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
장동선 지음, 염정용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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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알게 된 학문 중에 인지과학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에 따라 인지과학, 뇌과학, 인지심리학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는 데다가 그 정의도 제각각이라 설명하기 쉽지 않지만, 내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자면 이렇다. '인지과학'은 인간이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 즉 세상을 인지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흥미를 느껴 관련 수업을 많이 들었고, 졸업논문도 이쪽으로 쓸 생각을 하고 있지만 참 쉽지 않다. 분명 일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렵고(철학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 끝이 명확하지 않아 의문만 남을 때가 많으며(대개 "A라는 주장과 B라는 주장이 여전히 대립하고 있으며, 연구 중에 있다"라고 마무리한다), 글로만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부족함을 느끼고('에이 설마. 진짜?') 직접 실험을 하기엔 버거움을 느끼게 된다(대학원생들의 도움을 받아 아이트래커라는 기계를 이용한 실험을 몇 번 해봤는데, 결과를 해석해내는 방법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 누가 인지과학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하면 쉽게 입을 떼지 못할 정도라 내가 이 분야를 공부하고 또 알고 있다고 말하기에도 좀 민망하다(논문. 이대로 괜찮은가...)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언제부턴가 인지과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났고, 그 영향으로 관련 서적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개중에는 전공자가 아니어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책들도 있다. 물론 일말의 관심도 없는 사람이라면 한 장을 읽는 것도 고역이겠지만(사실 관심이 있는 사람도 쉽지만은 않다), 나로서는 존재 자체가 반갑고 또 고맙다. 얼마 전에 읽은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가 그랬고, 이번에 읽은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맺기, 사람과 세상의 관계 맺기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목록부터가 "같은 것을 보고도 우리는 왜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인지하는가" 같은 것임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하고 의문을 가졌을만한 요소들인 만큼 호기심을 자극하고 채워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저자가 살면서 겪었던 경험과 의문이 그 속에 담겨 있어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고 이해하기 쉽다. 특히 저자의 아들 태오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는데, 또래의 아이들과 아기 코끼리를 보며 "태오야!"라고 말하는 아이의 모습은 귀여운 것은 물론 사람이 나와 너를 나누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의 시초로 손색이 없다. 커피 광고에 얽힌 저자의 웃픈 사랑고백이나 독한놈으로 불렸던 저자의 학창시절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한동안 논쟁거리로 떠오르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원피스의 색깔이나 젖소 클리커 등의 이야기가 재미를 더한다. EBS를 통해 많이 알려진 보이지 않는 고릴라나 3의 법칙 같은 것들은 독자들을 책에 더 가깝게 끌어당긴다. 이 모든 걸 통틀어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정말이지 능력 있는 작가가 쓴 잘 짜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거나 인지과학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또 인지과학에 대해 약간이나마 알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것들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확실히 알려주고 싶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이 책의 첫 번째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가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르게 경험하는 이유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때로, 그리고 자주 남들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내가 경험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잊어버리는데, 우리가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이해한다면 그 차이를 보다 수월하게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에 대해 안다면 최소한 분통을 터트리며 상대방과 절연을 선택하는 대신 마음을 다스리며 대화를 시도 해볼 수 있을거라는 것이 내 소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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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낮은산 키큰나무 14
김중미 지음 / 낮은산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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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아리카와 히로 작가의 <고양이 여행 리포트>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도서관에서 읽을 책을 찾다가 우연히 집어 들었던 책이었는데, 완전히 빠져버리고 말았었다. 사랑스러운 고양이 나나가 들려주는 사토루와의 마지막 여행은 빨갛다 못해 부어버린 눈과 진한 감동을 남겼고, 나는 친한 동생의 생일선물로 지체 없이 이 책을 골랐었다. 제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 먹먹함이 아직까지 느껴질 정도로 가슴 따뜻한 책이었다.

 

그때 이후로 고양이와 관련되어 있거나 제목에 고양이가 있는 책이라면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보는 것만으로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고양이 사진집부터 고양이와 집사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 코데마리 루이 작가의 책 제목처럼 고양이 모양을 한 행복으로 가득 찬 소설까지. 나중에는 고양이가 있는 책 중에 별로인 것은 없다는 이상한 편견(?)까지 생길 정도였다.

