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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사상 -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3
박가분 지음 / 오월의봄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안녕들 하십니까?”

라는 대자보는 죽어 있던 이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누군가의 조종이나 선동이 아닌 젊은 대학생이 자기 자신에게 경종을 울렸다. 자기 자신을 일깨우는 대자보가 하나둘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잠자고 있던 혹은 죽어 있던 젊은 야성을 깨울 것인지, 잠시 반짝했던 이벤트로 끝날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한 대학교 학생이 시작한 “안녕들 하십니까?”에 가장 먼저 반응을 한 것은 인터넷 언론사다. 그리고 바로 다음 직접적인 대응(?)을 한 것은 일베다. 자신들만의 손가락 모양 식별법을 찢어진 대자보에 중첩해 찍은 사진 게시물이 일베에 올라갔다. 사람들은 일제히 일베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런 썩어빠진 놈들~’, ‘오죽 용기가 없으면 사람들이 없는 새벽시간에 대자보를 훼손하나 xx들’. 젊은 지성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과 현정부에 대한 결기 있는 비판에 대한 쓰레기 같은 꼴통보수 게시판의 비이성적 테러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물론, 완전히 망가져버린 한국의 언론들은 제대로 비판하지도 않고 제대로 보도하지도 않기 때문에 이 사안에 대해서 우리는 제대로 알 수 없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대자보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 붙이는 것은 자유다. 그리고 그 대자보를 찢는 것도 자유다. 두 행위에 대한 정당성은 개인적 차원에서 이해한다면 자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자보를 붙이고 그것에 대해 지지하고 찬성한다 할지라도 그 대자보의 내용과 그 대자보의 게시에 대해 불만을 갖는 것도 자유다.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다. 그런데 일베는 이러한 정당성과 가치판단의 경중을 가소롭게 여긴다. 그것이 그들의 존재이유다.

 

 

 

일베하세요?

 

일베하세요? 라고 묻는 것이 실례일까. 나는 10대 청소년들을 주기적으로 만난다. 한동안 만나는 아이들에게 꼭 물었다. “일베하냐?”고. 10명에게 물어보면 9명은 하지 않는다고 하고 1명 정도가 자주 들어가 본다고 했다. 그런데 그 1명조차 게시물을 쓰거나 하지는 않고 구경하다가 나온다고 했다. 이유는 재미있어서.

 

“인터넷 바깥의 무언가에 자신의 이상을 전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굳이 어떤 이상을 말하고 싶다면 인터넷 안에서 자신들끼리 서로를 희화화하며 노는 방식으로 그것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 일베의 리얼리즘이다.” (p.221)

 

일베는 한국에서 현존하는 인터넷 게시판 중 가장 유명하다. 각종 논란과 고소·고발에도 그들의 열기는 식지 않는 것 같다. 이 책 「일베의 사상」의 작가 박가분은 일베의 리얼리즘을 가장 간명하게 요약한다. 그가 지적한 일베의 리얼리즘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자보를 새벽 시간에 훼손하고 그것을 촬영한 사진을 게시판에 올려 자기들끼리 좋아하는 일베의 전반적인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유명한 일베를 정작 한다는 사람들은 많이 없는 이상한 이유 또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굳이 어렵고 강경하고 뭔가 멋있고 대의를 위해 일베를 하지 않는다.

 

“일베 유저들은 그러한 규범들을 유머감각이 결여된 ‘씹선비질’이라며 격하하고 도리어 적극적으로 물리친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끝없는 토론이나 논증의 과정이 아니라 상대를 단번에 희화화하고 규정짓는 유머감각이다.” (p.12)

 

예전에는 그런 것들을 ‘꼰대질’이라고 했다. 지금 일베에서는 그런 것들을 ‘씹선비질’이라고 한다. 노골적이고 수준 낮은 단어들은 일베에 가득하다. 그들만의 언어는 계속해서 재생산된다. 대학교에 붙여진 대자보를 바라보는 그들의 관점도 동일한 맥락일 것이다. 민주주의가 어떻고, 지금의 현실이 어떻고, 그것에 대한 젊은 지성들의 자세는 어떻고 하는 것들 자체가 그들에게는 웃음거리다.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어떻게든 불법이나 종북 내지는 빨갱이로 뒤집어 씌우려하는 자들과 움직임은 예전 수구꼴통들의 ‘꼰대질’이다. 일베는 웃음거리로 만든다. 애써 논리를 개발하거나 맞부딪쳐 싸우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에게 리얼리즘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국가와 사회를 향해 무언가를 위선적으로 요구하는 대신 자신들끼리 평등한 ‘병맛’이 되는 것에 의해 현실의 국가와 사회를 넘어선 자율적인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좀 더 근본적인 사상에서 비롯된다.” (p.93)

