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동시집 차령이 뽀뽀 - 국영문판 바우솔 동시집 1
고은 지음, 이억배 그림, 안선재(안토니 수사) 옮김 / 바우솔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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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동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고은 시인의 동시집이다.

우리말과 영문으로 번역된 시 33편이 실렸다.

 

 

 

나는 동시를 좋아해서 동시집을 제법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유감스럽게도 고은 선생님의 동시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 시집은 이억배 선생님 그림이 너무 이뻐서 솔직히 시보다는 그림이 더 눈에 들어왔다.

독자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았을까, 요렇게 이쁜데 그림이 더 눈에 들어오는 건 당연하지 않냐고.... ^^

 

 

 

전면에 펼쳐진 그림 뿐 아니라, 한쪽에 가만히 그려진 삽화도 시선을 잡아 끌기는 마찬가지다.

 

   

 

그림을 너무 잘 그리는 화가, 그림으로 너무 유명한 화가 때문에 시가 묻혀버렸다면, 고은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첫 느낌은 그랬다. 그래서 처음엔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로 자꾸 자꾸 시집을 넘겼고, 그 다음에 두 번, 세 번 거듭 읽으며 그림보다 시에 더 관심과 애정을 쏟은 특별한 시집이 되었다. ^^

 

차령이 아빠 고은 시인은 아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을 그리며, 독자에게도 차령이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아이와 함께 학교가는 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특히 옛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음을 알 수 있다. 아이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아빠를 둔 차령이는 참 행복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누구나 아이를 키우며 경험했을 그 행복했던 순간, 아빠와 딸의 알콩달콩 애틋한 사랑에 감전되는 기분이었다.

 

학교 갈 때

 

아침에 부랴부랴

학교 가는데

책가방 메고

도시락 들고

학교 가는데

문터 고개 학교 가는데

 

가게 앞까지 함께 가는 아빠한테

옛날이야기

호랑이 담배 먹던

옛이야기

두 개나 세 개 들려 주면

아빠는

그래?

그래?

그래?

하고 내 친구 되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내 친구 되네. (58쪽)

고은 선생님 부부는 정말 아이에게 이렇게 답했을까? 보통은 네가 제일 좋다고 답하지 않나? 나는 그랬던 거 같은데... ^^

어른이 거짓말하는 것보다 아이가 깜찍한 거짓말을 하는게 더 나을려나, 아무튼 차령이는 엄마 아빠에게 사랑스런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깜찍한 꼬마였다.ㅋㅋ

거짓말

 

"아빠는 이 세상에서 누가 좋아?"
"그거야 엄마 다음 차령이겠지."

 

"엄마는 이 세상에서 누가 누가 제일 좋아?"

 

"그거야 아빠가 제일이고

다음이 차령이지."

 

차령이가 아빠더러

"아빠, 엄마는 차령이가 제일 좋고

그 다음이 아빠래."

 

차령이가 엄마더러

"엄마, 아빠는 차령이가 제일 좋고

엄마가 둘째래 히히."   (36쪽)

아빠가 차령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고, 차령이가 아빠를 무한 사랑하는 것도 감지된다. 여기 수록된 시들은 은유라든가 시적 비유로 감싸 놓은 시가 없어,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표제작이 된 차령이 뽀뽀와 사랑이 뭐냐고 묻는 차령이 말처럼...

 

차령이 뽀뽀

 

아직도 쌀쌀한 날 들길 가면서

아빠가 춥겠다

차령이 춥겠다 하자

차령이 갑자기

아빠 뺨에 뽀뽀한 뒤

이렇게 뽀뽀하면

체온이 손으로 발로 뻗어 나가

더워지지요

 

아빠가 웃으며

야 야 이제는 춥지 않구나 (50쪽)

 

 

사랑

 

사랑이 뭐냐고 네가 물었지

책 속에서

사랑이는 말 보고

사랑이 뭐냐고 네가 물었디

 

아가 사랑이란

이렇게 함께 걸어가는 거란다

멀리 떠나가면

보고 싶은 것

그것이 사랑이란다

아프면

어디 아파?

어디 아파?

걱정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란다

아이 사람 참 좋아

 

네가 말했지

사랑 좋아 참 좋아  (17쪽)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많이 가르치려 드는 요즘 부모들은, 과연 아이와 얼마나 눈높이를 맞추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생각을 나눌까? 오로지 성적을 위해서 지식을 쑤셔 넣으려고만 들지, 아이의 감정에 공감하고 정서를 나누는 일에는 소홀한 것 같다. 우격다짐으로 지식을 집어 넣는다고 아이의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고, 더구나 아이의 공부가 인간이 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공부 잘하고 잘났다는 사람 중에도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별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아이가 부모에게 충분히 존중받고 사랑받았다면 쓰러지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바른 마음 바른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리라 생각한다.

 

새 발자국

 

눈 위에

새 발자구

너 혼자구나

한 줄 더 기다랗게

만들어 줄게

나란히 가는 길

만들어 줄게 (66쪽)

 

 

토끼 생각

 

겨울방학 함박눈

학교 생각나요

교실 뒤 사육장

토끼 생각나요

엄마랑 새끼랑

무얼 먹고 있을까

겨울이면 빈 가지뿐

아카시 이파리도 없는데

무얼 먹고 있을가

초희랑 가람이랑

풀 뜯어다 먹였는데

철망 사이 주둥이

장나치며 먹였는데

(68쪽)

 

지식보다는 지혜를, 경쟁보다는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임을 알게 하는 것은 부모와 선생님, 어른들의 몫일 것이다.

이이주 선생님처럼 '이놈들아 땅하고만 놀지 말고 하늘하고도 놀아라' 큰소리로 말해주는 어른이 되어야 하리라.

 

 

 

 

우리말 시가 끝나고 다음에 나오는 영문 시를 우리말로 다시 번역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고딩 막내는 영문 시를 보더니 우리말 시와는 또 다른 느낌이라며,, 우리말의 느낌을 외국어로 표현하는 건 정말 어렵겠단다.

빨간 가름끈이 있어 영문을 우리말로 다시 번역해보고, 앞에 우리말 시와 비교해볼 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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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남매맘 2012-01-02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은 님의 아름다운 시와 이억배 님의 아름다운 글에 한동안 말문을 잃을 수밖에 없던 동시집이었는데 아직 리뷰를 못 쓰고 있네요. 대신 순오기님의 리뷰에 추천을 답니다. 사진도 정말 잘 찍으셨어요.

순오기 2012-01-02 16:31   좋아요 0 | URL
정말 그림이 더 빛나는 시집이었죠.^^
밤에 찍으면 불빛이 반사돼서 이리저리 기울여서 반사가 안되게 찍느라 애를 좀 먹긴 하죠.ㅋㅋ

단발머리 2012-01-06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예뻐요. 백화점에서 이 책 봤는데, 비밀로 싸놓았더라구요. 딸애한테 추천했으나, 거절 당했습니다. ㅎㅎ

순오기 2012-01-14 11:22   좋아요 0 | URL
비밀? 아하~ 비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