 

이번 책 <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를 읽게 된 이유 역시 고양이 때문이었다. 제목에 선명하게 들어가 있는 고양이라는 세 글자가 내 시선을 붙잡은 탓이었다. 연분홍색 표지 여기저기에 있는 자그마한 고양이 그림이나 낮은산이라는 정감 가는 출판사 이름, 그리고 저자이름에 쓰여 있는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김중미 작가의 이름을 본 것은 모두 그 다음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세세하게 살펴봤을 정도로 이 책은 매력적이었으며, <고양이 여행 리포트>이후로 또 다시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으로 등극하게 됐다.

 

이 책에는 고양이와 사람 각자의 사연과 함께하는 삶이 담겨있다. 고양이의 눈에서 사람의 눈으로, 그리고 다시 고양이의 눈으로 옮겨가며 아픔과 슬픔, 위로와 치유, 사랑과 신뢰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읽다보면 어느새 웃다가 울다가 행복해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고양이와 함께 살며 고양이의 위로를 받은 저자의 경험이 듬뿍 들어가 있는 만큼 고양이와 사람의 이야기 모두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축약되지 않으며, 따뜻한 시선으로 담겨져 있다. 책 속에 담긴 만남과 이별이 읽는 이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고양이도 사람도, 이야기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다가와 읽는 이를 매료시킨다. 성급하게 행복을 말하는 책들과는 달리 시간을 두고 한 걸음씩 나아간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을 뽑으라면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시점의 변화이다. 이 책은 한 명 또는 한 마리를 대표로 정해놓지 않고 시점이 계속해서 바뀐다. 기존의 시점들과는 완전히 다른, 예를 들어 아예 다른 마을에 사는 이들에게로 시점이 넘어갈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이 같은 사실이 초반에는 조금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적응하기만 하면 굉장히 매력적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서로 다른 각자의 입장과 이야기를 들으며 독서를 풍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고양이와 사람이 대화한다는, 판타지스러운 요소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는데 이게 거북스럽거나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물론 오히려 실제로도 가능한 일 일거라고 생각될 정도다. ‘진심을 담아 말하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안 될 것은 없다. 우리가 대화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그러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이다. 사람의 말을 듣고 이해하며, 위로하는 고양이들이 우리 주위에도 많은 것을 보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이 책에는 단순히 고양이와 사람의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저자의 말처럼 슬픔과 아픔, 그리고 행복을 나누는 방법, 기억하는 방법, 또 서로 소통하는 방법이 이 책 한권에 모두 담겨있었다. 그만큼 읽는 내내 많은 것을 느꼈고, 읽을 수 있어 행복했다고 생각했다. 자극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도 있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을 한 번 맛보게 된다면 완전히 반해버리고 말 것이라고 확신한다. 정말 좋은 책이었고,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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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 350만원 들고 떠난 141일간의 고군분투 여행기
안시내 지음 / 처음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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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세계여행을 꿈꿔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몇 년 전 부터 여행에 꽂혀버린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커다란 배낭을 등에 메고 두 다리로 걸으며 수많은 것을 경험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기에 우리는 늘 가슴 현 켠에 욕망을 품고 살아간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실재로 세계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직장을 다녀야 함으로,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기 때문에 등 온갖 현실적인 문제와 힘들 것 같아서, 무서워서, 용기가 나지 않아서 등 심리적인 문제들이 겹쳐 발목을 잡는다. 하고 싶다는 마음이 그만큼 간절하면서도 선뜻 떠나올 수 가 없는 것이다. 특히 나같이 겁이 많은 사람은 사진과 글로 남의 여행을 엿보거나 이따금 패키지를 뒤적거리는게 전부이다.

 

