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폴로도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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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천병희 선생의 번역서. 선생의 고졸한 번역에 맛들여 올해는 선생이 번역한 그리스 로마 고전들을 읽고 있다. 이번 책은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인데, 원제가 ‘Bibliotheke by Apollodoros’이다. ‘아폴로도로스의 도서관’이라는 뜻인데, 천병희 선생에 따르면 당시엔 ‘여러 책들에서 수집한 자료를 정리한 안내서를 하나의 도서관으로 간주하는 것이 관행’이었으며 이는 소(小) 백과사전이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즉, 이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는 그리스 신화의 백과사전 격인 책이라 할 수 있다.

알려진 그리스 신화의 거의 모든 사건과 인물을 다루고 있지만 이 책에서 문학적인 재미를 찾기는 힘들다. 오히려 지리하고 복잡한 편이라 할 수 있는데, 사건들은 건조하게 축약되어 있는 반면 인물들은 어지러울 만큼 복잡한 가계도 안에서 그 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아폴로도로스는 아테나이 출신의 문법학자로, 호메로스 같은 이야기꾼이 아니다. 그리고 신화 속의 사건들을 문학적으로 풀어내려면 엄청난 지면이 필요할 터라 이런 형태의 백과사전적 기술을 택한 것은 이해하지만, 어쨌든 재미는 별로 없다.

따라서 그리스 신화를 탐독하고 싶은 독자는 우선 이 책을 개론서 삼아 전체를 훑어보고,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아이네이스>, <변신 이야기>, <신들의 계보> 등의 책들을 통해 깊이를 더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방대하고 복잡한 그리스 신화를 한 권으로 요약하면서도 어느 하나 빠짐없이 사건과 인물을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크다 하겠다. 그리스의 역사는 신화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인데(아테나이의 시조는 테세우스고 스파르테의 시조는 헤라클레스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만 봐도 신화 속 인물들을 버젓이 역사에 포함시켜 놓는다. 그만큼 고대의 역사는 신화와 떼놓을 수 없으며, 신화를 알아야만 역사 속에 녹아 있는 당대인들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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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루타르코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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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1학년 때 과 소모임에서 역사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편을 나누어 토론한 적이 있다. 나는 역사는 진보한다는 편에 섰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역사는 더디게나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원래 플루타르코스가 그리스와 로마의 인물들을 성격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한 쌍 씩 짝지어 총 23쌍을 비교한 책이다.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 데모스테네스와 키케로를 한데 묶는 식이다. 그래서 사실 ‘영웅전’이라는 말은 맞지 않다. 원제도 <Bioi Paralleloi by Ploutarchos>, 즉 ‘플루타르코스의 비교 열전’이니까. 그런데 아쉽게도 천병희 선생은 좀 더 충실한 번역을 위해 그리스, 로마 각각 5명 씩 총 10명의 인물들만 뽑아 편역했다. 대상이 10인으로 줄면서 인물들 간 비교는 쏙 빠진 미니 평전의 성격이 강해졌다. 마치 사마천 사기의 <열전> 같달까.

이 글의 서두에서 역사가 진보한다는 내 개인적인 역사관을 피력한 것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락쿠스 형제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지금의 정치 상황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형 티베리우스 그락쿠스는 농민들의 농지가 대지주들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호민관으로 선출되자마자 농지개혁을 밀어붙인다. 문제는 원로원 의원들이 전부 대지주였다는 것. 한마디로 티베리우스는 기득권들의 핵심 이권을 건드리려 한 것이다. 결국 그는 지지자들과 함께 원로원 의원들에게 맞아 죽고 강물에 던져진다. 마치 로자 룩셈부르크처럼.

