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순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명작순례 - 옛 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 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2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장 좋아하는 영화배우는 송강호씨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배우는 최민식씨다. <파이란>이라는 영화를 보고 팬이 되었다. <파이란>이 개봉된 바로 다음 해 <취화선>이 개봉 되었다. 당시만 해도 멀티플렉스 극장이 거의 없었는데 나는 학교 강의도 빼먹고 아침 일찍 영화를 보러 갔다. 스크린 가득한 수묵화와 같은 화면에 혼이 빠졌다. 거장 임권택 감독과 정일성 촬영감독의 빼어난 테크닉에 2시간을 넋을 놓았다. <취화선>을 보게 된 계기가 오원 장승업이라는 화가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조선시대 회화에 관심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단순히 배우 최민식이 너무 좋아 찾아 본 것이다. 조선 후기 오원 장승업이라는 술주정뱅이 화가의 삶을 다룬 영화는 한 인물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었다. 유호정과의 정사신과 더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천둥 번개와 함께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에 기와집 천장에 올라 앉아 술을 들이키며 오열하는 오원의 모습이었다. 뭐가 그렇게 분노가 많고 쌓인 것이 많은 지 궁금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잊어버렸다.

10이 훌쩍 지나서야 오원 장승업이라는 이름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 책 「명작순례」는 유홍준 교수가 썼다. 유홍준 교수는 이미 이름 자체로 브랜드가 된 사람이다. 그의 책은 믿고 본다는 얘기다.

 

 

“한 화가가 어떤 계기로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이 탄생하기까지 어떤 사회적·예술적 배경이 있었으며, 화가의 예술적 노력과 특징이 그림에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액면 그대로 친절하게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p.4)

 

유홍준 교수는 머리말에서 조선시대 그림과 글씨를 소개하면서 자신의 감상을 최대한 자제하겠다고 이야기한다. 쉬이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유홍준 교수는 아주 유명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분야의 전문가다. 사람들은 유홍준 교수를 통해 오래전 유물과 그림과 글씨를 이해한다. 그런데 아주 객관적인 자세로 친절하게 제시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는 머리말이 남달랐다. 대중문화, 특히 영화평론가들 중 기고만장한 이들이 있다. 미학을 전공했거나 영화를 전공해서 당연히 대중의 눈높이 보다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들 중 일부는 거의 대부분 대중의 눈높이와는 다른 높이에서 영화를 평론한다. 마치 ‘집단심리로 우르르 몰려가는 너희 무식한 대중들아~ 그 영화는 말이야~ 그런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니야~’라며 비아냥거리는 것 같다. 반드시 대중과는 다른 자세를 견지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들이 싫다. 무척이나 싫다. 입만 살아서 나불대는 꼴이 우습기도 하다. 이 책의 서두를 통해 누구보다 고(古)문화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하고 식견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보다 고(古)문화를 현대인에게 쉽고 재미있게 소개할 수 있는 평론가로서의 겸손함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모습이 좋다. 자신 없으면서도 아는 척하려고 어설프게 떠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영화 <취화선>에서는 이 두 그림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정확한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비록 왕실에서 인정하는 화원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 어떤 화원보다 기가 막힌 그림을 그리는 오원의 역사를 최민식의 연기를 통해 보면서 마음 아팠던 기억이 난다. 이름이 알려져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자신이 가진 신분의 콤플렉스를 술로 풀며 취한채로 멋들어지게 붓을 놀리던 장면도 기억난다.

