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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에 민감하다" 는 "청각이 뛰어나다" 와 같은 말이 아니다.
"소음에 민감하다" 는 "소리로서 스트레스를 받기 쉽다" 라는 말이다.
이 스트레스는 고막에 충격을 주어 손상시킨다거나, 장기간 지속적인 자극으로 고막이 두터워져 난청이 된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다.

위층 공룡이 춤을 춘다고 해서 소음계를 들이 대 보았자 바늘은 까딱도 않을 것이다
머리위 에어버스의 90db 굉음보다 조용한 사무실에 켜 놓은 더 조용한 MP3에서 훨씬 더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며
지나가는 온갖 차량의 교통소음과 엔진소리는 못 느끼지만 그에 비한다면 별 것아닌 버스 라디오 소리에 열 받는다.

내가 민감해지는 듣기 싫은 소리는 무엇인가?
어쩔수 없는 게 아닌 부주의, 몰상식, 예절이 없는, 공중도덕이 무시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등등의 행동결과로서 만들어 진 소리이다.
이런 경우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이라도 졸지에 소음으로 바뀐다.

90db급 지하철, 항공기, 시내교통, 공사장 심지어 오케스트라까지, 물론 듣고 싶지는 않지만, 그다지 스트레스는 없다.
그 소음 제공자들이 소음을 최대한 줄이기 위하여 많은 돈과 노력을 들이며 또한 생계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뒷꿈치를 바닥에 꽝꽝 내리치면서 걷는다거나, 새벽3시에 장시간 샤워를 한다거나, 의자나 테이블을 질질 끌고 다닌다거나, 귀가 나쁘다고 티비 볼륨을 왕창 올려 사방에 중계한다거나, 문이 깨져라 닫는다거나, 남들 일하는데 혼자 음악을 켜 놓는다거나, 핸폰에 대고 온갖 사생활을 고함친다거나 하는 행위는 전혀 생계와 관계  없지 않는가

결국 소음이라는건 공중도덕의 문제로 종착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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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이 어떻게 걷는지야 알 바 없다.
어느 누가 본적이 있겠는가.
그러나 윗층에 공룡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본능적으로 알 수가 있다.
아마 공룡시대 말기와 포유류시대 초기가 겹쳐진, 머나 먼 옛날의 유전자에 각인된 기억일게다.

주파수가 낮은 소리(즉 저음)는 힘이 실려 있다.
건물 구조물을 타고 멀리 멀리 나아간다.
주파수가 높은 소리(즉 고음)는 힘이 약하다.
벽체 하나도 통과하지 못해 여기까지 들리지 않는다.
그런 연유로 온갖 소음의 스펙트럼속에서 건물기둥을 타고 울려오는 공룡발자국 소리를 명료하게 들을 수 있다.

위층에서 공룡떼가 잔치를 벌이던 날
용감하게도 그 집 도어벨을 울렸다.
수백만년을 살아남고, 인간떼가 지구를 완전히 뒤덮은 이 시기에 그 정체를 전혀 들어내지 않은, 초절정 궁극의 위장술을
목격하였다.
키 160에 50킬로밖에 안되어 보이는 젊은 여자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고 있다.

나는 위층 공룡들 각각의 발자국 소리를 분간해 낼 수 있으며
어른공룡, 새끼공룡 모두의 모든 동선을 파악하고 있고
식사시간, 세척시간, 청소시간, 뜀뛰기 시간, 낮잠시간.
심지어 교미시간까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 자신도 위장된 공룡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룡이 인간으로 위장하고 있는가?
아님 인간을 공룡으로 만들고 있는가?

내가 진정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윗집 침대가 심히 덜컹거린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정도 프라이버시조차 지켜내지 못하는게 과연 제대로 지은 집이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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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08-01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층간 소음이 끝내주네요. 그 정도라면 보상받아야 할 수준 아닌가요?

paviana 2008-08-01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드디어 공룡이실지도 모른다고 밝히시는건가요?

진주 2008-08-06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웃과 살가운 왕래가 없어서 잘 몰랐는데
우리가 사는 날림공사 이 아파트도 층간소음 때문에 말이 많았나봐요.
어느 날 층간소음이 화두가 된 자리에서 제가 아무 생각없이,

"우리윗집은 마늘을 자주 찧어요."

했더니, 여편네들이 죄다 배꼽을 잡고 쓰러지더라구요?
그 집은 진짜로 김치 담느라 마늘 찧었을 뿐인데...


 

1.
중앙일보
중앙일보에 대한 내 선입견은 인정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거니님의 존안이 자꾸 오바랩되는 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으며
중앙일보 자신도 이 문제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을 하고 행동으로 보여 줄 기미도 그닥 보이지 않는바
나의 최초 견해를 바꿀 생각은 없다.
중앙일보는 어제나 오늘이나 여전히 상식적 의미의 신문이 아니다.