 

‘씹선비질’, ‘병맛’은 일베의 용어다. 입에 담는 것조차 불결해지는 것 같은 단어와 비속어로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이 쉽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는 재미있다. 저자의 분석에 의하면 그들은 애초에 국가와 사회에 대한 요구를 위선이라고 단정한다. 피아식별이 선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을 긋고 모니터를 응시한 채 키보드 워리어가 된다. 어설프게 가르치려 한다거나 그들의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인 되지도 않는 존대를 한다거나 하는 것들은 모조리 부서진다. 인정받지 못한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돌아선 후 그(녀)가 어떤 인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들 안에서 함께 ‘병맛’으로 뭉쳐진다.

똥꼬깊수키 라는 천하에 다시없을 저질적이고 극악무도한 타이틀을 건 딴지일보의 초창기와 이상하게 닮아 있는 것이 일베다. 당시로서는 전무했던 패러디와 지금의 짤방과 유사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던 딴지일보는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열풍과 같은 인기를 끌었다. 기존의 딱딱하고 위압적이고 권위적이며 교조적인 진보의 이미지를 한순간에 ‘똥칠’해버리며 동시에 딱딱하고 위압적이고 권위적이며 교조적인 수구꼴통들을 향해 ‘똥꼬’를 날리는 패악질에 열광했다. 신선하고 창의적이며 재미있었다. 정치적 경향성과 진영만 살짝 반대로 바꾸면 비슷한 맥락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대해 샤이니의 종현이 본인의 SNS에 응원글을 남겼나 보다. 그것에 대해 일베와 샤이니월드(샤이니 팬클럽이라고 한다)가 전쟁을 벌였다나 뭐래나. 그런데 이 사안에서 가장 가관인 것은 이 전쟁(?)을 두고 민주당에서 ‘일베가 드디어 임자를 만난 것 같다’는 논평을 낸 것이다. 정말 ‘병맛’이다. 일베가 보면 얼마나 웃길까? 철도 노동자, 인천공항 노동자, 밀양의 노인들이 이 추위에 저렇게 고생하는데 제1야당이라는 분들은 기껏 이런 것에 논평을 내고 앉아 있다.

 

“일베 유저들은 대한민국의 공적 영역이 소위 종북좌파에 의해 잠식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시간에 그것을 단적인 사실로 간주한 채 자신이 적대시하는 사람들을 희화화하고 우습게 만드는 새로운 신조어나 짤방을 개발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들일 것이다.” (p.223)

 

일베는 ‘종북돌(종북+아이들)’, ‘좌이니(좌익빨갱이+샤이니)’라는 신조어를 이미 만들어 냈다. 민주당이 저렇게 뻘짓하고 있는 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조금 더 재미있고 그들만의 ‘병맛’을 즐길 수 있는 신조어와 짤방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그들의 리얼리즘이다.

 

“그들만의 유토피아, 모두가 병신인 사회” (p.141)

 

 

 

 

일베는 이미 깊숙이

 

그러면 일베를 하는 이들은 특별한 사람들일까? 절대로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몇 달 전 내가 자주 이용하는 홈플러스 매장에서 일베 회원이 노알라(노무현+코알라) 합성 사진을 노트북 바탕화면에 띄우고 그것을 일베에 게시했다. 이 사진이 일파만파 퍼져 나가고 경찰이 수사를 하는 것에 이르렀다. 최초 게시자는 이 매장 외주업체 이동통신사 판매 계약직 직원이었는데 처음에는 매장에 방문한 부모를 따라 온 초등학생이 한 짓이라고 했다가 경찰 조사에서는 자신의 짓이라고 시인했다. 그날 오후 구미점 홈플러스에서도 노알라 합성 사진이 또 게시되었다. 게시자는 고등학생이었고 일베에 인기게시물을 만들고 싶어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했다.

홈플러스는 부랴부랴 해명을 했다. 그 사건 이후에도 해당 매장은 장사가 여전히 잘 된다. 여전히 외부업체 계약직 직원들로 가득 차 있다. 2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카트 열차를 온몸의 힘을 다해 끌고 가는 어린 남자 직원들부터 너무나도 친절하게 문의에 응답하시는 중년의 여자 직원들까지. 내 동생 같은, 내 엄마 같은 사람들이다.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 밥벌이를 위해 일찍 출근해 열심히 일하고 늦게 퇴근하는 사람들이다. 영화 「존 말코비치」의 포스터처럼 모두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어 누가 일베인지, 일베가 아닌지 구별할 수 없다.

