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대단히 불명확하지만, 오로지 그만 이해할 수 있는 사적 언어는 없다. "언어는 물리적인 기호의 배열이 아닐 뿐 아니라 개인적인 정신작용이나 세계의 그림도 아니며, 일정한 생활양식과 규칙에 따라서 영위되는 행위이자 문맥에 의해 결정되는 일종의 게임이다. 아픔과 같은 감각은 사적이고 내밀한 것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한 언어는 공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는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세상에 이해 못할 말은 없다. 읽어내려는 의지와 정보만 있다면 읽지 못할 아픔은 없다. 다만, 지구상 모든 인간이 각자 고유한 생체정보를 가지고 있듯, 그들이 구사하는 언어습관도 모두 다르다는 건 알아야 한다. 사람을 언어에 비유하자면 어쩌면 대한민국에는 5천만 개의 방언이 있다. - P367

좋은 판사의 덕목으로 여러 가지가 꼽히지만, 그중에서도 무지를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판사들이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소송관계인 중 판사가 가장 무지하다. 모르려면 차라리 완벽하게 몰라야 한다. 세상과 인간을 어설프게 아는 것은 편견일 수도, 위험할 수도 있다. - P381

어쩌면 판사도 그들처럼 뭍에서 유폐뙨 섬 같은 존재다. 항성 주위를 도는 행성 같기도 하다. 국민이라 불리는 태양 주위를 돌지만, 태양의 인력에 끌려가서도 궤도를 이탈해서도 안되고, 딱 그만큼의 자리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꼿꼿이 홀로 서야만 하는 판사는 별이자 섬이다. 내 곁에 그런 별과 섬들이 있다. -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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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같은 것. 같잖고 우스워 갖다 버리려 해도 검은 옷에 들러붙는 하얀 먼지처럼 자꾸 따라와 날 성가시게 하는 지독한 감정. 무섭다 못해 지겨웠다. 너무 들러붙어 내가 곧 그것 같았다. - P103

a인간은 그런 종족이다. 사명감이나 책임감 같은 이상한 감정이 탑재되어 있다. 세상이 이렇게 망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며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에는 이 재앙을 살인과 광기의 축제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내게는 책임감도 광기도 있다. 그 두 가지가 전혀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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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는 상대적이고, 중요하지 않은 하찮은 가치란 없음에도 소송은 추억이나 생명 같은 계량할 수 없는 것을 형량해야 한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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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게 지나의 희망인지도 모른다. 국경을 넘거나 벙커를 찾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희망. 과거를 떠올리며 불행해하는 대신, 좋아지길 기대하며 없는 희망을 억지로 만들어 내는 대신 지금을 잘 살아 보려는 마음가짐. - P55

이렇게 점점 마르다가 죽어 버리는 게 아니라 먼지처럼 작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아무도 우리를 해치지 못할 텐데. - P62

모두 나쁘다. 죽지 않고 살아서, 살아남아서, 이곳까지 와서 또 이렇게밖에 살지 못하는 사람들 모두 나쁘고 나쁘다. 살았으면, 그 무서운 것을 피해 살아 있으면 이러면 안 되는거잖아. 이러지 않을 수 있잖아. 어째서 망치는 거야. 하루하루 이토록 위태로운 삶을 왜 더 지독하게 만드는 거야.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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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메모 -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아무튼 시리즈 28
정혜윤 지음 / 위고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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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여기저기 끄적거려놓는 것을 좋아한다. 수첩에 적기도 하고 휴대폰 메모 어플을 이용해 어떤것을 남겨놓기도 하는데, 그것을 적을 당시에는 별로 중요한 것 같지도 않고 나중에 이걸 또 볼까 싶지만 시간이 어느정도 지난 후 내가 끄적여놨던 것들을 다시 읽어보면 과거의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아 맞다 이런 일들이 있었지하며 과거 회상을 하는 재미가 있다. 나의 짧은 기억력을 위해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들, 잊지 말아야하는 것들,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고 싶은 것들을 간단하게나마 남겨놓는 것은 우리가 소중한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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