2.
동아일보
한번 사랑은 영원하다. 식의 내 감성구조로서는 동아일보를 미워 할 수가 없다.
75년의 광고사건 하나로 동아일보는 이미 자리매김이 되어 버렸고 작금의 시황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안타깝다고 하고 넘어 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1975년 4월자(이젠 어렴풋해져 버렸다) 동아일보 1면에 아버지는 내 명의로 2단 백지광고를 내셨다.
당시 지극히 기울어진 집안사정으로 볼때 박정희 정권에 대한 증오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사건인바
훗날 유품으로 남겨진 이 스크랩을 부주의하게 분실한뒤 오래동안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었다.

3.    
조선일보
오랫동안 균형된 중도를 매우 정교하게 연기해 왔으나 근래들어 본색을 알아보는 사람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하여간 재미있다는 건 사실이다.

최근에 조선일보 구독을 끊어 버린건 내가 이제 와서 조선의 실체를 알아차려서 한건 물론 아니다.
난 어떤 신문이건간에 정치적 중립 내지는 공정성을 유지 할 수 있다고는 전혀 믿지 않으며 또 꼭 그래야만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조선일보를 쭉 보아온건 내가 주로 보는 경향,한겨래,프레시안,오마이 등과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변에선 나의 조선일보 절독을 작금의 반2MB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이해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 이유는 조선측의 절독 사유를 묻는 데에 대한 나의 짧은 답변과 완전히 같다
"신문이 너무 뚜꺼워요"

나는 오프라인 신문의 불필요함을 말했던 거다.
사실 내가 가장 바라는 건 오마이 + 프레시안 의 형태일 것이다.
굳이 풀자면,
그대로의 사실전달(이게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 전문가의 심층적 분석(좀 웃긴다는건 나도 안다) + 독자의 의견형성(이제 여기에 많은 기대를 건다) 정도 일까나.

하여간 조선일보가 자랑스레 내놓는 검증된 판매부수가 그 신문의 위력이던 시대는 이제 아주 가버렸다는 건 좀 알아 주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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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츠가 은퇴한다니까 (근데 거니회장이 삼성을 떠난다는 말과 머 다를게 있냐는 생각이다)
그 분의 여러 업적중 하나를 기념하여 보자.

1.
액티브 엑스는 엠에쉬만의 훈늉한 인터넷 기술이다.
그렇다 라고 하시는 분은 2MB는 세종대왕과 견줄만한 성군이다 라는 질문에도 그렇다 하셔야 한다.

액티브 엑스는 상도의가 싹 무시된 아주 파렴치한 영업행위이다.
액티브 엑스는 인터넷 프로그램이 아니라 윈도 프로그램이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인터넷 정신이란게 그 어떤 권력에도 예속되지 않는것이란걸 생각한다면
인터넷을 엠에쉬가 독점장사하도록 내벼둬야 되겠는가?
 
하여튼 액티브 엑스를 돌리는 사이트는 엠에쉬 윈도에서만 작동된다.
또 한가지, 액티브 엑스를 사용하는 곳은 인터넷 기술 수준이 형편없다는 것도 알아두어야 한다.
업자들 사이에선 액티브 엑스를 사용하여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자들을 '프로그래머' 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코더' 라고 한다. 또한 그 행위를 '프로그래밍' 이라 하지 않고 '코딩'이라 한다.
(코더가 머냐고? 그냥 노가다 라고 이해하시면 된다)


2.
액티브 엑스는 윈도 코드라 바로 윈도를 작동시켜 버린다.
이 말은 컴터의 통제권이 이 코드로 통째 넘어간다는 뜻이다.
이게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르실 것이다.

어떤 어떤 사이트에 접속했더니 예쁜 뇨자 사진이 나왔다.
더 보실려면 액티브 엑스를 설치하셔요.
네네.  설치완료. 상황종료. 이로서 이 컴터는 지구 반대편일지 알 수 없는 곳의 인간에게 접수된 것이다.

액티브 엑스 기술로 (이것도 기술인지 모르겠다만) 아주 손쉽게 아주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만들어 아주 잼나게 퍼트릴 수 있다.
심각한 보안 헛점의 출처가 어이 없게도 거의 여기로 모여진다는 사실.
그러니까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것이 열심히 웹서핑했다는 죄목도 아니고 보안페취를 게을리 했다는 죄목도 아닌
원천적인 윈도제품의 하자 때문이라는 걸 확고히 이해하여야 한다.
바이러스를 만든 인간을 탓하기에 앞서 (물론 쥐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이러스가 살기좋은 서식환경을 제공한
엠에쉬에 손해배상 청구를 하여야 한다!


