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리라는 배우의 매력이 한껏 빛나는 영화, 바람난 가족
뭐 크게 대단한 주제가 있는 건 아닌데 쿨한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윤여정이 50이 넘은 나이에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찾는 것도 멋지고, 문소리가 고딩과 바람 피는 것도 상당히 신선하다
보통 대부분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바람은 남자만의 전유물이다
여자가 바람은 핀다 해도 당연히 자기보다 연상의 남자와 피는 거다
그런데 고등학생이라니, 남자가 여고생과 바람이 나면 그건 원조 교제라는 끈적끈적 하고 기분이 더러운 관계가 되는데, 아줌마와 남고생의 섹스는 왜 이렇게 쿨하게 다가 오는지...
아마도 여고생과 유부남은 돈과 권력을 매개로 하는 거래 관계이고, 유부녀와 남고생은 아무 것도 주고 받을 게 없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교류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경우 남자는 돈과 권력을 쥐고 여자는 젊음과 미모를 판다고 생각했는데 색다른 관계를 보여 주기 때문에 영화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바람 피우는 데 당당한 문소리의 캐릭터가 시원스럽다
물론 가족의 해체가 바람직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질질 짜거나 질투에 불타 오르는, 지지부진한 상투적인 감정의 발산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마음에 든다
난 솔직히 1부 1처제가 100% 완벽한 의미에서 지속된다고 믿지는 않는다
사랑의 감정이 길어야 3년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한 남자, 한 여자에게 평생동안 사랑을 느끼면서 살겠는가?
정말 평생 한 사람에게만 변치 않는 감정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어쩌면 굳이 결혼으로써 서로를 묶어 둘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 결혼이, 특히 1부 1처제가 필수적인 제도라면, 외도는 필연적으로 내제될 수 밖에 없는 필요악이라고 말하고 싶다
차라리 인정해 버리는 게 더 솔직하지 않을까?
남자 주인공인 황정민은 매력적인 30대 변호사로써 인물 되고 능력 되기 때문에 "당연히" 바람을 피운다
상대는 사진을 찍는 젊고 색시한 20대 아가씨
성인 남녀의 사랑이란 섹스가 필수이고, 어쩌면 섹스를 하기 위해 만나는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둘이 만나면 격렬한 섹스를 벌인다
섹스를 잘 하는 것도 여자다운 매력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화끈하게, 멋지게 벌이더군
황정민과, 그의 상대인 여자의 관계가 보다 쿨하게 보였던 이유는 평등한 관계 때문이었다
대체적인 상식으로 생각해 볼 때, 황정민은 변호사이고 여자는 지하방에 살 정도로 가난하고 어리기 때문에 당연히 남자에게 예속되고, 남자가 지배적인 위치에 있어야 말이 된다
그런데 이 여자는 발칙하게도 30대 아저씨는 아저씨대로 두고, 제 나이에 맞는 젊은 애인을 또 두고 있는 것이다!!
황정민이 아내와 대판 싸운 뒤 위로받기 위해 여자의 집에 찾아 가는데 그녀는 다른 애인과 정사 중이었다
술 사들고 찾아간 황정민, 미안하다며 머쓱한 표정을 짓고 집으로 힘없이 돌아 오는데 어찌나 불쌍해 보이던지!!
정말 서로 대등한 관계가 아닐 수 없다
종속되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같은 크기의 힘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쿨한 관걔를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문소리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남편의 바람에 대해 터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멋진 점은 말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크게 괘념치 않는다는 점이다
남편의 외도를 탓하지 않는 대신, 남편 역시 자신의 외도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걸 거부한다
고딩의 아버지가 자길 찾아와 우리 아들과 바람난 마누라, 단속 좀 잘 하라는 말을 듣고서내가 어떻게 해야겠냐고 소리치는 남편에게 문소리는 멋지게 한 방 먹인다
"신경 끄고 니 할 일이나 잘 해"
어찌나 시원하게 한 방 먹이던지...
이렇게 강한 아내의 캐릭터가 과거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존재했는지 의문이다
유부녀가 연하의 남자와 바람 피는 것도 대단한데, 일말의 죄책감도 갖지 않고 이렇게 당당하다니, 오 놀라워라!!
외도가 잘하는 짓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도덕적인 판단을 떠나서 일단 당당하게 대응하는 그 태도가 시원스럽다
그녀의 멋진 모습은 결말 부분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폭력을 행사한 남편이 찾아와 다시 시작하자고 했을 때, 그녀는 가볍게, 그러나 강하게 툭 던진다
"넌 아웃이야"
솔직히 변호사 남편을 둔, 직업도 없는 여성이 (극중에서는 과거 무용수였는데 현재는 그저 취미로 무용을 하는 걸로 나온다) 이렇게 쉽게 이혼을 결정할 수 있는 건지 약간 의심스럽기도 하다
어찌 됐든 남자는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고, 문소리는 경제적 능력이 전혀 없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영화처럼 쿨하게 손쉽게 이혼을 결정할 수 있을까?
