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의 일. 박서련.
‘체공녀 강주룡’을 읽고 박서련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팟캐에서 듣고 빌려 읽었다. 몇 년만에 몰입해서 읽은 소설이다. 지하철에서 읽다가 역에서 못 내릴 뻔했다. SNS 셀럽이었던 동생의 죽음을, 편의점 알바를 하며 임고를 준비하는 언니가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언니가 동생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타살임을 밝혀 간다.제목 ‘마르타’는 성경에 등장하는 마리아의 언니 마르다다. 성경의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가 소설에서 몇 번 언급된다. 일에 분주하던 마리아보다, 말씀을 듣던 마리아를 칭찬한 예수님의 말을 새롭게 해석한다. 말씀을 듣는 자리에 쉽게 참여할 수 없던 여성을 경멸하던, 당시 유대 남성에 대한 메시지이지, 예수님이 마르다를 책망한 게 아니라고 주인공 수아의 입을 빌어 서술한다. 성경에는 형제, 자매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탕자의 형과 탕자, 비유에서 첫째와 둘째, 가인과 아벨, 야곱과 에서, 마르다와 마리아, 넓게 보면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형제 자매들은 서로 다르고, 질투하기도 하고, 열등감 또는 우월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인류 최초의 살인이, 형제 살인(가인의 살인)이었던 것은, ‘비교’에서 생겨나는 인간 간의 갈등의 원형은 ‘형제 관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갈등에는 늘 부모가 끼어 있다. 따라서 성장은 형제에게서 느끼는 비교 의식을 극복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부모를 이해하기도 하고. 마르다가 마리아에 대한 열등감(있었다면)을 이겨내거나, 탕자의 형이 아버지의 동생에 대한 사랑을 이해하게 되거나.
(쓰고 나서 보니 소설 스토리는 하나도 없네) 친하지도, 그다지 사랑하지도 않던 동생의 죽음의 실체를 밝히고, 복수(?)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건 죽은 동생 경아와의 관계는 그 과정을 통해 회복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수아와 경아의 관계가 카페 매니저 언니와 수아의 관계로 치환되어 나타난 것은 아닐까.
‘체공녀 강주룡’에서는 사투리를 실감나게 들려주었는데, ‘마르타의 일’에선 욕을 찰지게 들려준다. 소설 속 등장인물인 ‘익명’이 ‘수아’에게 ‘무섭다’고 했는데, 자기관리를 철두철미하게 하는 임고생인 ‘수아’같은 여성이 욕도 찰지게 하면 정말 무서울 것 같다. 친구 ‘약대’와의 대화 장면은 실감난다. 아무튼,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