그렇게 직접 떠날 용기 없이 여행 에세이를 읽으며 대리만족만 하던 내게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 직전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공항에서 홀로 눈물을 흘릴 정도로 겁이 많은 사람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세상을 돌아보겠다던 스스로의 다짐을 실현하기 위해 발을 내딛었다는 것. 350만원이라는, 세계여행비로 봤을 때 그리 많지 않은 돈으로 떠나왔다는 등의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141일이라는 긴 시간동안 꿋꿋하게 자신만의 여행을 만들었다는 것. 한없이 열려있다가도 한없이 닫혀버리는, 한없이 밝다가도 한없이 어두워지는 모순적인 성격임에도 온전히 그 모든 것을 가슴에 품으며 반성하고 부끄러워하며 감사하고 행복해 했다는 것. 하나하나 꼽자면 끝이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에 나는 충격을 받았고 감동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감동적이었던 것 두 가지를 뽑자면 나는 그녀의 시선과 변화라고 하고 싶다. 사람을 향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은 나를 눈물짓게 만들었다.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소중히 보듬고 품에 안았다. 좋지 않았던 인연도, 아쉬운 인연도, 미안함과 애틋함으로 남았던 인연도 모두 책 속에 풀어내며 간직하는 모습은 내 마음까지도 울릴 정도였다. 그녀와 그녀가 만난 인연들을 나 역시 만나고 싶다고 생각 할 정도로, 그리고 그를 위해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예뻐서 페이지를 넘길 수 없을 지경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행이 계속될수록,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점점 더 단단해지는 작가의 모습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어울리는 모습에서, 그들 한 명 한 명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그녀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에서 작가가 서서히 변화해가고 있음을, 보다 꽉 차고 단단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그녀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그저 작가와 독자로 이어진 이 얇은 관계에도 내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박수와 함께 행복을 빌어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다른 여행 에세이들과는 다르게 여행지에서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그 속에서 만난 인연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본래의 목적이었던 대리만족을 위해 읽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책이었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그 어떤 책보다도 만족스러웠다. 아니 대리만족을 위해 읽었다가 오히려 가슴에 더 큰 불을 품게 되었다. 어떠한 인연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어떠한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가슴이 두근거려 참을 수 없도록 만드는 마력이 그 속에 있었다. 정말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충격이자 감동이었고, 행복이자 즐거움이었던 멋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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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 정재승의 시네마 사이언스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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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들어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보고 있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62일 첫 방을 시작으로 이제 3회째 방송된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 그것이다. 유시민 작가와 김영하 작가의 출연 소식에 어머, 이건 꼭 봐야해!”를 외치며 TV 앞에 앉았다가 그만 푹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가수 유희열, 작가 유시민, 작가 김영하, 과학자 정재승, 미식칼럼니스트 황교익, 총 다섯 사람이 매 회 국내의 한 지역으로 함께 떠나면서 끊임없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게임이나 개그 같은 예능적인 요소 없이 오로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 호불호가 갈릴 가능성이 크지만, 지식과 경험, 호기심이 풍부한 지적인 어른들의 대화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고 감탄이 나온다.

 

여기서 더 말하면 너무 길어지니 각설하고, 앞서 말했듯이 내가 <알쓸신잡>을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유시민 작가와 김영하 작가의 출연이었다. 지식인으로 알려진 두 작가가 만나면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궁금했었다. 직접 본 결과 그 기대는 충족을 넘어 만족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 이유가 오직 이 두 작가들 때문은 아니었다.

 

회가 진행될수록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정재승 과학자. 낯익은 이름이라는 생각에 검색해보니 인기 도서였던 <과학콘서트><크로스>의 저자였다. 매회 흥미롭고 유쾌한 이야기로 시청자들은 물론 다른 출연자들까지 즐겁게 만드는 모습에 그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미 많은 책을 출판한 사람이라 책을 고르는데 시간이 필요했지만, 제목부터 흥미를 끄는 책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를 선택할 수 있었다.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는 제목 그대로 영화와 영화에 숨겨진 인간과 과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영화 <메멘토>를 통해 기억상실의 유형과 이유에 대해 말하고, 영화 <인셉션>을 통해 꿈 조작의 가능성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톰과 제리>, <미키마우스> 속에서도 인간과 과학을 찾아 말한다는 것이다.

 

매 주제마다 언급되는 영화와 과학지식은 사람의 지적욕구를 자극하고 충족시킨다. 새롭게 알게 되거나 알고 있던 영화를 만나는 기쁨, 또 새롭게 알게 되거나 알고 있던 지식을 만나는 기쁨을 이 책은 끊임없이 선물해준다. ‘이 영화가 그랬어?’라는 생각, ‘이 영화가 그런 영화야?’라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영화를 찾아보게 하고, ‘그럼 이건 어떻지?’하는 생각에 호기심을 갖고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게 하는 힘이 이 책에 있다.

