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한 달 뒤에 죽게 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가방을 싸서 유럽행 비행기를 예약하고 아말피 해안에 집을 빌린 뒤 진짜 이탈리아 파스타와 와인을 실컷 먹을 거라고 했다.  (p.123)

  

유행처럼 '버킷리스트'가 퍼진적이 있었다.  영화도 나왔었고, 버킷리스트에 관한 책들도 많이 있어서 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게 어떤게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해봤을 것이다.  친정 부모님과 함께 여행도 다니고 싶고, 아이들과 못다한 이야기와 놀이도 하고 싶고, 남편과 약속했던 것들도 모두 이루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었다.  그러려면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테니, 나의 '버킷리스트'는 많은 시간이 주어져야만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하지만, 사람일은 누구도 알 수 없는게 아닌가?  한달전에 고모부가 돌아가셨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고모부의 죽음은 어떤 유언도 남겨지지 않았고, 고모부가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오로지 살아있는 자들에겐 슬픔의 장만 남았었다.

 

 

내 시간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어떻게 다가올까?  시간의 여유를 느끼고 있던 스물일곱 살의 데이지에게 죽음은 그냥 웃고 넘길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힘겨운 수술과 화학치료, 방사선 치료까지 모두 거치고 완치 되었다고 매년 파티를 하던 그녀에게 암의 재발을 이야기하는 의사의 말이 제대로 들리기나 했을까?  이제 그녀의 시간은 4개월, 아니면 6개월로 정해져 버렸단다.  지금까지 데이지가 했던 일들은 모두 소소한 것들이 되어 버리고, 데이지는 가장 친한 친구인 케일리와 함께 남편의 새로운 인연을 찾는 것으로 남은 인생의 목표를 세워버린다.  치아도 비뚤고 양말도 제대로 벗지 못하고 가사일도 못하는 잭이지만,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 데이지에게 잭은 너무나 멋지고 로맨틱한 모습으로만 보여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근사한 남편을 아무에게나 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처음엔 잭에 대한 걱정이었지만, 보면 볼수록 잭은 데이지가 아닌 누군가에게 소개시켜주기엔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나의 죽음 이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주변을 찾아 보고, 인터넷을 하면서 데이지와 케일리는 잭에게 꼭 맞는 여자를 찾기위한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실행을 하기 시작한다.  『비포 아이 고』의 부제가 「내.남편의.아내가.되어줄래요」다.  처음 책을 만났을때는 어쩜 이렇게 엉뚱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아내, 아이도 없고 오로지 사랑하는 남편만 있는 아내 입장에서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 나를 데리고 가기 전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곁을 책임져 주고 싶은 마음,  분명 데이지의 처음은 그랬다.      

 

그리고 패멀라를 미워한다.  증오심은 검은 액체처럼 배 속에서 시작해 손발 끝으로 퍼져 나간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패멀라에게 나는 죽어가고 있는데, 내 남편에게 말을 걸지 말라고, 그를 웃게 하지 말고, 살아 돌아다니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p.328)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로 인해 히스테리를 일으킨것도 아니다.  다만,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기에, 분명 데이지의 마음은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지만, 잭의 곁에 다른 이가 있는것을 어떻게 미소를 지으면서 바라볼 수 있겠는가?  데이지만의 일이 아닐것이다.  사람의 삶, 인생이라는 걸 어떻게 한마디로 정의를 할 수 있을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물으면 우리는 참 편하게도, 책에서 보아온 이야기를 한다.  '사랑'때문에 산다고 망설임 없이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정의를 하고 데이지에게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데이지의 이야기는 '죽음'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종 즐겁고 쾌활하게  이어진다.  데이지와 잭의 관계, 데이지와 케일리의 관계, 데이지와 엄마의 관계.  함께 공유했던 시간들이 24시간이 지난다고 리셋이 되어 버리고, 새로운 시간과 기억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데이지와 케일리라 찾아헤메던 사람.  잭에게 딱 어울릴것만 같은 사람이 나타났음에도 데이지는 안절부절 하고, 잭과 함께 있는 패멀라를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왜?  여전히 사랑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데이지와 함께 하고 있는 케일리.  사람의 생각은 협소해서,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것이 보이지 않는다.  케일리의 말처럼 데이지가 떠나간 후에, 데이지를 잃는 건 잭뿐만이 아닌라는 걸 데이지는 인지하지 못했다.  죽음 이후의 삶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죽음을 앞둔 사람은 두렵고 무섭고, 떠나보려는 사람도 가슴아릴 수 밖에 없다.  인생의 정답을 딱 부러지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엉뚱발랄한 데이지가 외치는 '내 남편의 아내찾기'는 죽음을 매개체로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어 준다.  데이지 뿐 아니라 그녀를 알고 있는 이들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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