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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 진화생물학의 눈으로 본 속임수와 자기기만의 메커니즘
로버트 트리버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살림 / 2013년 7월
평점 :
재미있는 책이다.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는가?」하는 문제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이다. 심리학 중에서도 사회심리학적인 접근으로 보이는데 책의 제목처럼 흥미를 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진화의 가장 강력한 동인은 ‘살아남기 위한 의지’라고 본다. 어쨌든 살아남기 위해 불필요한 기관을 퇴화시키고 효과적으로 상황에 대처하고 적응해 나가는 것이다. 비단 동·식물 세계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이 책은 이 반직관적인 배치가 남을 조작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가설을 펼친다. 우리는 구경꾼에게 더 잘 숨기기 위해 자신의 의식적인 마음이 모르게 현실을 숨긴다.” (p.31)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쉽지 않은 곳이다. 호락호락 하지 않다. 예측하기 어렵고 기준을 찾기 힘들다. 고대 어느 어른이 ‘어린 것들이 문제야’ 라고 했던 프레임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는 늘 그렇게 살아 온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역사가 되풀이되며 첨단의 발전과 함께 살아도 우리는 늘 ‘구경꾼’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창조론에 더 가까운 해석인지 가장 적절한 형태로 적응되었다는 진화론에 가까운 해석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럴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다.
‘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늘 ‘너’와 ‘상대’ 혹은 ‘타인’들과 함께 살아간다. 만약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존재한다면 재미는 없겠지만 ‘남 눈치’보는 일은 적어도 없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보일까?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내 옷차림, 내 말투, 내 외모를 보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따위의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나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이다. 반드시 ‘너’가 있고 ‘상대’가 있다.
그렇다면 인식하고 인지하여 의식적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할 수밖에 없다. 이것 또한 원래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것인지 살아오면서 적응해 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논란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분명히 의식해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대상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통제착각이라는 것도 있다. 우리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 실제보다 더 크다고 믿는 것이다. 주식 시장에서 우리는 자기 행동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능력이 전혀 없으므로, 우리가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은 무엇이든 가에 착각임에 분명하다.” (p.50)
<통제착각>이 얼마나 일반적으로 실제 생활에서 나타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깜짝 놀란다. <통제착각>은 다른 심리학적 개념인 <확증편향>과 비슷한 개념인데, 실제 나의 능력보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능력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가 쉽게 이 함정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은 늘 결과론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팀이나 그룹으로 그것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도 그렇고 직장에서도 심지어 군대나 가정에서도 그렇다. 이제 시작했는데 도대체 언제 마무리하고 결론을 만들어 낼까 걱정부터 앞선다. 곧 이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우리가 내린 결론이나 결과가 효과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걱정이 뒤따른다. 어쨌든 결과나 결론을 내어 놓고 난후 그것이 긍정적이고 좋은 방향으로 마무리 되었다면 으레 이렇게 생각할 때가 많다.
‘내가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야.’
솔직히 그렇다. 물론, 아주 드물게 실제로 그 업무와 과업을 수행함에 있어 타 인원들 보다 곱절로 노력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지만 천성이 겸손하고 극히 수도자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일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낮추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찬사와 칭찬을 다른 이에게 토스하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극히 드문 케이스다.
드러내놓고 생색을 내느냐 혼자 속으로 쾌재를 부르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누구나 <통제착각>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이 더 매혹적인 이유는 사회적 위치나 직장 내 계급, 조직 내 서열이 높은 사람일수록 <통제착각>에 빠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내가 지시를 잘 해서 그래~!’, ‘내가 내 밑에 있는 부하들을 잘 선발해서 그렇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누워서 떡을 먹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다.
책은 이것이 큰 착각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내가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이라는 것이다. 착각이라도 혼자서 남에게 피해 주지 않을 정도로 빠진다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역사적으로 지위가 낮았거나 멸시 당했으며 현재 사회적으로 종속된 처지에 있는 소수 집단은 부정적인 암묵적 자아상을 지니고, 자기보다 남-사실상 자신을 억압하는 자-을 선호한다.” (p.115)
이 책의 사회심리학적 접근은 내가 가지고 있던 오래된 정치적 의문에 대한 일정 부분의 답을 주기도 했다.
