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보 생활 지침서 메타포 7
캐롤린 매클러 지음, 이순미 옮김 / 메타포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표지는 '뚱보 생활 지침서'라는 제목과는 부조화스러운 에로틱한 느낌에 도발적이다. 표지만 본다면 청소년 자녀에게 권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느낌으로 책을 펴들어서 첫부분 보여지는 버지니아와 프로기의 애정행각이 거슬렸는지도 모른다. 나도 한때는, 아니 지금도 성적 묘사가 나오는 부분은 되짚어 읽으면서도, 10대 자녀를 둔 학부모 마인드가 작용했는지 처음엔 아이들에게 권하지 않았다. ^^

60여쪽 읽다가 중단해서 중1 막내가 먼저 읽었는데 은근히 걱정되었다. ^^ 하지만 막내는 "미국 애들 정말 조숙한 것 같아. 나보다 겨우 한 살 많은 열다섯인데 이렇게 진한 애정행각을 벌이다니 놀라워! 그래도, 버지니아가 자신을 사랑하고 당당하게 펼쳐나가는 결말이 좋았어!" 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이로써 엄마의 염려는 기우였음이 확인되었다. 역시 청소년을 위한 메타포의 일곱 번째 책 '뚱보 생활 지침서'는 10대의 공감을 얻으며 좋은 책으로 자리매김 할거라는 믿음이 생겼고, 처음 시작과는 다르게 손에서 놓지 않고 재미있게 읽었다.

주인공 버지니아는 열다섯 살 고등학교 1학년이다. 우리 큰딸도 고등학교 1학년때 중학교보다 넓은 학군에서 만난, 반 친구들의 서슴없는 애정표현과 자랑하듯 성경험을 얘기하는데 충격을 받았다. 아이는 역겨워하며 그런 이야기를 버젓이 하는 것에 놀랐다. 내가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미국 고등학생들의 애정표현 수위에 충격 받았던 느낌 그대로였다. 그 딸이 이제 대학생이 되었고 방학을 맞아 돌아왔기에 '뚱보생활 지침서'에 묘사된 청소년들의 성과, 그들의 애정행각, 애정표현 수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일독을 권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청소년 성문제만 다룬 건 아니고, 자기 인생의 당당한 주인공이 되는 정체성 찾기다.

이 책에서 새삼 놀란 것은 버지니아 부모가 자녀보다 부부의 삶에 우선한다는 것과, 그러면서 자녀에겐 부모의 결정에 따르도록 요구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사회적인 규정과 부모의 뜻을 거부하던 청소년기를 거쳤으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그걸 요구하는 엄마가 되었다는 것이다. 청소년 심리학자인 버지니아 엄마는 완벽한 가정으로 보이는데 신경 쓰면서, 정작 자녀들의 소리엔 귀기울이지 않았다. 엄마가 제시한대로 따르도록 요구해 큰딸과 마찰을 일으켰고, 자랑스러웠던 아들은 술에 취해 여학생을 강간한다. 부모가 쌓은 성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 하지만 부모는 그 소리에 정직하지 못하고 없었던 일처럼 가장하고 살기 바란다. 우상이었던 오빠 행동에 충격받은 버지니아를 배려할 여유는 없었다.

다이어트를 하던 버지니아는 미친듯 먹어댔고 자신을 학대한다. 오빠 바이런이나 엄마 아빠 누구도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이나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한 여자의 인생을 망쳐 놓은 오빠를 용서할 수 없었던 버지니아는, 섀넌 가족의 초대로 시애틀에 가서야 상처를 위로 받는다. 오빠가 애니 밀스에게 한 짓이 자기에게 한 짓이 아니라는 것과, 오빠는 완벽하지도 않았고 항상 자기를 무시했다고 깨닫는다. 시애틀에서 섀넌과 자유롭게 지낸 후, 버지니아는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 망설이던 애니 밀스를 만나 오빠의 잘못을 사과하고, 드디어 남들의 규정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깨닫는다. 애니 밀스의 말을 듣고 자기 삶의 해답을 얻은 것이다.

   
  바이런이 한 일은 끔찍했어. 그래서 학교 당국에 보고했던 거야, 난 바이런이 다른 여자에게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하길 바라거든. 하지만 끔찍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그만큼 내 인생이 망가지지는 않았어. 그가 나를 지배하게 두진 않을 거야. (중략)  앞으로 미래의 내 인생은 내게 달려 있어. 사람들은 스스로 희생자가 될 수도 있고, 자기 자신에게 선택권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거야. 내가 선택권을 갖는 것.  
   

버지니아는 뚱보지침으로 '다이어트 조언 목록'을 적던 것을 멈추고, 비록 뚱보일지라도 '쉬리브스' 가족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행동한다. 시애틀에서 눈썹에 피어싱도 하고 옷도 제맘대로 고르는 버지니아가 못마땅하던 엄마도 결국 인정한다. 학교 생활도 재미없고 친구로부터 자신을 격리하던 버지니아는, 웹사이트를 추진하며 친구들과 소통하는 중심인물이 된다. 정체성을 회복하고 자기 인생의 당당한 주인으로 사는 버지니아에게 박수칠 수 있어 좋았다. 우리 청소년들도 남의 시선이나 규정에 매이지 말고, 뚱보라도 상관없이 자신을 사랑하고 당당하라는 '뚱보 생활 지침서'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면 좋겠다.

버지니아가 적었던 다이어트 조언 목록은 '뚱보 아줌마'인 내겐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들의 이목이 아닌 내 건강을 위해 버지니아의 뚱보지침을 기억해야 겠다.^^

다이어트 조언 #1 배가 고플 때마다 위가 가득 차도록 생수를 마신다.
다이어트 조언 #2 한 입 먹을 때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한 가장 오랫동안 입 안에 넣고 씹는다
다이어트 조언 #3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매니큐어를 집어라. 바르는 동안 먹겠다는 갈망이 사라질 것이다.
다이어트 조언 #4 몸의 매력 없는 부분을 운동하기 위한 독창적인 방법을 찾아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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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희망꿈 2008-07-01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읽기 시작했어요.
생각보다 괜찮은 책 같아요.
너무 자세한 묘사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죠.
저도 뚱보지침 꼭~ 기억하고 실천 해야겠는데요.
저도 빨리 읽어야겠어요.
긴 서평 미리 잘 읽고갑니다.

순오기 2008-07-01 12:07   좋아요 0 | URL
긴 서평 읽느라 애쓰셨어요. 줄거리 소개를 안해야 짧아지는데 말이죠.ㅠㅠ
갈수록 잘 안된다 말에요.ㅋㅋ

다락방 2008-07-03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맙소사. 저도 이거 읽어야 겠어요!!
순오기님이 읽으신 책을 아들딸들도 함께 읽는다니. 정말 멋진 가족이예요!

순오기 2008-07-04 01:0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끌린 이유가 무얼지 궁금해졌어요.
오히려 애들이 읽는 책을 제가 미처 못 읽지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