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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지승호 지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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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마지막 승부>가 유행이던 시절 골목마다 운동장마다 농구공을 튕기며 레이업 슛을 연습하는 남학생들이 넘쳐났다. 이후 <슬램덩크>라는 불멸의 만화책이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농구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 인기는 고스란히 대학농구로 이어졌고 연세대와 고려대의 농구 경기는 한국과 일본의 국가대표 축구경기의 긴장감과 광란 그 이상이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줄곧 농구써클에 들어갔었다. 유감스럽게도 당시만 해도 남녀공학은 전무했던 터라 남중과 남고를 놔왔음에도 학교 내에서 농구써클의 인기는 대단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오디션 프로그램의 그것과 유사했다.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아침 자율학습 끝난 후나 점심시간에 선배들이 1학년 각 반을 돌면서 써클을 소개하고 몇 월 며칠 공개 테스트가 있으니 관심이 있는 신입생들은 참여하라는 광고를 하기도 했다. 테스트 날이 되면 운동장 한 귀퉁이에 있는 농구코트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간단한 슛에서부터 드리블, 실전 경기 등으로 테스트를 한 후 즉석에서 써클 선배들이 신입생을 간택(?)했다. 지역의 소도시라 신입생들이 입학하면 어느 중학교 출신 누가 우리 학교에 입학했는데 농구를 잘 한다더라. 3 on 3 대회에 나가서 몇 위에 입상했다더라 소문이 이미 퍼져있었다. 그러면 그 친구를 스카웃하기 위해 각 써클의 선배들은 물밑으로 엄청난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일단 써클에 들어가면 당시만 해도 드물었던 우레탄 농구 코트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농구 써클에 들어가지 못한 풋내기들이 우레탄 농구 코트를 졸업하기 전까지 밟을 수 있는 시간은 체육시간에 불과했다. 3년 내내 학교 내 농구 써클간 시합 스케줄이 가득 잡혀 있었고 주말에는 타 학교 농구 써클과 시합을 하기도 했다. 그때는 더 광란이었다. 왜냐하면 여학생들이 구경을 오기 때문이었다.

남중과 남고만 나온 빡빡머리 남학생들에게 여학생의 존재의 유무는 그날 경기력을 좌우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신입생이면 선배들에게 우선 패스를 해야 했고 선배에게 더 유리한 포지션을 양보하기 위해 스크린플레이에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그런데! 여학생이 구경을 한다 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선배고 뭐고 없다. 그녀들의 응원과 꺄악~~!! 하는 함성을 듣게 되면 갑자기 엔돌핀이 솟구치고 심장이 쿵쾅쿵쾅 안 하던 과감한 플레이와 더불어 선배를 몸싸움으로 나자빠지게 하는 객기를 선보이게 만들기도 했다.

만약 그 경기에서 이기에 되면 그 객기는 용기로 단번에 바뀐다. 그러나 지게 되면……. 객쩍었던 플레이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돌아오게 된다.

 

 

표창원 이라는 사람을 이미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내가 CSI, SVU, 크리미널 마인드의 광팬이었다. 프로파일링, 프로파일러에 대한 것도 그런 미국드라마를 통해 알게 되었다. 범죄수사물에 대한 한국내 마니아들의 인기에서 인지 한국 드라마나 교양프로그램에서도 프로파일링과 프로파일러가 심심찮게 언급되거나 그들의 코멘트가 자주 인용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독보적인 사람은 바로 표창원이었다. 깔끔하고 정갈한 외모에 똑부러지는 언변이 더해지고 몇 년 전만 해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던 프로파일러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진 그의 인터뷰나 코멘트를 접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신뢰를 하게 되었을 것이다. 특히 몇 년 사이 끔찍하고 충격적인 연쇄살인과 아동성범죄가 대대적으로 이슈화되었었는데 그것이 국내 최고의 프로파일러, 표창원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과 기대가 더욱 증폭되게 했던 요인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날이 흉포화 되고 잔인해지며 일반화되는 범죄에 대해 표창원씨의 설명을 들으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용기를 발휘했다. 누군가는 객기라고 했다.