불임인 줄 알고 아이를 입양했던 문소리는 고등학생의 아이를 임신한다
아기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면, 어차피 남편의 씨가 아닌 이상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그 애를 키울 수 없다는 판단이 생겨 이혼을 결심한 걸 수도 있을 것 같다
결국 그녀는 싱글맘이 되는 건데 과연 쿨한 태도를 계속 견지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혼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그것도 싱글맘이 됐을 때 사회의 냉대와 편견을 견뎌낸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만약 이 영화가 진지함이 결여됐다는 평을 받는다면, 아마도 이런 부분들을 소홀히 넘긴 탓이리라
문소리가 고등학생과 무용학원에서 호피 무늬 양탄자를 깔고 섹스를 벌이는 장면은 무척 신선했다
모텔방의 지저분하고 끈적끈적한 배경이 아니라 얼마나 상큼했는지 모른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자주 느끼는 건데 대체적으로 그들은 집에서 섹스를 한다
모텔 들어가서 섹스하는 걸 별로 못 본 것 같다
아마 대부분이 독립해서 혼자 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섹스를 숨겨야 할 행위가 아닌 지극히 개인적이고, 터치받을 수 없는 독립적인 영역으로 인식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기 집 침대에 누워 하는 섹스는 모텔에서 치루는 것 보다 훨씬 깨끗하고 분위기 있고 담백하다
단순히 섹스를 하기 위해 돈을 주고 침대를 산다는 것, 기분이 깔끔하지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넓은 무용실에서 난로를 피워 놓고 하는 둘의 섹스 장면은 꽤나 신선해 보였다
입양한 아들에게 입양아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 놓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 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 방식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정말 이거야 말로 쿨한 생활 방식이 아닌가 싶다
구질구질 하게 출생의 비밀 따위를 평생 아이에게 숨겨야 한다면, 또 언젠가는 발각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안고 산다면 얼마나 인생이 답답하고 우울할 것인가
차라리 처음부터 탁 털어 놓고 너 입양했다, 그렇지만 엄마는 널 가슴으로 낳은 거다, 난 널 정말 사랑한다, 이렇게 말해 버리는 게 훨씬 더 현명하고 깔끔하다
황정민에게 억울하게 당한 우체부가 복수심으로 아들을 잡아다가 옥상에서 떨어뜨릴 때는 깜짝 놀랐다
보통 그 정도 중요한 씬을 찍으려면 시간을 좀 끌텐데 "아저씨, 나 안 떨어뜨릴 거지?" 라는 아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바로 아이를 허공으로 밀쳐 버리는 장면은 정말 섬뜩했다
마치 스캔들에서 전도연이 순식간에 얼음물 속으로 가라앉아 버리는 것과 비슷한 충격이었다
질질 끌지 않고 단박에 결과를 보여 줘 버리는 전개가 신선하고 강렬했다
영화에서 또 하나 멋있었던 장면
문소리가 고딩과 섹스를 끝낸 후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스크림을 깨물어 먹는 장면
그 때 문소리 표정이 어찌나 시원해 보이던지, 뭐랄까 아주 즐거운 일을 마친 뒤 차 한 잔의 여유를 갖는 듯 했다
남편은 그 날 젊은 애인에게 바람 맞고 술에 진탕 취해 비참한 기분으로 자고 있는데, 아내는 어린 남학생과 즐거운 섹스를 마친 뒤 아이스크림을 빨면서 여운을 즐기고 있는 이 완벽하고 상큼한 대비!!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이 영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페미니즘의 냄새가 풍긴다
여기 나오는 남자들은 사회적으로는 화려하고 권력을 쥐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아무 것도 아닌 여자들에게 K.O 패 당한다
별 볼일 없는 어린 사진 작가나, 역시 경제적 능력도 없는 마누라에게 감히 변호사 씩이나 되는 남자가 한순간에 버림받고 차이다니, 어찌 보면 참 발칙한 영화다
다시 외도 얘기로 넘어가자면, 외도를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감독도 외도가 타당한 일인가, 가족이 서로 바람나서 헤체되는 게 과연 잘하는 짓인가, 뭐 이런 식의 도덕적이고 당위적인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건 절대 아닐 것이다
난 다만 이 영화가 삶을 대하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차치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 당당하게 대처할 것, 울고 불고 질질 짜면서 심각하게 생각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자신의 욕망에 대해 보다 솔직하게 대처할 것, 뭐 이런 식의 메세지를 전하는 것 같다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쿨하게 살자, 이거 아닐까?
쿨하다는 건 좀 덜 진지하고 덜 심각하자는 말과 통한다
어차피 무겁고 고민을 많이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그 부담감을 덜어 내고 좀 더 가볍게 인생을 바라보자, 뭐 이런 뜻 아닐까?
이혼율이 세계적인 수준에 다다른 현재 상황에서 외도가 권장할 사항이 아닌 건 분명하다
그렇지만 난 오히려 삶의 방식을 좀 더 다양화 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 중심의 대한민국 사회는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하고, 독신으로서의 삶이 무척 불편한 곳이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어쩌면 필연적으로 외도를 내포하고 있는 불완전한 결혼 제도를 누구나 다 하려고 기를 쓰기 때문에 이혼율이 높은지도 모른다
"어바웃 어 보이"에서도 느낀 거지만 우리 사회도 보다 다양한 형태의 삶을 수용해 줄 수 있을 만큼 성숙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