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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의 오후 - 남자, 나이듦에 대하여
우에노 지즈코 지음, 오경순 옮김 / 현실문화 / 201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결혼 전까지 9년 동안 자취를 했던 경험에 비춰보면, 독신은 별로 좋지 않다. 나름 시간관념이 철저하고 집안일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자취 경력 7-8년차가 지나고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그간 지켜온 자취생활의 계획성과 철저함은 차츰 무너지게 되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 피곤에 찌든 몸으로 퇴근해 자취방으로 돌아오면 말 그대로 ‘만사가 귀찮았다.’ 될 수 있으면 밥은 밖에서 해결하게 되고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하던 대청소는 그 주기가 점점 벌어지게 되었다. 아침에 빠져나온 이부자리는 저녁 잠자리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대로가 되기 일쑤였고 어머니가 바리바리 싸다 주신 반찬들은 냉장고에서 곰팡이와 함께 발효되었다. 지금도 결혼식 앨범이나 결혼 직전 웨딩촬영을 한 사진들을 보면 피부상태나 몸의 상태가 가장 최악이다. 평생에 한 번 있을(있어야만 하는) 결혼사진을 찍는데, 몸무게도 가장 많이 나가고 피부도 최악일 때였으니 다시 찾아보기 싫을 정도다. 물론, 아직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자취를 하며 사는 수많은 사람들은 내가 한 8년의 자취경력보다 더 오랜 기간 자취를 하고 있음에도 멋있게, 깨끗하게, 건강하게 자취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결혼 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다이어트 했어? 피부 좋아졌다.”였으니, 내게는 독신보다 결혼이 더 맞고, 자취보다 동거가 더 맞는 것 같다.

 

 

이 책 「독신의 오후」는 제목만 놓고 독신의 삶을 찬양한다거나, 독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으로 오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우리보다 훨씬 일찍 노령화가 정착된 일본인이 쓴 책이다. 독신 여성의 관점에서 본 ‘노년 남성들의 독신 생활을 위한 노하우’ 정도로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책이라는 것이 어떤 독자가 읽느냐에 따라 그 제목은 물론 내용의 상당 부분도 다르게 읽힐 수 있는데, 내게 이 책은 ‘노년 독신 남녀의 간병생활의 대두’로 읽혔다. 아무래도 암투병 중이신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6년 째 간병 중이신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간병은 체중과의 싸움이라는 말이 있다. 남편의 아내 간병와 아내의 남편 간병의 차이는 바로 ‘체중’차이다.” (p.229)

 

 

 

두 번의 수술과 네 번의 항암치료를 거쳐 거의 완치 판정을 받기 직전, 그러니까 지난 3월 병원으로부터 또 다시 재발 판정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국립암센터를 찾아 현재 한국에서 유일한 양성자치료를 받으신 것이 지난 5월부터 7월까지였다. 양성자치료를 받기 위해 수술을 받고 2개월 넘게 양성자치료를 받으셨다. 예후가 좋아 지금은 서서히 회복되고 있으신데, 문제는 어머니였다. 2개월 동안 아버지 간병을 하시면서 평소 좋지 않으셨던 허리와 무릎에 문제가 왔다. 그리고 찾아간 정형외과에서 깜짝 놀랄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머니 오른쪽 어깨 인대가 파열되었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인대가 끊어질 정도면 엄청난 고통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참았느냐며 도리어 놀랐다. 체중 차이가 20kg넘게 나는 아버지를 침대에서 일으키고 다시 누이고, 부축하는 과정에서 어깨 인대가 끊어진 것이다. 너무 마음이 아프고 죄송했다.

책에서 이 부분에 대한 소개가 있어 반갑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나 한국의 경우가 비슷한데, 대부분 남성의 수명이 짧고 암 발병 확률도 높다. 그래서 노년 부모의 간병하면, 아버지를 간병하시는 어머니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의 경우처럼. 그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체중’차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책의 내용이 부모님에게서 그대로 적용이 되었다.

