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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 전 보도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접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신뢰하는 집단을 조사한 결과 모든 정치집단, 시민단체, 방송국, 연구소, 학교, 언론인 들을 제치고 1위가 삼성, 2위가 현대자동차라는 것이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아 어떤 기준으로 누구를 대상으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충격적이었다. 천박한 물신(物神)숭배 이데올로기에 잡아 먹혀 버린 대한민국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결과라고 보였다. 사실 한국 사람들만큼 역동적인 현대사를 겪은 사람들도 없다. 급격한 경제성장 이후 나라 전체가 망해버린 IMF를 경험했다. 한 순간에 사장님에서 실직자가 되어 버리고 자기 목숨을 버리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났다. IMF 이후 정의, 상식, 진리, 공평, 평등 따위는 배부른 소리가 되어 버렸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미 경쟁과 성공의 신화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대학의 낭만, 청춘의 고뇌는 옛날이야기가 되었고 MT나 동아리는 철없는 객기가 되었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 젊은날을 묵힌다. 천박한 물신주의는 천박한 처세를 낳았고 그것은 오롯이 각자의 몫이 되었다. 정치는 더 이상 희망을 주지 않는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다. 반도의 허리가 두 동강 나 있는 것도 모자라 그 두 동강 안에서도 지지고 볶고 지역감정이 켜켜이 쌓여 있다. 먹고 살기 바쁘니 대신 나라 좀 잘 이끌어 달라고 뽑아 드린 놈들은 그것을 교묘히 이용하고 조작해 가며 정치놀음 하며 입신양명만을 노리는 꾼들이 되었다. 유일하게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언론은 이전까지 그래왔듯이 권력의 편에 붙어 아양을 떨며 떨어지는 콩고물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사람들은, 국민들은 진실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기가 진실을 모른 채 살아간다는 현실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그것을 모르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조차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내 아파트값 떨어트리지 않는 놈이면 만사 오케이다. 아무리 욕을 많이 먹고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도 상관없다.

 

저소득 계층과 청년·대학생 계층에서 오히려 집권 여당에 대한 지지가 높은 현상에 대해 한동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저소득 계층이라면 사회의 일반적인 부의 균형 축에서 멀어진 사람들이고 무엇보다 많이 가진 자들로부터 소외되어 괄시받는 사람들일 텐데 그들이 오히려 정부 여당에 대한 지지가 높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가장 열렬히 정부와 집권 여당을 비판하고 현실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하는 사람들임에도 말이다.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취업 상황을 만든 정부와 집권 여당에 대한 청년·대학생 계층의 지지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들이야말로 제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야 하는 사람들임에도 너무 조용하고 수동적이고 패배주의적이었다. 너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잠시만 생각해봐도 왜 이런 취업난이 만들어졌고 자신들의 아버지는 대학만 나와도 골라서 들어갈 수 있는 회사가 있는 시기였는데 왜 나는 아버지보다 수십, 수백 배 더 공부를 하고 스펙을 쌓아도 들어갈 회사가 없는지, 이런 상황은 도대체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는데 생각이 없다. 처음에는 너무 할 일이 많고 바빠서 생각할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주위 대학생들을 보면 그런 것도 아니다. 할 거 다한다. 놀 거 다 놀고.

사회가 급격하게 보수화되고 신자유주의 경제구조가 천박한 물신주의로 변신하면서 젊은 대학생들조차 정신은 이미 늙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책임을 돌려야 하는 것인가?

 

 

“오늘날 전 세계의 최고 부자 10명이 총 2조 7000억 달러의 부를 소유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 5위 경제 대국인 프랑스의 경제 규모와 거의 같다.” (p.57)

 

한국만의 문제는 이미 아닌 것 같다. 이 책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는 저명한 사상가 지그문트 바우만의 얇은 책이다. 작은 책이지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책에서는 유럽 사회의 현상을 소개하는데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라? 유럽이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국 사람들은 유럽에 대해 일정정도 환상을 가지고 있다. 이전 세대가 미국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유럽이라 하면 일단 잘 살고 복지가 우선이고 오래된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고 인권과 평등의 기치로 국가와 사회가 운영되는 일종의 이상향으로 생각하기도 한다.(물론 일부 유럽 국가들에 한해서) 그런데 지그문트 바우만이 바라보는 현 유럽 사회의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사회가 IMF 이후에 급격하게 보수화되고 물신화된 것처럼 유럽사회도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 한국과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일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고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데 단지 한국과 유럽대륙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불평등의 현실과 그것을 감수하는 국민·대중의 현실이 비슷한 맥락에서 겹쳐진다.

