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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릉 산책 - 2016 제16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정용준 외 지음 / 문예중앙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송이는 유독 먼 곳의 얘기, 먼 데 사는 사람 얘기를 곧잘 했었다.
..북극 만년설 언저리에 사는 사람들은 화가 나거나 슬픔에 사로잡히면 그냥 눈밭 위를 걸어간대요. 무작정 계속. 걷고 또 걷다가 그 마음이 사그라들면 그 자리에 긴 막대르 하나 꽂아놓고 돌아온대요. 다음에 가면 그 막대들이 어떤 마음의 깃발인지 기억이 안 날 것 같지 않아요?...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은근 화려한 속옷을 입는다네요. 무뚝뚝하게 생긴 남자들도 놀랍도록 명랑한 색깔의 속옷을 입는대요. 일 년의 절반이 밤이라면 그럴 것 같긴 해요.......더블린 거리에 있는 아파트들은 현관문 색깔이 다 다르대요. 술꾼 남편들이 밤늦게 들어올 때 헷갈리지 말라고 그렇게 칠했다는데, 더헷갈릴 것 같지 않아요? 뉴질랜드의 협만 얘기를 한 적도 있었다. 뉴질랜드는 새로운 네덜란드라는 뜻이래요. 처음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딴 쿡마운틴 협곡엔 일흔여섯 마리의 돌고래가 살고 있대요. 그곳엔 오억 년 동안 진화하지 않은 먹장어가 놀러 다니고 백 년에 일 센티 자라는 산호 가지에 물뱀이 노끈처럼 친친 감겨 있는데 하여튼 그 돌고래 울음소리는 너무 아름다워서, 우주로 보낸 타임머신에 그걸 실어 보냈대요. 사무실에서 송이 그런 얘길 하면 유석은 퉁이나 주었다. 먼나라 이웃나라야? 가서 세어봤어? 일흔여섯 마린지, 열여섯 마린지.
새벽까지 희미하게/정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