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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원정기 - 아나바시스
크세노폰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1년 8월
평점 :
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동생 소(小) 퀴로스는 형에게 반기를 들 음모를 꾸민다. 형에게 처형당할 뻔 했던 경험 때문이었다. 퀴로스는 그리스인 용병대 1만 명을 모아 형이 있는 내륙으로 깊숙이 진군한다. 드디어 페르시아 왕과의 일전을 치르게 된 그리스 용병대. 이들은 뛰어난 용맹으로 적군의 좌익을 물리치지만, 퀴로스가 흥분한 나머지 형을 직접 잡으러 적진으로 뛰어들었다가 그만 전사하고 만다. 그리스인들은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나 고용주가 사라진 상황. 이들은 과연 무사히 그리스로 귀환할 수 있을까?
마치 영화 시나리오처럼 흥미진진한 이 실제 상황에서 저자인 크세노폰이 등장한다. 적국 한가운데 고립되어 식량마저 서서히 떨어져가는 위급한 때, 페르시아의 태수와 협상하러 갔던 그리스군 주요 지휘관들이 모조리 붙들려 처형당하고 만다. 페르시아 태수 팃사페르네스는 남겨진 그리스 용병들에게 무구를 자신들에게 넘기고 항복하면 무사히 조국으로 보내주겠다고 유혹하지만, 크세노폰을 비롯한 새로 선출된 지휘관들은 단호히 거절한다. 페르시아가 당대의 최강국이라고 해도 1만 명이나 되는 병력이 자국 한복판에 있는 것 자체가 엄청난 위협이므로 자기들을 온전히 집으로 돌려보낼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그들은 강을 건너고 산을 넘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고된 행군을 시작한다.
삼국지 같은 소설에서 걸핏하면 10만, 20만 대군이 등장하니 숫자 감각이 무뎌진 것이지, 기실 1만 명의 군사란 건 엄청난 숫자다. 이들의 식량을 하루하루 조달하는 것이 군대의 주요 목표였으니까. 낯선 땅에서, 게다가 그 땅의 주인들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을 때 식량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약탈 뿐. 약탈을 하기 위해선 무력 충돌이 불가피하다. 페르시아 영토 내의 수많은 호전적인 부족들과 매일매일 싸워야만 먹을 것을 얻고 살아남을 수 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크세노폰의 리더십은 빛난다. 철학자이자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유명한 그는 행군 중에 매번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는데, 그때마다 올바른 판단으로 동료들을 인도한다. 크세노폰의 고결한 성품과 흔들리지 않는 의지, 이타적이고 금욕적인 성격이 이를 가능케 한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기> 같은 전쟁 문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다룬 그리스의 대(對) 페르시아 전쟁과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다음 시대에 벌어진 이야기를 서술한다. 즉,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테가 아테나이에 승리를 거둔 이후의 세계이다.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스파르테인, 아테나이인, 아카이아인 등 출신이 다른 용병들이 뜻을 합쳐 단결하는 모습과 크세노폰의 돋보이는 지도력을 살필 수 있는 이 책은 조직의 리더라면 반드시 참고해야할 레퍼런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