 

 

“‘경제성장’은 소수에게는 부의 증가를 의미하지만, 수많은 대중에게는 사회적 지위와 자존감의 급격한 추락을 의미한다.” (p.59)

 

경제성장. 말은 좋다. 낙수효과. 말은 좋다. 그런데 단 한번이라도 그것이 수많은 일반 대중과 국민들에게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 적이 있었나?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지난 이명박 정권이 대선 전 수많은 공약을 남발했다. 747이니, 주가 5000포인트 돌파니 뭐니 해서 또 한국의 유권자들은 건설회사 사장 출신이면 경제 좀 잘 하겠나보다 싶어 그를 뽑아줬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도대체 일반 대중의 살림살이가 얼마나 더 피폐해 졌는지 모두가 알게 되었다. 재벌은 사상 최고의 실적을 기록했다. 중소기업 및 하청업체는 죽어나갔다. 부동산은 여전히 공고했고 물가는 시간이 갈수록 올랐다. 오죽했으면 월급 빼고는 모든 것이 올랐다는 자조 섞인 넋두리가 유행을 했을까. 민주 정권 10년 이후 딱 5년 동안 천박한 물신주의가 국가 정책이라는 배를 탔을 때 어떻게 개별 국민들에게 구현되는지 우리는 5년 동안 낱낱이 지켜봤다.

그런데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쪽은 그런 불평등과 몰상식을 그대로 감수하는 우리 쪽이다. 그래서 문제는 더욱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이다.

종부세를 두고 집도 절도 없는 일반 대중이 반대니 찬성이니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강남에서 수억 원을 호가하는 집을 몇 채씩 가지고 있는 부자들에게는 종부세가 철퇴와도 같을 텐데 집이 단 한 채 밖에 없거나 내 집 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종부세는 아주 먼 나라 저기 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의 이야기보다 더 먼 나라 이야기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정부와 집권 여당에서 하는 소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번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인사 문제로 시끄러웠다. 고위 공직자로 추천된 자들이 하나같이 위장전입문제, 병역문제, 부동산투기문제로 제대로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 그런 꼴을 수도 없이 봐왔지만 정부 출범 초기부터 그런 자들을 추천한 새정부도 문제가 있었고 반대로 고위 공직을 맡고 있는 자들 거의 모두 그런 불법과 탈법을 당연시 하고 있는 것을 보며 대단하구나 싶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었으니까. 그런데 여기에서도 코미디가 벌어진다. 위장전입 뭐 그것쯤 뭐가 문제가 되냐는 것이다. 부동산투기 그거 뭐 큰 문제가 되냐는 것이다. 다들 그렇게 살고 돈 좀 있고 힘 좀 있는 사람들 다 그렇게 사는데 뭘 그런 걸 가지고 문제를 삼고 그러냐는 것이다. 그것도 없는 사람들이. 불평등을 감수하면서 오히려 그들을 불평등의 구조로 내몬 장본인들일지도 모르는 자들을 감싸고 있다. 참 웃기고 자빠진 것이다.

그러니 저들은 염치조차 가질 필요가 없어졌다. 아무리 해쳐먹고 꾹꾹 눌러도 찍 소리 한 번 내지 않는 것이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불평등의 구조는 콘크리트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중산층이 없어졌다. 아주 잘 사는 자들과 못 사는 자들이 드넓은 중간층을 사이에 두고 있다. 모든 면에서 그렇다.