 

물론 과학서적인만큼 그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지 않으면 읽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흥미를 갖고 있는 나마저도 유전자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버벅거리고 포기하고 버벅거리기를 반복했을 정도.(솔직해지자면, 끝내 포기하고 넘어간 부분도 있다.) 아무리 저자가 독자들을 생각해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쓴 책이라도 전문지식을 이해하는 것에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책에 대한 총 평은, 만족. 나로서는 오랜만에 읽는 과학 서적, 그것도 영화와 관련된 것이라 굉장히 재미있었다. 친구와 대화중에 이 책에서 본 것을 설명하고 책을 추천했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과학에 흥미를 가지고 있거나 흥미를 가지고 있지만 쉽게 다가가기 힘든 사람들,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들 모두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끝으로 <알쓸신잡>의 시청자에게 하는 말인데, <알쓸신잡>의 정재승 과학자만 생각하고 이 책을 본다면 그의 또 다른 매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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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정한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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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책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 자신과 같은 삶에서 위안을 얻기도 하고, 자신과 다른 삶에서 목표를 얻기도 한다. 즉 책을 읽음으로서 타인의 삶을 엿보고 그 안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다. 때론 그게 찾는게 아니라 만들어내는 거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인위적일 때가 있지만, 그것도 하나의 희망이다. 책에서 찾은 희망이 그 사람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면 그뿐인 것이다.

 

하지만 가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책이 있다. 그런 책은 흥미거리조차 되지 못하고 스쳐지나가기도 하고,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공허함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허나 이건 그나마 양호한 경우다. 어떤 책은 세드엔딩 속에서도 하나의 희망을 발견하는 사람들을 절대로 헤어나올 수 없는 어둠의 구렁텅이로 빠뜨려 '패닉'상태로 만들기도 한다. 또 심할 경우 타인의 삶을 엿본 대가로 자신의 행복마저 빼앗기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희망을 부정하고 산산이 부서뜨리는 듯한 책도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처음 <애니>를 읽었을 때, 나는 이 책 역시 그런 부류라고 생각했다. 광기에 휩싸여 비참하게 죽어버린 어머니와 그로인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진 여자, 트라우마로 인해 운전을 할 수 없게 된 한물간 여배우, 불행을 예감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달려나가는 예비신부... 그 외에도 수많은 얼룩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에 등장한다. 게다가 이야기의 끝은 어둠으로 막을 내린다. 그나마 희뿌연 불빛이 어른거리는 경우도 있지만 딱 그정도까지다. 희망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보이지 않는다.

 

처음엔 의아했고 그 다음엔 공허했으며 끝내는 포기했다. 이야기는 이야기로, 를 되뇌이며 끝까지 읽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둡고 축축한 터널을 힘겹게 빠져나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평가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는 것에 실망하고 책을 덮으려는 순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어봤던 해설이 아니었다면 내게 이 책은 최악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소연씨의 해설은 이 책에 또 다른 형태의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애도와 절망, 심연을 통해 희망을 바라보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방식이다. 자기 속에 있는 결핌과 공허를 똑바로 마주봄으로서 얻을 수 있는 희망, 온몸으로 아픔을 겪어내고 나서 만날 수 있는 희망.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과정을 모두 보여주는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은 바닥을 치는 과정만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그 때문에 희망을 보기가 어렵다. 바닥을 치는 것 역시 희망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려면 그만큼 깊고 섬세한 눈이 필요한 것이다.

 

소설과 해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다, 혹은 해설이 있어 소설이 완벽해졌다, 라고 말한다면 건방진걸지도 모르겠다. 부족한 내가 해설의 도움을 받아 좀 더 성숙해졌다는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해설 덕분에 나는 이 소설을 다시 보게 됐고, 다시 제대로 음미할 수 있었다. 또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책들을 떠올리며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았기 때문에 여러 형태의 희망을 놓쳤던걸지도 모른다는 반성도 했다. 어쩌면 사람이 글을 쓰고, 읽는 행위를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희망'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또 다른 형태의 희망을 보고 싶다면, 좀 더 깊은 생각과 눈을 가지고 싶다면, 두 사람이 함께여서 완벽한 한 권의 책을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사람들과 함께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희망을 부정하는 책의 존재 유무에 대해, 있다면 당신이 봤던 희망을 부정하는 책에 대해, 반대로 당신이 봤던 희망이 있는 책에 대해, 또 다른 형태의 희망에 대해. 이것 말고도 하고 싶은 말이 잔뜩이라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주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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