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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새 이름이 필요해
노바이올렛 불라와요 지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평점 :
나에게 저 멀리 아프리카의 낯선 이름을 가진 나라를 검색해보게 한 책이 바로 <우리에겐 새 이름이 필요해>다. 이 책의 저자인 노바이올렛 불라와요는 자신이 쓴 작품의 주인공 달링처럼 짐바브웨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이 되던 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2013년에 쓴 이 작품은 펜/헤밍웨이 신인 소설상을 수상했고, 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맨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우리는 부다페스트에 간다. 배스터드Bastard, 치포Chipo, 갓노우즈Godknows,스브호Sbho, 스티나 Stina, 그리고 나, 이렇게 여섯이서...... 그래도 우리는 간다. 부다페스트에 가면 구아바를 훔쳐먹을 수 있고, 지금 나는 구아바 하나만 먹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아침도 걸렀다. 마치 뱃속을 삽으로 홀랑 파낸 것 같다.
이렇게 시작하는 이 소설은 주인공 나, Darling이 겪은 짐바브웨에서의 삶과 미국으로 간 뒤의 삶을 달링의 눈으로 훑듯이, 그 목소리 그대로 옮겨 적고 있다. 첫 문장에서 느껴지듯이 전혀 맥락이 닿지 않는 이름들이 등장한다. 부모들이 그 이름의 뜻도 이해하지 못한 채 지어준 이름을 가진 이 소년, 소녀들이 사는 곳은 패러다이스, 하지만 이 단어가 가진 뜻과는 전혀 다르게 양철로 얼기설기 이은 집들이 이어져 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먹을 것도 없어서 굶기를 밥 먹듯이 하고, 간혹 오는 NGO들에게 웃으며 사진을 찍어주고 먹을 것을 받는다. 이들이 주로 하는 일은 이렇게 이웃 마을인 부다페스트로 가서 구아바를 훔쳐먹고(먹고 변비가 걸려 죽을 만큼 힘들지만) 짐바브웨에 만연한 전쟁과 폭력을 놀이로 따라 하는 나라 뺏기 놀이를 하는 것이다. 이곳은 근친상간과 에이즈와 내란이 뒤범벅되어 있어, 이 나라를 떠나 미국 등으로 가는 것을 달링을 꿈꾼다. 하지만 이들도 자신의 나라의 변화를 꿈꾸고 그 변화를 위해 투표를 한다. 하지만, 그들이 기다린 변화는 끝내 오지 않는다.
짐바브웨는 198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지만, 그 뒤를 이어 바로 로버트 무가베라는 아프리카 최장기 집권 독재하에 놓이게 된다. 최근 뉴스를 검색해보니 가뭄으로 인구의 1/4이 아사 직전에 놓였다고 15억 7천만 달러의 원조를 요청했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약 1조 8천800억 정도되는 돈인데, 이 나라의 대통령은 현재 92세로 사후 기념물로 동상 제작을 북한에 의뢰했는데, 그 동상 하나의 가격이 54억 원이며, 매년 초호화 생일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자그마치 100만 달러, 약 12억 원을 들였다고 한다.
모든 것이 무너져내릴 때 이 나라의 아이들은 불타는 하늘에서 탈출하는 새들처럼 부리나케 흩어진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조국을 등진다. 어쩌면 낯선 나라가 그들의 굶주림을 달래줄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낯선 나라가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먼 나라가 절망의 상처에 붕대를 감아줄지도 모른다고, 낯선 땅의 어둠 속에서 상처투성이 기도를 읊조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이런 짐바브웨를 벗어나 미국에서 청소년 생활을 하게 된 달링은 불법체류자 신분이다. 고국에 한 번 가보고 싶어도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갈 수 없어 자신이 선택한 감옥에서 저임금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 수밖에 없다. 달링은 가끔 자신의 고향 패러다이스에서 친구들과 구아바를 훔쳐먹던 때를 그리워한다. 작가는 이렇게 조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말을 쓸 수가 없었고, 그래서 말은 멍들어서 나왔다. 우리가 말을 할 때, 혀가 입안에서 제멋대로 놀았고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우리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말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접힌 채로 안에 갇혔다. 미국에서 우리에겐 언어가 없었다. 우리끼리 있을 때에만 진짜 우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우리 말의 말馬을 불러내 고층건물들 사이를 미친 듯이 내달렸다. 그리고 매번, 마지못해 말에서 내렸다.
이제 주인공은 어떻게 살아갈까?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사는 이들에게 고향이란, 조국이란 어떤 것일까?
우리가 죽으면 아이들은 어떻게 통곡해야 하는지,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슬퍼서 미치지도 않을 것이고 소매에 검은 헝겊을 달지도 않을 것이고, 맥주나 담배를 땅에 뿌리지도 않을 것이고, 목이 쉬어라 노래를 부르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 무덤에 접시와 컵들을 놓지 않을 것이다. 음파파 나무와 함게 우리 떠나보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맨몸으로 죽은 자의 땅으로 떠나야 할 것이다. 조상들의 성城으로 들어가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지니지 못한 채로. 우리가 아무것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으니 조상의 영혼들은 우리를 마중 나오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릴 것이다. 마치 허공에 휘날리는 이름 없는 나라의 깃발들처럼 영원히.
작가는 그리고 자유와 조국과 고향을 꿈꾸는 이들은 영원히 새 이름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