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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시적 스필버그 광펜이었다.
이젠 완전히 소멸되어 버린 청계천가의 한극장에서 죠스를 1회부터 마지막회까지 본 적이 있으며
역시 상전벽해 되어버린 허리우드 극장에서 클로즈엔카운트오브더서드카인드를 보러가서 극장이 텅 빈것을 보고 국가와 민족에 대해 격노하였다.
그런던 내가 스필버그에 등을 돌린 사태가 벌어졌으니...
중앙극장서 쥬라기공원을 본 사건이다.
이게 정말 스필버그가 만들었다니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혹 중앙극장 관계자가 한회라도 더 돌려서 돈 벌어볼 요량으로 필름을 끊어 먹은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은 훗날 미국 직수입판 LD를 보기까지 계속 되었다.
이건 영화도 아니었다. 크라이튼의 겁나 잼나는 원작 이상을 기대 했건만 아무것도 없었다. 공룡CG 빼면 절대 공허다.
이때부터 스필버그와 담 쌓게 되고 이후 라이언꼬부치기 까지 적대관계가 지속되었다 (짝미움?)

시간이 좀 지난 뒤 이성을 찾게 되자 나는 이게 영화도 아니었던 이유를 탐색하고 문제점을 찾아내었다.
전적으로 편집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었다.
스필버거는 아직도 그렇지만 그 전매특허 가족개념을 여기다 들이밀어 넣었다. 그게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이 영화는 by공룡 for공룡 of공룡인 것이다.
나는 LD원판을 텍스트로 하여 즉시 재편집에 착수하였다.
관객층은 6세이상 12세 이하, 상영시간 45분이내, 주조연 모두 공룡, 줄거리는 훈늉한 공룡이 사악한 인간을 섬밖으로 물리치고 평화롭게 산다.
60분짜리 비됴테잎에 담긴 이 더스컷판의 제목은 쥬라기파크++ 

이 더스컷 쥬라기파크++은 경이적인 흥행을 기록하게 되는데,,,
무려 카피본 60여개가 나갔다.
그리고 얘들이 하루종일 이 비됴만 보고 있다는 무지무지한 사회문제를 야기시켰다.

아...이제 좀 솔직해져 보련다.
난...스필버그를 좋아한게 아니었다.
난...스필버그의 이 영화의 이 장면을 좋아한것이다.
난...스필버그의 이 영화의 이 장면에서 천사를 발견하고 넋이 나간 것이다.
난...스필버그가 또 다른 천사를 찾아 줄것을 기대하고 계속 그의 영화를 본 것이다.
그러나...스필버그의 영화에서 더 이상 천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빠이빠이 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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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웍 의사소통에 관한 여러 심리학적 연구에 의하면 인터넷상에서 사람들은 직접 대면상태에서보다 월등히 공격적으로 된다고 한다.
이런 행동에 대한 내가 알고 있는 정도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1.
문자 표현 한계성.

그야말로 아 다르고 어 다른 상황인 것이다. 대면 상황에서와 같은 세세한 감정을 절대 전달 할 수가 없다.
이 문제는 인터넷 초창기부터 제시되었던 바이나 아직까지 기술적 해결책이라고는 고작 이모티콘 정도 일 뿐이다.
얼굴에는 미소를 띄우고 입으로는 비난하는, 이런식의 애증이 담길 여지가 없는 것이다.
아주 미묘한 차이로 칭찬이 되었다가 빈정거림이 되었다가 모욕적인 언사가 되었다가...기분에 따라 해석될 여지가 아주 많으며 실제로도 오해를 양산한다.
인터넷 토론 참가자들 모두가 세익스피어에 필적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2.
상대의 주장을 편집한다.

균형잡힌 우호적인 문장에서 아주 일부만을 매우 손쉽게 발췌 편집하여 마치 전체인양 고의적으로(혹은 이해력이 떨어진 관계로 그렇다고 믿고서) 원작자의 의도를 교묘하게 왜곡시킨다.
대표적인 의도된 취재의 전형으로서 많은 인터뷰이를 분개시키는 전략이며
인터넷에서도 상대의 이성을 상실케 하는 방법으로서는 믿을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전략이다.
흔히 말꼬리 잡기 정도로 이해 할수도 있으나 토론에서의 제3자들에게 주는 영향은 더더욱 교묘하며 효과적이다.

