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판에 딱 붙은 아이들 난 책읽기가 좋아
최은옥 글, 서현 그림 / 비룡소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굴도 마주하기 싫은 친구와 하루종일 함께 해야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이야기도 하기 싫고, 얼굴도 보기 싫은 친구와 무조건 같이 해야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칠판에 딱 붙은 아이들』은 그런 친구들의 이야기다.  외모도, 좋아하는 것도, 성격도 많이 달랐지만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친했던 박기웅, 박동훈, 박민수는 '세박자'로 불리는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이 얼마전부터 서로 말도 하지 않고, 주변에는 알 수 없는 찬바람이 쌩쌩부는데, 아침 청소당번이었다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렸단다.  선생님 눈치를 보면서 칠판을 닦던 아이들에게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다.  손바닥이 칠판에 딱붙어 버렸는데, 다들 장난이나 거짓말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자세히 한번 보세요. 진짜, 진짜 붙었다니까요."(p.16)

 

 

 

 

자로 잰 듯 교장 선생님은 자로 잰 듯 깔끔하게 붙어있지 않다고 뭐라고 하시고, 기웅이, 동훈이, 민수네 가족들이 아이들 문제로 모였다.  씨름 선수처럼 몸이 좋은 민수 아빠와 가족들, 방송국 리포터로 일하는 멋쟁이 동훈이 엄마, 냉기가 풀풀 넘치면서 찾아온 기웅이네 부모님.  처음엔 아이들을 걱정하던 어른들은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기 시작한다.  칠판에 문제가 있다는 사람, 칠판이 붙어있는 벽에 문제가 있다는 사람, 초기대응이 늦은 119 구급대 탓이라는 사람, 구급대의 진입로를 막은 민수 아빠에 차가 문제라는 사람들까지 난리가 아니더니, 목사님, 스님, 무당까지 용하다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정신없이 자기들 주장만 내세운다.  

 

두손이 칠판에 찰싹 달라 붙어 다리가 아픈 아이들을 편하게 해줄 생각도 없이 자신들 의견만 이야기하던 어른들이 사라지자, 집으로 돌아갔던 같은 반 아이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미끌미끌한 참기름, 주방세제, 비누, 식용유, 샴푸, 린스, 세탁용 가루비누까지 들고 온 아이들.  반 아이들은 미리 입을 맞춘 것도 아닌데, 한마음으로 '세박자'를 칠판에서 떼어내기 위해서 다시 학교로 돌아왔단다.  아이들 맘을 알았다면, 칠판에서 딱 떨어져야 할테데, 이 모든 미끄럼 덩어리들을 사용해도 아이들은 떨어질 줄 모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어른들이 들어닥쳤다.  잉~~ 어쩌란 말인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수 밖에.

 

