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늑대처럼 - 세계의 그림책 023 세계의 그림책 23
에릭 바튀 글 그림, 양진희 옮김 / 함께자람(교학사)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겨울에 읽으면 딱 제대로 느낌이 사는 책이다. 에릭 바튀, 별로 친근한 작가는 아니지만 '내 나무 아래서'라는 책으로 낯을 익힌 작가다. '하얀 늑대처럼'은 예전에 읽고 상당히 충격받은 작품이다. '어~~ 이건 애들이 볼 동화가 아니라, 어른들이 봐야하는 책이잖아!' 라는 느낌에 선뜻 읽히기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여러번 음미하면서 아이들 나름의 눈높이로 이해하겠지 믿고, 오늘 초등생들에게 읽어 주었다. 빨강과 검정의 강렬한 색채 대비가 우선 녀석들의 시선을 끌었고, 토끼라는 귀여운 캐릭터가 과감하게 변신되었음에도 상당히 흥미로워 했다. 빨강에 글씨가 쓰였다면 피곤하겠지만, 왼쪽 흰색 바탕에 정갈하게 쓰여 읽기가 편하다.



이렇게 평화로운 토끼 마을에 혼자 잘난 녀석이 나타나 마을을 초토화시킨다. 강자에게 대들지 못하는 힘없는 토끼들은 바로 우리네의 모습 아닐까? 잘난 자기와 다르다고 다 떠나보낸 하얀 토끼는 더 강한 녀석이 나타나자 접대에 여념없다. 하지만 결과는~~~~~~~~ㅠㅠ

혼자 남은 하얀 토끼에게 나타난 더 큰 하얀 토끼의 정체를 아이들은 눈치 채지 못했다. 당근은 싫어하고 식탁보를 홱~ 잡아당기더니 먹기 시작했다는 말의 의미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약간의 질문을 곁들이며 제목 '하얀 늑대처럼'을 상기 시켰더니, "아하~~ 더 큰 하얀 토끼가 늑대였구나!" 이해했고, 잘난 체하다 늑대에게 잡아 먹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이해하고 남긴 다양한 독후활동 중에 멋진 편지가 있어 옮겨본다.

잘난 척하는 토끼에게 --------1학년 안주영

잘난 척하는 토끼야 안녕? 너 그렇게 잘난 척하니까 잡혀버리지, 너 늑대 뱃 속에서 뭐하니? 키작은 토끼, 수염 짧은 토끼, 하얀 털이 아닌 토끼 그리고, 눈이 빨간색이 아닌 토끼들이 모두 너의 친구야. 토끼마을에도 눈 왔어? 우린 많이 쌓여서 눈싸움을 할 수 있어. 그럼 안녕!

흰색 토끼에게 -------------1학년 윤예린

하얀색 토끼야 안녕? 잘 있었니? 너가 이상한 계획을 세우니까 하얀 늑대한테 잡아먹혔잖아. 다른 토끼를 안 쫓아냈다면 다른 토끼랑 힘을 합쳐서 그 하얀 늑대를 쫒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넌 흰색 늑대 뱃속에서 잘 살고 있니? 궁금하다 궁금해!

 떠난 토끼들에게 -------- 1학년 정인선

떠난 토끼아 안녕? 난 인선이야. 너네들 사는 곳에도 눈 많이 왔니? 광주는 눈이 많이 왔어. 너네들 떠나서 많이 추웠지? 큰 하얀 토끼는 늑대한테 잡아 먹혔으니까 괜찮아. 토끼야 건강해야 돼.

수염 긴 토끼에게 ----------- 2학년 박하은

수염 긴 토끼야 안녕? 난 하은이야. 너랑 똑같은 토끼는 하나도 없을 텐데 왜 그러니? 늑대 뱃 속에서 있으니까 좋니? 뱃 속은 불편할거야. 너도 골탕 좀 먹어보라고. 너가 토끼 마을을 떠나야 겠다. 자기 맘대로만 하잖아. 넌 아직도 내 쫒고 싶으니? 토끼들은 토끼 마을에 살고 있는데 이제 너도 뱃속에서 많이 깨달았을 거야. 다음부터는 너 혼자 다 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광주는 하얀나라가 된 것처럼 눈이 많이 왔다. 수염 긴 토끼야 안녕! 

