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어 보이 - 할인행사
폴 웨이츠 외 감독, 휴 그랜트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간만에 즐겁게 본 영화

영국 영화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확실히 헐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분위기다

좀 더 단조롭고 자극적인 게 적다고나 할까?

헐리우드 영화보다 더 담백하다

그래서 약간은 지루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휴 그랜트는 정말 멋지다

잘 생긴 건 아니지만 편안한 얼굴로 호감 가게 생겼다

정말로 여자를 잘 꼬시는 남자는 장동건처럼 준수하게 생긴 얼굴이 아니라 휴 그랜트처럼 편안하게, 호감가게 생긴 얼굴이라고 한다

여기에 말까지 잘하면 대부분의 여자는 넘어간다고 할 수 있지...

하여간, 영화에 대해 말하자면 상당히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섬이다. 그러나 바다 속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영화의 주제는 이 한마디로 압축되는 것 같다

초반부에서 독신주의자 휴 그랜트는 인간은 섬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인간은 여전히 섬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섬끼리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닫는다

난 그게 멋지다

만약 그가 후반부에 가서 결국 인간은 혼자서는 못 산다, 인간은 섬이 아니다 라는 식으로 완전히 자기 주장을 뒤집어 버렸다면 별 재미가 없는, 팍팍하고 꼰대 같은 지루한 영화가 됐을 것 같다

그렇지만 여전히 인간은 섬이다 라는 기본적인 틀을 유지하면서, 다만 망망대해에 완전히 홀로 떠있는 것은 아니고 그 밑으로는 수많은 섬들이 서로 연결되어 살아 간다는 결론이 참 마음에 든다

나도 동의하는 바다

결혼을 한다고 해서 과연 근원적인 외로움이나 독립성이 해결되는 것일까?

나는 전혀 아니라고 본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인간의 기본적인 독립성과 외로움은 유지되는 것이고, 다만 완전히 고립되어 혼자 살 수는 없는 일이고, 또 그럴 필요도 없기 때문에 서로 어느 정도의 연관성을 가지고 살 뿐이다

영화를 보면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싱글맘들의 데이트 장면이다

독신자가 적은 우리 사회에서 애 딸린 이혼녀가 재혼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채 연애를 한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싱글 부모들이 자기들끼리의 모임을 통해 교류하면서 로맨스를 즐기는 모습이 영국 사회의 다양성을 보여 주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애 딸린 이혼녀는 연애도 못하는 칙칙하고 우울한 삶일 것 같았는데 또 자기들 나름대로의 친목을 도모하면서 사는 걸 보고 행복에 있어 정해진 기준 따위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삶의 형태는 다양한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색안경을 끼고 볼 것도 없는 것 같다

내가 어떤 삶을 살든 지금 행복하다고 느끼면 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정해진 규격에 맞지 않다고 해서 삐딱한 시선으로 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결혼을 한다고 해서 진정으로 외롭지 않거나 하나가 아닌 둘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독신주의에 대해 이 영화가 미치는 영향이라면, 혼자 살지라도 완전한 고립이 아니라 역시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 영화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이웃과의 관계가 상당히 개방적이라는 점이다

우리 나라는 혈연 중심주의이고, 이웃을 초대해서 파티를 한다거나 모임을 갖는데 상당히 인색한 편이다

꼭 이 영화 뿐 아니라 미국 영화에서 참 많이 느끼는데 그 사람들은 꽤 이웃에 대해 개방적인 관꼐를 맺은 것 같다

뭐랄까, 혈연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 기분이 든다

영화에서 휴 그랜트가 마커스 집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되어 가는데 거기 참석자들을 보면 가관이다

이혼한 마커스네 부부와 마커스 아빠의 새 여자 친구, 그녀의 엄마, 마커스 엄마의 친구인 또다른 싱글맘 수지, 그리고 그들과 기묘한 관계를 맺고 있는 휴 그랜트!!