그렇다. 일베는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다.

 

“무엇보다 일베 게시물의 유행어들을 살펴보면 젊은 한국 여성에 대한 비하가 유독 두드러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베인들은 한국 여성들을 싸잡아 ‘김치녀’, ‘김치년’이라고 부른다.” (p.113)

 

사실 나는 일베의 정치적 편향성이나 사자(死者)에 대한 희화화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몰상식적 여성 폄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소개된 일베의 유행어들 말고도 일베의 게시물들은 대부분 여성을 폄하하고 여성을 성적 하위계층으로 단정한다.

더군다나 자신들보다 약자로 인정되는 사람이나 계층, 이를테면 초등학생이나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게시글의 폭력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 당연히 여성도 들어간다.

한동안 큰 논란이 되었던 초등학생에 대한 이유 없는 폭행은 그들에게는 신나는 일이다. 여성을 강간하는 방법, 실제인지는 모르지만 그 후기에 대한 내용도 게시된다. 정말 모니터에 비치는 그들의 글과 시진과 동영상만 보면 유럽의 네오나치를 연상시킬 정도다.

 

“일베 유저들은 제멋대로 행동하는 ‘인터넷의 나’가 사회적 예의범절을 통합된 ‘현실의 자아’와 다르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일베의 ‘인증 대란’도 그것을 보여준 것이다. 한편에서는 여성에 대한 과격한 혐오발언을 늘어놓으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여자와 소개팅한 사실을 태연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좋은 예다.” (p.157)

 

하지만 ‘인터넷의 일베’와 ‘현실의 나’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 저자 박가분의 분석이다. 이렇게 유치하고 폭력적이며 다분히 선동적인 사이트에서 글을 올리고 좋아하고 노닥거리는 것을 보니 초·중·고딩들에 불과할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일베에는 한꺼번에 자신의 학력을 인증하는 사진을 게시했다. ‘인증 대란’이 일어난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양가적인 태도는 이미 우리 깊숙이 들어 온 일베현상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은 단정할 수 없지만 나는 최소한 그들이 우리와 완연히 다르지 않다는 것에 안도한다. 내가 일하는 곳 노트북에 노알라 사진을 올리고 모니터 앞에서는 ‘김치년’ 운운하며 마초짓을 하지만 내일 아침에는 어김없이 출근하고 등교하고 데이트하고 쇼핑하고 친구들과 수다 떠는 현실로 돌아온다는 점이 다행이다.

 

“일베 유저들은 시위나 집단적 의견 표명 방식을 꺼린다는 점에서 진보적인 네티즌들과 다르고 심지어 일본의 넷우익과도 다르다.” (p.89)

 

그러면 왜? 도대체 왜? 일베를 하는 것일까?

 

 

 

 

일베의 사상?

 

“여기서 내가 보려고 하는 것은 일베 유저들이 일으키는 집단행동 배후에 있는 그들 나름대로의 ‘사상’이다.” (p.38)

“팩트를 중시하는 태도, 상대의 과거 발언에서 현재 행동의 모순점을 지적하는 자세, 모두가 평등한 병신이라는 사상, 이 모든 것이 ‘데이터베이스’라는 인터넷의 특성에서 나왔다.” (p.57)

 

일베는 팩트를 중시한다. 이것은 기존 진보진영이나 진보논객, 글쟁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요소다. 지난 대선 전 광폭질주를 했던 “나는 꼼수다”의 동력은 팩트였다.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고 알수도 없는 팩트가 생생하게 전해졌기 때문에 공감을 얻었다. 그런데 이제는 일베마저도 팩트를 중요시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예전처럼 진보논객, 진보글쟁이들과 논리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한 말실수나 행동, 나아가서는 학력과 논문까지 팩트라는 기준을 가지고 물고 늘어진다. 이전까지 보수·우익 진영은 대게 말 못하고 논리도 없고 뭉치기만 하는 사람들로 생각했는데, 일베는 팩트를 중시하면서 젊은이들의 관심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 공감이 된다. 무작정 이상한 신조어나 패러디, 움짤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논리와 구조를 갖춘 논객 행세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팩트 중시 태도는 5.18과 광주에 이르러서는 어김없이 무너진다.

