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공지영 지음 / 김영사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8월 공지영 작가를 만난 이후, 내가 읽지 못한 그녀의 작품을 찾아 읽고 있다. 수도원 기행은 보고 싶었던 책인데 인연이 더디 왔다. 언젠가는 유럽여행을 가게 될 테니까 그때 꼭 둘러보고 싶은 수도원을 알아내기 위해서도 보고 싶었다. 다리 심(힘) 풀리기 전에 꼭 봐야 할 곳, 유럽을 만날 수 있는 책들은 그래서 반갑다.




2001년 7월, 세 아이를 두고 한 달 일정으로 유럽수도원을 돌아보기 위해 떠난 공지영. 그녀는 유럽 봉쇄수도원에서 세상과 격리된 철장 너머에 스스로 갇힌 수도사들을 만난다. 미사를 드리면서도 일반 신자들과 격리된 공간,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수행과 봉사로 온몸을 바치는 그들의 표정에서 구원의 기쁨을 읽는다. 

   

고레고리안 성가의 본산인 솔렘수도원, 베네딕트 남자 봉쇄수도원에서 남자 수도사들의 모습은 '장미의 이름으로'에 나오는 그 모습이란다. 수도원 곳곳의 사진은 전면 혹은 한면을 장식하거나 작게 편집되어 분위기를 전한다. 고레고리안 성가가 울려퍼지는 미사를 상상하며 시디를 듣는다면 아쉽지만 분위기는 맛볼 수 있겠다. 

게르만과 라틴, 독어권과 불어권의 접경에 자리한 아름다운 도시 프리부 시내 풍경이다. 기행에세이는 멋진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족하다. 이들은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 과거의 흔적을 지우지 않는 지혜로움이 부럽다. 우린 새것을 얻기 위해 수천 년 혹은 수백 년전이나 몇 십년 전의 것들을 가차없이 밀어버리고 삽질이다.ㅜㅜ 중세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수도원들이 관광객을 유럽으로 불러들이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으로 알려진 뮌헨대학 숄 남매의 자취는, 그들이 처음 나치에 저항하는 유인물을 뿌렸던 광장 그 자리에 조각으로 남아 있다. 나도 한때 이 책을 읽고 백장미 그룹의 그들을 알았기에 잊지 않고 그곳을 방문한 작가가 고마웠다.

킴지여자수도원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모든 것이 이루어진 유럽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은 행복하지 않단다. 아름다운 풍경과 유적이 그들에게 아무런 기쁨도 되지 않는다고...대부분의 수도원이 젊은이들이 들어오지 않아 나이가 많은 수녀님이나 수도사들만 있다는 말씀은 아프게 들린다. 기부금이나 지원에 의지하지 않고 모든 걸 자급자족한다는 수도원 규칙을 철저히 지킨다는 그들이 존경스럽다.


내가 가장 반했던 수도원은 오스나 브뤽 베네딕트 여자 봉쇄수도원이다. 원래 마굿간이었는데 수녀님들이 근처 개울에서 자갈을 날라서 마굿간의 진창에 할 알 한 알 자갈을 박아 성당을 일구었단다. 마굿간의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난 성당, 마굿간에서 나신 아기 예수가 머물기에 좋은 성당이다. 우리나라의 초대형 호화판 교회를 볼때마다 과연 그곳에 예수님이 편히 계실 수 있을까? 산을 깎고 나무를 베어내고 지은 교회는 하느님을 제대로 경배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는 공지영의 생각에 나도 공감한다. 파안대소하는 예수님상과 수녀님들의 묘지에 세운 탑도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 책에서 유럽 수도원의 역사와 현재를 충분히 맛보리라 기대했었다. 그런데 유럽 수도원의 얘기보단 오히려 공지영 개인의 이야기가 더 많은 것 같지만 결코 나쁘지 않았다. 역사로만 존재하는 수도원이 아니라 오늘날 누구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수도원이었고, 공지영 개인의 삶에 임재하는 하느님을 느끼는 수도원 기행이었다. 내 맘대로 세상을 살고 싶었던 그녀가 아무 것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18년의 방황을 마치고 돌아온 심경을 곳곳에서 풀어놓아 이해와 공감을 더했다. 하느님과 인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도 임재하는 하느님을 느낀 기행으로 읽힌다.

 

나도 6년째 방학을 끝내고 그분께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음을 느낀다. 9월 14일 오후 4시 40분, "무엇이 그리 바쁘냐? 방학이 아니고 그건 휴교다. 그동안 하느님이 얼마나 마음 아파 했을지 헤아려 봤느냐? 하루에 성경 3장씩 읽으며 기도하고 준비하라!"는 30년 전 내 신앙의 어머니였던 분께서 전화를 주셨다. 교회를 안나가고 있었지만 한번도 내가 기독교 신앙을 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방학 한 교회에서 개학해야지 했는데, 그곳은 내가 갈 교회가 아니라고 하시는 그 분 말씀에 끄덕였다. 지금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분은 그 분 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조용히 묵상하며 성경 읽기 5일째, 작심삼일은 지났으니 다행이다. 이런 심경의 변화를 겪는 중에 읽은 수도원 기행이라 내게는 충분히 의미있고 유익한 독서였다. 공지영 그녀처럼 '하느님 항복합니다!' 무릎 꿇을 날이 멀지 않았음을 겸손히 받아 들이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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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09-18 2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지영 작가 책, 저도 챙겨서 보려구요. 너무 좋아요.^^

순오기 2009-09-19 07:09   좋아요 1 | URL
썩 좋아하진 않았었는데 이젠 그녀의 솔직함이 참 좋더라고요.^^

같은하늘 2009-09-18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종교와 거리가 멀지만 유럽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끌리는데요.^^

순오기 2009-09-19 07:10   좋아요 1 | URL
누구나 종교적 심성은 있는 거니까 나한테 맞는 종교가 어느 날 다가올 수도 있지요.^^ 유럽의 종교적인 단면을 보는 것도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