이제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렸다.  만능 박사님도 해결을 못하고 있는데, 동훈이 엄마가 방송국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 버렸고, 경찰과 보건당국은 재난구역으로 학교를 지정해버리니, '세박자'외엔 아무도 학교에 남아 있으면 안된단다.  서로 사이가 틀어져 말도 안하는 아이들이 어떻게 이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그래도 아이들이다.  게다가 가장 친했던 친구들이다.  기웅이, 동훈이, 민수는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털어놓기 시작하고, 화가 났던 부분들이 오해에서 생겨난것임을 알게 된다.  말만 하면 다 알 수 있는 문제들을 가끔은 다 알겠지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참 많다.  민수랑 기웅이만 놀러간일, 동훈이가 모둠활동에 빠졌던 일, 민수가 동훈이 단평시험지를 본일. 그 모든 일들이 별거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별일도 아닌 걸로 며칠동안 속을 바글바글 끓였던 게 바보처럼 느껴지고, 조금 더 일찍 애기를 나눴더라면 오해가 생기지도 않았을 거라고 생각이 들면서 아이들은 손바닥이 붙은게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무슨일이 벌어졌을까?   읽어보시길...  이제부터 재미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뉴스 속보에서 전해지는 소식은 우리나라 곳곳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있단다.  지하철에선 대학생 네 명이 의자에 두 손이 붙은 채로 발견되고, 엄마와 아들의 손이 커다란 문에 붙어 버리고, 버스를 타고 가던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손잡이에 붙었다는 속보가 들려온다.  책을 읽은 친구들만 알 수 있는 일들은 기웅이네 집에서도 벌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참 다행이다고 느낀다.  함께 있어서, 다리가 아닌 손이 붙어서 참 다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쥐포 스타일 - 제3회 스토리킹 수상작 비룡소 스토리킹 시리즈
김지영 지음, 강경수 그림 / 비룡소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이어트를 한다고 식단조절을 하고 있는데, 이 식단이 참 문제가 많다.  밥 대신 고구마를 먹고, 단백질로 가장 편한 음식은 달걀을 먹는다.  그것도 매일 두끼씩을 먹었더니 가스를 주체할수가 없다.  물을 많이 먹어서 밖으로 배출시켜야 하는데, 물을 조금만 부족하게 먹어도 화장실이 아닌 가스를 살포하고 있으니 여간 난감한게 아니다.  집에서야 어찌어찌 하겠는데, 밖에서 이런일이 있을때는 괄약근에 힘을 꽉 주고 사람들 없는 곳으로 피할 수 밖에 없다.  어렸을때 읽었던 방귀끼는 새색시처럼 힘이라도 좋아서 배나무의 배를 딸수 있는것도 아니고, 이걸 막는 방법은 고구마를 끊는 수 밖에 없는것 같은데, 『쥐포 스타일』의 '시크건방' 구인내는 방귀쯤은 별게 아닌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 2학기에 자력을 배우는데, 책속 아이들은 5학년임에도 자력을 배우니 아주 똑똑한 아이들이다.  같은극끼리는 밀고, 다른극은 끌어당기는 척력과 인력속에 방귀가 끼면 어떻게 될까?  문제란 문제는 모두 만들어 내는 것 같은 구인내에게 정말 알다가도 모르는 일이 생겼다.  말굽자석이 똑똑이 나영재의 엉덩이에 턱하니 붙어버렸다.  모두들 인내의 장난이라고 믿고 있으니, 아니라고 해도 믿어주는 이가 없다.  인내가 어떻게 해결할 방법도 없이 영재에게 붙어있던 자석은 뚱뚱한 장대범이에게, 예쁜이 봉소리에게 차례로 붙어버린다.  분명 뭔가 있는데, 이유가 몰까?  아무도 믿어주지는 않지만 탐정이 되고 싶어하는 인내가 문제를 해결한다.  이상 변화로 방귀냄새를 따라가는 말굽자석의 비밀을 몽땅 파헤쳐주겠다.

 

별명을 가능하면 단순하게~.  방귀로 자석이 붙었다는 이유로, 인내,영재,소리,대범이는 '방귀 사총사'라는 별명을 갖게 되고, 아이들은 '가스포'를 줄여 쥐포(G4)라는 멋진 이름을 만들어 낸다.  물론, 영재와 소리가 그룹에 끼고 싶지는 않겠지만, 어쩌겠는가?  한번 만들어진 별명은 한 학기동안 함께한다는 진리를 모르는바 아니니 말이다.  방귀사건으로 이어진 아이들의 이야기는 이제 각각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연작소설처럼 나영재, 봉소리, 장대범 편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돌연변이 말굽자석', '책 무덤', '빛나는 거지', '방귀 정복자'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소제목만으로도 씨익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때 가장 많이 하는 놀이중에 하나가 책으로 도미노를 만들거나, 집을 짓은 놀이다.  우리집 아이들도 어찌나 책장에 있는 책을 꺼내어 쌓기놀이를 하고 까르르거리면서 놀았었는지 모른다.  보통의 아이들은 모두 이런 경험을 하게 될텐데, 엄마 입장에서는 어떨까?  아기때는 함께 웃겠지만, 조금지나면 책 정리 안한다고 혼을 낼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만들어낸 도미노 하트가 안보일지도 모르겠다.  책 좋아하는 영재가 어째서 '책 무덤'을 만들었는지는 책으로 만나봐야 한다.  그 감동을 글로 어떻게 풀어내겠는가?  진정한 배우가 되고 싶어하는 아역 배우, 소리는 어떨까?  소리의 이야기를 담은 '빛나는 거지'는 어떤 내용일지 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거지면 거지지 빛나는 거지는 뭐야?  자신의 꿈을 어린시절부터 갖는다는건 대단한 일이다.  꿈이 변할수도 있지만, 그 꿈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박수를 쳐주어야 한다.  그런면에서 소리는 매력적인 아이다.

 

방귀 냄새만으로 먹은 음식을 알아맞출 수 있다는 대범이의 재능을 선생님은 어째서 이해해주지 않으시는걸까?  장난친다고 생각하실수도 있지만, 대범이는 진심으로 자신의 재능을 특기로 생각하는데 말이다.  어디서나 방귀잘 뀌고, 냄새 잘 맡는게 쉬운일은 아니지 않는가?  학교에서는 우스게거리가 되어도 요즘 최고 인기프로인 「쫄지마 (쫄지만,바로 지금이야)」에서는 방귀퍼퍼먼스가 대박이 날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서나 시련은 있는 법. 대범이와 인내는 방귀 퍼퍼먼스와 냄새로 알아맞추기에서 승리를 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면 '쫄지마'의 '방귀특집'편을 살짝 들여다 보시길...  힌트는 노린재다.

