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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속의 영화 - 영화 이론 선집 현대의 지성 136
이윤영 엮음.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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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하루라도 영화를 보지 않으면 잠을 제대로 청할 수 없는 날들이 있었다. 밤을 지새우며 눈이 빨개지도록 영화를 보던 때가 있었다. 동네 비디오 가게를 내집 드나들 듯이 오가며 괜찮다고 소문난 영화는 장르 가리지 않고 섭렵을 했다. 그 당시 기억에 남는 영화들은 컬트 영화들이었다. 전형적인 장르 영화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 독특한 스타일과 어법은 영화를 잘 만들고 못 만들고를 떠나서 신선한 경험이었다.  

디비디가 대중화되고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이 들어서면서 예전처럼 발품을 팔아가며 비디오 가게나 시네마테크를 전전할 필요는 없어졌다. 구하기 힘들었던 희귀 영화까지 언제든 편하게 구해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영화는 그때보다 덜 보는 것 같다. 뭐든지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가장 열정적일 수가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영화 잡지가 거의 자취를 감춰버렸지만, 당시에는 ‘스크린’, ‘로드 무비’, ‘키노’ 등 영화잡지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읽혀졌다. 영화를 이해하고 다양한 시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만큼이나 유익한 글들이었다. 특히 ‘키노’는 영화에 대한 진지한 애정이 묻어 나오는 잡지여서 폐간이 될 때는 무척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영화를 보는 것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의 행간을 읽듯이 영화도 읽는 재미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책이었다. 

그 이후로 영화를 보는 것 뿐만 아니라 영화에 대한 글들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국내에 출간된 영화에 관한 책들은 대부분 외국인들이 쓴 책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쓴 책은 거의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쓴 영화에 대한 책들은 영화에 대한 줄거리 소개와 개인적인 감상을 읊은 정도의 에세이가 전부였다. 영화에 대한 배고픔은 어느 정도 채워졌지만, 글에 대한 허기는 아직까지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루돌프 아른하임, 발터 벤야민, 모리스 메를로-퐁티, 앙드레 바쟁, 크리스티앙 메츠, 장-루이 보드리,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질 들뢰즈, 쟈크 리베트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작가들이며 글이다. 이 책에는 몽타쥬의 대가 에이젠슈테인 등 영화감독들 뿐만 아니라 벤야민, 퐁티, 바쟁, 들뢰즈 같은 인문학자들의 글도 많다.  

20세기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가장 대중적인 예술 장르인 영화는 다른 인접 학문과의 소통을 통해서 더욱 발전하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인문학자들의 글은 그와 같은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영화 관련 책들을 읽다보면 정작 영화인들보다 인문학자들의 글들이 더 많이 언급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대로 소화되지 않은 내용으로 번역을 해서 읽기 힘든 책들도 많다. 그리고 혹자들은 이런 글들을 자주 인용하면서 독자들과의 소통을 방해하고 있기도 하다.  

영화는 단순히 영화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과 사회를 읽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그래서 영화는 “보기”도 하지만, “읽는 것”이기도 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대중과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영화나 글은 무의미하다. 에세이 형식의 글 중간 중간 현학적인 내용의 글들이 뒤섞이면서 무슨 내용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인지 분간하기 힘든 책들도 눈에 많이 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형식의 글을 지양하고 오로지 원문을 텍스트로 하여 꼼꼼하게 번역하고 있다. 엮은이의 정성이 곳곳에 배여있는 느낌이다. 대가들이 쓴 글이어서 한 편, 한 편의 글들이 그냥 읽고 넘어가기에는 다소 힘이 드는 측면이 있다. 가쁜 숨을 내쉬며 읽기에는 무리다. 긴 호흡으로 행간의 의미를 읽어가는 것이 이 책이 주는 매력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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