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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이야기 - 이슬과 불과 땀의 술 ㅣ 살림지식총서 533
이지형 지음 / 살림 / 2015년 10월
평점 :
소주에 대한 글을 의뢰 받고 소주를 마시며 글을 쓴 작가의 글은 소주잔을 연거퍼 들이키듯 잘 읽혔다. 술을 마시며 쓴 글이라 그런지 감상에 잔뜩 젖어 있다. <소주 이야기>에는 살림지식총서의 여러 작품 중에서 가장 문학적인 글이다. 소주와 떼어놓을 수 없는 삶의 애환 때문에 문학과 소주에 얽힌 이야기가 많아서, 그리고 이 작가의 글솜씨 때문이다. 이지형 작가가 소주와 함께 불러 낸 작가와 작품은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 황석영의 <객지> 등이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에 나오는 소주는 그 자신이 삼류였기에 사회 도처의 삼류인생들을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순간 삼류 인생을 사는 나는 간절히 소주 한 잔이 땡겼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소주가 아니다. 왜? 국어사전에서 소주는 '곡주나 고구마주 따위를 끓여서 얻은 증류식 술, 무색투명하고 알코올 성분이 많다'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마시는 '소주'는 타피오카라고 하는 작물을 원재료로 사용하고, '증류' 방식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작가는 우리가 마시는 이 술은 그래서 바나나 맛 우유처럼 '소주 맛 술'이라고 한다. 우리가 마시는 소주, 즉 '희석식 소주는 녹말이나 당분이 포함된 재료(그게 무엇이든 관계없다)를 발효시켜 만든 강력 알코올(대개 95퍼센트)에 물을 들이부은 뒤 다시 감미료를 넣어 만든 소주 맛의 술'이다. 이 원재료를 주정이라고 한다.
지금은 순한 소주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한때는 소주 맛이 순하다고 소비자보호원에 조사를 의뢰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당시 소주는 30도였는데 실제로 마셔보면 소주 맛이 좀 싱겁게 느껴졌나 보다. 소주의 출고가의 60퍼센트는 주정 가격이 차지한다. 당시 소주의 원료인 알코올을 정부가 나서서 생산업체에 할당해 주던 주정 배정 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제조원가를 낮추려는 회사는 규정보다 주정을 조금 넣었나 보다. 그 뒤로 25도의 소주가 나왔고, 지금은 15에 가까운 소주까지 나왔다. 지금 이렇게 순한 소주가 나오게 된 것이 일부러 알코올 함량을 조금씩 낮춰 원가를 절감하려는 속셈에서 나온 주류업계의 상술인지, 건강하게 살려고 하는 소비자의 욕구에 따른 것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