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소비 트렌드
김상일 지음 / 원앤원북스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쉽고 재밌다
그리고 유용하다
부자 되는 법이나 자기계발서 보다 훨씬 더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해 준다
시사 주간지 등에 실리는 경제 기사를 조금 더 많이 읽는 기분이다

한국인은 참 독특하다
책에서도 지적한 바지만 여전히 유교적 가부장제가 사회의 지배 원리인데 비해 이혼율은 세계 2위이고, 출산률 역시 세계 최저 수준이다
휴대폰이나 MP3, 디카 등 디지털 제품의 교체 주기도 엄청나게 빠르고 인터넷 보급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통을 중시하는 것 같으면서도 변화에 아주 민감한 모순적인 상황이 자주 등장한다
우리가 중시하는 전통이란 실은 파시즘의 잔재가 아닌가 싶다
지역주의, 학벌주의, 혈연 중시 풍조, 가부장제, 수직적인 인간 관계, 개인의 개성을 침해하는 집단주의 등등 사회 의식 수준의 발전에 따라 폐기돼야 할 파시즘의 모습들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한국인은 새로운 것에 열광하고 쉽게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는 대단히 미래지향적이고 역동적인 민족이지 않을까?
50여년 만에 이룩한 놀라운 근대화 속도만 봐도 알 수 있다
저자는 한국이 이미 글로벌화 시장에 진입했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는 더이상 전통 중시의 나라가 아닌지도 모른다

내가 제일 이해할 수 없고 한편으로 부끄럽게 생각했던 것이 바로 명품족었다
명품을 사기 위해 한 달을 라면으로 버틴다는 어떤 머리 빈 여자의 기사를 접하면서, 이런 풍조가 사회의 주류로 자리잡으면 대한민국은 망하는 거 아닐까 이런 걱정까지 했었다
배낭 여행 가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명품 싹쓸이 아르바이트나 한국은 명품 기업의 밥이라는 식의 기사를 읽으면 화가 치솟기도 했다
대체 왜 우리가 다른 나라 기업들의 바보같은 전략에 놀아나야 하는가?
나로서는 제품의 품질에 비해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과시적인 소비자는 가장 어리석은 소비자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명품에 열광하는 대한민국 소비자의 숨겨진 특성을 읽을 수 있었다
한국 소비자들은 감성을 중시한다
가격이 비싸도 나를 드러내 줄 수 있는 제품이라면 기꺼이 많은 돈을 지불한다
대신 한 푼이라도 싸게 사기 위해 온 인터넷 싸이트와 매장을 뒤진다
일단 소비를 결정하면 그 때부터는 눈에 불을 켜고 단 1원이라도 깍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왜? 나는 현명한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대립되는 이 현상이 바로 한국 소비자의 특징이다
그러므로 일단 명품이라고 인정받는 제품은 인터넷 등을 통해 약간 싼 가격으로 대량 판매된다
"럭셔리 신드롬" 에도 지적된 바지만 이게 바로 명품 회사의 판매 전략이라고 한다
고급품이라는 이미지를 획득하고 나면 대중들이 돈을 조금만 더 주면 살 수 있을 정도의 가격으로 대량 생산을 한다
명품이란 일부 부유한 소비 계층만이 구입할 수 있는 고가의 제품인데도 너도나도 들고 다니는 (명품 하나 없으면 소외를 받는 어이없는 현상!!) 대중품이 되버린 것이다
저자는 이 현상을 프레스티지라고 설명한다
대중과 고급품의 결합이라는 뜻이다

저가 화장품 미샤의 성공은 상당히 획기적이다
미샤는 보아 등의 억대 모델을 쓰면서 고급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정작 가격은 3300원이라는 파격적인 저가 정책으로 단번에 화장품 업계의 선두로 뛰어올랐다
도소매점을 거치지 않고 직거래를 통해 유통 마진을 최소화 하고, 유리 용기 대신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함으로써 생산 비용도 낮췄다
그럼에도 품질은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기 때문에 미샤는 단번에 주목을 끌게 됐다
저자는 한국 소비자들이 지극히 이기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한다
제품 충성도가 낮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싸고 좋은 제품이 나오면 즉시 옮겨간다
그러나 단순히 싼 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품질은 기본이고 소비자의 감성도 만족시켜야 한다
스타벅스라는 고가품의 커피가 성공한 것도 바로 이 감성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커피 대신 문화를 판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다