동생 가이유스 그락쿠스의 이야기는 더욱 극적이다. 형이 비참하게 죽은 뒤 정치와는 담을 쌓고 은둔하였으나 어느 날 형이 꿈에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이유스, 왜 그렇게 망설이지? 피할 길이 없어. 우리 두 사람은 똑같이 민중을 위해 살다가 민중을 위해 죽을 운명을 타고났단 말이야.”
가이유스 또한 형처럼 호민관에 선출되자 민중을 이롭게 하고 원로원을 견제하는 여러 정책을 폈다. 형이 추진하던 농지개혁을 계승하는 것은 물론, 원로원의 특권을 축소시키는 법안을 제출했다. 원래 소송 사건의 배심원은 원로원 의원들만 임명되었으나 - 따라서 원로원 의원은 다른 계급과의 소송에서 절대 지지 않았다 - 기사 계급도 배심원이 될 수 있게 한 것이다. 즉 그는 부패한 기득권에 맞서 사법개혁을 추진했다.
당연히 원로원의 반발은 극심했다. 가이유스를 모략하는 것은 물론, 그의 인기를 빼앗아오기 위해 무분별한 친(親) 민중정책을 남발했다. 민중들이 서서히 가이유스에게 등을 돌리는 기미가 보이자, 결국 원로원은 로마 시내에서 가이유스 파를 대상으로 살육전을 벌이고 쫓기던 가이유스는 자살하고 만다.
그락쿠스 형제의 농지개혁이 실패로 돌아간 뒤 대지주들의 토지 독식이 가속화되었고, 이는 농민층의 몰락과 공화정의 무력화를 불렀으며, 카이사르로 대표되는 과두정치로 이행하는 계기가 된다.

다시 말한다. 역사는 반복되어선 안 된다. 기득권층은 한 줌의 땅, 한 푼의 돈, 한 움큼의 권력도 절대,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 그자들은 그렇게 몇 십, 몇 백, 아니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파렴치한 폭력과 사탕발림으로 부와 권력을 독점해왔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뿐임을 우리는 항상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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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원정기 - 아나바시스
크세노폰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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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동생 소(小) 퀴로스는 형에게 반기를 들 음모를 꾸민다. 형에게 처형당할 뻔 했던 경험 때문이었다. 퀴로스는 그리스인 용병대 1만 명을 모아 형이 있는 내륙으로 깊숙이 진군한다. 드디어 페르시아 왕과의 일전을 치르게 된 그리스 용병대. 이들은 뛰어난 용맹으로 적군의 좌익을 물리치지만, 퀴로스가 흥분한 나머지 형을 직접 잡으러 적진으로 뛰어들었다가 그만 전사하고 만다. 그리스인들은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나 고용주가 사라진 상황. 이들은 과연 무사히 그리스로 귀환할 수 있을까?

마치 영화 시나리오처럼 흥미진진한 이 실제 상황에서 저자인 크세노폰이 등장한다. 적국 한가운데 고립되어 식량마저 서서히 떨어져가는 위급한 때, 페르시아의 태수와 협상하러 갔던 그리스군 주요 지휘관들이 모조리 붙들려 처형당하고 만다. 페르시아 태수 팃사페르네스는 남겨진 그리스 용병들에게 무구를 자신들에게 넘기고 항복하면 무사히 조국으로 보내주겠다고 유혹하지만, 크세노폰을 비롯한 새로 선출된 지휘관들은 단호히 거절한다. 페르시아가 당대의 최강국이라고 해도 1만 명이나 되는 병력이 자국 한복판에 있는 것 자체가 엄청난 위협이므로 자기들을 온전히 집으로 돌려보낼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그들은 강을 건너고 산을 넘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고된 행군을 시작한다.