지난 대선을 앞둔 12월 중순, 그는 당시 첨예한 문제였던(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국정원 여직원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발표했다. 경찰대 출신의 경찰대 교수, 국내 최고의 프로파일러, 국내 경찰 중 일반인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경찰인 그가 당시 정부와 유력 여당의 입장과는 전혀 다른, 오히려 그 쪽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나는 정말 놀랐다. 왜 그가 그런 입장을 발표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나는 당연히 당시 야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보수쪽 인사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표창원씨의 갑작스런 입장 발표는 뜬금없었다. 누군가 그랬던 것처럼 대통령 선거는 그 어떤 선거보다 감정과 감성이 앞서는 선거라고 했는데 당시 선거를 앞두고는 정말 이런 경향이 대단했다. 하루아침에 아군이 적이 되고, 적이 아군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표창원씨가 여당과 정부를 비판하는 입장을 발표했을 때 나는 ‘대박!!! 선거는 볼 거 없겠다’ 싶었다. 그런데! 결국 여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표창원씨의 용기는 객기가 되어 버렸을까?

 

 

“일단은 저 같은 경우에는 내부에서 그런 주장을 많이 해왔지만, 한계를 느꼈어요. 그래서 나와서 국민들하고 그 이야기를 공유하려고 하고 있는 거거든요.” (p.23)

“기법 자체가 기본적으로 라보(rapport) 형성이라는 것에서 출발을 해요. 상대방과 나 사이에 심리적 공감대를 쌓아나가는 거죠. 그러면 위험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p.150)

 

이 책 「공범들의 도시」는 쉽게 읽히지 않는다. 불편하다. 표창원씨는 사실 내부고발을 한 것과 다름없다.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내부고발은 자살행위와 다름없다. 근·현대사를 돌이켜 볼 때 조직 내(특히 국가 기관 내지는 공적 기관)에서 내부고발을 해서 살아남은 이는 없다. 모조리 참수 당했다. 표창원씨는 그것을 몰랐을까? 그냥 대선 전에 그렇게 입장 발표를 하면 이슈가 되고 나중에 정치를 하는 데 큰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객기를 부린 것일까?

그는 이 책에서 여러 번 언급한다. 아무리 내부에서 이야기해도 공염불이었다고. 그가 이야기하는 ‘한계’라는 것에 대해 나는 일정 정도 공감한다. 군대를 장교로 복무한 나는 인정받는 초급장교였다. 비록 사관학교 출신은 아니었지만 통솔력과, 특히 작전 분야에 있어서는 많은 선배 장교들에게 칭찬을 받았고 장기복무를 하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다. 대대급 부대에서 복무하다가 사단본부에서 복무하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장기복무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접게 되었다.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내가 아무리 외쳐봐야 바뀌는 것은 전혀 없었다. 그저 매뉴얼대로 레고 병정처럼 움직이는 것에 불과한 비대한 조직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 미련 없이 군 생활에 대한 희망을 접었다.

표창원씨는 자신의 답답함과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밖에서 하고 싶었다. 중요한 것은 ‘밖’이다. ‘안’이 아니다. ‘안’에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그 소리는 ‘밖’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 답답함이 한꺼번에 터져 누군가는 객기라며 깎아내리는 용기를 발휘한 것이다. 그는 프로파일링 작업을 할 때에도 최대한 상대방과 감정적 교감을 하기 위해 애를 썼다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을 죽이고 거듭된 범죄를 저지른 사람 앞에서 평정심을 가지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인데 그와 감정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직업적 타성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결국은 유신 시대의 잔재라고 봅니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해야 된다. 당신의 피해는 안타깝지만, 당신 한 사람 때문에 우리 사회가 시끄러우면 되겠냐는 거죠. 그거는 민주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전체주의적인, 독재적인 발상이거든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아픔이 중요한 거죠.” (p.200)

 

결국 그는 내부적으로, 보수 진영에서는 배신자가 되었다. 만약 작년 12월 중순. 그런 입장 발표를 하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존경받고 인정받는 경찰대학교 교수이자 저명하고 인기 있는 프로파일러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안정되고 안전한 삶을 구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능력이 없고 바보 같은 자들도 안정되고 안전한 삶을 잘만 살아가는데 표창원씨는 능력도 있고 똑똑하고 호감 있고 신뢰가 가는 사람이었다. 일부러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정치적인 중립을 지킬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런 한국 사회를 좀먹는 전체주의 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애초부터 ‘나 하나로 뭔가 세상이 바뀔 것이다.’라는 생각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가 이전까지 구가하던 명성과 신망과 돈과 안정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지만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만큼이나 그의 영혼이 더 자유로워진 것 같다. 수구세력과 일베를 위시한 파시즘적인 세력까지 표창원을 두고 십자포화를 날리고 능지처참을 수백 번도 넘게 했지만 그가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애초부터 큰 욕심이 없었던 것 때문인 듯 하다. ‘내가 이렇게 하면 이렇게 바뀌고 사람들이 이렇게 바뀌겠지!!’ 욕심이 과했다면 정반대의 결과를 마주했을 때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제가 계속 주장하는 것이 뭐냐 하면 정치권력들이 범죄 수사 과정을 지배하려는 욕심을 빨리 버려야 한다.” (p.238)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력이 사법과 경찰을 틀어쥐고 지배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p.252)