3.
독점도 좋고 돈도 좋지만 이로 인해 끝없이 야기되는 문제들에 시달리다 못한 엠에쉬는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뷔스타 부터는 액티브 엑스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엠에쉬를 비난하는 무뇌성 무식함의 극치를 보이다니.
엑티브 엑스를 더 이상 지원하지 않는다고 항의 할 것이 아니라 그 동안 그들이 벌인 농간에 맞추어
돈 갖다 바치고 열심히 놀아난 것에 대한 심심한 반성 및 자아비판에 매진했어야 그나마 약간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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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9 0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처음 참가한 시위는 이제 전설이 되어버린 80년 5월의 서울역 광장이다.
내가 거기서 어떠한 역을 하였는지는 전혀 언급할 거리가 아니다.
내가 거기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가 절대 중요한 것이다.

열살차가 나는 사촌은 날 데리고 나갔다.
사촌이 들려준 널판지 피켓하나를 어깨에 걸치고 사람들 무리속을 부지런히 사촌뒤를 졸졸 따라 다녔다.
사촌은 낡은 허름한 빌딩사이 골목을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더니 나즈막한 옥상에 날 올려 놓고는 데릴러 올때까지
거기 가만 있으라고 하고는 사라졌다.

장관이었다.
보이는 끝까지, 어딜 보아도, 시청쪽이나 용산쪽이나, 사람들로 매워져 있었다. (10만이라고 하였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단 한가지 이유로 거기 나와 있다는 사실에 극도로 흥분되어 온몸에 소름이 돋은 상태에서
얼마나 오래동안 꼼짝 않고 그대로 서 있었는지 모른다.

사촌은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혼자 집으로 왔다.
(그날 본 광경으로 인해 머리가 꽉 차 버려 사촌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그냥 와 버린거다)
사촌이 내 걱정으로 인해  집에까지 쫒아 오지만 않았다면 아무도 모른체 넘어 갔을 일이었지만 
모두 다 알게 되었고 아버지는 매우 화가 나신 모양이었다.
 
아버지와 사촌은 장시간 논쟁을 벌였고 그 대화의 대부분을 놓쳐 버리긴 했지만 이미 세상 떠난 분들이라 내가 유일한
증인일 것이다.   
당연히 세부를 그대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대략 다음의 취지로 머리에 남아있다.

1.  어린아이를 왜 시위현장에 데리고 갔느냐 에 대한 사촌의 답변

  아주 교육적인 행동으로서 자기는 동생이 충분히 이해 할만한 자질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정치적 발언이다)
  밥이 쌀나무에서 나온다고 할까 봐  애들을 농촌에 견학시키는 판인데 밥만큼 중요한 자유 민주주의란게
  어디서 어떻게 하여 나오는 지를 당연히 보여 주어야만 한다.
  (이 말은 최소한 나에게는 절대 맞는 말이다. 난 아주 짧은 시간에 너무나 똑똑히 배웠다)

2.  군사독재는 끝났는데 아직도 권리와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투쟁밖에 없느냐 에 대한 아버지의 답변

 자유는 권력의 분점이다. 자유는 권력과 동질이며 한 이면일 뿐이다.
 권력자가 권력의 독점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며 그것이 권력자의 자질이기도 하다.
 그러니 권력자가 알아서 자유를 나누어 주기를 기대한다면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다.
 박정희나 전두환이 그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담보했던 바와 같이 (실패한 구데타의 괴수는 사형이다)
 그들에게서 권력을 도로 뺏고자 한다면 당연히 그만한 희생을 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3. 시위에 가담하지 않는 학생과 일반인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에 대한  아버지의 답변

 오직 투쟁으로서만 이 나라는 정치적인 발전을 이룰 수가 있다.
 정치를 부정하고 자신과 무관한것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마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자기가 공기를
 마시며 사는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바와 같다.
 정치라는건 사람들간의 이해관계의 조절이며 두사람이 모이면 이미 성립되어 있는 것이다. (내 평소 지론의 출처가 여기다)
 이 사실을 깨친 사람이 이 나라의 발전을 원하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투쟁에 나선자들이 흘린 피와 그들의 희생으로 받은 댓가는 이 나라 모든 사람들에게, 심지어 지금의 권력자들에게 까지
 공평히 돌아가고 모두들 만끽하게 될 것이다.
 너희들이 심은 나무에서 만들어진 깨끗한 공기를 숨쉬면서도 방관자들은 그 공기의 출처를 이해하지 못할것이며
 그들의 양심과 지성도 그들의 무지함을 깨지는 못할것이니 그들을 탓하지 말며 불쌍히 여겨야 할 것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이유는?  에 대한  아버지의 답변
 
 나는 인민이 각자 그들의 국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30년이 되도록 나는 아직 저 발언의 정확한 의도를 모른다.
 그렇지만 젊은 날 10년간 해외를 떠돈데에 무의식적 배경이 되지 않았나 하는 의심까지는 어떻게 할 수 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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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1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viana 2008-06-23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80년이라니..도대체 그때가 몇살이셨던 거에요.
암것도 모르던 전 대통령이 죽었다고 슬퍼했던 때잖아요...와...

땡땡 2008-06-23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엘리트 훼미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