 

아이들은 자란다.  누구에게나 시련은 오지만, 그 시련은 감당할수 있을 정도로 온다.  시련이 있어야 아이들은 강해지고, 그만큼 자란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눈도 귀도 가리고 숨어버리고 싶을 때도 분명 있을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살수가 없다.  5학년이었던 G4 아이들 얼굴에 여드름이 하나씩 올라오면서 아이들은 조금 더 성숙해 질것이고, 그걸로 또 고민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아이들을 키우고, 자라게 만든다.  어른들이 그때가 가장 좋을때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걸 안다면 아이들이 아니다.  그저 모든지 열심히 힘을 낼 뿐이다.  출판사에선 B급 소재로 통쾌함을 준 이야기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쥐포스타일』은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게 만들어준다.  아이들 맘을 읽는다는것, 역시 스토리킹 수상작답다.  아이들이 책을 읽는데는 분명 이유가 있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악은 전염된다.  아니, 모든 인간이 마음속에 깊이 숨겨 가지고 있는 악, 말하자면 잠복하고 있는 악을 표면화시키고 악행으로 나타나게 하는 '마이너스의 힘'은 전염된다고 할까.' p.454

 

 

암흑의 제왕 사우론의 힘의 원천인 동시에 분신인 '절대반지'를 통한 악의 전염은 인격뿐만 아니라 용모까지 바꾸어 버린다. 『반지의 제왕』으로 만났던 악의 원친은 이런 힘이었고, 절대반지 속에만 악이 존재하지는 않음을 알고 있다.  기독교 역사속에서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 예수님의 죽으심을 똑같이 따를수 없어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베드로는 그렇게 사랑하고, 죽기까지 따르겠다는 예수님을 닭이 울기 전 세번이나 부인했다.  예수님의 체포현장에서 뿔뿔이 도망쳐 버린 다른 이들보다야 용감하다 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 베드로에겐 자신을 감춘 행위였고, 예수님을 부인하는건 기독교 사상으로는 '죄'다.  그러기에 렘브란트의 <예수를 부인하는 베드로>의 초상은 강렬한 그림이 아님에도 강렬하게 다가온다.  미야베 미유키는 렘브란트의 그림을 모티브 삼아 '악은 과연 전염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행복한 탐정 시리즈의 3탄으로『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을 내놓았다.

 

『누군가』,『이름 없는 독』을 이어 7년만에 돌아온『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으로 시리즈를 만들어 낸 '행복한 탐정'은 위험에 빠진 재벌가의 딸을 구해준 인연으로 결혼까지 하게 된 평범한 출판 편집자 스기무라 사부로가 재벌 총수인 장인의 회사에 들어가 사보를 만들면서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내고 있다.  스기무라가 어설픈 탐정 흉내를 내며 해결해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스기무라에 관한 세번째 이야기인 이번 작품은  전작들을 통해서 만났던 인물들이 간간히 얼굴을 내어 밀면서 전작과의 이야기 흐름을 이어주고 있지만, 전작을 읽지 않고 이번 작품만 읽어도 막히는 부분은 없다.  863페이지나 되는 막대한 양의 책 속에 전작들의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으니 말이다.  어마어마한 양이지만, 책을 읽는 재미는 톡톡하고, 요즘 흔히 사용하는 것처럼 '상','하'나 1.2권으로 나뉘어 있지 않아서 금전적으로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평범한 기업 사내보 편집자라고 하기에 스기무라 사부로는 엄청나게 사건들을 몰고 다닌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길에 탄 버스가 통째로 납치되고, 납치범이 자살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테니 말이다.

