶었을 뿐 실수로 죽이게 된 바르트는 어린 바르트에게 상처주기 위해 엘머를 죽인 어른 베트예만이 더 싫어졌다.  

 그는 엄마의 환심을 사 새 아빠가 되려하면서 엄마와 여동생을 빼앗아갔고 가족을 빼앗긴 소년의 외로움을 달래진 못할망정 또 다른 가족인 엘머를 죽임으로써 어른답지도 사람답지도 못했으며 소년을 더 외롭게 만들어 버렸다. 엄마나 자신을 때리던 베트예만의 폭력보다 가족인 엘머를 죽인 폭력이 소년의 가슴에 더 깊은 멍을 남겨버린 가운데 "저 사람이 널 때렸니? 미안하다고 말했어?"라며 신문에 싸여 있는 죽은 개를 가슴에 안고 어르는 소년의 독백은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어버렸다.  

 원제가 "맨손"인 [1월0일]은 1998년 독일 청소년 문학상, 1996년 벨기에 북라이온상, 1995년 네덜란드 실버펜슬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세 국가에서 각각의 상을 수상했을만큼 훌륭한 작품이지만 무엇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대단한 작품이다. 폭죽이 터지고 모두가 축하하는 가운데 소년의 1월 0일은 외롭고 쓸쓸하게 시작되고 있다.  

베트예만이 엘머를 대신해 바르트의 가족이 될 수 있을까. 를 상상해 보는 건 1월 0일에 너무 잔인한 짐작인 것만 같고, 바르트의 가슴앓이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만을 모아 마지막 책장을 덮는 것으로 책과 이별했다.  

 2011년, 몇 해를 살았든 1월 0일에 일어난 이 일처럼 가슴짠한 일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동심이 깨어져 버리고 그 구멍 사이로 숭숭 바람이 들어 더 외롭게 된 바르트보다 더 슬픈 소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년의 슬픔은 엘머뿐만 아니라 엄마와 로나까지 포함해 가족을 잃어버렸다고 믿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고, 폭력 앞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했던 기억을 담고 있는 것이기에 더욱 애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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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리의 만돌린
루이스 드 베르니에 지음, 임경아 옮김 / 루비박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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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사랑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어톤먼트]처럼 연인의 사랑을 질투어린 마음으로 찢어놓고 평생을 미안해하는 마음도 있고 [연인]에서처럼 평생 그리워한 단 한 순간의 사랑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리스 섬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경쾌한 스토리의 [맘마미아]가 떠올려지지만 그리스의 작은 섬 케팔로니아에선 이런 사랑의 이야기도 전해진다. 왕선생이 등장하는 중국의 한 동화책이 떠올려지는 이아니스 역시 자격증이 없지만 섬의 명의다. 그는 생활적 지식을 근거로 순박한 사람들을 치료해나가며 존경을 얻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는 치료답례로 물품들을 받으면서 아름다운 딸 펠라기아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펠라기아가 열 일곱이 되던 채 괜찮은 남자는 남아 있지 않은 섬에서 만드라스와 약혼하지만 전쟁은 그들을 갈라놓고 만다. 전쟁 중에도 긴박함보다는 소소한 일상이 묻어나 긴장감을 덜하고 있는 가운데 섬은 그대로의 모습이 지켜진 채 해가뜨고 지는 생활이 반복되고 있었다. 

적이지만 사랑에 빠지게 될 안토니오 코렐리가 나타나기 전까진. 
2차 세계대전으로 망쳐진 남자 만드라스에 비해 모든 점에서 월등히 우수한 코렐리를 사랑하게 된 켈라기아는 섬이 대학살의 현장이 되는 가운데서도 그를 구해내고 치료한다. 점점 어느쪽이 더 나쁜지 판가름하기 힘들어지면서 사랑은 배신을 낳고 삶은 죽음과 친구가 되어 있었다. 돌아온 만드라스의 추행보다 코렐리의 부재가 더 가슴아팠던 펠라기아는 아버지 이야니스의 죽음 이후 만드라스의 엄마와 함께 버려진 아이를 키우며 늙어간다. 

이루어지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비켜간 채 코렐리를 사랑한 카를로의 사랑도 코렐리를 기다리는 펠라기아의 기다림도 그 끝이 있나보다 싶어질 무렵 늙수구레한 코렐리가 나타나고 더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던 고백은 그가 매년 그녀를 몰래 보러 섬에 나타났다는 거였다. 

