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비가 많이 쏟아진다. 일시적이지만 쏟아 붓는 급이다.
어제도 쓰레빠를 발가락에 덜렁 덜렁 걸고 운전하다 휘딱 벗겨진 쓰레빠짝이 페달사이에 끼는 통에 브레이크를 놓칠뻔 한적이 있어 조심하라넌 계시로 이해하고 속도를 대폭 줄였다
(다른 차도 다 기어가니 머 어쩔 수 없었던 면도 있지만서도)
나는 비를 좋아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에어컨의 션한 바람에 습기 제거 된 포송포송한 시트에 앉아서 사방 확 터인 유리창을 통해 비를 볼때 만이다.
한때는 비 오면 우산쓰고 나가 (혹은 우비 걸치고 나가)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걷는 것도 좋아했지만 이젠 귀찮다.
폼은 나 보이지만 어째든 간에 젖는게 싫다.
이럴때는 가급적 많은 비가 바람직하다.
재해급 상황도 내가 안전하다면 좋은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나는 낙숫물소리를 무척 좋아한다.
어릴때 양철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물 소리를 기억하며 다시 한번 그 소리를 들으며 잠들고 싶었으나 거진 20여년동안 고층빌딩에서만 산지라 땅까지는 너무나 멀어 빗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얇은 차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똑 같은 철판이면서도 그게 그 소리가 아니다.
그러나 그 소리가 아무리 그립더라도 여름엔 너무나 더워 바닥에 엎드려 지내야 했고 겨울엔 또 너무나 추웠던 그 양철지붕 밑의 방까지 가져오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다.
과거도 내게 안전한 현재가 있기에 그리울 뿐이다.
수년전 오래동안 꿈꾸어 오던 짓을 했다.
며칠간의 집중 폭우로 한강이 위험수위에 차 올라왔던 그해 여름날 출입금지 되어 아무도 없는 한강공원을 팬티에 러닝화만 신고서 뛰었다.
그러나 몇킬로 못가서 현실을 깨달았다.
물에 젖은 신발은 갈수록 무거워져 발을 내 디딜때마다 철퍽거리며 발목을 비긋나게 하다가 결국 접질렀으며
물먹어 피부에 달라 붙은 쿨러너 팬티는 (땀인 경우는 바깥으로 방출 된다지만 이 경우는 그게 아니다) 사타구니를 휘감고 점점 강하게 조여 들어 와 도저히 못 견딜 통증을 일으켰다.
눈으로 계속 흘러들어 오는 빗물과 강한 역풍은 또 어떡하고.
결국 소파에 기대 커피를 마시며 빗속의 누드를 감상함이 제격인가 한다.
(빗속 누드는 못 구했다. 대신 물 맞는 누드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