 

버스에 탔다가 인질이 돼 버린 승객들과 운전기사, 그리고 납치범.  약한 노인처럼 보이는 인질범을 누구도 대적하지 않고, 심지어 인질범의 말솜씨에 편집장인 소노다 에이코를 제외한 승객들은 노인에게 지배당하고 컨트롤당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나이가 있는 사코타 할머니, 버스 기사인 시바노, 편집장인 소노다를 버스밖으로 보낸후 자신의 이름을 사토 이치로라 밝힌 인질범은 경찰에게 세명의 인물을 데리고 오라고 하고, 인질이 된 스기무라, 사카모토, 다나카, 마에노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노인의 입장에서 궁금해 하기 시작한다.  거기에 사토 이치로가 이야기하는 모종의 위자료는 그곳에 있는 이들에게 꿈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엄청난 부자 영감님의 객기일까?  영감님은 엄청난 위자료를 이야기하면서 인질이 된 승객들의 맘을 쥐락펴락하기 시작한다. 경찰의 습격과 노인의 죽음이 있기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밝혀진 노인의 실체는 빈털털이의 독고노인이었다.  이걸로 끝이 났다면 아무것도 아닐것이다.  사건을 몰고다니는 스기무라에게 설마 여기서 이야기가 끝이나겠는가?  

 

거의 900페이지에 가까운 미미 여사가 펼쳐내는 이야기는 200페이지가 넘어선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풀어내기 시작한다. '기사 시바노 가즈코, 승객 사코타 도요코, 승객 다나카 유이치로, 승객 스기무라 사부로, 승객 사카모토 케이, 승객 마에노 메이, 승객 소노다 메이코'  이 승객들, 인질이었던 이들에게 돈다발이 소포로 전해졌다.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사토 이치로.  이 돈은 도대체 어떤 돈이란 말인가?  위자료라고 했으니 사용해도 되는 돈인지, 신고를 해야하는지. 그보다 부자라고 여겼던 사토씨가 그렇게 가난한 사람이었다면 받아도 되는 돈이긴 한건가?  하나의 유대관계로 맺어졌지만, 각각의 사정이 있는 이들은 고민하기 시작하고, 우리의 행복한 탐정님은 장인어른의 특명을 받고 일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사이에 스기무라는 전작에서 만났던 사립탐정, 기타미의 유족들과 관련된 일들을 알게 되면서 서로 다른 이야기같아 보이던 이야기의 물길들이 하나의 큰 물길이 되어 돌아온다.

 

북스피어 창립 10주년 기념 ‘르 지라시’ 특대호를 통해서 미미 여사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부모님 집에서 정수기를 파는 전화를 받았단다. '정수기를 파는 전화인 줄 알고 이야기를 들어봤어요. 음이온이 나온다든지 여러 모로 좋은 점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한데 뒤로 갈수록, 암도 낫는다는 둥 고혈압과 당뇨병도 쉽게 고친다는 둥 어처구니없는 말들을 쏟아내는 거예요. 잠자코 듣고 있었다가 '새빨간 거짓말!' 하고 끊어버렸지요.'  얼토당토 않다고 제3자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내 부모님이 겪은 일이라면, 그 일로 인해서 삶을 포기할 지경까지 놓이게 된다면 이일은 얼토당토 않은 일이 아닌, 직면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편집장인 소노다의 숨겨진 이야기, 사토 이치로로 불렸지만 구레키 가즈미쓰였고, 하다 미쓰아키였던 밋짱의 이야기, 사립탕점인 기타미씨와 연결되어 있던 아다치 노리오의 이야기까지 각각의 일들이 결코 각각의 일이 아닌 지금 이 시대에 흐르는 악의 풍토로 보여주고 있다. 

 

사건의 해결이 모든것의 해결이라고는 할 수가 없다.  하나를 뿌리 뽑았다고 해서 밭에 있는 잡초가 모두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 어느 사이에 악은 또 다른 악의 씨앗을 어딘가에 뿌려두고 있다. 그뿐인가? 사건을 몰고다님에도 불구하고 항상 깔끔하게 사건을 해결해버리는 스기무라에게도 해결못할 일이 생겨버리니 말이다.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을 알릴 수도 있고, '행복한 탐정'시리즈가 스기무라에 변화로 인해서 진짜 탐정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조곤조곤 어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나호코는 스기무라에게 이야기를 던져버리고 사라지는 걸까?  공주님이라 그런가?  물론, 속 마음이야 알 수 없지만, 스기무라 역시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으니,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미미 여사는 프롤로그를 통해서 이야기의 새로운 결말을 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던 인생의 주인공은 '나'이니 말이다. 