저자는 세계 경제가 완전 경쟁 시장으로 진입했음을 지적한다
경제학 책에서만 보던 그 완전 경쟁 시장이 현실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완전경쟁시장이란 다수의 구매자가 존재하고 정보 획득에 비용이 들지 않고 시장의 진입과 후퇴에 장벽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에서 클릭 몇 번만 하면 최신의 상품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디카나 노트북 등 디지털 제품이다
디씨인사이드 등을 가면 모든 제품의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온라인 서점 등의 인터넷 업체들은 매장 비용 하나 들지 않고도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인터넷을 이용하면 아마존 등 해외 제품들도 바로 구입할 수 있다
세계는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반드시 좋은 현상인지는 모르겠다
선점효과는 갈수록 커져 한 번 주도권을 잡으면 2등과의 격차는 갈수록 커지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다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자본주의 원리가 갈수록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 셈이다
과거에 개인 진료소를 가지면 대부분의 의사들이 비슷한 수입을 유지했던 것과 달리, 의료계에도 대형 병원들이 생기면서 동네 병원이 망해간다
부자 의사, 가난한 의사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버렸다
의료 역시 자본에 종속된 것이다
특히 한국처럼 새 트렌드에 민감한 시장은 갈수록 공급자들의 치열한 경쟁을 유발시킨다
독일 같은 경우는 도서 정가제를 실시해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가격이 동일하다고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안 좋은 거지만, 그 덕분에 동네 서점도 온라인 서점이나 대형 서점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소매업자들에 대한 보호 정책도 서서히 논의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갈수록 소비자들의 천국이 되어 간다고 한다
입맛 까다롭고 냉정한 대한민국 소비자들!!
시장의 역동성 면에서는 좋겠지만 결국 사회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능력있는 사람이 모든 것을 싹쓸이 하는, 마치 로또 복권의 원리처럼 되지 않을까 , 평범한 사람 입장에서는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다

인상적인 것은 미국의 로하스(Life of Health & Sustainability) 열풍이었다
우리나라의 웰빙과 비교되는 이 개념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아주 다르다
로하스가 친환경적인 소비 행태를 의미하는 반면, 웰빙은 개인의 건강을 우선시 한다
유기농 야채나 요가, 스파 등으로 대표되는 웰빙족들은 이기적이고 언뜻 보면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반면 로하스는 환경을 위해 품질이 좀 떨어지더라도 더 많은 돈을 지불한다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웰빙에 비해 로하스는 사회적이고 이타적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웰빙이 로하스로 바뀌지 어려울 뿐더러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고 한다
트렌드는 강제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이기적이고 유행주의인 웰빙을 넘어서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한 친환경적이고 이타적인 로하스 개념으로 바뀐다면 우리 사회가 훨씬 성숙해질 것 같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지만 막상 내가 공급자가 되면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자기계발서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도 다 완전경쟁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임을 깨달았다
전체적인 부의 크기가 증가하면서 극빈층이 점점 줄어 들고 있지만, 상대적인 격차는 갈수록 커지는 것 같다
파이도 키우면서 나누는 방법도 함께 연구하는 성숙한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 단체의 활동이 더욱 중요해지고 개인의 의식도 함께 성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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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4-12-03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곡된 평등주의는 아닐까요? 수도권과밀 못지않게 시루같은 아파트문화에 넘 익숙한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살다보니, 옆에서 좀 괜찮다싶으면 싹쓸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핸드폰이든, 디카든, 명품까지..아니 생각까지 똑 같고 싶어서~.눈꼴사나워~ 못보는, 다양한 생각이나 삶의 방식이 여물고 자라났으면 좋겠습니다.



로하스..괜찮네요. 사회적이고 이타적이었으면,

압축적 근대화만큼, 다양성의 영역이 곧 드러날 것이라고 봅니다. 역방향도 있겠지만, 순방향도 있을 것이라 낙관합니다. 지금의 우리같은 상황-짚신,고무신에서 인라인까지 함께 살고있는세대-은 세계사적으로 전무후이할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님의 생각처럼 파이도 키우고 나누는 방법도 발명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marine 2004-12-03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는 이것을 소비 동질화라고 설명합니다 소비 성향이 비슷하기 때문에 한 번 히트치면 완전히 대박나는 거죠 이걸 눈덩이 효과라고 하는데, "태극기 휘날리며" 가 천만 돌파한데는 남들이 다 보니까 나도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주효했습니다 공급자로서는 이것이 기회일 수 있으므로 소비 성향을 잘 파악한 뒤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고 마케팅에 주력해 지렛대로 이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나라가 좁아서 그런지, 아니면 여전히 개발우선주의라서 그런지 각자의 개성이 존중되고 다양한 취향이 존중받는 사회는 요원한 것 같습니다

여울 2004-12-03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그렇군요. 눈덩이효과...대박을 한번 꿈꿔볼까요~ ㅎㅎ. 지렛대는 어디갔나? 지렛대가 없군요... 이래서 안되는군요. ㅎㅎ 

 왼쪽 책은 비슷한 류인 것 같은데, 읽어보셨죠.

 물론 10년전 1995년판 한국인트렌트 1도 잼 있었구요.

 뭐라고 쓰였는지 기억은 하나도 없군요. ㅎㅎ 주말 즐거운 독서되시구요.


토토와꼬맹이 2004-12-12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대화의 미성숙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이나 미국등과 같은 국가의 평균 근대화 기간이 100년이 넘는데 비해 단 30년 만에 근대자본주의 문화를 살아가는 한국인에게는 소비지향의 사회가 삶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은 것은 아닌지요....

좋은 글! 부럽네요.

marine 2004-12-13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의식이 바뀌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