3.
익명성 그리고 물리적 비접촉.

군사용어로는 은폐와 엄폐에 해당된다. 상대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날 물리적으로 공격할 수도 없다. 이 두가지를 다 갖춘다는 것은 군사적으로 완벽한 공격장소임을 의미한다.
사람은 자신의 안전이 절대 보장된다고 생각할때 (이건 그야말로 생각 일뿐이다) 도덕적으로 풀려지는 경향이 있다.
사람은 자신의 앞에서 벌어지는 잔혹행위에 대해서는 움츠리게 되나 원거리에 이르러 피해자의 고통을 대면 하지 않는 경우에는 이런 감정을 갖기 힘들다.
칼로서 공격하는 것보다 총으로 살해하는게 심적 부담이 덜하고 수천미터 상공에서 폭격하면 거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4.
인지 부조화 이론

복잡하지만 확 요약하면 자신의 신념과 행동이 불일치 할때 매우 기분 나빠진다는 이론이다.
누군가 날 공격했다면 별 일 없는 뺨을 내 놓기 보다는 주먹이 나갈것이다.
문제는 반론은 항상 과잉으로 치닫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평소 젠틀한 사람이라도 가끔은 화를 낼 수도 있으나 그게 정도에 지나쳤다면 언짢아진다.
실수로 과도한 공격을 하였다면 사과를 하면 된다. 상대도 이를 선선히 받아 들일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양립 불가능한 생각들이 심리적 대립을 일으킬때, 적절한 조건하에서 자신의 믿음을 맞추어 행동을 바꾸기 보다는 행동에 따라 믿음을 조정하는 동인을 형성한다."

그렇다. 이미 벌어진 일을 주워담기보다는 자기 합리화하는게 훨씬 용이하다. 즉 자신을 공격한 자는 진짜진짜 나쁜넘이 되는것이며 내가 한 이 정도의 반격은 너무나 합당한 것이 되어 맘이 편해지는 것이다.

자신이 맹비난한자의 실체는 없는 것이다.
실제로 만나서 차라도 같이 해보면 그지 없이 선량하고 지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더 클지 모른다.

"더욱 위험한 것은 상대방이 전혀 보복당할 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이런식의 인지적 왜곡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토론이란게 한가지 절대적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싸움과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 조건이란건 토론을 언제건 중단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절대적 중재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많은 토론이 벌어지고 위험스런 순간을 상습적으로 오락가락 하면서도 절대 치고박고 식의 쌈이 되지 않았던 경우를 생각해보면 거기에는 항상 지적으로 절대 우월한 교수나 절대 권력의 상급자들이 같이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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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8-20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답니다.
인터넷으로 설전을 펼치며 온갖 상욕과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상대들을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으로 집결시키는 생각이요..치고받고 싸울까요 아님 꿀먹은 벙어리들이
될 것인지..어찌되었던 재미있는 상황이 발생할 듯 싶습니다만..^^

hanalei 2007-08-20 21:00   좋아요 0 | URL
아마 대리인을 보내지 않을까요? 덩치좋은?

마늘빵 2007-08-20 21:21   좋아요 0 | URL
메피님 좋은 생각입니다. 예전에 신해철이 했던 말도 생각나는군요. 최근엔 진중권도 그랬었죠. 인터넷에서 왈왈 대는 애들 밖에서 만나면 말도 못한다고. 얼굴 맞대지 않고는 이럴 수 밖에 없나 라는 생각도 들고. 인터넷 상으로는 토론이란게 불가능한가봅니다.

땡땡 2007-08-20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표절. 궁시렁궁시렁. 중얼중얼중얼...

hanalei 2007-08-20 20:58   좋아요 0 | URL
호호호 내용도 표절인데~~
못 찾았나 바~~

땡땡 2007-08-20 22:46   좋아요 0 | URL
빠직.

비로그인 2007-08-20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네요 :)
근데 며칠 만에 오셨네?

hanalei 2007-08-20 21:01   좋아요 0 | URL
저 혼자 있어서 모하나요?

