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화를 그리는 화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시공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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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하면 90년작 [플랑드르의 그림]과 93년작 [뒤마클럽]으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작가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 외에 그다지 알려진 팩션소설이 없었던 90년대, 다빈치 코드가 이끌어낸 팩션소설의 열풍이 몰아치기 이전의 그 시기에 이 두 작품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상대적으로 그 후의 작품활동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은 인상이 있는데, 그렇기에 이 소설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가 더 반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전작들이 일종의 장르소설이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번작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이번작은 순수문학에 가깝다. 뒤마 클럽 이후의 작품들도 다수 출간된 모양이지만 접해본적이 없던 내게 이런 변화는 다소 놀랍게 느껴지기도 했다. 책표지에 인용된 작품평들을 봐도 예측에서 벗어난 행보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그림과 역사에 대한 깊은 지식과 작가 자신의 사진기자로써의 경험이 녹아들어있다는 점에서 볼 때 이 작품은 하나의 수렴점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생각된다. 

스페인 아라에스 협곡 벼랑 위에 망루가 하나 있다. 오랫동안 버려졌던 이 망루의 내벽에 한 화가가 벽화를 그리고 있다. 화가 '파울케스'는 꽤 유명했던 전직 사진기자였으나 1년 전에 은퇴를 한 후 전쟁화를 그리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발이 닿지 않는 그곳에서 홀로 작업해오던 그에게 어느 날 한 남자가 방문한다. 자신을 '마르코비츠'라고 소개한 그 남자는 자신의 방문 목적을 밝힌다. 자신은 '파울케스', 당신을 죽이기 위해 이곳에 왔노라고..

의외의 방문으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두 인물이 며칠에 걸쳐 나누게 되는 대화를 따라간다. 대화를 나누면서 '파울케스'는 전장을 누비면서 자신이 보아온 것을 반추해본다. 무엇보다 그의 옆에 함께 했던 여인 '올비도'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며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법칙에 대한 사유를 계속한다. 서사적인 진행보다는 인물들의 가치관과 사유의 틀, 철학적인 세계관이 중심이 되는 소설에 가까운만큼 난해한 면이 있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이 대부분이고 인물도 중층적이기 때문에 이런 인물이다. 저런 인물이다 단정지을 수 없다. 그만큼 읽기 쉬운 소설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 복잡한 다층 중 한 층만을 떼어놓고 보자면 화자 '파울케스'는 언제나 객관적인 관찰자로서의 삶을 살고자 했던 인물이다. 그는 세계의 법칙성과 그 법칙성의 무자비함을 믿었기에 전쟁터를 누비며 자신의 사진 안에 그 법칙과 무자비성을 담아내왔다. 그랬던 그가 어느날 사진을 버리고 전쟁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사진을 찍으려면 프레임 안에 세계를 담아내기 위해 프레임 밖의 것을 잘라내버려야 한다. 반면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세계를 일단 자신 안에 수렴하고 자신의 붓을 통해 화폭 안에 재탄생시켜야한다. 이러한 변화의 방아쇠가 된 것은 사랑하는 여인 '올비도'의 죽음이다. 파울케스는 올비도의 죽음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감추려하고, 그것을 눈치챈 마르코비츠는 그것을 스스로의 입으로 밝혀주도록 종용한다. 파울케스가 말하기를 꺼려하는 그 사실이 이 소설의 폭발점이 된다고 할 것이다.