삼국지 같은 소설에서 걸핏하면 10만, 20만 대군이 등장하니 숫자 감각이 무뎌진 것이지, 기실 1만 명의 군사란 건 엄청난 숫자다. 이들의 식량을 하루하루 조달하는 것이 군대의 주요 목표였으니까. 낯선 땅에서, 게다가 그 땅의 주인들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을 때 식량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약탈 뿐. 약탈을 하기 위해선 무력 충돌이 불가피하다. 페르시아 영토 내의 수많은 호전적인 부족들과 매일매일 싸워야만 먹을 것을 얻고 살아남을 수 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크세노폰의 리더십은 빛난다. 철학자이자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유명한 그는 행군 중에 매번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는데, 그때마다 올바른 판단으로 동료들을 인도한다. 크세노폰의 고결한 성품과 흔들리지 않는 의지, 이타적이고 금욕적인 성격이 이를 가능케 한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기> 같은 전쟁 문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다룬 그리스의 대(對) 페르시아 전쟁과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다음 시대에 벌어진 이야기를 서술한다. 즉,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테가 아테나이에 승리를 거둔 이후의 세계이다.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스파르테인, 아테나이인, 아카이아인 등 출신이 다른 용병들이 뜻을 합쳐 단결하는 모습과 크세노폰의 돋보이는 지도력을 살필 수 있는 이 책은 조직의 리더라면 반드시 참고해야할 레퍼런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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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 - 그리스어 원전 번역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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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고전 ‘오디세이’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몇몇 이미지들이 있다. 오디세우스가 사이렌들의 노래에 현혹되지 않으려 배 돛에 몸을 묶고 해협을 통과하는 장면, 동료들을 잡아먹는 외눈박이 퀴클롭스가 잠든 사이 날카롭게 다듬은 통나무로 눈을 찌르고 도망치는 장면 같은 것들 말이다. 아주 어릴 적 KBS <주말의 명화>에서 오래된 헐리웃 영화의 어설픈 애니매트로닉스 기법으로 이런 장면들이 펼쳐지는 걸 두근두근 하면서 본 기억이 난다.

그러나 사실 오뒷세이아의 주된 줄거리는 이런 기이한 모험담이 아니다. 이 이야기의 메인은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오뒷세우스가 죽었다고 판단한 수많은 유력자들이 오뒷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구혼하고, 백 명이 넘는 구혼자들이 오뒷세우스의 궁전에서 매일같이 오뒷세우스의 재산을 탕진하고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겁박하는데, 천신만고 끝에 오뒷세우스가 귀향하여 이 무례한 구혼자들을 모조리 척살하고 자신 아내와 지위를 다시 되찾는 이야기다. 위의 모험담은 오뒷세우스가 귀향하는 과정에서 파이아케스족의 왕 알키노오스의 궁전에서 하룻밤 묵으며 풀어내는 썰로, 오뒷세이아 전체 24권 중 4권의 분량에 불과하다. 다만, 이 이야기가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고 드라마틱해서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오디세이’의 이미지는 거개가 이 모험담으로 구축된 것이다. 오뒷세우스가 고향 이타케에 도착하여 구혼자들을 파멸에 몰아놓을 음모를 꾸미고 마침내 복수에 성공하는데 까지가 총 11권으로 오뒷세이아의 절반에 가까운 분량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일리아스>가 아킬레우스의 복수담이라면, <오뒷세이아>는 오뒷세우스의 복수담이다. <일리아스>에서는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와의 정정당당한 일대일 대결로 복수에 성공한다면, <오뒷세이아>에서는 오뒷세우스가 다수의 구혼자들에게 은밀한 음모를 꾸며 복수에 성공한다. <오뒷세이아>의 결말부는 방랑자로 변장한 오뒷세우스가 자신의 궁전에서 구혼자들에게 온갖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기회를 엿보다가 한방에 몰살시키는 내러티브로 독자들의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한다. <일리아스>에서의 아킬레우스의 행동이 신화적이라면, <오뒷세이아>에서의 오뒷세우스는 비교적 현실적이다. <오뒷세이아>에서도 올림포스의 신들이 등장하여 오뒷세우스를 돕거나 방해하지만, 결국 자신의 정해진 운명을 헤쳐나가는 것은 ‘지혜’라고 포장된 오뒷세우스의 간교해 보이기까지 하는 계략이다. 인류의 여명기에 신화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의 변화를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두 작품의 간극이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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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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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문학의 정수이자 서양 문학의 효시라 불리는 대서사시 일리아스. 이 작품이 트로이아 전쟁 전체(파리스가 헬레네를 납치하여 트로이 전쟁이 발발하고 그리스군과 트로이아군이 공방을 펼치다가 결국 트로이 목마로 트로이아가 함락되기까지)를 다루었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있으나(사실 내가 그랬다), 일리아스 속의 타임라인은 극히 짧다. 10년 간의 트로이아 전쟁 중 마지막 해 중 51일 간의 기록이며 그 중에서도 중요한 사건이 발생한 건 4~5일에 불과하다. 많이들 알고 있겠지만 줄거리를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아폴론이 자신의 사제를 모욕한 아가멤논에 분노하여 그리스군 진영에 역병을 창궐케 하고, 아폴론 신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그리스군 주요 장수들이 회의를 벌이던 중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가 충돌한다. 명예를 빼앗긴 아킬레우스는 자기 진중(陣中)에 틀어박히고, 최고의 용장(勇將)이 빠진 그리스군은 헥토르가 이끄는 트로이아 군에 연전연패한다. 그리스 군은 함대를 이끌고 트로이아를 침공했기에 해변에 배들을 끌어올려놓았는데, 여기까지 트로이아군이 밀고 들어와 배를 불태우려 한다. 이때 아킬레우스의 시종이자 친우인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에게 간청하여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입고 반격에 나선다. 트로이아의 성벽까지는 진격하지 말라는 아킬레우스의 당부를 잊은 파트로클로스는 트로이아의 제일 가는 장수 헥토르에게 목숨을 빼앗긴다. 친구를 잃은 슬픔에 미쳐버린 아킬레우스는 분노의 화신이 되어 자기 앞을 가로막는 트로이아의 용사들을 모조리 쓰러뜨리고 헥토르마저 간단히 처치하고 그의 시체를 끌고 그리스군 진영으로 돌아온다. 아킬레우스는 12일 동안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매어 끌고 다니며 모욕하나, 아들의 시신을 돌려 받으러 온 프리아모스의 눈물어린 호소에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주고, 프리아모스는 트로이아로 돌아와 헥토르의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일리아스는 끝을 맺는다.