나는 사회안전망에 속하는 하위계층의 사람들이 오히려 수구세력과 기득권을 옹호하고 그들의 정당과 언론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콘크리트화 되어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는 지역주의의 폐해라고만 생각하기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장 내 살 길이 힘들고 앞으로 5년 10년 후에도 내 연봉과 생활수준의 발전이 크게 기대되지 않음에도 부자와 재벌, 기득권을 옹호하는 정당과 정치인과 세력을 지지하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30대의 젊은 세대도 이러한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여러 정치인과 언론인, 평론가와 사상가의 글과 책을 읽어도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간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접근을 통해 일정 부분 설득이 되는 분석을 한다. ‘부정적인 암묵적 자아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종속된 집단은 그렇게 매커니즘화 된 것이다. 빽빽한 숲 속에서 솔방울 하나 찾기 힘들 듯이 구조라는 거대한 괴물에 갇혀 버린 소수 집단은 부정적인 자아상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자신을 억압하는 자를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접근이라 흥미롭고 실제를 놀라울 정도로 반영하고 있어 무섭다.
“우리는 남에게, 즉 남의 견해와 욕구와 행동에 대단히 민감하다. 게다가 남들은 우리를 조작하고 지배할 수 있다. 그것은 남이 우리에게 강요한 자기기만을 낳을 수 있다.” (p.111)
결국에는 그들의 강요로 인해 스스로 <자기기만>을 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래도 돈 있는 사람들이 경제를 좀 더 잘 하지 않겠어요?’, ‘박정희 대통령님께서 경제는 살리셨잖아!!’, ‘전두환 장군께서 물가 잡고 조폭 놈들 때려잡은 거 몰라!!’
멀쩡하게 기록된 역사마저도 모른 채 할 수 있을 정도의 <자기기만>을 낳게 되는 것이다. 무섭다 정말로.
“아이는 만2∼3세가 되면 다양한 기만을 보여주고, 기만의 명확한 징후는 생후 약6개월째에 처음 나타난다.” (p.150)
“남녀의 관계만큼 기만과 자기기만의 가능성이 풍부한 관계는 거의 없다. 유전적으로 무관한 두 사람은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행위를 하기 위해 하나가 된다. 바로 섹스다.” (p.161)
좀 더 귀여운 형태의 <기만>도 책에서 소개된다. 아이의 경우는 주위 친구나 지인들의 이야기를 10분만 들어도 클리어 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남녀관계에서는 무궁무진하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고 데이트를 하고 결혼을 하고 섹스를 하는 모든 관계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는 <기만>을 주고받는다. 연애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100% 동의할 수 있다. 아무 여자 쪽에서 <기만>이 더 많이 일어날 거라 생각하는데 다행인 것은 남자들은 그 여자에게 빠지면 아주 간단한 형태의 <기만>에도 활짝 웃으며 속아 넘어 간다는 것이다. 눈치는 이미 저 멀리 내던져 버린다. 개그콘서트의 한 프로그램에서 보통 남자가 연애를 하면서 “왜~왜~ 사람 많아서 그래 잠시 쉬었다 갈까?”, “왜 그래~ 너무 밝아서 그래. 술 빨리 마시고 취할까?” 라고 하는 연기가 있는데 처음 보면서 배꼽을 잡았다. 너무 사실적이어서. 대부분의(적어도 90%는 넘을 것이다) 남자들은 섹스가 목적일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12세 관람가인 지상파 개그프로그램에서도 다룬다는 것은 이 사회가 그만큼 자유로워 진 것인지 모두가 한꺼번에 ‘내 얘기는 아닌데~’하며 <자기기만>에 빠지는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각종 <기만>은 그들의 연애와 결혼생활에 있어 도움이 될 때가 더 많기 때문에 긍정적인 측면이다.
오늘도 나는 <자기기만>을 몇 번 했다. 기억나는 것만 세 번이다. 돈을 벌기 위해 뛰어든 세계에서 <자기기만>은 필수다. 적절하게 칭찬하고 적절하게 편을 들고 적절하게 같이 뒷담화를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책의 제목처럼 굳이 나 자신을 속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회현상이 그렇듯이 과도하지 않는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 하긴 과도한 경우가 더 많아서 문제가 많이 일어나고 갈등이 속출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나는 내일도 그 상사 앞에서 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함께 이야기하고 점심 먹으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내 스스로 <자기기만>을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를 보낼 수 있을 정도의 적응력으로 진화하지 않았다면 나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진작에 퇴화하거나 멸종한 종의 목록에 이름을 올렸을 지도 모른다.
살아남기 위한 <자기기만> 쯤은 괜찮다. 오늘도 내일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