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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크라트 -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그 나머지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지음, 박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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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가 열리던 그날,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무죄 판결이 대법원으로부터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 갔다.”라고 했던 말이 그대로 현실이 된 것이다. 집착적인 미디어의 탐사 보도도 있었고 내부 조력자였던 사람의 내부 고발도 있었지만 결국 무죄가 되었다. IMF이후부터 거의 모든 곳간을 잠식해 가던 삼성이라는 어마어마한 재벌이 드디어 한 나라의 주인으로 등극하는 것을 공인 인증하는 순간이었다.

 

 

“관료 집단과 그들과 유착하여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법률을 바꾸며 사회 초고위층으로서의 지위를 지키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파벌 자본가들” (p.294)

 

책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플루토크라트라 지칭 한다. 저자 크리스티아 프릴랜드는 20년 동안 전 세계 부자들, 특히 그중에서도 미국과 러시아 갑부들의 삶과 행적을 추적한 저널리스트다. 책에는 그들 신흥 갑부들이 출현한 배경과 그들의 진면모를 자세하게 소개한다. TV 뉴스에서는 자세하게 다루지 않는 것들이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2011년 사모펀드 그룹인 아폴로(Apollo)의 설립자 레온 블랙은 자신의 60번째 생일 파티를 위해 100만 달러를 들여 엘튼 존의 무대를 벌였다.” (p.178)

 

이제는 TV로 보던 스타들을 자신의 생일파티에 기꺼이 초대한다. 100만 달러쯤 주면 그들을 내 눈 앞에서 볼 수 있다. 이런 일은 그렇게 낯설지 않은 일이다.

영국의 팝스타 조지 마이클의 경우 영국에서 점심 식사를 한 뒤 저녁에 러시아로 날아가 광산 재벌 블라디미르 포타닌이 개최한 신년축하 파티에 참석했다. 그는 불과 100여명의 손님들 앞에서 1시간가량 노래하고 돌아왔을 뿐인데 그가 이 행사에서 받은 돈은 무려 300만 달러나 된다고 한다.

또 주택자재 공급회사인 '84럼버'의 설립자인 조 하디 회장은 지난주 자신의 생일 파티에 팝디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오스카상에 빛나는 배우 로빈 윌리엄스를 피츠버그로 불렀다. 이 행사 참석으로 팝스타들이 받은 돈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아길레라는 2005년 9월 러시아 사업가 안드레이 멜니첸코 결혼파티때 150만 달러를 받고 노래를 불렀었다.

또 윌리엄스를 저녁 행사에 부르기 위해서는 100만 달러가 드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윌리엄스는 2002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텍사스 퍼시픽 그룹 공동설립자인 데이비드 본더먼의 생일파티때 존 멜렌캠프, 롤링스톤스 등과 함께 출연했으며 이 파티에 연예인을 부르는데 든 비용은 무려 1천만 달러였다.

이제 이런 것들이 가능한 일이 되었다. 한국의 재벌들도 국내 내놓으라하는 유명 연예인들을 중요한 행사 때 불러서 공연을 한다는 것도 다들 아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 유일하게 거부한 가수가 나훈아씨 라는 소문도 알고 있다. 사실인지의 여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사는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추신수선수가 텍사스 레인저스로 팀을 옮기면서 1억3000천만 달러를 받게 되었다. 수천억이다. 수천억. 1시간당 200만원이 넘는 돈을 7년 계약기간동안 버는 것이라고 분석한 친절한 기사도 있었다.

 

 

“우리는 스타를 응원하는 관중에 불과하지만, 기적이 찾아와 언제든 비즈니스와 스포츠 세상에서 최고의 스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꿈꾸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시대에 존재하고 있는 슈퍼스타 경제학의 아이러니다. 사람들은 모두 슈퍼스타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승자 독식 시장에서 정상의 자리는 오직 소수에게만 허락되어 있다.” (p.220)

 

추신수 선수의 대박 계약 소식을 보면서 사람들은 좋아 한다. 내가 계약을 맺은 것도 아니고 내가 추신수 선수의 친척이나 친구인 것도 아닌데 좋아 한다.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이 가져다 준 가장 큰 착각의 일면이다. TV나 다른 매체를 통해 전해 듣는 이야기는 온갖 수치와 숫자다. 내 것이 아님에도 마치 내 것인 것처럼, 내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처럼 착각을 일으킨다. 스포츠 스타들의 대박 계약은 오히려 더 순수한 편이다. 그들의 몸을 가지고 승부를 보는 것이니 더 깨끗하다. 문제는 플루토크라트이다. 앞서 소개한대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같은 팝스타가 러시아의 신흥갑부의 파티에 날아가는 세상이다. 아길레라가 러시아 갑부의 돈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인가? 전혀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스타고 잘나가는 가수다. 그런데 전용기를 타고 날아가서 노래 몇 곡 부르면 엄청난 돈을 손에 쥘 수 있다. 이 편리성. 이 간편함이 플루토크라트가 줄 수 있는 선물이다. 예전처럼 백만장자 운운 하는 것은 이미 과거의 일이 되었다. 억만장자가 넘쳐 나는 세상이다.