이 작품에는 무수히 많은 ‘신과 같은’ 아름다운 청년들이 등장하여 전투를 벌이고 처절히 죽어간다. 고대의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잔혹한 묘사도 눈에 띈다. 작품의 배경이 후기 청동기여서 모든 무기는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고, 이 청동 무기들은 인간의 육체를 간단히 찢어 발긴다. 두 장수가 맞붙어도 단 두 세 합 만에 승부가 결정나고(보통 투창을 던져 상대의 몸을 꿰뚫어서 ‘무릎을 풀어’ 버린다) 승자는 패자의 무구를 벗기느라 바쁘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에서는 전투에서 승리한 쪽이 패배한 전사자들의 무구를 벗겨 노획했다. 이는 청동으로 무구를 만드는 데 많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사비로 무구를 마련해야 했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부유한 자만이 중무장보병이 될 수 있었다.) 야만적이라고 까지 느껴지지만 실상은 이게 전쟁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삼국지연의 처럼 낭만적인 일대일 대결은 환상이 아닐까?

현재의 시점으로 보면 51일 밖에 안 되는 기간 동안 일어나는 사건의 플롯이 매우 단순하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며, 주요 인물들의 가계도와 역사, 그리고 트로이아 전쟁 전체의 경과가 중간중간 서술되어 번역본의 분량이 7백 페이지가 넘어간다. 그러나 고대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묘사가 구체적이고 심리 묘사가 매우 생생하여 읽는 데 전혀 지루하지 않다. 신화와 현실이 마구 뒤섞여 있지만 신들의 의지가 인물들의 행동에 묘한 개연성을 부여하며 올림포스 신들의 강력함이 극의 흐름을 깨뜨리지 않는다. 호메로스가 대문호로 불리는 이유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쟁쟁한 장수들 대부분이 말을 타지 않고 뛰어다니며 전투를 치른다는 것이다. 잘해야 전차를 타고 달리다 뛰어내려 상대와 맞붙는다. 당시는 등자가 발명되기 전이어서 말을 타고 무기를 휘두를 수 없었기에 기병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다. 그래서 뛰어난 명마들이 나오지만 이 명마를 타고 질주하는 장면은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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