여러모로 한번 읽었다고 모든 층위를 잡아낼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그렇기에 좋은 소설의 요건 중 한가지는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천천히 반복해서 읽어가며 삶과 우주의 의미, 혹은 무의미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책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더불어 작가의 새로운 도전이 어떤 작품으로 이어져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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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0분에 세 번 거짓말한다 - 속고 배신당하고 뒤통수 맞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로버트 펠드먼 지음, 이재경 옮김 / 예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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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미국 드라마를 즐겨 시청하는 편이다. 스릴러나 미스테리를 특히 즐겨보는데, 근래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로 'Lie to me'와 'Mentalist'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둘 다 일종의 심리전문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Lie to me의 주인공은 정부의 의뢰를 받아 특정인물이 거짓말을 하는지 여부를 판단해주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대상의 신체신호를 감지함으로써 거짓말 여부를 판단해낸다. 눈을 찌푸린다던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던가 하는 것을 보고 대상의 감정을 알아내고 거기에 기반하여 거짓말인지 여부를 알아내는 것이다. Mentalist의 주인공은 한술 더 뜬다. 그는 그냥 상대편의 심리를 '안다'. 정황상 표정이나 행동으로 눈치채는구나 싶지만 드라마상에서 설명을 생략해버리고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귀신같은 '독심술사'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특이한 소재지만 아무런 부담없이 재미있게 봤다. 간혹 의심스런 부분도 있었지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신체신호를 발생시키기 마련이며 그런 신호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 '우리는 10분에 세 번 거짓말한다'는 그런 나에게 "정말 그럴까? 우리 주변에 얼마나 거짓말이 횡행하고 있는지, 얼마나 거짓말을 눈치채지 못하고 살아가는지 보여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의 원제는 "The Liar in Your Life" 즉 "당신 삶 속의 거짓말쟁이"이다. 이 제목은 내용을 아주 적절히 반영한다고 생각되는데, 왜냐면 작가는 이 책에서 우리 삶의 주체와 객체, 즉 우리 자신과 우리가 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쟁이임을 증명하고자 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 삶 안에는 당신이 하는 거짓말과 당신 주변의 사람들이 하는 거짓말이 가득 담겨있음을 중의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는 제목인 셈이다. 

이 책은 우선 거짓말이 성행할 수 있는 배경으로 거짓말쟁이의 어드밴티지를 설명하면서 책을 연다. 거짓말은 정확한 신체신호를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에 통념과 달리 수사관이나 심리학자조차 알아채기 어렵고 거짓말 탐지기의 신뢰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생물학적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기 위해 모든 사람은 타인의 말을 믿는 진실편향을 가지고 태어나게 된다. 심지어 속는 사람은 대부분 감정적 이득을 얻기 때문에 속이는 사람과 감정적인 공조관계를 이루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런 거짓말을 알아채는 능력을 훈련으로 기를 수 있느냐면 거짓말을 하고 그것을 알리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훈련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암울한 축포(?)로 시작된 책은 아이들의 거짓말, 동물의 거짓말, 외도와 거짓말, 자기기만, 겉치레 속임수, 악의의 거짓말, 대중 매체의 부정직함, 직장내 속임수, 인터넷 거짓말을 하나하나 파헤쳐가며 이 세상 거짓 없는 곳이 없음을 보여준다. 

당위적으로 암울한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책이지만 워낙 재미있는 사례와 다양한 통계자료를 들어주고 있기 때문에 읽는 재미는 상당히 쏠쏠하다. 거짓에 홀랑 넘어가는 다양한 군상들을 파노라마처럼 보고 있노라면 반전과 관음의 재미를 동시에 느끼게 되는 것이다. 특히 미국 도서의 특징이라고 할만한 미국식 유머가 곳곳에 가미되어 있어, 책장 넘기는 속도를 빠르게 했다는 점도 말해두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위적으로 나오는 암울한 결론'은 가슴아플 뿐... 작가는 맺는 글로 거짓말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방안을 제시한다. AHA 자세라는 것인데 요약하자면 평상시에 방심하지 말고 상대방의 말을 에누리해서 듣는 법을 몸에 익혀두라는 것이다. 그리고 속임을 당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불신을 잃는 것은 도움이 안되므로 설사 속았더라도 불신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라고 조언한다(!) 