이 얼마나 안 어울리는 어정쩡한 조합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식탁에 둘러 앉아 즐거운 크리스마스 저녁을 보낸다

나도 상당히 폐쇄적인 편이라 조금이라도 어색한 모임에는 절대 안 나가는 편인데, 좀 더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낯선 사람들과의 모임에도 쉽게 어울리는 것이 독신자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휴 그랜트와 마커스 엄마가 이어졌다면 굉장히 진부한 스토리가 됐을 것 같다

결국 어린 아들이 불쌍한 이혼녀 엄마와 주인공 독신남을 연결시켜 주는 뻔한 러브 스토리가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인간은 섬이다, 그러나 그 내부는 섬끼리 서로 연결되어 있다라는 멋진 주제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는 세련되게도 그런 시시한 러브 스토리를 만들지 않는다

휴 그랜트는 새로운 파트너를 찾는다

(사실 마커스의 엄마가 못생겨서 휴 그랜트의 상대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둘이 이어지는 스토리였다면 아마 좀 더 예쁜 여배우를 골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 파트너와 결혼에 골인하는 식으로 결말을 맺지도 않는다

이 영화가 마음에 드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결혼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식의 진부한 주장을 하지 않는데 있다

"인간은 외롭고 고독한 존재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결혼이다" 라는 식의 전형적이고 독선적인 주장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든다

"인간은 외롭고 고독한 존재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며, 그 방법은 결혼 외에도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라는 식의 결말이 무척 마음에 든다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것 몇 가지를 잠깐 짚고 넘어 가자면...

영국에도 왕따라는 게 존재하는 모양이다

마커스가 수업 시간에 이상한 노래를 부른다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걸 보고 아이들에게도 악마 같은 잔인한 성향이 있다는 말이 보편적인 진리이며, 어느 집단이는 약하고 튀는 존재는 억압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걸 느꼈다

말하자면 우리 나라만의 특수한 문제는 아니라는 예기다

결국 모든 인간 관계는 권력을 매개로 한다는 미셸 푸코의 말이 진리인 셈이다

또 동성애가 영국에서는 보편화 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커스가 휴 그랜트의 집에 종종 놀러가는 걸 안 엄마가 흥분해서 얘를 데리고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느냐고 따지는 걸 보고 깜짝 놀랬다

우리 상식으로 보면 무려 스물 여섯이나 차이나는 동성의 꼬마애를 데리고 성적인 행동을 했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혹시 독신인 남자가 어린 여자를 데리고 놀았다면 그런 오해를 할 수도 있지만, 같은 남자애와 놀았다고 해서 그 애에게 성적인 행위를 강요했다고 상상하는 건 일반적이지 않다

여자끼리 손잡고 다니면 동성애자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스토리가 약간 지루하게 전개되긴 했지만 주제가 멋있고, 휴 그랜트가 무척 매력적으로 나오는 참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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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5-01-12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 사이라는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섬'이란 표현이 재밌네요. 어디서 사람사이 보이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란 표현이 생각나네요. 그 빙산 아래는 엄청난 크기의 빙산이 연결되어 있구요. 빙산보다 섬이란 표현이 맘에 듭니다. 어쩌면 사소한 차이로 인해 차별로 연결되는 우리현실로 볼 때, 이런 방식은 정말 유연하고 폭넓게 사람관계를 맺는 방법도 될 수 있겠죠. 사적인 소통도, 공적인 소통도 마음속에 이런 심연이 가득하면 더욱도 넓어질 수 있을 것 같아요.(물론 득도의 수준도 될 수 있겠지만요.ㅎㅎ)



공적인 소통도 이런 관계로 가득가득 나이테처럼 풍요로운 관계로 거듭났으면 하네요.

marine 2005-01-12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멋진 여울마당님의 리플들!! 이 영화 직접 보세요 괜찮답니다 저도 그 섬이라는 표현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특히 마지막 결론, 섬은 바닷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게 참 좋았어요 겉으로는 각자 사는 것 같지만 (여기서는 독신주의)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러므로 인간은 소통해야 하는 존재라는 걸 잘 보여 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