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ㅣ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루타르코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5월
평점 :
대학 1학년 때 과 소모임에서 역사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편을 나누어 토론한 적이 있다. 나는 역사는 진보한다는 편에 섰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역사는 더디게나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원래 플루타르코스가 그리스와 로마의 인물들을 성격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한 쌍 씩 짝지어 총 23쌍을 비교한 책이다.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 데모스테네스와 키케로를 한데 묶는 식이다. 그래서 사실 ‘영웅전’이라는 말은 맞지 않다. 원제도 <Bioi Paralleloi by Ploutarchos>, 즉 ‘플루타르코스의 비교 열전’이니까. 그런데 아쉽게도 천병희 선생은 좀 더 충실한 번역을 위해 그리스, 로마 각각 5명 씩 총 10명의 인물들만 뽑아 편역했다. 대상이 10인으로 줄면서 인물들 간 비교는 쏙 빠진 미니 평전의 성격이 강해졌다. 마치 사마천 사기의 <열전> 같달까.
이 글의 서두에서 역사가 진보한다는 내 개인적인 역사관을 피력한 것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락쿠스 형제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지금의 정치 상황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형 티베리우스 그락쿠스는 농민들의 농지가 대지주들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호민관으로 선출되자마자 농지개혁을 밀어붙인다. 문제는 원로원 의원들이 전부 대지주였다는 것. 한마디로 티베리우스는 기득권들의 핵심 이권을 건드리려 한 것이다. 결국 그는 지지자들과 함께 원로원 의원들에게 맞아 죽고 강물에 던져진다. 마치 로자 룩셈부르크처럼.
동생 가이유스 그락쿠스의 이야기는 더욱 극적이다. 형이 비참하게 죽은 뒤 정치와는 담을 쌓고 은둔하였으나 어느 날 형이 꿈에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이유스, 왜 그렇게 망설이지? 피할 길이 없어. 우리 두 사람은 똑같이 민중을 위해 살다가 민중을 위해 죽을 운명을 타고났단 말이야.”
가이유스 또한 형처럼 호민관에 선출되자 민중을 이롭게 하고 원로원을 견제하는 여러 정책을 폈다. 형이 추진하던 농지개혁을 계승하는 것은 물론, 원로원의 특권을 축소시키는 법안을 제출했다. 원래 소송 사건의 배심원은 원로원 의원들만 임명되었으나 - 따라서 원로원 의원은 다른 계급과의 소송에서 절대 지지 않았다 - 기사 계급도 배심원이 될 수 있게 한 것이다. 즉 그는 부패한 기득권에 맞서 사법개혁을 추진했다.
당연히 원로원의 반발은 극심했다. 가이유스를 모략하는 것은 물론, 그의 인기를 빼앗아오기 위해 무분별한 친(親) 민중정책을 남발했다. 민중들이 서서히 가이유스에게 등을 돌리는 기미가 보이자, 결국 원로원은 로마 시내에서 가이유스 파를 대상으로 살육전을 벌이고 쫓기던 가이유스는 자살하고 만다.
그락쿠스 형제의 농지개혁이 실패로 돌아간 뒤 대지주들의 토지 독식이 가속화되었고, 이는 농민층의 몰락과 공화정의 무력화를 불렀으며, 카이사르로 대표되는 과두정치로 이행하는 계기가 된다.
다시 말한다. 역사는 반복되어선 안 된다. 기득권층은 한 줌의 땅, 한 푼의 돈, 한 움큼의 권력도 절대,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 그자들은 그렇게 몇 십, 몇 백, 아니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파렴치한 폭력과 사탕발림으로 부와 권력을 독점해왔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뿐임을 우리는 항상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