 

 

“조선시대 회화사에는 3대 기인이 있다. 17세기 인조 때 연담 김명국, 18세기 영조 때 호생관 최북, 19세기 고종 때 오원 장승업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화가로서 타고난 천분을 갖고 있으면서 환쟁이 또는 중인이라는 신분적 제약 때문에 기행을 일삼았고, 술로써 자신을 달랬던 주광이었다는 점이다.” (p.42)

 

책을 통해 조선시대 회화사의 3대 기인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연담 김명국과 호생관 최북은 처음 들어본 이름들이다. 1세기씩 떨어져 조선시대를 풍미한 기인들이다. 이들이 가진 공통점이 신분적 제약 말고도 그로 인해 벌인 기행과 주광도 있었다고 하니 재미있다. 유홍준 교수는 책에서 이들 기인들을 결코 시대의 천재화가로 그리지 않는다. 영화 <취화선>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영화에서는 오원 장승업의 기행과 주광도 중요하게 다루지만 신분적 제약과 통념을 깨뜨리지 못한 시대의 천재로 그려내는 것에도 중점을 둔다. 그래서 나는 오원이 조선을 대표하는 천재화가인 줄 알았다. 그런데 결코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의 그림은 소재가 진부하고 상투적이라고 한다. 주어진 소재를 거침없이 잘 그려내어 명성을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작가 정신을 발현한 화가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큰 명성을 얻었지만 무절제한 성격 탓으로 무성의한 작품도 남발하였다고 한다.

 

 

 

호생관 최북, 오원 장승업과 더불어 조선 회화사의 3대 기인인 연담 김명국이 <달마도>를 그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달마도가 그려진 수많은 달력과 모조품을 보면서도 설마 <달마도>를 그린 이가 조선시대 화가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달마도>의 달마대사의 생김새가 전혀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시대 사람이 아니다. 고대 중국의 고승이나 신선쯤으로 생각을 해서 당연히 작가도 중국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 그림이 연담 김명국의 그림이라고 한다.

 

 

“1643년에 통신사가 또 가게 되었을 때 일본 쇼군의 막부에서는 화원은 ‘연담 같은 사람이 오기를 바람’이라는 특별한 공식 요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p.44)

 

연담 김명국은 일본에서도 유명한 화가로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1636년 조선통신사로 선발되어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필치의 그림은 온 나라를 물결일 듯 떠들썩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조선에서는 차마 보여주지 못했던 자신의 기량을 일본에서 마음껏 발휘한 것이다. 그래서 구름같이 모여든 사람들 때문에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그림을 그려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7년 뒤 통신사가 재차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에는 일본에서 미리 연담이 와줄 것을 요청했다고 하니 그의 그림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이 어땠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현재 일본에 전하는 연담의 유작이 10여 점이나 된다고 하니 대단한 화가였던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일본에서 연담 김명국은 유홍준 교수의 표현대로 ‘한류 화가’로 명성을 얻었지만 조선에 돌아온 다음에는 다시는 기량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책에서는 ‘여전히 술주정뱅이 환쟁이로 술독에 파묻혀 기인으로 살아가야 했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데 그 운명이 그를 받아주지 않은 사회가 만든 것인지 애당초 포기하고 자멸해 버린 연담 스스로 자초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일본에서 그의 그림을 알아보고 인정하여 사랑한 것만큼만 그를 살폈다면 더 대단한 작품들을 후세까지 남기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보며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책에 실린 많은 그림과 글씨 중 개인소장과 재벌가 미술관 소장품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을 제외하고는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작품이다. 앞서 소개한 오원 장승업의 작품 <수리>도 삼성 리움미술관에 있다고 한다. 역시 대단한 삼성이다. 재벌가 삼성의 비자금을 세탁하는 용도로 국보급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썰이 한때 풍문처럼 떠돌았으나 뭐 확인된 바가 없으니 모를 일이다.

더 아쉬웠던 것은 ‘옛 그림과 글씨를 보는 것’이었다. 유홍준 교수의 쉬운 설명에도 다소 지루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옛 것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지만 학교에서도 배운 적도 없고 이런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도 흔하지 않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지 않을까 싶다. 그의 베스트셀러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는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책에서 소개한 여정을 따라 여행을 할 수도 있고 시간과 정성만 들이면 시적으로 표현한 그 유산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 그런데 「명작순례」에 실린 작품들은 쉽게 만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지루했다. 그림은 좀 낫다. 책의 뒷부분에 실린 옛 글씨는 이 글씨가 저 글씨 같고, 저 글씨가 이 글씨 같았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며 영화 <취화선>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되고 <달마도>의 작가가 조선 화가였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