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뒷세이아 - 그리스어 원전 번역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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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고전 ‘오디세이’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몇몇 이미지들이 있다. 오디세우스가 사이렌들의 노래에 현혹되지 않으려 배 돛에 몸을 묶고 해협을 통과하는 장면, 동료들을 잡아먹는 외눈박이 퀴클롭스가 잠든 사이 날카롭게 다듬은 통나무로 눈을 찌르고 도망치는 장면 같은 것들 말이다. 아주 어릴 적 KBS <주말의 명화>에서 오래된 헐리웃 영화의 어설픈 애니매트로닉스 기법으로 이런 장면들이 펼쳐지는 걸 두근두근 하면서 본 기억이 난다.

그러나 사실 오뒷세이아의 주된 줄거리는 이런 기이한 모험담이 아니다. 이 이야기의 메인은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오뒷세우스가 죽었다고 판단한 수많은 유력자들이 오뒷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구혼하고, 백 명이 넘는 구혼자들이 오뒷세우스의 궁전에서 매일같이 오뒷세우스의 재산을 탕진하고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겁박하는데, 천신만고 끝에 오뒷세우스가 귀향하여 이 무례한 구혼자들을 모조리 척살하고 자신 아내와 지위를 다시 되찾는 이야기다. 위의 모험담은 오뒷세우스가 귀향하는 과정에서 파이아케스족의 왕 알키노오스의 궁전에서 하룻밤 묵으며 풀어내는 썰로, 오뒷세이아 전체 24권 중 4권의 분량에 불과하다. 다만, 이 이야기가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고 드라마틱해서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오디세이’의 이미지는 거개가 이 모험담으로 구축된 것이다. 오뒷세우스가 고향 이타케에 도착하여 구혼자들을 파멸에 몰아놓을 음모를 꾸미고 마침내 복수에 성공하는데 까지가 총 11권으로 오뒷세이아의 절반에 가까운 분량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일리아스>가 아킬레우스의 복수담이라면, <오뒷세이아>는 오뒷세우스의 복수담이다. <일리아스>에서는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와의 정정당당한 일대일 대결로 복수에 성공한다면, <오뒷세이아>에서는 오뒷세우스가 다수의 구혼자들에게 은밀한 음모를 꾸며 복수에 성공한다. <오뒷세이아>의 결말부는 방랑자로 변장한 오뒷세우스가 자신의 궁전에서 구혼자들에게 온갖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기회를 엿보다가 한방에 몰살시키는 내러티브로 독자들의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한다. <일리아스>에서의 아킬레우스의 행동이 신화적이라면, <오뒷세이아>에서의 오뒷세우스는 비교적 현실적이다. <오뒷세이아>에서도 올림포스의 신들이 등장하여 오뒷세우스를 돕거나 방해하지만, 결국 자신의 정해진 운명을 헤쳐나가는 것은 ‘지혜’라고 포장된 오뒷세우스의 간교해 보이기까지 하는 계략이다. 인류의 여명기에 신화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의 변화를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두 작품의 간극이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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