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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 - 문학과 예술로 읽는 서울의 일상
류신 지음 / 민음사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지난여름 휴가를 서울로 떠났다. 모두들 산으로, 강으로, 해외로 떠나는 여름휴가를 나와 아내는 2년 째 서울로 떠났다. 한 여름 휴가철 서울은 명절의 그것만큼은 아니지만 조용하고 덜 분주하다. 무엇보다 값이 싸다. 모두들 떠나는 시기라 서울은 자연스럽게 비수기가 된다. 올 여름 ‘여름휴가 In 서울’의 숙소는 강남역 근처 레지던스로 정했다. 대구에서 KTX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 강남역까지 지하철을 이용해 이동한 후 강남대로가 펼쳐진 지상으로 나왔다. 한 여름 땡볕은 대구나 서울이나 다르지 않았다. 강남대로를 등지고 숙소를 찾아 들어선 첫 번째 골목에서 무시무시한 괴물 같은 건물을 마주했다. 30년 넘게 살았지만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아무런 간판도, 아무런 표시도 없는 거대한 유리 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있는 빌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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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외벽은 하나같이 유리였다. 거대한 사각 부빙처럼 빗속에서 번쩍거렸다. 길 건너편에 삼성전자 사옥과 삼성생명 빌딩이 코발트블루 빛을 머금고 검은 하늘을 향해 솟구쳐 있었다.”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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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어떤 건물인지 몰랐다. 어릴 때 친구들과 농담으로 “야, 야! 청와대 지하에 태권브이가 있대~ 그래서 김일성이 쳐들어오면 청와대가 지붕이 반으로 빙~하고 열려서 태권브이가 출동한대~”라고 이야기 했던 그런 광경이 갑자기 떠올랐다. 내게 그 빌딩은 흡사 불시착한 외계 우주선 같기도 하고, 지구 내부에서 돌출된 거대한 암석 같기도 했다. 진귀한 광경에 반은 놀라고 반은 무서워 고개를 들었는데 한 여름 뙤약볕에 눈이 부셔 빌딩의 끝을 볼 수가 없었다. 마치 ‘네 까짓 게 어딜 쳐다 봐!!!’라고 비웃는 것처럼 뙤약볕은 그 강도와 세기를 더했다. 뭐 저런 희한한 빌딩이 다 있어 라고 애써 집어먹은 겁을 내리 누르며 숙소를 찾아 들어갔다. 저녁나절 다시 그곳을 지나며 살펴보니 삼성전자 서초사옥이라 했다. 저녁에 봐도 그 빌딩은 기괴하고 낯설었다. 삼성이라는 재벌 집단에 대한 개인적 감정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건물 자체가 타오르는 사우론의 눈을 품은 모르도르를 보는 듯 했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관광객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사진을 찍었다. 나는 더 기괴했다.

이 책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삼성전자 사옥을 묘사하는 부분을 읽는데 그 때 느꼈던 기괴함이 다시 물일 듯 나를 압도했다.



“나는 서울에 살지 않는다.”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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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서울에 살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도 나도 서울을 떠나 살 수 없다. 공간적으로는 서울에 있지 않지만 저자도 나도 서울을 지향한다. 지양하지 못하고 지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회·정치·문화적으로 다각도로 해석할 수 있지만 크게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에 가면 많고 크고 다양하다. 어떻게 해서든지 IN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려고 용을 쓰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서울을 이상향으로 추구하는 슬픈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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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의 눈으로 서울의 아케이드를 탐색하고 그가 머금었을 사유이미지를 따라서 그려 보려고 애썼다.”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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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쩌면 발터 벤야민에게 바치는 오마쥬다. 벤야민의 대작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얼마 전 재발간 되면서 나의 위시리스트에도 올려두고 있지만 2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을 읽을 기세도 10만원이 넘는 돈을 쾌척해 살 용기도 없어서 뭉그적거리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 류신씨 덕분에 벤야민의 아케이드에 대한 심미적 해석을 소개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는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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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 전화 회의론자였던 구보가 귀국 후 최신 스마트폰을 구입한 것도 견디기 힘든 외로움 때문이었다.” (p.23)

“진보적 정치 이상을 품고 있지만 그 뜻을 실천하기에는 인성이 심약하고 기질이 우울하다. 지리멸렬한 삶에 덧없음을 느끼다가도 현실을 냉소하고, 소심하면서 과대망상에 시달린다. 디지털 중독자이면서 디지털 반성자다. 문명 비판론자이면서 도회적 감수성을 향유하는 도시의 아이다.”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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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구보라는 인물의 1인칭 시각에서 서울을 배회하며 아케이드로 가득찬 서울을 열거한다. 저자는 자세하게 구보를 설정하는데, 지금 시대를 사는 청춘을 잘 묘사하고 있다. SNS와 각종 게시판에서는 키보드 워리어로 활동하지만 당장 짱돌을 들고 거리로 나가거나 하다못해 촛불이라도 한 번 들 용기도 성실함도 없다. 현실에 초연한 듯 말하고 글을 쓰고 생각하고 고민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라고 변명하며 어떤 제안이나 설득조차 시도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끄적인 글을 보고 출판사에서 출판 제의를 하지 않을까, 담배 한 갑사며 심심풀이로 산 삼천 원짜리 로또 종이가 1등, 아니 2등에 당첨되지 않을까 과대망상에 빠져 자위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물질문명이 가진 천박함과 문제에 대해 당장 A4를 가득 채워 말 할 수 있지만 여전히 그 물질과 문명이 주는 호화로움에서 벗어날 생각은 없다.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이며 찌질한 현대인의 모습이 바로 구보다. 구보는 아침에 거리로 나와 저녁에 들어간다. 집에 틀어박혀 자신만의 세계에서 유영하다 나온다.

