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 하늘 길
한승원 지음 / 문이당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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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 장편소설 '흑산도 하늘길'은 정약전의 흑산도 유배생활을 그려 아우 정약용에 가려진 정약전을 살아 숨쉬게 한 작품이다. 정약전의 흑산도 유배는 개인에겐 불행이었으나 그가 남긴 '현산어보'는 우리에겐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정약용의 형으로 잘 알려진 정약전은,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인 공재 윤두서의 외증손자로 정조께선 '약전은 준수하고 뛰어남이 그 아우보다 낫다' 고 하셨다지만 워낙 정약용이 뛰어나기에 정조의 말씀에 흔쾌히 공감되진 않는다.^^
 

소설은 연도까진 표기하지 않았지만 정조의 승하(1800년 정조 24년 6월)와 순조의 즉위로 인한 정순왕후 김씨의 수렴첨정으로 천주교와 남인 시파가 불리하게 된 정치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어 그리 어렵지 않게 읽힌다. 1801년 신유박해때 형인 정약종과 매형인 이승휴 등 6인은 참수를 당했고, 아우 정약용은 강진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되어 16년(소흑산도-지금의 우이도에서 9년, 대흑산도에서 7년)을 갇혀 살다 해배되지 못하고 한 많은 생을 마감한 시점까지 증언하고 있다. 

정약전이 유배되었던 흑산도 전경이다. 200년 전의 흑산도는 지금과 많이 달랐겠지만, 한승원선생은 수없이 흑산도를 드나들며 그분의 참담한 갇힘과 슬프도록 아름다운 자유자재의 길을 동경한 결과가 이 소설이라고 밝힌다.  

전남 장흥 안양 바닷가에 허름산 '해산토굴'을 짓고 그 속에 스스로 갇히기 사작한 것이 14년 전이다. 스스로를 한 시공 속에 잘 가두고 살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확신을 다산과 손암 형제를 통해 얻었다고 한다. 작가는 두 형제의 생애를 다룬 소설 '흑산도 하늘길'과 '다산'을 소설로 그렸다.

정약전은 1790년 증광 문과 병과에 급제하고 1797년 병조 좌랑(정6품 관직으로 지금의 사무관 정도에 해당되며 군 계급으론 대위나 소령 정도?)이 되었다. 소설은 40대 정약전이 흑산도에 유배오는 뱃길부터 그리고 있다. 질펀한 전라도 사투리에 '거시기'와 '머시기'의 애매모호한 뜻을 알아 들으면 반은 전라도 사람이 될 듯하다. ^^

흑산으로 오는 뱃길이 지옥행 같아서 자신보다 먼저 해배될 동생을 위해, 관리들의 간섭이 덜한 대흑산으로 들어가지 않고 소흑산에서 버텼던 형의 마음이 감지된다. 저 바다 건너 강진에 있을 동생을 향한 애틋함이 곳곳에서 읽힌다. 다산 또한 강진의 천일각에서 바다 건너 계신 형님을 그리워했다. 다산은 집필하면 형님에게 보내 감수를 청했으며, 형님 또한 하늘 같은 동생으로 여겼음을 알기에 끝내 만나지 못한 그들의 운명이 안타까웠다.

죄인으로 온 흑산도에서 가까이 하면 안되는 천주학쟁이로 인식됐지만 섬사람들은 자녀들의 훈장으로 그를 모신다. 소흑산의 이장 윤강순과 대흑산의 장성호는 서로 훈장으로 모시고자 했다. 약전은 소흑산에서 9년을 살면서 이장 윤강순의 중매로 거무를 첩으로 들였다. 이미 첫발을 딛었을 때부터 작가는 거무와 만나게 함으로 복선을 깔고 있다. 작가는 음과 양의 원리로 거무를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의 자궁같은 여자로 그리고 있다. 약전은 거무로 인해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고 두 아들을 두었으며 '술과 여자와 욕망은 수렁'이라면서도 벗어나지 못한다. 거무는 그를 위해 물질을 하고 술을 빚어 지극정성으로 모셨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약전은 술로 인해 죽게 된다. 하지만 그의 유배생활에 술이 없었다면 어찌 한시라도 견딜 수 있었겠는가, 이해되지만 정약전의 삶 자체는 짠하다.  