이 책은 거짓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갑작스런 전화판매원의 연락, 방문판매원의 접근, 가족이 사고를 당했으니 입금하라는 문자 등등-에서 거짓을 판별하는 능력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 편이다. 내용의 전개로 보나, 결론으로 보나 그러한 상황에서의 거짓말 판별 능력은 인정하고 있지만 책의 주제상 서술을 배제한 것으로 보인다. 일상생활에서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로 거짓말과 맞닥뜨리게 되면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판별해낼 수 있는 확률은 동전던지기의 앞뒷면을 맞출 확률보다도 낮다는 점을 상대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책을 덮고 나면 대책없는 질타를 들은 것 같아 왠지 불공정하다(?)는 인상도 받게 되지만... 어쨌든 작가가 하고 싶은 말 하나는 확실하다. [맘먹고 속이려 들면 속지 않을 사람 없다]는 것.. 

거짓말아, 너를 어쩌면 좋으냐?? 

<뱀발> 번역서의 경우, 특히 비소설 분야의 책들은 원제 대신 독자적으로 자극적인 제목을 만들어 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많은 경우, 원제보다 번역제목이 더 센스있게 책의 내용을 드러내주는 경우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개인적으로는 언제부턴가 습관적으로 원제부터 확인하게 된다. 출판사의 고충이야 알고도 남음이 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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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차일드
김현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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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차일드. 낭만적인 제목과 파스텔톤으로 그려진, 오아시스를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이 담긴 표지. 당연한듯 달짝지근한 사랑의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놀라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나와 가장 처음 본 것은 난도질된 우리의 몸이었다.' 

이 소설은 이러한 첫문장으로 시작된다. 낙태된 아기들의 이야기. 생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그렇기에 비극이라는 말조차 어울리지 않는 이 아기들의 영혼이 '우리'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화자가 되어 미래로 날아간다. '수'와 '진'이라는 두 남녀가 재회하는 순간까지... 인간을 폐기하는 쓰레기장에서 재회하는 그 순간으로 말이다.

이 소설은 '수'와 '진'의 재회장면으로부터 시작되어 시간을 거슬러올라가면서 그들이 살아가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를 그려나간다. 그들이 사는 세계는 인간조차 '물화(物化)'된 세계이다. 인간의 감성과 가치관은 효율성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때문에 노인이 되어 사회에 기여할 수 없는 자들은 '폐기'되어 기름과 비누로 재활용된다. 특수하게 조작되어 늙지 않는 '인간'은 평생동안 아이의 모습으로 애완동물처럼 길러지다가 필요하면 권력자의 '디저트'로 먹힌다. 이 '먹힌다'는 말에는 아무런 은유적 의미가 없다. 영원히 늙지않고 싶은 욕망에 권력자들은 아이들을 요리하여 디저트로 먹어치울 뿐.. 이 책을 읽어가다보면 잔인한 묘사와 비인간화된 군상에 소름끼치고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의심이 생겨날 것이다. '너무 자극적으로 묘사한 것 아닌가? 게다가 현실성이 너무 없다. 아무리 비인간화가 진행되어도 이런 사회가 출현할 리 있겠는가?' 분명 다소간 과장된 부분이 없지는 않아보인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삶 속에서 이러한 디스토피아의 씨앗을 너무나 많이 보게 되는 것은 어찌할 것인가...  

