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평점 :
여백과 자연미, 건축을 빚어내는 장인들의 순도높은 이야기들.
더위도 추위도 잘 타지만 유독 올해 여름은 무척이나 무더웠다. 연일 오르는 뜨거운 햇빛 아래 무엇을 하든 축축한 땀과의 전쟁이어서 그 뜨거운 시간들이 어떡해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더울 때는 언제 이 더운 여름날이 지나갈까, 하며 푸념을 내세우며 하루하루 길고 긴 여름을 보냈는데 시간이 지나 서늘한 가을 하늘을 마주 하고서야 그 더운 여름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뜨거운 여름에도 서늘하면서도 뜨거운 이야기에 빠져 열심히 책을 읽었지만 정작 책을 읽기 좋은 계절인 가을에는 비실비실 앓을 정도로 기운이 없었다. 뭘해도 기운이 나지 않아 힘에 부쳤지만 마쓰이에 마사시의 첫 작품인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여름의 끝과 가을의 첫 시작점에 만난 책임에도 페이지가 생각보다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오랫동안 잡아둔 덕분에 겨우 끝을 마주 할 수 있는 책이지만 간결한 내용과 달리 문장의 밀도가 높고 섬세하다. 흐르는 이야기의 구조 보다는 무라이 건축 사무소에서 만들어내는 건축에 대한 정의와 그들이 만들어가는 손길 하나하나의 정성과 정신들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이런 문장들이 빼곡하게 완만하게 그려져 있기에 그 어떤 문장 하나도 놓칠 수 없이 촘촘하게 수가 놓아져 있다. 그렇기에 빠르게 이런 문장들을 읽어나간다면 손 사이로 빠져드는 모래알같이 자잘하게 빠져 나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1960년대 무라이 슌스케는 외국에 나가 건축을 공부하고 경험을 쌓아 일본에 귀국했다. 일본의 고도경제성장에도 발빠르게 지어 나가는 흐름 속에서 그는 흔들리지 않았고, 자기 과시욕을 충족시키는 건축이 아니라 실질적이면서도 아름답고, 실제 사용하기 편리한 건물을 하나하나 만들어냈다. 시대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는 건축가의 신념은 많은 동종업계 사람들의 열망을 불러 일으켰고, 건축을 공부한 학생들에게는 우러러쳐다 볼 만큼 동경하게 되었다. 갓 대학을 졸업한 소설 속 화자인 '나'인 도오루 역시 무라이 슌스케를 동경했고 몇 년째 신입사원을 뽑지 않은 무라이 건축사무소를 희망했기에 무라이 선생에게 졸업작품과 이력서를 동봉하여 제출한다. 다행히 그의 졸업작품이 마음에 든 무라이 선생은 그를 채용하게 되고, 아사마 산 자락에 있는 여름 별장에서 무라이 선생과 함께 한 1년의 시간과 그 후의 시간을 그려낸 이야기다.
누군가의 손에 지어진 집에 살고 있고, 혹은 유명한 국내, 국외의 건축물을 밟아 보면서도 건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들을 무라이 사무소의 일원들과 함께 고민하게 되었다. 그릴듯 그려지는 체계적인 공정아래 그들이 만들어내는 건축은 사람과 자연, 세월을 이겨내는 힘을 가진 건물이지만 그 속에 사람에 대한 배려와 자연에 대한 배려, 세월에 의해 마모되는 순간 까지도 그 빛을 잃지 않는 건축가의 정신이 모두 함유된 일이었다. 모든 것에 대한 '배려'와 생각이 모여 사람의 삶에 자연스레 녹아든 집과 공간을 만드는 일이었고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무라이 슌스케 선생의 정신은 완고하고 단호했다.
건축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쓰는 의자, 책장, 그 무엇 하나도 쓰임새가 왜곡되지 않았고 공간에 따라 달리 표현되었다. 건축가의 생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에 직결되어 풍요롭게 생활 할 수 있는지를 알게 할 수 있는 책이다. 건축에 있어서는 예술, 자연, 과학등 수많은 요소의 결합이 총체적으로 합쳐져야 한다는 것도 건축도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철학이었다. 자연친화적인 건축을 선호해 오던 무라이 선생이 국립현대도서관 설계라는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각각의 일원들이 고군분투하고 주인공인 도오루 역시 한 부분을 맡아 일을 돕는다. 그 속에서 선생님 조카인 마리코와의 접촉 혹은 만남, 사랑의 지속성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건축물을 완성하기 까지의 과정을 희붐하게 그려냈다.
단단한 땅에 천천히 힘차게 뿌리를 박으려는 모습이 엿보이면서도 마리코와의 만남이 점점 더 깊이를 더해져가면서 느껴지는 관계의 불안감이 서서히 옥죄어 온다. 은밀하게 만나는 두 사람의 관계가 잔에 찰랑찰랑 넘치는 물과 같아서 읽는 내내 불안하게 느껴졌다. 이어질 것인가, 이어지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불안은 결국 무라이 선생이 끌고간 프로젝트의 결과가 맞닿아져 있다. 한철 내내 뜨거운 태양아래에서도 흔들림없이 일을 하며 화려한 시절을 보냈던 무라이 건축 사무소의 이야기가 일달락되고, 삼십 년 후 나의 모습을 비추면서 마쓰이에 마사시가 그리고자 하는 이야기는 끝이 난다.