노년에 남편이나 아내 누구나 아프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 누구나 바라는 바다. 하지만 지금 암 발병과 투병은 흔한 일이 되었다. 앞으로 나와 내 아내가 노년에 접어들게 되면 또 어떤 병이 더 일반화 될지 모르는 일이다. 책을 읽고 부모님의 경우를 보며 ‘정말 나는 아프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내 뜻대로 되는 일도 아니고, 어떤 병으로 인해 혹시 투병하게 된다면 절대로 아내 손은 빌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불편하겠지만 전문 간병인을 쓰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시니어 세대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국내 여행을 함께 가고 싶은 상대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여성의 대답 중 1위가 ‘가족’, 2위는 ‘친구·지인’, 3위는 ‘남편’의 순이었다. 참고로 남성의 대답은 ‘아내’가 단연코 1위였다.” (p.187)

 

 

 

황혼이혼이 우리 사회에도 만연하다. TV의 모 교양프로그램에서는 황혼이혼을 염두에 둔 노년의 부부가 나와서 상담을 받고 다시 관계가 좋아지는 것을 방송하기도 한다. 저자가 소개한 일본의 조사는 당연하게 생각되면서도 안타깝다. 남편은 노년이 되면 아내를 의지하게 된다는 것. 하지만 아내는 점점 그런 남편에게서 멀어진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며 아직은 신혼이라 생각하는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내도 나처럼 생각하고 있을까?’ 지난 4월 너무 사랑스럽고 예쁜 딸을 낳았다. 어른들 말씀처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정도는 아직 아니지만 너무 귀하다. 그런데 그런 딸아이에게 나는 줄곧 얘기한다. ‘너도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아빠는 엄마가 더 좋아~’ 그런데 아내도 그렇게 생각할까? 갑자기 식은땀이 나려고 한다. 흐흐

노년의 부부가 신체적으로 건강해서 결혼생활을 유지한다고 해서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수십 년 같이 살아도 정서적으로 이혼인 상태도 많다.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서 배우자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 남편과 아내 서로가 너무 사랑하고 너무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한다는 전제 하에, 그 부부의 바람은 한날한시에 눈감는 것일 테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지 않다.

 

 

“남자가 여자와 다른 점은 똑같이 약한데도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p.102)

“남성은 조직 구성에 능하다. 그 대신 남성들이 만든 조직은 그들이 익히 잘 아는 조직, 요컨대 기업과 닮아간다. 당연히 처음에는 자유롭게 만들었을 터인 그 집단이 어느새 부턴가 기업 축소판이 돼버리고 만다.” (p.124)

 

 

 

책은 독신 남성이 여성들과 조화롭게 어울려 생활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사실 이 부분은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아직 젊은 탓이다. 하지만 저자의 지적대로 남성은 좀처럼 자신의 치부나 약점을 드러내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조직도 금세 권력구조로 만들려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이것은 젊은 남성이나 노년의 남성이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랑스러운’ 싱글 남성의 증가는 대환영이다. 그리하여 세상살이가 상부상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해나가기를 기대해본다.” (p.295)

 

 

가는 책의 말미에 ‘사랑스러운 싱글 남성’을 언급한다. 오금이 저리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오그라드는 표현이기는 한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남성들 모두 염두에 둬야 하는 코칭이 아닐까 싶다. 배우자의 죽음이나, 배우자와의 이혼, 혹은 처음부터 비혼인 채로 독신생활을 유지하는 남성이 앞으로 점점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성은 물론 이성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 필수다.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는 사랑스러운 싱글 남성’을 언급한다. 이게 말은 쉽지만 정말 어려운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비슷한 것 같은데 한국 남성들에게 자신의 약함과 한계를 인정하고 터놓는 것은 정말 흉금을 터놓는 친구와의 격한 술자리를 제외하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아내에게도 그렇지 못한 남성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원래 그런 남자다.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 그럴 수는 없다.’라고 고집피울 수도 없다. 책에 소개된 일본의 싱글 남성들, 혼자서 고립되어 살아가는 삶을 피하려면 차라리 눈에 흙을 한번 집어넣은 후 깨끗하게 씻고 사람들과 상부상조하면서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 아! 물론,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대인관계 따위는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독신의 절정고수가 계시다면 그렇게 사시면 된다.

 

 

아~ 나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아내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친구들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웃으면서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만약 내 소중한 사람들이 내 곁을 먼저 떠난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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