노인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고령화 사회가 도래되면 사회는 경쟁력을 잃고 존속조차 위험해진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많이 낳는 것이 애국이라고 한다. 이러한 말에는 노인은 '문제'거리이며, 사회는 개인보다 우선되는 '가치'이고, 개인은 애국이라는 이름 하에 아이들을 '생산'해야 된다는 함의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함의를 진지하게 고민해본적이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아이돌의 연령이 20세 밑으로 쭉쭉 내려가 10대 초반까지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아직 가치관도 확실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더 옷을 벗으라고, 더 엉덩이를 흔들라고, 더 유혹적인 표정을 지으라고, 그 젊음을 소비하겠다고 외친다. 이러한 인간의 욕망에 기대어 유치원생 아이들이 장기자랑에 나와 탱크탑과 숏팬츠를 입고 의미도 모르는 외설적인 춤을 춘다. 그것을 보는 어른들은 기특하다고, 심지어 신동이라고 칭찬하기까지 한다.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혹은 흐릿하게만 바라보는 사회의 어둠을 작가다운 예민함으로 잡아내어 소설 속에 그려나간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러한 모습을 그려내며 즐거워할 리 없다. 그래서 작가는 아팠다고 한다. 이 소설을 그려내며 내내 아팠다고 후기에서 밝힌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일단 아픔을 느껴야 한다. 아픔을 느껴야 치료를 하기 위한 행동을 하게 되니까..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우리가 경계하지 않는, 무감각해진 미래의 모습을 대신 아파하며 그려낸 것이리라.. 

태아인 '우리'들의 거꾸로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도달하게 되는 '수'와 '진'의 출발점을 용산참사 장면으로 잡아낸 것은 놀랍지도 않은 일이리라. 근 몇년간 일어난 끔찍한 사건들은-늘 그렇듯이-많고 많지만, 우리가 가장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그렇지만 무감각하게 덮어버리고 만 사건이 용산참사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가 부끄러움과 경계를 잊어버리는 지점에서부터 비극은 시작되는 것이다. 늘 그렇듯이.. 

'쓰레기의 탄생' 지점까지 돌아본 '우리'는 다시 인간 폐기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수'와 '진'의 폐기 직전에 작가가 남기는 작은 희망의 씨앗을 본다. 애초에 이 책은 멜로적인 소설이라 보기 어렵고 '수'와 '진'이 평생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 역시 소설의 주제에 기여하는 바는 별로 없지 않은가 한다. 때문에 마지막 장면에서 뿌려지는 희망의 씨앗은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기도 하다. (냉정한 듯 하면서도 사실은 지나치게 파토스를 많이 담아낸 문체도 다소 부적절하지 않은가 느껴지기도 했다.) 작가는 이런 면을 인정하면서도 '수'와 '진'의 인생이 너무 아파서 마지막 장면에까지 냉정할 수 없었다고 한다. 메시지를 위해서 다소간의 무리를 감수했다는 것이었다. 작가의 이런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픔'을 느끼라고,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미래에도 소중하기를 바란다면 무감각해지지 말라고 말하는 작가에게 다른 결말을 바랄 수는 없는 것이었다. 