한여름밤의 꿈도 아니면서 운명은 왜 그토록 잔인하게 굴었던 것일까. 전쟁도 모자라 오해까지....아름다운 젊은 시절을 다 허비하게 만든 그 두 요소는 노인이 되어서야 둘을 화해하게 만들고 함께하게 만든다. 소설에서 가장 큰 배신은 사람이나 전쟁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 어긋남이 일으킨 것이 아닐까 싶어질 정도로 안타까운 러브스토리를 전하고 있었다. 

들어본 바 없어 상상할 수 없었던 만돌린의 선율만큼이나 궁금했던 그들의 결말이 이렇게 웃으며 끝날 수 있었던 까닭은 전쟁이 끝나 평화로움이 지속되고 있는 일상에서 마무리 되어지기 때문은 아닐까 싶어졌다. 

전쟁의 손길은 언제나 잔인했다. 그래서 그를 소재로 한 소설은 무자비하고 폭력적이었던데 반해 대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가 사랑이야기로 덮혀질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아름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 낭비된 세월의 안타까움은 뒤로하고라도-.

처음 읽게 된 작가의 작품이었지만 나는 작가의 다음작품이 궁금하다. 그와 함께 만돌린의 선율 또한 궁금해졌다. 언젠가는 한번쯤 들어보고 싶어질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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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진열장 2
더글러스 프레스턴.링컨 차일드 지음, 최필원 옮김 / 문학수첩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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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번가와 130번가 사이, 리버사이드 가에 정말 렝 박사가 살고 있을까.

그는 150살이 넘었을텐데?

 

 

잭 더 리퍼보다 더 화제의 중심이 되어버린 연쇄살인범 에녹 렝. 그는 미국의 첫 번째 연쇄살인범이면서 1870년대에 기록으로 남은 남자였다. 당시 서른살 정도로 추정되는 그를 잡기 위해 FBI 수사관 펜더 개스트가 나서면서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모방범. 살아 있을 것 같지 않은 그의 범죄를 뒤따르는 모방범의 살인이 판을 치는 가운데 렝의 생사를 확신하는 펜더개스트와 죽은 렝의 모방범의 짓이라고 생각하는 패트릭 오쇼네시,스미스 백은 각각의 방법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1권이 사건을 파헤치고 있다면 2권에서는 마무리 되는 그 결과보다 렝이 살아있는지 아닌지가 주목되는 가운데 에녹 렝이 사실은 펜더개스트가의 사람임이 알려지면서 흥미를 더한다. 증조부의 남동생인 앙투안 렝 펜더개스트가 바로 그 인물인데, 천재적이었던 그가 왜 산사람보다 죽음 사람들과 어울리고 재산을 은닉한 채 연구에 몰두했는지를 캐내는 일이 펜더개스트에겐 중요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살아있는 선조를 만난다는 설레임도 그의 수사를 진척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그 기쁨이 렝의 저택에 잠입하는 순간 깨어지고 마는데, 살해된 렝이 펜더개스트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렝까지 살해한 모방범은 대체 누구일까. 몇몇 주변인물들이 떠올려지는 가운데 공공도서관의 비밀스런 사서 렌을 의심하고 있던 순간 비밀이 밝혀지면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저 인물이었던가?

 

범인이 밝혀지지만 수수께끼는 남았다. 생명연장술이 목적이 아니었다면 렝의 연구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그 수수께끼를 풀기위해 살인범과 펜더개스트는 렝의 연구실을 파고드는데, 결국 발견된 것은 어떤 이유로 중단된 연구였다. 어떤 것이 살인까지 불사하며 생명연장하여 연구에 목숨받친 한 남자를 멈추게 만들었고 그는 점점 늙어갔다. 궁금증이 2권 속에 담겨 있는 가운데,

 

"역사가 깊은 도시 땅 대부분이 시간이 흐르면서 고정적인 속도로 솟아 오른다"라는 구절이 반대로 점점 가라앉고 있는 섬 일본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뉴욕은 100년에 75센티미터씩 솟아오르고 있다는데 반해 일본은 3센티미터씩 가라앉고 있다니....인생은 역시 공평한 것만은 아닌가보다.

 

살인자의 진열장을 읽으면서 더글러스 프레스턴과 링컨 차일드의 책을 처음 읽게 된 셈이지만 그들의 펜더개스트 시리즈는 "더 찾아봐야지"할만큼 충분히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 독특한 이름을 제외하고도.