 

 

“GDP 1조 달러당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억만장자들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1조 3,000억 달러의 GDP에 87명의 억만장자들이 살고 있는 러시아가 차지했다. 그리고 1조 1,000억 달러의 GDP에 55명의 억만장자를 거느린 인도가 그 뒤를 이었다.” (p.292)

 

러시아의 억만장자들은 대부분 그들의 국가가 개방되고 난 후 즉각적으로 국영기업과 대규모 자원기업을 차지한 사람들이다. 그야말로 노른자위를 그대로 차지한 사람들이다. 제반 규정과 법률이 마련되기 이전, 말그대로 어수선할 때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권력과 자본으로 더 많은 것을 차지하는 것이다. 책에서 저자가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다. 예전처럼 자수성가해 백만장자가 된 스토리는 플루토크라트 끄트머리에도 들지 못한다. 지금의 플루토크라트가 되기 위해서는 이미 대단한 권력과 대단한 자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정보와 권력에 가깝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다. 부자가 더 부자가 되고 가진 자가 더 가지게 되는 것이다. 1%과 99%의 비교가 아니라 1% 중에서도 0.1%와 0.9999%의 비교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0.1%는 국가를 초월한다. 경제블록을 초월하고 초국가적 기구들도 초월한다. 그들의 아이들은 가장 비싼 영국의 사립 고등학교에서 공부하고 가장 비싼 미국의 대학교에서 공부하며 그들의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아버지가 러시아인이거나 인도인이거나 미국인이거나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플루토크라트들 만의 세상을 만들어 간다.

 

 

“<플루토크라트 세상에서 미국 소비자, 영국 소비자, 러시아 소비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수적으로는 아주 적지만 소득과 소비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유한 소비자들이 있다. 그리고 수적으로는 많지만 전체 파이에서 놀라울 정로도 작은 조각만을 차지하고 있는 부유하지 않은 나머지 소비자가 있을 따름이다.>” (p.27)

 

우리는 그 부유하지 않은 나머지 소비자들일 뿐이다. 사실 플루토크라트들의 이야기는 낯설다. 몇% 인상되는 연봉과 연말 상여금에 목이 빠진 우리들에게 플루토크라트의 이야기는 너무나 먼 이야기다. 하다못해 백만장자라도 되는 것이 수많은 노동자들, 일반인들의 소원일 텐데 플루토크라트는 그 어려운 이름처럼 멀기만 하다. 그들은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의 연봉보다 더 많은 돈을 아이의 고등학교 등록금으로 쓰는 사람들이고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평생 만져볼 수도 없는 돈을 미국의 연예인을 한 번 부르는 데 쓸 수 있는 사람들이다.

어차피 이해도 되지 않고 닿지도 않을 거라면 그냥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면 되지 않나 싶다. 그런데 그들은 거기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국가의 운영 방식도 바꾸고 싶어 한다.” (p.126)

 

그들은 국가의 운영 방식도 바꾸고 싶어 한다. 1%만의 세상. 아니 0.1%만의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려는 구상도 실제로 했다고 한다. SF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세계. 인공섬을 만들거나 우주로 나아가 그들만의 세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더 이상 99%, 99.9999%들의 볼멘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고 국가니 뭐니 하는 귀찮은 존재들의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을 실제로 꿈꾼다고 한다. 어차피 내가 겁을 집어 먹을 사안은 아니지만 그들이 꿈꾸는 대로 국가의 운영 방식을 바꾸고 싶어 한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미 권력과 돈을 다 가진 그들이 그들에게는 허울뿐인 것으로 보이는 국가의 운영 방식조차 바꾸려 한다면 어떤 세상이 올까?

 

책에서 저자인 프릴랜드는 베네치아 갑부들의 선례를 소개하면서 오늘의 플루토크라트들의 미래를 예견하며 경고한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베네치아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옛날 지도층의 조급한 이기심으로 유럽의 역사 속에서 존재감을 잃어갔던 실패한 도시 국가를 소개한다. 베네치아는 새로운 인물과 자본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코멘다>라는 시스템으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 성공한 자본주의 도시국가가 되었다. 그런데 돈과 권력을 두 손에 쥐게 된 기득권들은 <황금의 책>이라는 귀족 명부를 만들거나 그들만의 폐쇄적인 집단을 만들면서 유연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던 그들의 본 모습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오늘날 플루토크라트들 역시 그들을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엄청난 돈방석에 올려놓았던 자본주의의 개방성과 민주주의의 유동성이라는 가치의 사다리를 걷어차려고 하고 있다고 지적 한다. 자기들은 다 올라왔으니 더는 자신들의 자리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자신들만의 <황금의 책>을 다시 만들어 그들만의 세상을 구가하려는 것이다. 이것에서 저자는 수백 년 전 베네치아의 귀족들의 비참한 말로를 대비시킨다. 그들의 이기심과 절정의 탐욕을 오늘의 플루토크라트들이 따라가지 말 것을 경고한다. 유럽의 일부에서 정착되어 있는 협동조합과 같은 개방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을 확대해 나갈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우리들과 같은 99.9999%들이 이런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정부를 선택해야 함을 역설한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니고 더군다나 단기적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지만 뾰족한 대책도 없다.

 

 

 

“기업은 직접 고용하지 않은 근로자들을 얼마든지 차별 대우할 수 있습니다. 화장실 청소부는 우리들과 같은 부류가 아닙니다. 기분 나쁘게 들리겠지만, 그게 현실이죠.” (p.358)

전(前)구글 회장 에릭 슈미트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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