해적오리 2007-08-20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에 완전히 혹해서 왔는데...요즘 제가 절절히 느끼는 거라서...^^
페퍼 내용은 제가 생각한 내용은 아니네요. 그래도 잘 읽고 갑니다. ^^

hanalei 2007-08-20 23:25   좋아요 0 | URL
낚시에다가 표절이랍니다. ㅋㅋㅋ

땡땡 2007-08-20 23:47   좋아요 0 | URL
아니 스님!!!
ㅋㅋㅋ 같은 이모티콘도 쓰세요? *.*
 


'사랑' 이란 말의 용례를 보면 분명 그 크기를 가지고 있다.
사랑을 키워가는, 사랑을 나누면, 너무나 사랑하여, 커져가는 사랑, 큰사랑 작은사랑...

그런데 그를 사랑한다고 할때의 사랑은 어떤 크기일까?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만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쬐끔 사랑하지만, 열정적으로 사랑, 한 목숨 다 바쳐 사랑, 사랑하기는 하는거야...

사랑한다 함으로서 이미 선은 넘어 간 것이다.
크기와 무관하게 사랑은 사랑인 것이다.
무지무지 사랑한다의 반대말은 조금만 사랑한다 가 아니고 사랑하지 않는다 이다.
사랑은 디지틀적이다
사랑하거나 혹은 말거나

그에게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물어 볼 수 없다
그에게 얼마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나 사실은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종종 영어식 좋아한다의 비교급으로서 이해 하기도 한다.
겁나 좋아한다, 욜나 좋아한다, 짱 좋다, 조아가이빠이데스다(귀국한 애들이 전부 이 말을 쓴다. 대체 미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사랑은 형이상학적 추상체다
절대 정의되지 않으며 가르칠 수 없으며 배워서 아는것이 아니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과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같은 것이라 절대 단정 할 수 없다
그리고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과  같아야만 하는가?
내가 그를 사랑하는 방식으로 그도 나를 사랑함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리고 반드시 있는 사랑에 대한 인식차가 과연 사랑의 계량적 차이라 할 수 있는가?

그가 날 사랑한다고 말한다고 해서,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사랑의 유무를 의미하는가?
그가 사랑을 증명한다고 해서 그게 사랑의 존재성 입증인가?
그렇지 않음을 다들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날 사랑한다면 머머 해야 된다" 식의 클래식 포맷의 인질극을 벌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도 다들 알고 있다.
알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되더라도 나는 그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그는 나를 사랑한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서로의 행동에서 서로의 인식으로 전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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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8-09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한다는 말은, 조심스럽습니다.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땡땡 2007-08-10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빵긋.

2007-08-10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08-10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스님
오늘 뭐하시길래 이리 잠잠하고 포스팅이 없으신가요? :)
 


국내 대기업 30곳중 12곳 남녀 비율 정해놓고 선발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08080068&top20=1


난 대학6년간 장학금면제 대상이었다. 돈이 주체 못하게 많아 그렇게 된 것이 아님은 오죽하면 몇푼돈에 장교지원을 하였겠는가 에서 확실하다.
1/10 도 안되는 여학생들이 장학금은 모두 쓸어 갔다.
머 어떡하나? 성적이 월등히들 좋은데? 게다가 예쁘기까지 한데?
술이나 처먹고 헛소리질이나 하는 지지리도 못생긴 남자애들이 받는 것 보다 훨 낫지.
만약 장학금을 남녀비율을 정해 놓고 주었으면 어떨까?
모르긴 해도 주제에 마초끼 이빠이데스인 남자애들은 단호히 거부했을 것이다.


"여성 신입사원이 증가하자 일선 부서가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며 남성 사원을 보내 달라고 요구하는 사례가 늘었기 때문"

초등학교 여교사가 많아지자 숙직할 사람이 없다 며 남교사 쿼타를 주장했던 과거사를 들추게 하는 장면이다.
저 일선 부서의 업무가 남자만이 할 수 있는건 아니라는 건 명백하다. 그랬다면 애시당초 여자를 모집하지도 않았을테니까.
그런데 여성 신입사원을 보내니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는 주장은 무엇일까?
인사부서에서는 분명 적정 업무능력을 가졌다고 평가하고 보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장의 불만은 인사부서에서 파악되지 않았다고 보기 보다는 인정할 수 없는 것일 것이다.
교사를 야간 경비 세우는 걸 현장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라도 교육부에서는 받아 들일수 없는 것과 매한가지로.