길고 긴 이야기지만 닿을 수 없는 세계의 끝과 관계, 신념,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너무나 명확히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내고 있어 읽는 내내 긴 여운을 주는 작품이었다. 비록 페이지는 빠르게 넘어가지 않아도 천천히 붙잡고 있는 페이지 안에 가득한 진심이 그 안에 숨어져 있다.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그가 무라이 사무소에 오기 전 그가 설계한 교회를 실측하는 장면이었다. 하나하나 그가 걸어간 발걸음을 따라 그리고, 실측하고 고민하며 따라가는 모습은 그가 무라이 건축 사무소에 입성하기 전의 일이지만 그 전에도 그 후에도 그는 끊임없이 그가 걸어간 여정을 생각하며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
"침실은 너무 넓지 않은 쪽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숙면을 도와. 천장도 높지 않은 편이 좋아. 천장까지의 공간이 너무 넓으면 유령이 떠돌 여지가 생기거든." 우스갯소리를 하듯 말했다. "침대와 벽 사이는 말이야. 한밤에 잠이 깨서 화장실에 갈 때, 한 손을 가볍게 내밀면 바로 닿을 만한 거리가 좋아. 캄캄해도 벽을 따라서 문까지 갈 수 있고 말이지. 다이닝 키친의 경우, 요리하는 냄새가 좋은 것은 식사하기 전까지만이고 식사가 끝나면 바로 싫어지지. 주방의 천장높이와 가스풍로, 환기통 위치가 냄새를 컨트롤하는 결정적인 수단이야." 장인이 전달하는 비법 비슷했다. - p.20~21
사람이 드나들지 않게 된 집은 마치 선반에 놓인 채 잊힌 복숭아나 같았다. 순식간에 상하고 녹아버린다. 주위 숲도 손질을 게을리하면 일 년이면 울창해지고 마당은 잡초가 무성해진다. 통풍을 시키지 않는 물건은 눈 깜짝할 사이에 곰팡내가 난다. 청장에는 시커먼 개미집과 벌집 덩어리가 달라붙고, 덧문 두껍닫이에는 새가 둥지를 튼다. 외벽은 딱따구리가 구멍을 뚫고, 지붕의 비 새는 곳을 내버려두면 방바닥을 비집듯이 버섯과 양치류가 염치없이 자란다. - p.33
이런 섬세한 마감에 사람들은 주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의식 밑에서 뭔가 받아들여지는 것이 있다. 사진이나 도면으로서는 알 수 없는 촉감이나 편한 쓰임새 속에 선생님의 표시가 각인되어 있다. 그 표시를 찾아내고, 손으로 만지고, 스케치하고, 기록한다. 실측을 되풀이할수록 나는 한 발자국씩 선생님의 생각에, 손을 움직인 그 흔적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같이 느껴졌다. - p.75
"간단하고 간결하다는 것은 사람을 가리지 않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가 설명하지 않아도 어떻게 사용하는지 저절로 알 수 있으니까 말이야. 건축에서 사소한 장치를 생각할 때도 사는 사람과 쓰는 사람이 그 장치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상적인 거야. 취급 설명서 따위 붙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우위라고." - p.114
나는 풀베기랑 잔디 깎기를 좋아했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나일론 끈이 잡초를 끊고 작은 돌을 튕겨내면서 자기 의지가 있는 것처럼 앞으로, 앞으로 인도해나간다. 귀를 찢는 엔진 소리. 풀이 끊어지는 소리도, 새가 우는 소리도, 사람 소리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된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부지 내 진입로랑 흙둑 주변이 깨끗해졌다. 왜 사람은 잡초만 깎아도 이렇게 상쾌해지는 걸까. 울퉁불퉁한 땅보다 펀펀하게 고른 편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콘크리트 마감도 보기에 나쁘지 않다. 평평한 면을 인간이 좋아하게 된 것은 도대체 언제부터일까? 인간이 처음 본 평평한 것. 바람 없는 날의 호수. 파도가 쓸고 간 모래사장, 얼어붙은 물엉덩이. 내 청바지와 티셔츠에는 주름이 가고, 풀이랑 잎사귀의 초록색 파편이 달라붙어 있다. 예초기 엔진을 끄고 헬멧을 벗는다. 숲의 소리가 귀에 돌아온다. - p.161~162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 같은 것은 놀랄 만큼 빠른 단계에 완성돼. 태아는 그 손가락으로 뺨을 긁기도 하고 열었다 닫았다, 태어나기 몇 달 전부터 손가락을 움직여. 건축에서 세부라는 것은 태아의 손가락과 같아. 주종관계에서의 종이 아니야. 손가락은 태아가 세계에 접촉하는 첨단이지. 손가락으로 세계를 알고, 손가락이 세계를 만들어. 의자는 손가락과 같은 것이야. 의자를 디자인하다 보면 공간 전체가 보이기도 하지"
무의식의 영역을 빼놓고 사람에게 태아시절의 기억은 없다. 그렇지만 이 손가락이 예전에 그렇게 세계를 탐색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서 손을 움직일 뿐만 아니라 손을 움직이는 것이 생각으로 연결된다. 선생님의 건축 작법은 그 양쪽으로 성립되어 있다. 나는 내 손을 펼쳤다가 쥐었다. - p.173~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