 

"버스가 서 있던 공터 구석에 버려져 있었거든요.  손잡이와 안장이 빨간색인, 작은 자전거였습니다.  버스 문의 유리 너머로, 제게는 잘 보였습니다." p.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 네스뵈의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만들다니. 그는 분명 마법사입니다. 이번에 또 어떤 이야기로 오슬로의 거리를 두근거리게 만들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한 달 뒤에 죽게 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가방을 싸서 유럽행 비행기를 예약하고 아말피 해안에 집을 빌린 뒤 진짜 이탈리아 파스타와 와인을 실컷 먹을 거라고 했다.  (p.123)

  

유행처럼 '버킷리스트'가 퍼진적이 있었다.  영화도 나왔었고, 버킷리스트에 관한 책들도 많이 있어서 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게 어떤게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해봤을 것이다.  친정 부모님과 함께 여행도 다니고 싶고, 아이들과 못다한 이야기와 놀이도 하고 싶고, 남편과 약속했던 것들도 모두 이루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었다.  그러려면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테니, 나의 '버킷리스트'는 많은 시간이 주어져야만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하지만, 사람일은 누구도 알 수 없는게 아닌가?  한달전에 고모부가 돌아가셨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고모부의 죽음은 어떤 유언도 남겨지지 않았고, 고모부가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오로지 살아있는 자들에겐 슬픔의 장만 남았었다.

 

 

내 시간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어떻게 다가올까?  시간의 여유를 느끼고 있던 스물일곱 살의 데이지에게 죽음은 그냥 웃고 넘길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힘겨운 수술과 화학치료, 방사선 치료까지 모두 거치고 완치 되었다고 매년 파티를 하던 그녀에게 암의 재발을 이야기하는 의사의 말이 제대로 들리기나 했을까?  이제 그녀의 시간은 4개월, 아니면 6개월로 정해져 버렸단다.  지금까지 데이지가 했던 일들은 모두 소소한 것들이 되어 버리고, 데이지는 가장 친한 친구인 케일리와 함께 남편의 새로운 인연을 찾는 것으로 남은 인생의 목표를 세워버린다.  치아도 비뚤고 양말도 제대로 벗지 못하고 가사일도 못하는 잭이지만,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 데이지에게 잭은 너무나 멋지고 로맨틱한 모습으로만 보여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근사한 남편을 아무에게나 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처음엔 잭에 대한 걱정이었지만, 보면 볼수록 잭은 데이지가 아닌 누군가에게 소개시켜주기엔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나의 죽음 이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주변을 찾아 보고, 인터넷을 하면서 데이지와 케일리는 잭에게 꼭 맞는 여자를 찾기위한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실행을 하기 시작한다.  『비포 아이 고』의 부제가 「내.남편의.아내가.되어줄래요」다.  처음 책을 만났을때는 어쩜 이렇게 엉뚱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아내, 아이도 없고 오로지 사랑하는 남편만 있는 아내 입장에서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 나를 데리고 가기 전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곁을 책임져 주고 싶은 마음,  분명 데이지의 처음은 그랬다.      

 

그리고 패멀라를 미워한다.  증오심은 검은 액체처럼 배 속에서 시작해 손발 끝으로 퍼져 나간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패멀라에게 나는 죽어가고 있는데, 내 남편에게 말을 걸지 말라고, 그를 웃게 하지 말고, 살아 돌아다니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p.328)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로 인해 히스테리를 일으킨것도 아니다.  다만,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기에, 분명 데이지의 마음은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지만, 잭의 곁에 다른 이가 있는것을 어떻게 미소를 지으면서 바라볼 수 있겠는가?  데이지만의 일이 아닐것이다.  사람의 삶, 인생이라는 걸 어떻게 한마디로 정의를 할 수 있을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물으면 우리는 참 편하게도, 책에서 보아온 이야기를 한다.  '사랑'때문에 산다고 망설임 없이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정의를 하고 데이지에게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데이지의 이야기는 '죽음'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종 즐겁고 쾌활하게  이어진다.  데이지와 잭의 관계, 데이지와 케일리의 관계, 데이지와 엄마의 관계.  함께 공유했던 시간들이 24시간이 지난다고 리셋이 되어 버리고, 새로운 시간과 기억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데이지와 케일리라 찾아헤메던 사람.  잭에게 딱 어울릴것만 같은 사람이 나타났음에도 데이지는 안절부절 하고, 잭과 함께 있는 패멀라를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왜?  여전히 사랑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데이지와 함께 하고 있는 케일리.  사람의 생각은 협소해서,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것이 보이지 않는다.  케일리의 말처럼 데이지가 떠나간 후에, 데이지를 잃는 건 잭뿐만이 아닌라는 걸 데이지는 인지하지 못했다.  죽음 이후의 삶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죽음을 앞둔 사람은 두렵고 무섭고, 떠나보려는 사람도 가슴아릴 수 밖에 없다.  인생의 정답을 딱 부러지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엉뚱발랄한 데이지가 외치는 '내 남편의 아내찾기'는 죽음을 매개체로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어 준다.  데이지 뿐 아니라 그녀를 알고 있는 이들까지도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