맞다. 현대인은 외롭다. 외로워 몸서리를 치면서도 외롭지 않다고 한다. 스마트폰도 있고 인터넷도 있고 TV도 있고 친구도 있고 가족도 있다고 핏대를 세우지만 외롭다. 외로워 치를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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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는 교통수단의 위험뿐만 아니라 변덕스러운 비바람도 차단하여 궂은 날씨에도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거나 안락한 기분 속에서 진열된 상품을 구경할 수 있는 안전지대를 확보한다.”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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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는 서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저~기 시골에서도 아케이드가 있다. 들판에 덩그러니 놓인 버스정류장도 아케이드다. 재래시장에 들어 가 고개를 들면 아케이드가 펼쳐진다. 당장 내가 리뷰를 작성하고 있는 내 방 창문 건너편 초등학교에도 아케이드가 보인다.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공중 복도를 만들었는데 지붕이 초록색 아케이드로 덮여 있다. 관심을 기울여 찾아보면 아케이드는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이 아케이드가 19세기 초에 처음 등장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중세 유럽에는 상하수도 체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각 가정에서 나오는 배변을 처리할 수 없어서 그냥 창밖 거리로 던졌다. 그래서 언제 거리를 걷다 남의 똥오줌을 맞을 위험이 있어서 여성을 도로 안쪽으로 걷게 하는 에티켓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만약 아케이드가 몇 백 년 미리 발견되었다면 그런 에티켓은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거리를 다니다 똥오줌에 맞을 위험도 없고 말이다.

어쨌든 19세기 초에 처음 등장해 전성기를 구가하던 아케이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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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에 처음 등장해 전성기를 구가하던 아케이드는 1867년 파리 만국 박람회의 성공 이후 점차 쇠락하기 시작했다. 상업 자본주의가 본격화되면서 급격하게 늘어난 생산품을 진열하고 판매하기에도, 급증한 대중의 소비량을 감당하기에도 아케이드의 면적은 턱없이 부족했다."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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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를 대체한 것이 백화점이다. 아케이드보다 훨씬 작은 면적으로 더 많은 생산품을 진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아직도 아케이드는 산재해 있는 것을 볼 때 아케이드는 몰락했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구보의 시선에서 발견되는 서울시내의 아케이드는 내가 본 것도 있고 보지 못한 것도 있다. 느릿느릿 하지만 심미적이고 문학적인 구보의 시선을 따라 서울 아케이드 구경을 한 바퀴 하고 나니 머리가 좀 어지러웠다. 일단 삽입된 각종 책의 구절이 너무 많다. 정말 많아도 너무 많다. 구보의 독서량이 엄청난 것인지 자자인 류신씨의 독서량이 엄청난 것인지 모르겠지만 문학에서부터 철학에까지 각종 책의 구절이 소개되는데, ‘이거 너무 많은 거 아니야’생각될 정도다. 처음 책의 앞부분을 읽을 때에는 메모를 했는데 너무 많아 중간에 포기했다.

그렇다 보니 책의 중심 흐름인 구보의 시선보다 이런 삽입된 다른 책의 구절들에 더 눈이 가기도 했다.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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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가 우르르 사람들을 토해 낸 빈 배 속으로 구보는 인파에 휩쓸려 떠밀려 들어갔다. 사람들이 ‘네모난 상자에 빽빽이 들어찬 시든 귤처럼, 혹은 나무 궤짝에 겹겹이 줄 맞춰 누운 죽은 갈치처럼’”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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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우와 정말 좋다.’라는 문장을 발견하면 갑자기 구보에게서 멀어 진다. 저 문장이 발췌된 책을 찾게 되고 그 책을 쓴 사람을 찾게 된다. 그렇게 한참 뒤적이다가 다시 구보로 돌아오고 나면 ‘어디까지 했더라?’

어쨌든 구보는 자신이 명명한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위해 서울 시내를 배회한 후 자신만의 세계인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2년 째 여름휴가를 서울로 가는 나로서는 두 번의 여름 휴가 때 미처 보지 못한 서울의 모습을 책을 통해, 구보씨의 시선을 통해 가이드 받은 것 같았다. 올 여름에도 서울로 간다면 강남대로 뒤편 골목에서 기괴하게 마주했던 아케이드 건물 말고도 다른 서울 아케이드에 관심을 가져 볼 작정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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