*아이들은 하얀 토끼에게 편지를 쓰면서도 잘난 척하는 토끼, 흰색 토끼, 수염 긴 토끼라고 꾸며주는 말을 달리 표현했고, 대부분 아이들이 하얀 토끼에게 편지를 썼는데, 유일하게 떠난 토끼에게 편지를 쓴 인선이의 따뜻한 마음이 뭉클 느껴졌다. 그리고 아이들 모두가 늑대한테 잡아 먹힌 토끼가 죽은 게 아니라, 늑대 뱃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 발견했다. ^^ 뭔 까닭이지?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 때문일까? ㅎㅎ 그리고 혼자 조용히 퀴즈로 내용을 정리한 아이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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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억하고 싶은 늑대 이야기
    from 용이랑 슬이의 책 이야기 2008-01-04 05:35 
    순오기님의 리뷰를 읽다가 첫쨰 아이가 어렸을 때 책을 읽으며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일부는 순오기님의 리뷰에 댓글로도 쓴 얘기이지만 ... 나중에 잊을 것 같아 정리를 해 두려고 한다.   '빨간 모자', '빨간 두건', '빨간 망토' 여러 가지 이름으로, 여러 가지 판을 가진 이야기. 그림이 독특하여 이 책을 선택했었던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보아왔던 책들보다 크레용으로 그린 것 같은 그림이 마음에 들어 흐뭇
  2. 초등 1학년에게 추천하는 책
    from 파피루스 2008-01-30 22:15 
    처음으로 자녀를 초등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은 설레임과 더불어 걱정이 많을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궁금하고 걱정되는 마음이 자칫 기쁨을 누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나친 걱정이나 근심을 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아이들은 씩씩하고 활기차게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테니까, 아이가 심리적인 불안을 갖지 않도록 한 발자국 떨어져서 조용히 지며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옆에서 자칭 선배 엄마들이 이런 저런 말로 부추켜도, 삼임선생님에 대한 엄마의 믿
  3.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할 순 없을까?
    from 파피루스 2008-05-24 11:03 
    지난 겨울에 아이들한테 읽어주었을 때, 다양한 독후활동으로 건져낸 마인드 맵이지만 좀 알아보기는 어려울까? ^^ 빨강과 검점의 강렬한 색채 대비만큼이나 충격적인 책,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이 이렇게 강자만을 위한 세상이 될까봐 걱정스럽지만, 결국 잘난체하던 하얀토끼는 더 강자에게 먹혔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려나? ㅎㅎ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봐야 맞을 듯한 이야기다.
 
 
마노아 2008-01-04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너무 멋져요. 이 책도 찜했었는데 조만간 사지 않을까 싶어요^^
아이들 반응도 재밌고 독특합니다. 어른들과 다른 별천지를 보는 것 같아요. 순오기님이 와장창 부러워졌습니다(>_<)

순오기 2008-01-04 01:49   좋아요 0 | URL
ㅎㅎ 와창창 부러워졌다니요~~ ^^ 초등 아이들이 순박하고 정이 가긴 하죠!
책을 하나 읽어줘도 내 맘대로 신나고...그럼 다들 같이 신나하니까 좋고요! ^^ 오타가 여러 개 있어서 급수정함!

깐따삐야 2008-01-04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의 독후감을 읽다보니 어릴적에 종이인형 놀이 하면서 혼잣말 하던 게 떠오르네요.
"이 잘난척쟁이야! 드레스만 입으면 다야? " 막 이러면서 말이죠. ㅋㅋ

순오기 2008-01-04 01:50   좋아요 0 | URL
ㅎㅎ 그 종이인형을 만드느라 열심히 그리고 자르고 했던 기억이 스멀스멀...^^ 현실에선 입어보지 못한 드레스, 종이인형에겐 원없이 입혔드랬죠! ㅋㅋ

bookJourney 2008-01-04 0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빨간 모자'를 기억하나 보네요, 그 책에서는 늑대에게 잡아먹혔던 할머니를 뱃속에서 꺼내지요? 저희 아이는 '빨간 모자'를 읽은 후에 '피터와 늑대'를 읽었는데 ... 잡아먹힌 오리를 왜 꺼내지 않느냐고 성화를 대는 바람에 애를 먹었었답니다^^;
아이들이 모두 흰토끼를 보고 눈 생각이 났나보네요, 광주에 눈이 많이 왔지요?

순오기 2008-01-04 09:01   좋아요 0 | URL
트랙백이 연결돼서 깜딱(^^) 놀랐어요.
이렇게 느낌이나 생각을 공유한다는 건 또 다른 즐거움이죠!
빨간 모자 할머니도 늑대 뱃속에서 꺼내지만,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 염소'에서도 늑대 뱃속에서 꺼내는군요. ㅎㅎ
광주는 정말 눈이 엄청 왔거든요. 아이들은 너무 신나 그게 자랑하고 싶었나 봐요. 하얀토끼, 하얀나라, 하얀 눈...자연스레 연결되지요. ^^

비로그인 2008-01-04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느끼는 것이지만 10년 그리고 20년전 초등생과 지금의 초등생의 수준차가 너무
난다는 사실. 그런데 왜 제목이 [하얀 늑대처럼] 일까요?
'하얀 늑대처럼 굴면 안돼'...뭐, 이런건가? =_= (긁적)

순오기 2008-01-04 14:10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 읽고는 '하얀 토끼지 왜 하얀 늑대야?' 이랬다는...ㅠㅠ
강한 놈 위에 더 강한 놈 있더라는.....우리들의 현실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