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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체포하라 - 14인 사건을 통해 보는 18세기 파리의 의사소통망
로버트 단턴 지음, 김지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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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RO조직의 조직원이라 하던 사람들이 “내란음모죄”로 실형을 받았다. 검찰이 내놓은 녹취록에는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도 섞여 들렸다고 하는데 그런 곳에서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체제와 국가를 전복할 만한 이야기들이 오갔을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아직까지 70-80년대 구리고 촌티 나는 운동방식과 그들만의 언어와 위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고 당연히 없어진 줄 알았던 “내란음모죄”라는 국가보안법상 범죄 항목이 버젓이 21세기에도 통용되는 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사건의 초기 녹취록이 발견되고 언론에 기사화 된 편집된 부분만 들어본 후 사람들은 열폭했다. 진보와 보수, 전라도와 경상도, 5-60대와 3-40대는 막론하고 모두들 욕하기에 바빴다. 자기들 연금이나 복지법안을 상정할 때를 제외하고는 모두 싸우는데 주력하는 여당과 야당도 합심해서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위해 뛰었다. 보수언론과 진보언론도 앞 다투어 심해에서 레비아탄을 끌어 올린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누구하나 브레이크를 거는 사람이 없었다. 대선 전 지금의 대통령에게 무시무시한 막말을 쏟아내고 지금 대통령의 아버지의 과거를 농락하던 그 여자를 함께 끌어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을 것이다. 한꺼번에 싹을 잘라버리는 이런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한때 저들과 한 지붕 밑에서 진보네, 개혁이네 손잡고 생활했던 사람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당내 부정선거 논란으로 아비규환이 되고 당 안팎은 물론 그나마 진보정당에 대한 동정을 가지고 있던 일반들에게 마저 싸늘한 비판을 받아야 했던 사태에서 발을 뺄 수 있었다. ‘저들과 나는 완전히 다르다.’라고 만천하에 소리 지를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건 진보정당과 대중과의 괴리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시절 원내에 들어가 법안을 상정할 수 있기라도 했는데 지금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내란음모 이런 키워드로 한 데 묶여 ‘저런 똑같은 빨갱이 놈들’로 치부되고 있다. 단순히 오랜 시간 보수여당을 지지한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들도 진보정당에 대한 기대와 신뢰, 관심 자체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것이 너무 안타깝다. 수십 년 진보정당을 위해 싸워 온 그들의 노력과 피와 땀과 눈물이 ‘내란음모’라는 거대한 보자기에 한 데 싸여 내동댕이쳐졌다. 앞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다시 원내로 진출한 진보정당이 나올지 알 수 없다.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너무 암담해 추측조차 하기 두렵다.

 


“루이 15세를 비방하는 시를 낭송한 혐의로 한 의대생이 체포되면서 14인 사건이 시작되었다.” (p.7)

 

18세기 중반 프랑스에서는 황제를 비방하는 시를 낭송한 혐의로 한 의대생이 체포되었다. 지금보다 수백, 수천 배는 더 막강한 권력을 집중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황제를 향해 조롱 한 것이다. 이 사건은 한 의대생을 체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와 관련된 14명을 추가로 체포하는 줄줄이 비엔나소시지 같은 사건으로 이어졌다.

 


“대신들이 백성들을 약탈하고 왕국이 지옥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루이는 자신의 쾌락에만 빠져 있다.”

매춘부 사생아가

궁정에서 출세하네.

사랑에서나 술에서나

루이는 손쉬운 영광을 바라네.

아! 저기 그가 있어, 아! 여기 그가 있네

근심걱정 하나 없는 그 사람. (p.78)

 

온갖 방법으로 제 몫을 챙기기 위해 있는 대로 백성을 약탈하는 대신들이 판을 치던 세상이었던 가 보다. 왕궁에 갇혀 여전히 그의 선조 태양왕이 누렸던 호화와 사치에 눈이 먼 황제는 시국을 제대로 돌아볼 눈이 없었다. 왕국이 몰락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여전히 근심걱정 하나 없이 자신의 쾌락에만 몰두하는 황제. 어쩌면 수십 년 후 프랑스를 뒤흔든 대혁명의 전초가 이미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패러디, 풍자는 기본적으로 약자가 강자에게 하는 행위다. 1:1로 붙을 수 없는 힘의 역학관계에서 맞대어 치받을 수 없으니 뒤에서 소심하게 놀리는 것이다. 최소한 그 힘의 역학관계를 인지하고 있는 강자라면 허허허 하고 웃어넘기면 될 일이다. 그런데 18세기 프랑스에서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그것은 통용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이석기씨와 통합진보당의 ‘내란음모’에 대한 혐의가 얼마나 중차대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란음모’라는 죄명만으로도 무시무시하다. 국가를 전복하고 체제를 무너뜨릴 의지를 담은 것이 ‘내란음모’ 아닌가! 그런데 지난 이명박 정권 시절 <가카새끼짬뽕> 이라고 게시물을 올린 판사가 사직을 하게 되었고 올 초 변호사 개업조차 잠정보류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현역 육군대위가 이명박씨를 비난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사문화된 <상관모욕죄>가 적용되어 전역을 하는 일도 있었다. 블루하우스에서 끌어내어 단두대로 끌고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저 뒤에서 비꼬고 조롱하고 풍자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끌어 내렸다. 최소한 지난 이명박 정권에서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강자들은 약자들의 소심한 하소연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꼼꼼함을 선보이시고 있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루이15세 황제를 비난한 시를 낭송하고 전하고 쓴 사람들의 죄가 어떤 것이고 그들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에 있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250년 전 프랑스에서 어떻게 그 시가 폭발적으로 전해졌는지에 주목 한다.