태고로부터의 불멸의 진리 한 가지. 인간은 악하지도 않고 선하지도 많다는 것. 그렇기에 인간에게 좌절해서도 안되고 지나치게 낙관해서도 안될 일이리라. 인간이 악해진다면 그것은 우리의 선택이고 선해지는 것도 우리의 선택인 것이다. 물론 그 선택이 옳을지 그를지는 시간만이 아는 일. 하지만 최소한 '아픔'을 느끼고 그 아픔을 덜어내기 위한 선택을 해간다면.... 나는 현재 얼마나 예민한가, '어쩔 수 없다'는 말 뒤로 나의 둔감함을 키워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 다른 분의 서평을 보고 뒤늦게 러브 차일드가 사생아를 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이는 것과 실제의 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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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유지나 외 지음 / 작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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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보니 '오늘의 시', '오늘의 소설' 편을 볼 때의 소극적인 자세와는 달리 '오늘의 영화' 편은 적극적으로 읽어나갔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에 실린 시나 소설 중 2,3편 정도나 봤을까 싶었던 것과 비교해볼 때, 소개된 영화 중 반 이상은 봤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역시 나는 영화 세대인가'라는 생각과 동시에 역시 뭔가 안다 싶으면 기준도 빡빡해지고 까다로워지는가 하는 생각도 들어 쓴웃음을 짓게 된다. 대중적인 영화 보기를 즐기는 내가 소개된 영화의 절반 이상을 보았다는 이야기는 달리 말하면 이 책의 선정 기준은 상당히 무난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마더', '국가대표', '박쥐', '워낭소리', '슬럼독 밀리어네어', '아바타' 등 많은 작품이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둔 작품들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책에는 한국 영화 12편과 외국 영화 9편이 선정되어 있으며, 각각의 영화에 대한 선정위원의 감상평이 실려 있다. 복잡한 분석보다는 씨네21이나 무비위크의 컬럼에서 봄직한 간략한 평에 가깝다는 느낌인데, 조금 더 깊은 내용을 담아내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개인적 취향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영화 쪽의 높은 접근성을 감안해보면 대부분의 독자가 나와 비슷한 정도로 영화를 보았을 것이라고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평은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적절하겠지만 영화를 본 사람에게는 아쉬운 정도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영화 자체가 대부분 대중적이었던 것만큼 더욱 깊이있는 평설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실제로 다른 '오늘의' 시리즈에 비해 분량이 적은 편이기도 하고... 책 뒤에 실린 봉준호 감독과의 인터뷰를 흥미롭게 읽었는데, 구성을 바꾸어 모든 작품에 감독과의 인터뷰를 실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국내 감독의 것만이라도 말이다. 재미도 있고 내용도 풍부해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무난하게 정리해낸 책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같은 시리즈 물이라 해도 오늘의 시, 소설과 오늘의 영화 편은 다른 방향을 잡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동일한 시리즈로 묶어가다 보니 알게 모르게 다른 것을 같은 형식으로 담아내는 무리수가 생긴 것은 아닐지... 발간 8년째 접어들었다고 하는데, 조금은 색다른 시도를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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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작가 편집부 엮음 / 작가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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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7년째를 맞이한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리즈 중 ’시’ 편이다. 어쩌다보니 오늘의.. 시리즈를 다 읽어 보았는데,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시’ 편이었다. 소설 편은 내용이 다소 빈약하다는 인상이 있었고, 영화 편은 선정작에 대해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았기 때문인 듯.. 개인적인 취향이 작용한 바이지만, 시 편이 가장 풍부하면서도 다양한 색깔을 띄고 있다고 생각한다. 

구성은 ’오늘의 소설’ 편과 동일하다. 전반부에 ’오늘의 시’라는 이름으로 대표시라고 평가된 시 100편 정도를 싣고 있으며, 후반부에는 25편의 대표 시집을 선정하여 ’오늘의 시집’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선정에 참가한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좌담의 형식으로 실어내며 책을 마무리 짓는다. (시를 작가의 이름에 따라 ㄱ, ㄴ, ㄷ... 순으로 실어둔 것이 왠지 애교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아쉬운 점이라면 시집 파트의 소개가 다소 빈약한 편인지라 차라리 마지막에 실린 심사위원의 평가를 읽고 성향을 가늠해보는 쪽이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류의 책이라면 어떠한 기준으로 대표작을 뽑았는가가 중요하겠지만, 문인도 아니고 분석에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닌 나로써는 평가라는 부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다만 여러 시인들의 다양한 시를 모듬으로 맛볼 수 있다는 즐거움을 누렸을 뿐... 다행스럽게도 이 시리즈는 특별한 경향성이 없는지 비교적 다양한 성격의 시를 실어내주어 더 반가웠던 것 같다. 정형시도 적지 않았던 점도 놀라웠다. 그리고 관념적인 시가 많이 실리지 않았을까 했는데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시도 다수 실려 있어 ’뭔 소리냐 압박’이 적었던 것이 좋았다. 시 끝에 시작노트가 실려있어 이해의 틀을 제공해주었던 점도 눈에 띈다.  

시를 읽는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나는 내가 보지 못하던 것을 보고 듣지 못하던 것을 듣는 시인의 감수성을  추체험이라도 해보고자 시를 읽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직도 시든 뭐든 분석이라도 해서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조금 더 성장해가면 그런 욕망도 조금씩 덜어낼 수 있지 않을지? 책을 덮으며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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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해요 2010-05-23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