 

표창원씨는 여전히 객기를 부린다. 한국 사회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검찰을 항해 날을 세운다. 그전보다 더 날카로운 날을 세운다. 그리고 평생을 헌신한 경찰을 향해서도 쓰디 쓴 비판을 주저하지 않는다. ‘안’에서 아무리 소리쳐도 조금도 ‘밖’으로 삐져나오지 않았던 그런 소리들을 내지른다. 여전히 객기일지 모른다. 아니, 표창원이라는 사람에 대해 원천적으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과 세력에게는 죽을 때까지 객기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드러내 놓지 못한 채 그를 지지하는 사람과 묵묵하게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용기다. 그런 용기가 없다. 차라리 예전부터 진보입네 하며 툭툭 뇌까리던 진보·개혁 진영의 논객과 야당의 입만 살아있는 정치인들보다 표창원씨의 한 마디가 더 무겁고 국민들의 가슴을 흔든다. 그냥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말을 하기 위해 그의 대부분을 내어 던졌다. 대통령 선거에 패배해도, 재보궐 선거에 패배해도 여전히 남아 있는 임기 동안 의원님 자리를 보전할 수 있고 평생토록 연금을 타 드시며 의원님 소리를 쳐 들을 수 있는 분들의 그 알량한 애국심과 정치의식 보다 수천 배 낫다.

한국이라는 사회를 지탱하는 모든 권력 기관과 경제 기관과 사기업의 중추에 검찰 출신이 포진해 있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들에게 전관예우는 그 어떤 의식과 종교와 가치와 신념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될 것도 안 되고 되지 않을 것도 되는 것이다. 검찰 개혁. 이것은 말로는 당연히 되지 않는 것이다. 권력이 정치적으로 검찰을 이용하려 하는 것이 한국 현대사의 민낯이다. 그리고 검찰은 권력에 늘 고개를 숙여 왔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말단 경찰관들은 여전히 오늘도 고생한다. 밤늦은 시간까지 순찰을 돌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밀려드는 주취자들을 상대해야 한다. 정치 경찰이 문제다. 이 책에서 여러 번 언급되듯이 정치에 빌붙는 수뇌부가 문제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이야기 계속 해봐야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표창원씨가 객기든 용기든 그렇게 조직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지만 그전과 비교해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그렇다고 아예 손 놓고 ‘제길! 이제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 라는 생각은 더더욱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사회가 조금 더 좋은 사회, 상식적인 사회, 공정하고 깨끗한 사회, 약자가 보호받는 사회, 강자가 마음대로 그 힘을 휘두를 수 없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고 몸을 으깨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역사라는 것도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 온 것이다.

 

 

“분명히 달라집니다. 제가 계속 주장하는 것이 정의는 때로는 천천히 오기도 하지만, 반드시 온다는 거잖아요. 과거를 보면 알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도 그래요. 3.15 부정선거도 그랬어요.” (p.423)

 

표창원씨는 여전히 희망을 말한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도 3.15 부정선거도 그 일이 일어난 당시에는 제대로 본질이 밝혀지지 않고 오히려 정치적으로 이용되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정의는 더디지만 드러났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힘으로. 그래서 그의 말대로 우리는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객기가 모여서 용기가 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고등학교 농구 써클에서 여학생들의 함성 소리를 듣기 위해 기꺼이 선배를 밀치던 객기는 사라진지 오래다. 나이를 먹고 사회에 순응하게 되고 수많은 정의의 패배를 목도하면서 객기는 사라졌다. 표창원씨와 같은 객기를 봐도 별다른 감흥이 오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 세상은 변한다. 정의는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더디게 오기도 하지만 표창원씨의 말대로 반드시 온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런 기대마저 없다면 한국 사회의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불쌍하고 안쓰럽다.

너와 나의 객기가 모여서 용기가 된다. 제발, 너무 오래 무기력해지 말자.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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