 


“시는 쪽지에 필사되어 건네졌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베껴 쓰고 암기하고 낭독했다. 그리고 지하 출판물로 인쇄되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들에 맞춰 노래로 불리기도 했다.” (p.17)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전할 수 있는 도구가 너무나 많다. SNS의 대중화는 여론의 형성과 전파를 가히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인터넷의 각종 게시판과 개인 블로그나 개인 홈페이지 등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전파하고 선전·선동(그러나 아무 말이나 막 해서는 곤란하다. 언론자유지수가 뭐 세계 50몇 위라나……. 자기검열이 중요하다. 아무 말 막 하다가 고소·고발을 당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그런데 250년 전 프랑스에서는 어떻게 황제를 비방하는 시가 전해졌을까? 저자는 시가 전해진 형태에 주목한다. 필사되어 건네졌고, 더 많은 사람들이 베껴 쓰고 암기하고 낭독했으며,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노래를 개사해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전해진 형태보다 당시의 분위기에 주목한다. 지금도 인터넷 청원이나 서명운동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주로 정치적인 주제가 많다. 아무리 떠들고 SNS 상에서 청원과 서명을 요구해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소치에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자 그에 대한 청원이 불일 듯 일어났고 이미 100만 명을 넘겼다고 한다. 더 많은 대중의 기저에 관심이 되는 사항이었던 것이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문제는 이미 1년 이상 지지부진 하고 있고, 이미 철 지나고 별 관심 없는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단지 클릭 몇 번 하는 것으로 서명에 동참할 수 있지만 행동으로 이끌어 내지 못하는데 김연아 선수의 경기에는 모두가 관심을 기울인다. 재미있다. 물론, 김연아 선수의 경기와 결과에 대해서 연일 TV에서 말을 쏟아내는 것도 금세 100만 명의 서명을 받아내는데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지만 어쨌든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사다. 클릭 몇 번으로 국보급 보물인 김연아 선수의 억울함(본인은 억울한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을 풀 수 있다면 기꺼이 동참한다.

250년 전 프랑스에서도 참다 참다 못한 사람들의 공분이 시와 노래와 각종 인쇄물과 샹송에 실려 구체화 되고 대중화 되었다. 시기와 방법과 형태가 삼위일체를 이룬 것이다.

 


“시의 작법은 아주 단순해 누구라도 시를 지어 노래하고 옛 멜로디에 새로운 시를 입혀 유행시킬 수 있었다.” (p.79)

 

그리고 쉬웠다는 것이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시절 당시 유행하던 대중가요를 개사해 재미있는 노래를 친구들과 불렀던 경험이 있다. 아마 여자아이들의 이름을 넣어 놀리는 용도로 사용했던 것 같다. 고무줄놀이를 하는 여자아이들 옆에서 깐족대며 노래를 부르다 등짝을 후려 맞으면서도 낄낄 대고는 했었다. 250년 전 프랑스에서도 고귀한 문학가가 도저히 뜻을 알 수 없고 따라 낭송할 수도 없는 시를 지어 일반 백성들에게 하사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스스로 시를 지어 노래했고, 부르고 전했다.

 


“문화가 위에서 아래로만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도 흐른다는 점을 강조한” (p.229)

 

중세 유럽의 르네상스가 일반 백성들과 시민들에게 계몽을 선사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시혜성 교조주의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쏟아내는 것에는 귀를 기울일 시간도 없는 시민들은 먹고 사는 일이 더 시급했다. 18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여전히 문맹이고 여전히 밑바닥에서 처절한 일상을 소화하지만 낄낄 대며 황제를 조롱하고 그것을 전파하고 나만의 시와 노래로 재해석하는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은 1798년 프랑스혁명을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황제를 비방하는 시를 짓고 낭송한 사람들이 체포되는 일을 눈앞에서 지켜봤지만 삽시간에 퍼진 여론형성의 경험은 황제를 단두대로 끌어내리는 결과에까지 이르렀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과 세력, 조직도 이것에 주목했으면 한다. 현학적이고 이론적이고 고매한 글은 결코 대중의 귀를 열 수 없다. 더 이상 대중은 가르치고 계몽하고 선도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에 힘쓰지 말고 밑 빠진 독부터 허리 숙여 살피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이상 아무리 지지를 요구하고 관심을 요구한다 해도 헛일 일 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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