 

 

“사방에 탐욕, 부패, 경쟁, 이기심이 편재하는 현실, 그렇기 때문에 상호 의심과 끊임없는 경계를 조언하고 찬양하는 현실. 사람들은 혼자서 이러한 현실을 바꿀 수 없고, 이러한 현실이 없어지기를 바랄 수도 없으며, 그러한 현실을 얼버무리거나 무시할 수도 없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 모두는 흔히 현실을 인간의 힘으로는 맞서거나 개혁할 수 없는 ‘당연한 세상 이치’로 오해한다.” (p.47)

 

어린 시절 어머니는 특별한 일이 있으면 꼭 떡을 하셨다. 동네 시장에 있는 방앗간에서 손수 찾아오셔서 따끈따끈하게 감칠맛이 도는 떡을 잘 포장해 옆집 초인종을 누르셨다. 어머니의 주방에서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쟁반과 보자기가 어김없이 옆집으로 갔다. 그러면 며칠 뒤 반드시 그 쟁반 위에 답례의 물품이 얹어져 돌아왔다. 과일이 될 때도 있었고 다른 음식이 될 때도 있었다. 아파트에 살았지만 옆집, 앞집, 윗집, 밑집 모두 알고 지냈다. 아직도 그때 살았던 분들과 모임을 하고 계신다.

지금은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과 경쟁이 심화될 대로 심화된 상황이다. 앞서도 언급했던바 경쟁과 우위는 당연한 수순이 되었다. 친구와의 우정과 공평·평등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너는 잘해라, 성공해라.’고 가르친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 사람과 자연사이의 관계, 사람과 사회사이의 관계는 돈과 경쟁, 권력과 힘의 저울질에서 모든 것이 판단된다. 이렇게 슬픈 현실을 그저 감내하는 것뿐이다. 바꿀 수 있을까? 바뀔까?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구조의 문제를 경시한다. 왜 이렇게 몸부림치고 열심히 살아도 내 삶은 티끌만큼도 변화가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위로한답시고 베스트셀러가 된 저질의 책들 속에는 ‘니가 잘 하세요. 니가 문제니까요. 더 열심히 하세요. 더 아프세요.’ 라며 포근한 마조히즘을 불러일으킨다.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절대로 상황과 현실을 바뀌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내 포기해 버린다. ‘어쩔 수 없나 봐. 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 뭐.’하는 순간 구조는 더 공고화된다. 튼튼해진다. 그리고 더 이상의 접근은 허락하지 않는다. 설국열차에서는 엔진칸에 이르지만 현실에서는 그저 맨 끝 칸과 그 앞 칸 정도일 뿐이다.

 

 

“구체적인 사회적 상황에서 정의의 기준은 항상 당시에 가장 불쾌하고 고통스럽고 분노를 유발한다고 생각되는 형태의 부정의에 의해 환기되거나 암시되며 때로는 결정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p.90)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매일 매 순간 들이 마시는 산소의 소중함을 전혀 모르고 살듯이 사회를 지탱하는 진리와 정의를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충분할 때는 자각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인지조차 모른다. 하지만 한 순간에 진공 상태가 되듯이 진리와 정의를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사라졌을 때는 돌이킬 수 없다. ‘이 정도였어? 완전 엉망진창이구만!’라고 깨달을 때에야 반성하게 된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구나~’ 라고 말이다. 뒤늦게 깨달아 봐야 구조는 더 튼튼해져 바꿀 수도 변화시킬 수도 없다. 또 그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는 넘어갈 뿐이다.

 

 

“오늘날 사회적 불평등은 역사상 최초로 영구기관이 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강조하며 말한 것이 결론으로 보인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불평등의 구조가 이미 내재화 되었고 영구화되었다. 그런데 그것을 감수한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감수하는지조차 모르고 산다. 오히려 ‘나는 불평등을 겪고 있지 않아~’라며 자기 위안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어떤 식으로건 문제를 회피하지 말 것, 손쉽게 타협하지 말고 철저하게 사유할 것”

 

바우만은 몇가지 행동양식을 권유한다. 문제를 회피하지 말 것, 손쉽게 타협하지 말고 철저하게 사유할 것. 그의 권유만 제대로 실행하면 굳이 불평등을 감수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워낙 저쪽은 힘이 있고 거의 모든 것을 차지하고 있어서 해보나 마나 100전 100패인 게임이 될 것만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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