부조리는 일선 부서에 있는 것이지 인사부나 여성 신입사원에 있는 것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된 조직이라면 남성 신입사원을 요구할게 아니라 여성 신입사원을 배치하였더니 업무효율이 떨어지는 현장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이를 조직강화의 호기로 삼아야 할것이다.


"전통적으로 여성 지원자가 적은 건설, 중공업, 정유, 증권, 전자 등 8개 업종은 남성 쿼터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울 업종도 여기에 끼었다. 역시 우리 조직이 탄탄한것은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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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 2007-08-10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설, 중공업, 정유, 증권, 전자 업종에는 왜 남성 쿼터가 없을까요? (여성 지원자가 적다니까 당연히) 여전히 대다수 사원들이 남성이기 때문 아닐까요? 그럼 왜 그쪽은 여성 지원자가 적을까요? 건설, 중공업...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여성들이 일하기엔 너무나 남성중심적인 조직이기 때문 아닐까요? 그렇다면 (초등학교 교사에 남성 할당제를 시행하려고 하는 것처럼) 오히려 남성 쿼터제 운운하는 곳이 '그나마' 덜 남성중심적 조직인 게 아닐까요?

결론: "역시 우리 조직이 탄탄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는 성급한 결론이 아닐까요?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비가 많이 쏟아진다. 일시적이지만 쏟아 붓는 급이다.
어제도 쓰레빠를 발가락에 덜렁 덜렁 걸고 운전하다 휘딱 벗겨진 쓰레빠짝이 페달사이에 끼는 통에 브레이크를 놓칠뻔 한적이 있어 조심하라넌 계시로 이해하고 속도를 대폭 줄였다
(다른 차도 다 기어가니 머 어쩔 수 없었던 면도 있지만서도)

나는 비를 좋아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에어컨의 션한 바람에 습기 제거 된 포송포송한 시트에 앉아서 사방 확 터인 유리창을 통해 비를 볼때 만이다.
한때는 비 오면 우산쓰고 나가 (혹은 우비 걸치고 나가)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걷는 것도 좋아했지만 이젠 귀찮다.
폼은 나 보이지만 어째든 간에 젖는게 싫다.
이럴때는 가급적 많은 비가 바람직하다.
재해급 상황도 내가 안전하다면 좋은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나는 낙숫물소리를 무척 좋아한다.
어릴때 양철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물 소리를 기억하며 다시 한번 그 소리를 들으며 잠들고 싶었으나 거진 20여년동안 고층빌딩에서만 산지라 땅까지는 너무나 멀어 빗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얇은 차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똑 같은 철판이면서도 그게 그 소리가 아니다.
그러나 그 소리가 아무리 그립더라도 여름엔 너무나 더워 바닥에 엎드려 지내야 했고 겨울엔 또 너무나 추웠던 그 양철지붕 밑의 방까지 가져오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다.
과거도 내게 안전한 현재가 있기에 그리울 뿐이다.


수년전 오래동안 꿈꾸어 오던 짓을 했다.
며칠간의 집중 폭우로 한강이 위험수위에 차 올라왔던 그해 여름날 출입금지 되어 아무도 없는 한강공원을 팬티에 러닝화만 신고서 뛰었다.
그러나  몇킬로 못가서 현실을 깨달았다.
물에 젖은 신발은 갈수록 무거워져 발을 내 디딜때마다 철퍽거리며 발목을 비긋나게 하다가 결국 접질렀으며
물먹어 피부에 달라 붙은 쿨러너 팬티는 (땀인 경우는 바깥으로 방출 된다지만 이 경우는 그게 아니다) 사타구니를 휘감고 점점 강하게 조여 들어 와  도저히 못 견딜 통증을 일으켰다.
눈으로 계속 흘러들어 오는 빗물과 강한 역풍은 또 어떡하고.
결국 소파에 기대 커피를 마시며 빗속의 누드를 감상함이 제격인가 한다.

(빗속 누드는 못 구했다. 대신 물 맞는 누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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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7-08-07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작과 끝이 이케 다를수가...
전 언젠가 비가 아주 쏟아지는 날 나지막한 산길을 맨발로 지긋이 밞으며 걷고 싶어요. 달리기에는 제 무릎이 감당을 못하는 관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