 

홈즈보다는 루팡에 가까웠던 펜더개스트. 앞으로 계속될 시리즈에서 그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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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연금술
캐럴 맥클리어리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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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게도 한국에서 출생한 캐럴 맥클리어리는 5대가 넘는 대가족이 함께 살면서 작가가 되었다. 그녀는 여기자 넬리 블라이의 삶에 매료되어 그녀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은 [살인자의 연금술]을 쓰게 되었는데 다음 작품 역시 넬리 블라이가 주인공이라고 하니 그녀에게 얼마나 매료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일 것이다.

 

[살인자의 연금술]은 용감한 여성 넬리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등장인물은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살인마 잭 더 리퍼일 것이며, 우리에게 기대감을 주는 등장인물들은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작가 쥘 베른, 우유상표로 더 유명해진 루이 파스퇴르, 천재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다. 그들 모두가 동시대에 하나의 사건으로 묶여지면서 스토리는 매혹적인 만남 속에 빠져든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분야를 통해 사건에 접목되는데 이에 과학과 역사가 함께 녹아들면서 그 어떤 미스터리보다 흥미롭게 엮인다.

 

알만한 인물들의 몰랐던 일상이 묻어나는 가운데 엘리자베스 코크란은 여성에게 기회가 윤택하지 못했던 시절 이름은 넬리 블라이로 바꾸고 잠입취재에 나섰다. 지금의 여성으로서도 충분히 위험한 정신병원이나 매음굴로 용감히 들어간 그녀에게 요즘 같았으면 퓰리처 상이라도 주어졌을텐데 안타깝게도 그녀의 목숨을 담보로 한 취재는 시대를 잘못만난 듯 했다.

 

실제 블라이의 사진이 개제되어 있는걸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대의를 따라 쉽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을 포기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택한 그녀의 용기가 저자를 움직이게 된 원동력이 아닐까 싶어진다.

 

그 시대나 지금이나 연쇄살인범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시대나 지금이나 그들을 잡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어 대다수의 우리같은 사람들이 보호받으며 살아가고 있음에 새삼 감사하게 만드는 소설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으론 그 살인마를 쫓아 정체를 밝히고 싶은 모험심도 함께 충족시켜주는 소설이 바로 [살인자의 연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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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기둥 2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5
켄 폴릿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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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작 [대지의 기둥]은 여러모로 놀라운 드라마였다. 욕망과 이득권을 사이에 둔 사람들은 평민이든 사제든 왕이든 간에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이득을 쫓는 삶을 택했다. 그들이 사는 삶은 이미 지옥의 한 가운데에 있었고 증오와 배신, 음모가 난무했다.

 

성당건축을 둘러싸고 그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조명해낸 이 작품은 많은 8부작치곤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왔지만 전혀 혼란스럽지 않았으며 제각각 제 역할에 충실해 걸작을 탄생시켰다.

 

꼬박 3년 3개월이 걸렸다는 [대지의 기둥]은 3권의 책으로 엮어졌는데, 특이하게도 나는 2권부터 읽기 시작해서 3권으로 책읽기를 마쳤다. 이달내에 1권을 찾아 읽기는 하겠지만 2,3권부터 읽어도 줄거리의 막힘이 없었던 까닭은 역시 드라마를 먼저 시청했기 때문이 아닐까.

 

중세의 멋진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읽지 않아도 좋겠지만 사람들 간의 진솔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꼭 읽으라고 권하고 싶어진다. 음습하고 시궁창 같은 삶 속에서도 사랑은 완성되듯 어려움을 뚫고 사랑을 완성해 나가는 잭과 앨리에너, 성당건축에 사활을 건 톰과 필립수사만이 그나마 세상이 살만한 곳임을 증명하는 이웃처럼 느껴졌다. 어리광쟁이에다가 뻔뻔하기한 리처드가 제 누나를 결혼으로 팔아먹는 장면에서는 악당 윌리엄보다 더 나쁜 녀석으로 느껴지기도 했으며 열일곱의 앨리에너가 짓밟히는 장면에서는 눈을 질끈 감아버리게 만들기도 했다.

 

소녀시절 읽었던 그 어떤 로맨스 소설보다 흥미로우면서도 역사성과 탄탄한 구성에 반해버렸고 특히 "이젠 보호자가 둘인 셈이군요. 하느님과 나 말입니다."라고 필립수사가 말하는 장면에서는 삶의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할 인물이 비단 앨리에너뿐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전세계 1억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켄 폴릿.

왜 그의 이름앞에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붙는지 알게 만드는 작품이며 올 겨울 드라마와 함께 원작을 읽는 2배의 즐거움을 선사한 작품이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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