 

“‘성역’으로서 5.18이 지닌 숭고한 위상을 훼상하고 싶은 것이다. 5.18에 관한 일베 게시물을 보면 그들이 좋아하는 ‘팩트’는 온데간데 없다.” (p.169)

 

이미 정치적·사법적 판결이 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이상한 자료들을 짜깁기 하거나 예전의 일부 논리를 가지고 와 폄하하고 명예를 훼손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에 대해 지난 5월 광주광역시장이 엄포를 놓자 대량 게시글 삭제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볼 때, 그들이 이야기하는 팩트 중심이라는 기준이 단지 진보진영의 인사와 글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써만 사용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면 왜 일베를 하는 것일까? 그들의 생각은 무엇일까?

 

“일베는 대한민국의 문화적, 정치적 동질성과 집단주의적 문화 속에서 표출될 수 없었던 사회적인 갈등과 적대들이 특유의 ‘혐오 문화’라는 전치되고 응축된 형식으로 표출된 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p.123)

 

한국에는 무수한 갈등이 산재해 있다. 지역, 문화, 종교, 정치, 학교, 세대 등등. 해방된 이래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동일하게 이러한 갈등이 반복되고 재생산되고 있다. 언제 적 지역 갈등이 아직도 존재한다. 이러한 갈등은 개별 한국민들에게 내제되어 있는데 군사독재정권과 권위주의정권 하에서는 강제적으로 억압되어 왔다. 국가, 이념, 개발, 성장이라는 도그마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었다. 개인은 국가의 톱니바퀴 날의 하나가 되어 꾸역꾸역 돌아가기만 했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달성되고 어느 정도의 경제적 발전 이후, 특히 IMF이후 강제적으로 억압되어 오던 갈등과 적대는 한꺼번에 터졌다고 생각한다. ‘나만 잘 살면 된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경쟁에서 살아남아 성공해야만 했다. 최초로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민주정부가 10년을 집권했다. 이제는 정말 많은 것이 바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아진 것이 별로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더욱 좌절했다. 복지, 평등을 부르짖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 된 것이 없었다. 다시 보수진영에 정권을 내어줬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고 있다. 작금에 대자보 열풍이 이는 것처럼 그 반대편에서도 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을 것이다. 책에서는 일베 이전 그들의 기원에 대한 추정도 자세하게 열거되는데 꼭 진보가 좌파만이 옳은가? 라는 궁금증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그들과 다른 생각을 하면 생각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고 정권과 자본주의에 세뇌된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그런데 민주·개혁 정권이 들어서도 그 반대쪽 정치진영의 정권과 별반 차이가 없고 그들이 오히려 입만 살아 떠들어 대는 자들로 여겨졌을 수도 있다. 여전히 자신들의 삶은 지루하고 힘들고 밥벌이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는데 여전히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허상과 같은 이상놀음에 빠진 이들을 놀리고 성질을 건드리며 이들이 자신들에게 달려들기를 유도했을 것도 같다. 나도 힘들고 너도 힘들도 다들 힘든데 뚜렷한 방법은 보이지 않고 뭔가 응축된 응어리와 분노를 표출하고 싶은데 마땅한 대상이 떠오르지 않을 때 그들은 사자(死者)와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화했다.

 

“현실의 국가에서 불가능한 이상이나 도덕성을 국가와 정치인에게 기대하거나 설교하는 상상력 대신 일상 속의 타인들에게 먼저 자신의 이상을 작게나마 공유하고 검증받을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p.241)

 

책의 저자는 제목부터 「일베의 사상」이라 정하고 일베의 사상에 대한 자세하고 복잡하며 다소 어려운 분석을 한다. 일베의 기저에 깔린 사상을 분석하는데 사실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특별히 일베의 사상이라는 것이 없다고 생각 한다. 그들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고, 컴퓨터 모니터를 벗어나면 일상에 찌든 내 얼굴이 그대로 오버랩 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당연히 대다수일 일베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별다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명예훼손이나 사건·사고에 대해서는 구별해서 처벌하거나 고발·고소를 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글이나 패러디 움짤에 대해서 너무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도 제대로 일베를 파악하지 못하는 현상에 기인한다고 본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무관심·무대응도 능사는 아니다. 실제로 그들이 일본의 넷우익이나 유럽의 네오나치처럼 모니터 밖으로 차고 나와 실제적 행동을 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최소한 지금처럼 제대로 파악하고 인정해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치권은 어느 쪽이든 일베를 이용하면 안 된다. 그리고 언론은 그들의 논조가 어떠하든 정치적 경향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일베를 이용하여 언론놀음을 해서도 안 된다.

일베가 어떤 사상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내 옆으로 마주쳐간 사람들일수도, 내가 만나 인사하고 밥 먹은 사람들일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우선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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