정약전은 소흑산도에서 훈장을 할 때는 양반의 허세를 버리지 않았으나 대흑산으로 들어가서는 완전히 섬사람들에게 하대하지 않고 말을 틀만큼 양반의 허울을 벗고 지냈다. 약전은 흑산도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생활지혜를 알려주어 존경과 인심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산도에서 정약전이 견뎌야 했을 고독과 슬픔, 좌절과 불안으로 그려진 절망감은 얼마나 가슴 먹먹하던지... 다산은 형님께 믿음과 희망을 갖게 하려고 편지를 보내 술을 끊고 형님이 하실만한 일을 찾도록 권했다. 약전도 동생을 생각하며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내 거무와 섬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물고기 족보인 현산어보를 집필하게 된다.  

어부들이 잡아온 물고기의 생김새를 그리거나 해부 관찰하여 생태 및 먹는 법과 유의할 점을 기록한 현산어보는, 치밀하고 자세하게 기록되어 지금의 해양기술로 봐도 매우 정확하고 정밀하다고 한다. 그 갯수 또한 우리나라 서해, 남해에서 잡히는 어종이 거의 다 망라되어 자산어보에는 어류 101종을 포함해 227종의 흑산 지역에 살고 있는 물고기와 갑각류, 해초, 바다새까지 망라되어 있다고 한다. 

섬에 갇혔지만 영혼은 끝없이 자유롭고 싶었던 정약전은 조개에서 파랑새가 나왔다는 승률조개를 보며 자신과 동질감을 느낀다. 그의 죽음은 승률조개의 파랑새가 하늘로 날아 오르듯 세상의 짐과 껍데기를 벗어버린 자유로운 비상이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책 말미에 '손암 정약전 인터뷰'라는 글쓰기로 한승원 작가가 만난 59세의 정약전을 독자에게 보여주는 건 참신한 시도로 읽힌다. 손암(巽菴)이란 호가 주역에서 '손'은 들어간다는 뜻이니 반드시 나오게 된다는 희망을 담고 있다. 또한 나주 율정에서 헤어진 동생에게 앞으로는 다산(茶山)이라 부르겠다고 형님이 지어준 호라는 것도 알았다.  

7월 11일 만나게 될 한승원 작가는 2001년에 이은 두번째 만남인데 그분은 '해산국인'이라 사인하고 단기로 표기한다. 문학기행에 동행할 중학생들은 청소년용 '흑산도 하늘길'을 읽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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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간 정약전을 만나다
    from 엄마는 독서중 2009-07-08 00:38 
     중학교 어머니독서회에서 장흥 문학기행을 가면서 한승원 선생님을 뵙고 이 작품에 대한 강의를 듣기에 동행하는 학생들은 청소년용으로 읽고 오라해서 중고샵에서 건졌다. 알라딘에 이미지가 안떠서 사진을 찍어 올려야할 듯...지금은 민경이 친구들이 돌아가며 읽고 있어서 차우에 추가해야지. 엄마들이랑 같이 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그래도 모녀의 추억을 위해 반 강압과 강제의 실력행사로 친구들까지 줄줄이 엮어서 데려가는데, 그래도 이 책을 읽고나선&#
 
 
꿈꾸는섬 2009-07-03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승원님의 친필 사인까지 갖고 계시군요. 부러워요.^^

순오기 2009-07-03 00:42   좋아요 0 | URL
하하~ 2001년에 지역도서관 독서회에서 한승원님의 '멍텅구리 배'를 토론도서로 선정해 초청했었거든요.^^

프레이야 2009-07-03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기행 앞두고 먼저 책 읽고 준비하시는군요.
정약전을 소재로 한 것이군요, 흑산도하늘길.
그 문학기행 따라가고 싶어요.
오기언니 제 서재에 오셔서 조언 좀 해주세요.
뭐냐면요, 이주 여성 우리말 수업 건이에요.^^

순오기 2009-07-03 08:39   좋아요 0 | URL
문학기행은 역시 미리 공부를 하고 가야 제대로 맛을 알죠.
님 서재에 가봤는데 많은 분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주셔서 보탤게 없더라고요.^^ 중학교 시험감독 가야 돼서 일찍 나중에 생각나면 댓글 달게요.

마노아 2009-07-03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형제들이 어찌나 극적으로 살다가 갔는지 삼형제 모두 소설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어요ㅠ.ㅠ
형님 마음 짠해요. 이렇게 책 읽고 문학기행까지 다녀오고, 그네들의 숨결이 손에 잡힐 거예요. ^^

순오기 2009-07-04 12:52   좋아요 0 | URL
불행한 천재들의 삶이었죠~ 민경이를 위해 청소년용으로 중고샵에서 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