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네 집 가장이자 남편이고 아이들의 아버지였던 고 전몽각 교수가 찍은 사진모음이다. 1964년 첫 아이 윤미가 이제 막 태어난 실눈을 뜨고 있는 순간에서 시작해, 1989년 그 아이가 하얀 면사포를 쓰고 신부 입장을 하는 순간에서 끝이 난다. 윤미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스물여섯 해가 고스란히 담긴 사진집이다. 뭉클한 감동을 준다.

16년 동안 조금씩 촬영해서 만든 영화 ‘보이후드‘가 떠오른다.

결국 우리 삶도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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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께의 압박이 만만치 않았던 책. 미주, 찾아보기 포함 1000페이지가 넘었다. 10개월만에 다 읽었다. 중간중간 다른 책에 한눈 팔다보니 늦어진 면도 있었다. 가방에 벽돌 넣고 다니는 걸 감수하는 마음으로 책을 휴대하여 읽었다면 더 빨리 완독했을지도.

서유럽에서 탈피해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일대를 중심에 놓고 세계의 역사를 살핀 책이다. 저자 피터 프랭코판은 옥스퍼드대 연구원인 역사가다.

동방과 서방의 문명을 연결해주는 이 교차로 지역은 과거에는 교역 덕에 정치, 경제의 중심지 노릇을 했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서는 석유를 차지하고 지정학적 이점을 누리려는 열강의 먹잇감이 되었다. 이제 다시 이 지역에 만들어졌던 교역로가 주목 받고 있다. 역시나 석유와 천연자원, 미중러가 다투는 지정학적 중요성 덕에.

이 두꺼운 책의 절반은 영, 독, 미, 소가 세계의 패권을 두고 서아시아, 중앙아시아에서 벌인 다툼을 보여준다. 이 부분을 읽으면 현대 국제정치와 외교를 이해하는 기초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석유의 발견 ... 페르시아 국가의 보물에 대한 통제권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은 외부 세계에 대한 뿌리 깊고도 지긋지긋한 증오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민족주의를 촉발했으며, 마침내 서방에 대한 심각한 의구심과 거부감을 낳았다. 가장 전형적인 것이 오늘날의 이슬람 근본주의다. 석유 통제권을 차지하려는 욕구는 장래에 많은 문제들의 원인이 된다.˝

˝냉전 하면 초강대국들 사이의 대결 주무대로 베를린 장벽과 동유럽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냉전이라는 진짜 체스 게임은 소련의 아랫배에 해당하는 땅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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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소설의 외피를 두른 잔혹우화이자 정치, 사회, 인간본성을 묘파하는 날카로운 이야기다.

무인도에 고립된 소년들이 리더를 뽑는 모습, 서로 대장질하고 싶어하는 목소리 큰 빅마우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생기는 의견대립, 오늘의 적이 된 어제의 동지,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 ‘파리대왕‘에 펼쳐진 풍경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축약하여 보여준다.

책을 덮은 뒤, 많은이가 진부하게 제기했지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나도 다시 곱씹었다. 이놈의 ‘인간‘이 만들어 놓은 아비규환 같은 ‘세상‘을 그나마 좀 더 낫게 가꾸어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를 변혁하겠다고,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서도 그 결함을 메우지 못하는 것 아닐까. 인간 본성의 결함이 너무 크기 때문에...

‘파리대왕‘ 소녀 버전이 나온다면 그 내용은 어떻게 전개될까 궁금하다. 여자들 사이에서는 파괴성향과 잔학충동이 사그라들까. 마초들의 권력욕과 지배욕을 자매들의 연대와 지혜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

˝내 말은...... 짐승은 아마 우리들 자신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소음에 지지 않고 랠프가 다시 외쳤다.
「법을 지키고 구조되는 것과 사냥을 하고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 중 어느 편이 좋으냔 말이야?」
이제는 잭도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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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한국 장편소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펼친 여성작가의 책.

배경은 동해안의 소도시 ‘척주‘다. 작가의 가공을 거쳤는데 강원도 삼척시가 모델이다. 핵발전소 유치를 두고 갈라지는 지역공동체, 지역경제의 중심축인 석회광산과 공장은 딱 그 동네 얘기다. 여기에 약왕성도회라는 사이비 종교, 진통제를 구하려는 노인들, 죽거나 사라지는 사람들 같은 소재가 가미되었다. 주인공은 척주 출신의 보건소 약사. 그녀는 지역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사건에 휘말린다.

스릴러 요소가 풍부한 멜로드라마라고 일컬어도 좋을 듯하다. 보건소 공익요원과 썸타는 주인공에게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모습이 보였다. 이말삼초 여성들이 좋아할만한 관계설정.

바다에 접한 도시, 척주를 잘 그린 소설이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이 군데군데 박혀서 숨을 가다듬게 한다.

˝송인화는 강을 따라 걷다가 문득 뺨이 따뜻해서 옆을 돌아보았다. 강물 위에 빛들이 내려앉아 자글거리고 있었다. 걸어갈수록 빛 무리가 왠지 자신을 따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송인화는 걸음을 조금 빨리해봤다. 빛 무리도 같은 속도로 따라왔다. 송인화는 다시 천천히 걸었다. 빛 무리도 속도를 늦추며 따라왔다. 송인화가 걸음을 멈추자 빛 무리도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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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가 되고 싶어서 이 책을 샀던 건 아니다. 위기철이란 글쓴이의 이름에 일단 혹했다. 나 열한 살 적에 그가 쓴 ‘반갑다, 논리야‘를 읽고 느꼈던 희열이 오래도록 남았다. 커서 읽은 동화 ‘아홉살 인생‘에서는 그의 재치와 통찰을 맛볼 수 있었다.

이 책은 글쓴이 위기철이 동화를 쓰려는 이들에게 보탬이 될까 싶어 연재했던 글을 모아 엮은 것이다. 그렇다고 동화작법서로만 한정짓기에는 너무 알차고 쓸모가 많다. 이야기꾼이 갖추어야 할 기본기를 쉽고 명료하게 전달해준다. 동화뿐만 아니라 소설, 영화, 만화 등 다른 서사장르 창작에도 공히 적용할 수 있는 도움말이 풍부하다.

이야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주의사항을 알아두면, 만들어진 이야기를 잘 읽어내는 눈썰미도 기를 수 있다. 이 책으로 이야기‘가‘ 노는 법을 배우는 동안 이야기‘와‘ 노는 법도 은근히 습득하게 될 것이다. (2013년 출간되었을 때 읽고, 5년 지나 이번에 다시 읽었다.)

˝이야기를 쓰는 과정이 바로 이야기를 즐기는 과정인데, 왜 그 과정을 쉽고 편하게 하려는지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후딱 써 놓고 TV 보려고?˝

˝작품 발표에 연연하지 말고, 그냥 쓰는 과정을 즐기세요. 목숨 부지하고 있을 때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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